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기억하고 있었어? 아-! 진짜 고마워, 나 사실 엄마한테 그만 뒀다고 했는데 아직 안 그만 뒀거든."
"그럴 줄 알았지. 내 딸 끈기성이 어디가나? 거기 서봐. 사진 찍어줄게."
찰칵- 일회용 카메라의 작은 소음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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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8살 이구나. 나는 사진사에서 뽑아온 애의 사진을 앨범에 넣으며 웃고있는 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만약, 빌어먹을 내 직업이 다른 직업이였다면 지금쯤은 같이 살았겠지, 이런 행사때마다 찾아가서 어떻게 컸고, 어떻게 학교생활을 하고있는지 알겠지. 시발, 이래서 직업이 문제야 직업이.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작은 액자에 있는 앨범을 쳐다보며 쇼파에 누웠다. 가정이 그립다. 이미 다른새끼의 남자가 되어버린 아내도 그립지만, 지금은 나 없이 새 아빠란 새끼에게 아빠라고 칭하는 딸.
이렇기 깊은 딸 애정이 있는 줄 몰랐다.
하긴, 있었으면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사표를 냈었어야지.
그놈의 국가가 뭐라고. 시발, 국가기밀 조직이 뭐라고. 액자를 다시 테이블위에 올려놓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띠리링- 하고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휴대폰을 꺼내자, 사랑하는 딸. 이라고 적혀잇는 문구를 보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
"어, 딸."
"여보세요? 아- 아빠! 내일 카페에서 만나. 엄마랑 같이 할 얘기가 있어."
"얘기?"
"응, 우리 맨날 만나는 그 카페에서, 음- 오후 2시에."
들 떠 있는 목소리에 어느세 나도 입꼬리까지 말아올리며 그래, 그래. 만 반복했다. 그저, 딸이 원하는 거라면 다 해주고 싶었다.
몰라, 아내한테는 느껴본 적 없는 그냥.
기쁘게만 해 주고픈 아빠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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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해외여행?"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하는 딸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내 표정을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아는 언니와 가기로 했다며, 해외에 가서 뭘 한건지 내게 신명나게 얘기하는 애의 기뻐하는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부모님 동의가 있어야 한데서, 당신 우리 딸이 좋아하는 거라면 사족 못쓰잖아. 어서 사인해."
하여간, 여편네. 좋은 물만 마시고 살아서 딱딱한 말투 봐라.
하지만 그게 쉽냐고. 우리나라도 위험한 판국에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나라에 가서 지금 딸내미가 말하는 것들을 하고 다닌다고?
나, 참 이 여편내가 좋은 시설에 보디가드까지 끌고다녀서 팔자 좋게 살았나 보다.
"난 허락못해."
그러자, 딸 애까 왜냐며 울듯이 얼굴을 찌푸리는데… 아오, 왜 하필 외국이야.
우리나라도 좋은 곳 많잖냐.
내 말에 아내가 화내서 왜 안되냐며 따지듯 내게 말했다. 우리 딸이 이렇게 가고싶어 용쓰는데 니가 그러고도 아빠냐고. 아 이 시발, 나도 안보내 주고 싶냐고, 내 직업이 뭐였는데. 마음 같아선 내가 같이 가서 지켜주고 싶은데 딸은 그런거 싫어하잖아. 외국이 뻔히 위험한거 알면서. 내가 왜 결혼하고도 너랑 같이 외국업무 나갈때 같이 안대리고 나갔는데.
계속, 내게 쏟아붓는 아내에 말에 대답도 못하고 있을때, 왈칵 딸내미가 눈물을 터뜨렸다.
아…
"알았어, 알았어. 대신, 약속하자 딸. 수시로 전화하고, 너 그 언니라는 사람 전화번호 알려주고, 니가 묵을 방 전화번호로 전화해주고, 무슨일 있으면 전화해. 알겠어? 울지말고."
우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겨우겨우 간신히 허락해주자, 딸은 조그맣게 대답을 했다.
"공항은 아빠가 같이 가줄게."
--
"잘 다녀오고, 도착하면 전화하고, 알겠지?"
아 진짜 불안한테. 나는 입 안 살을 꽉 깨물며 말했다. 딸은 그저 해외여행에 대충 알았다 라고만 대답해주곤 공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괜찮을라나 몰라.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전화 해주겠지, 내 딸이잖아.
나는 존나 말 안듣는 엄마 아들새끼여도, 우리 딸은 착한 딸이니까 전화 꼬박꼬박 해주겠지.
아무일도 없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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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않와.
나는 거실을 서성이며 휴대폰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여전히 진동도, 벨소리도 부재중도 문자도 아무것도 없었다. 뭐야, 왜 전화 안와.
하긴, 내 피 섞인 내 딸인데 착하긴. 더럽게 말 안듣지 내 딸.
그래야 내 딸이지.
나는 어쩔 수 없이 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 오래 걸려 전화를 받는 딸.
"여보세요, 아빠?"
다행이다.
"딸, 왜 전화 않했어."
"아… 미안해. 근데 아빠, 이 집에 그 언니 친척들이 없어. 그게…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니야. 근데, 나도 정말 몰랐어. 그래서 이 집 전화번호 몰라…"
뭐?
머릿속에 새 하얘지는 기분이다. 아주 개같은 기분이다.
위험한거 잖아. 같이 간다는 그 언니라는… 아 시발 이래서 안보낸 다는 거였는데.
나는 퍽퍽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나도 몰랐…, 잠깐만 아빠, 집에 누군가가 들어왔어."
"…무슨소리야."
"그 언니 친척은 아닌 것 같아. 어떻게 그 사람들이 언니를 잡아가!!"
"침착해, 딸. 소리죽이고, 너 공항에서 내리고 누구와 만났어?"
"아니, 없어. 아, 그. 있어! 잠깐만 쑨양! 쑨양이랬어. 쑨양 그사람과 택시타고 왔어! 아, 아빠 어떻게에…"
후우…
"딸, 내 말 잘 들어. 우선 아무 방 하나 들어가서 침대 밑으로 들어가."
수화기 너머로 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나도 역시 옛 직업때문에 사용했던 확장기와 녹음기를 꺼내어 휴대폰과 연결시키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아빠, 들어왔어.' 란 딸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괜찮아. 겁먹지마. 사실상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볼륨을 낮추고 내가 하는 말 다 기억할 수 있지?"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주억거리는 딸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그 위로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까지. 시발놈들이 할 짓이 없어서.
"그래, 우선 넌 잡혀갈거야."
낮은 소리를 내며 코를 훌쩍이는 소리.
"울지마. 침착하고, 납치될 동안 너에게 10초의 시간이 있을거야. 그때 모든걸 봐야 해. 키나, 얼굴 형태나, 그녀석들 몸에 새긴 뭐 그런 거든, 세세한 것 모두 다. 그리고 내게 말 해줘. 할 수 있지?"
"…응…"
그래, 착하다 내 딸.
그리고 낮은 발걸음 소리.
"아빠, 왔어."
"알아, 들려. 만약 그 놈들이 방으로 들어오면 침대 밖 가까이로 전화기를 대. 그 놈들이 무슨말을 하는지 들어야 하니까."
끼이익-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딸의 숨참는 소리와 함께, 땅을 울리는 소리가 더 가깝게 들린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언어로 말하는 녀석들의 낮고 음침한 목소리. 그들은 뭐라고 서로 주고받길 말다가 또다시 발걸음 소리. 나간다. 한놈, 두 놈. 그리고 복도 밖까지 멀어져가는 발소리. 아니 잠깐만.
방에 들어온건 세 놈…
"아빠, 나갔어! 날 못 발견 했…아아아아아악!!! 189!! 검은색머리 세명!! 해와 달!! 아아아아악!!!"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 물었다.
"lamentable."
그리고 으직- 하고 멈춘 소리.
시발, 니네 아주 잘못 걸렸어.
[박지성]
"뭐, 나한테 온다고?"
나는 아내의 말에 쇼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내 방 상태를 살피었다.
벽에 걸려있는 총하며, 나에 직업에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가 보면 놀라 기절할 것들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갑자기, 왜. 여기 위험해. 오지마, 응?"
"…나 외롭단 말이야…"
울먹이는 듯한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에 아- 나는 손바닥에 이마를 묻으며
"홀몸도 아니잖아, 비행기 타면 우리 애기 괜찮을까?"
"괜찮아, 당신이랑 내 아기잖아. 그대신, 공항으로 마중나와야 돼."
진짜 누구 여잔지 고집은…
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설마, 간 큰 놈들이 집까지 쳐들어와서 해코지를 하겠나 싶다.
아, 우선 총들부터 치워야…
--
"여보!"
나는 공항을 나오며 내게 손을 흔드는 아내를 바라보며 나도 똑같이 손을 흔들었다. 한국에 있는편이 좋을텐데… 나는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며 아내의 짐을 들었다.
"한국음식 그리울까봐, 내가 여러가지 많이 챙겨놨어."
"무거웠을 텐데, 뭘 그렇게 많이 싸왔어. 우리 애기는 건강하대?"
그러자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응 이라고 말하는 아내.
짐을 트렁크로 옮기고 차에 탔다. 가는내내 집안에 총이 남아있나 안남아있나 걱정했지만, 의외로 아내는 여기저기 구경하지 않았고, 곧바로 요리를 하겠다며 손을 걷어 부쳤다.
나 참 못말린다니까.
"그럼, 내가 잠깐 밖에 나가서 필요한 거 장좀 보고올게. 뭐, 필요한거 있어?"
"음… 파랑 양파. 그리고 내 사랑?"
나는 그런 아내의 장난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차키를 가지고 다시 집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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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파랑 양파랑 사오라고 했는데 바리바리 사왔나… 나는 양 손 가득한 짐을 차 안에다 넣었다. 그렇지만서도 집 안에 아내가 준비해 놓을 냄새를 생각하니 그냥 웃음만 비집고 나왔다. 내일 금방 총들고 나가야 하는데에도 그저 그냥 아내가 있어 행복하다.
미쳤지, 이런 위험한 곳에 아내를 무턱대고 부르다니.
나는 콧노래 까지 흥얼거리며 빨리 속도를 높여 집으로 왔다.
"여보, 나 왔어."
'Look for it carefully'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문구.
나는 그제서야 방 안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엎어져 있는 의자들과, 깨져있는 브라운 관의 티비. 엎어져 있는 냄비. 깨져있는 창문.
그리고 없는 아내.
[박주영]
"우리 딸 벌써 18살이가."
나는 한참 간식을 깨작이고 있는 딸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며 웃었다. 아빠 왔는데 뽀뽀도 안해주나, 하고 토실한 볼을 만지자 그제서야 아 무슨 뽀뽀야 란 소릴해놓고 지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쯧쯧, 내가 저걸 딸내미라고.
"어머, 아빠 삐졌네. 딸, 그러지말고 오늘 학교에 있던 얘기좀 해줘!"
사춘기라고 요즘 애교도 잘 안부리고. 서러워서 살겠나. 나는 넥타이를 끌러내며 아내에게 넘겼다.
그러자 방에서 나오며 현관문 쪽으로 나가는 딸. 뭐야, 이 늦은 시간에 어딜가?
"딸램, 어디가노."
"학원. 다녀올게."
"이 늦은 시간에 무슨 학원인데. 아빠가 댈다줄까?"
"필요없어. 학원차 오니까."
짜식, 까탈스럽긴.
콧등을 살짝 찌푸리자 아내가 와서 '당신 일 때문에 바빠서 집에 못 오잖아. 그러니까 딸이 불편해서 그래. 섭섭하기도 하고, 너무 상처받지 마.'
내가 무슨 상처를!
"안받는다. 밥 줘."
는 무슨. 걱정시려 죽겠네.
--
벌써 밤 11시. 학원에서 언제오는데? 인상을 찌푸리며 턱을 괴자, 아내가 그저 웃으며 방으로 들어간다.
뭐야 자러가?
"뭐, 벌써자, 딸램 아직 안왔는데."
"우리 딸은 알아서 오니까 잘려구요. 당신도 피곤할테니까 빨리 자."
피곤은 무슨.
딸 올때까지 기다려야지.
11시30분. 아 학원이 애들 잡아먹나. 왜이리 안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집 전화가 울렸다.
뭔데.
"여보세요?"
"여보세요? 엄마? 아빠?!"
"딸?"
"아빠!! 아빠, 살려줘, 나 지금… 흐윽, 골목인데 사람들이…"
뭐?
"울지말고 똑띠하게 말해봐라. 사람들이 왜, 니 차 타고 온다 안그랬나."
"흐윽. 오늘은 친구들이랑 같이 갈려고 했는데… 아, 아빠. 인신매매들인가봐… 나 어떻게, 나…"
"거기 어딘지 몰라?"
"모, 모르겠어. 어떻게 사람들이 오고있어, 이제 도망갈 곳도 없는데 아빠아…"
"괘안타."
후우- 난 한숨을 내쉬었다.
"잡히더래도 내 구해줄게. 그러니까 그 아 새끼들이 하라는 대로 그냥 가만히 있어. 화내게 하지말고, 반항 피우지말고. 알겠나, 딸."
"으응…"
"위치추적해서 어찌 해서든 찾아낼태이까 저번에 아빠가 줬던 시계있지? 그거 옆에 스위치 켜놓고 몸 안쪽에 숨겨놔. 끊자."
"아빠…"
"안다. 사랑해. 내 딸. 꼭 구해줄게. 무서워도 쫌만 참아라."
꼭, 구해줄테니까.
그 아 새끼들 한테서 꼭 구해줄테니까.
좀만 참아.
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