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였다.
처음 본 순간... 그대를 雪花 라 일컬으니 너는 내게 스며들어와 하얀 '눈꽃' 이 되었다.
"흠.............."
서책을 몇장 넘기다 미간을 찌푸린 남자는 결국 읽던 서책을 덮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뒷짐을 지고 느린 걸음으로 방안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이마를 긁적이다, 또다시 앉았다 일어서기를 몇번을 반복했을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해가 져 어두워진 문 밖으로 결국 걸음을 내딛었다.
누마루에 걸터 앉아 조용히 목화를 신고 최대한 발소리를 줄여 마당을 가로질러 나가려는데 어두운 마당 한 구석에서
불쑥 튀어나온 하인때문에 그가 화들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아니. 나으리! 이 한밤중에 어딜 그리 급히 가십니까요?"
잰걸음으로 달려와 그의 앞에 고개를 조아리는 하인에게 쑨양은 쉿..이라며 손가락 하나를 입에 가져다대고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 잠시 다녀올 곳이 있오. 늦진 않으니 걱정마시오."
"아니..이 어두운 밤중에... 소인이 따라 나설깝쇼?"
그를 두고 급히 대문 밖을 나서려던 쑨양은 자신을 붙잡는 하인의 한마디에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괜찮소! 내 걱정마시고 먼저 주무시오."
"아니..그래도..어두운데..."
대답 대신 곤란한 얼굴로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는 남자의 표정에 그제서야 뭔가 눈치를 챘는지 하인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뒷 마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어둠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한숨을 내 쉰 쑨양은 대문을 나서 어두운 길을 빠른 걸음으로 내딛었다.
"아니~이게 누구셔요~? 당상관 나으리와 함께 오셨던 분이 아니십니까?"
불빛 아래 그를 발견한 금옥이 반가운 기색을 내비치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급히 온 모양인지 얼굴에는 땀이 한가득이오, 거친 숨을 내쉬며 서있는 그의 모습에 금옥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삼켰다.
"선월이를 찾아 오신 겝니까?"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그가 금옥의 물음에 선월? 이라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여인이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일전에 봤던 아이를 찾아오신게지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여보이는 남자의 반응에 금옥은 잠시 기다리시라 말을 남기고 목채 건물 뒤로 모습을 감췄다.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단숨에 찾아온건지 그 자신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날 밤 이후로 문득 문득 떠오르는 얼굴때문에 서책도 눈에 들어오질 않고 정사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몇마디 말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채 여인이 따라주는 술만 홀짝이다 돌아온 그는 뒤늦게 여인의 이름조차 묻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서책 앞에 몽실몽실 떠오르는 환하게 웃는 얼굴때문에 며칠을 내내 속앓이를 하던 그가 결국은 견디지 못하고 급한 발걸음으로 여인을 찾아온 것이다.
허나, 찾아와서 무엇을 어찌할 것인가.
그점에 대해 쑨양은 아무것도 생각한 것이 없었다.
목채 건물 뒤로 사라진 여주인을 기다리다 여기까지 찾아온 자신의 모습이 갑자기 한심스러워져 그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도대체..무슨 짓을."
한심한 자신의 작태에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 쉰 그는 목채 건물에 시선을 두었다가 다시 돌아가려 걸음을 옮겼다.
"나으리~어디 가시는 겝니까?"
여주인이 오기 전에 되돌아가려던 그는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금옥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여인에게 등을 보인채로 얼어붙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한숨을 푹- 내쉬는 그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아무런 말도 없이 술잔을 묵묵히 비워내던 쑨양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따가운 시선에 옥빛 술잔만 괜스레 만지작거렸다.
이곳까지 찾아 온 이유가 있어야 무슨 말이라도 할터인데 그 자신도 왜 이곳을 왔는지 모르기에 여인에게 딱히 건넬 말도 없었다.
오늘 따라 이곳은 왜 이리 한산한지 옆이나 밖에서 술주정을 하는 이 하나 없다.
인사를 끝으로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적막함 속에서 말없이 술잔만 비워내던 그가 눈앞에 내밀어진 곶감 하나에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보였다.
"이제서야 봐주시는 겝니까?"
"....................."
"다시는 안 오실 줄 알았는데.....이리 다시 뵈니 좋습니다."
서책 앞에 몽실몽실 떠오르던 그 웃음을 지으며 선월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어찌 그런 생각을..."
"말없이 술잔만 기울이시길래 제가 마음에 안드시어 그러신줄 알았습니다."
두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입을 연.. 어딘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선월의 말에 쑨양은 놀란 눈으로 손사래를 쳐보였다.
"아닙니다. 그건 아닙니다."
당황한 표정으로 변명같은 손짓을 하는 그의 행동에 선월이 풋..하고 웃어보이고는 비워진 그의 술잔에 다시 술을 채워 넣었다.
"제 이름도 묻지 않으셨지요?"
"아...선월이라고..."
"제 이름을 아셨습니까?"
"조금 전에 여주인께서 알려주셨습니다."
그의 말에 선월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보였다.
쑨양은 받아든 곶감을 접시에 내려두고 뭔가 궁금해진듯 손끝으로 이마를 긁적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월이란 이름은 누가 지어준 것 입니까?"
"그저 이곳에서 불리는 이름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본명이 따로 있는 것 입니까?"
순간 자신의 이름이 머리속에 떠올랐지만 선월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본명을 묻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선월은 고개를 살며시 숙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없습니다. 여기서 불리우는 선월이라는 이름뿐입니다."
"선월..이라."
고운 달빛을 뜻하는 이름 또한 여인에게 어울렸지만 쑨양은 선월을 만난 이후로 자꾸만 떠오르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마침 자신의 본명도 없다하니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고민하는 듯 깊은 생각에 잠긴 그의 얼굴을 살피다가 선월은 어떠한 생각이 들었는지
술잔만 매만지는 그의 손끝을 웃음기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조용히 그에게 말을 건넸다.
"괜찮으시다면 나으리께서 하나 지어주시겠습니까..?"
자신의 생각이라도 읽은 듯 맑은 미소를 지으며 건네오는 선월의 제안에 쑨양은 얼굴 가득 반가운 기색을 내비쳤다.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그답게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모습에 선월은 마주 웃어보이고 말았다.
혹시나 싶었는데 그가 자신을 위해 무언가 준비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리해도 괜찮겠느냐 물어오는 그의 밝은 목소리에 선월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설화."
"........"
"괜찮다면.. 설화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그가 나에게 '설화'라 일컬었다.
추운 겨울.
마른 가지에 피어나는 하얀 눈꽃.
내 웃는 모습에 그 꽃을 떠올렸다던 그는
깊고 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따스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설화라 불러주었다.
왜인지 모르게 가슴을 울리는
그 이름에.. 그의 목소리에..
어느새 하얀 눈꽃이 가슴 속에 스며들어와
지울 수 없는 '각인'이 되었다.]
***
안녕하세요~흰둥이이예요...
오늘따라 왜이리 글이 안풀리는지...
썼다 지웠다 반복을 하다가 이제야 겨우....완성했어요ㅠㅠㅠ
사진은 맘에 드는데ㅎㅎㅎㅠㅠㅠㅠㅠ흠..하..휴...
저리 예쁘게 웃으니 쑨양이 '설화'를 떠올렸나봅니다.
이제 그만 머리를 식혀야겠어요..ㅠㅠㅠㅠㅠㅠㅠ
다음이야기로 다시 올께요~~~~~~~
제 글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많은 분들...
늘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