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야 나 다음주에 한국 들어가는데
-다음주에 시간 괜찮아?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원우는 OO의 생일을 꼬박꼬박 챙겼다. 거창하게는 아니라도 문자 한 통 정도는 꼭 보냈다. OO의 생일은 그녀를 알고 난 후부터 원우가 제일 좋아하는 기념일이 되었다. 그러다 원우가 군대를 가고, 임용고시 준비로 3년만에 보낸 문자임에도 그녀는 변함없이 원우를 반겨주었다. 어쩌면, 원우는 OO의 이런 모습을 제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한결같이 누군가를 소중히 대하는 모습을.
8년이라는 시간은
3학년에 진급하자 문예부 선생님이 원우를 불렀다.
"원우야, 이 정도 스펙이면 A 대 문학 특기생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어때?"
사실 A대 문창과를 생각해보지 않은건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꿈꾸는 대학교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우는 국어 교육과를 지원했다.
스쳐 지나가듯 말한 OO의 한마디 때문에.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제 문학교사가 원우의 꿈이었고 원우의 전부였다.
원우는 침대맡에 놓인 액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졸업식, OO의 손에 잡혀 어정쩡하게 팔짱을 끼고, 한 손으로는 브이를 하고 있는 조금은 빛이 바랜 사진을.
졸업 후에 OO는 유학길에 올랐다. 혹시나 싶어 매년 반창회에 나갔지만, 그녀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원우는 얌전히 술을 들이켰다. 딱 한 번, 급한 일이 있어 반창회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OO가 왔다더라. 억울함에 눈물이 찔끔 났지만,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7년이라... 7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곧 있으면 강산이 한번 바뀌는 시간이었다. 7년 동안 여자친구를 한 번도 사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딱 한 명, 그것도 대학시절 한 학년 위의 선배였다. OO가 백합 같았다면, 선배는 장미 같은 여자였다. 화려했고, 주변에 벌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 관계에 있어서 원우는 금세 지쳐버렸다.
*
약속 시간은 8시였다. 7년 만에 만나는 그녀 덕분에 원우는 밤잠도 설쳤다. 꿈에서나 그리던 일이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어떤 표정으로 그녀를 반겨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했지만 답은 정해져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아마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니.
"원우야!"
아, 어쩜 7년 전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 아니, 더 예뻐졌다. 원우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날것 같았다.
할 말이 많은데 정리가 잘 안 된다는 말이 이런 기분이었을 줄이야. 밥을 먹기엔 애매한 시간이라, OO는 자신이 아는 곳이 있다며 원우를 이끌었다.
도착한 곳은 바였다. 잔잔한 팝송이 흐르고, 조용하고 분위기 좋은 바. OO는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벗으며 물었다. 어떻게 지냈어? 요즘 뭐하고 지내?
원우가 답했다. 임용고시를 쳤어, 문학 선생님 되려고.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어서 말해주고 싶었다. 7년 전에 네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음을.
하지만 아직은 일렀다. 그래서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만 더.
화장실에서 본 거울속의 원우는 영락없는 18살의 소년의 모습이었다. 사랑에 빠진 눈을 하고 히터의 열때문인지 술기운인지 볼이 발그레한 사춘기 소년.
술이 한 잔씩 들어가고, 취기가 오르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 이야기를 시작으로, 누구 기억나? 걔 요즘 어떻게 지낸다더라 하는 이야기까지. 그러다 한순간, OO가 운을 뗐다. 원우야 너 그때 나 좋아했잖아 맞지? 나 다 알고 있었다? 나도 니가 좋은데, 말을 안 하는 거야. 사귀자고. 그래서 좀 지쳤던 것 같아. 둘 사이가 팽팽해야 하는데 자꾸 늘어진 카세트 테이프 처럼 축 쳐지니까. 아니 그냥 그랬다구.
원우는 오늘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숨을 크게 들이 쉬고, 나즈막히 이름을 불렀다. OO야
"좋아했었던 게 아니라 좋아해, 아직도. 7년, 아니 이제 8년이구나. 문학 선생님이 좀 멋진 것 같다는 네 말 덕분에 문예부 들고, 국어교육과 썼잖아. 몰랐지? 8년 동안 단 하루도 널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어."
나 그때 P출판사에서 장원받았던 시 있지, 늦봄과 여름사이. 그것도 다 네 이야기잖아. 이건 진짜 몰랐지?
OO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세상에 이렇게 로맨틱한 고백이 또 있을까.
8년 전 얇은 테의 안경을 쓰고 시를 쓰던 소년이,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해 멋진 남자가 되어 지긋이 눈을 맞춰오며 자신을 8년동안 좋아해왔다고 고백하는데, OO는 오늘만큼은 자신이 제일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원우외전까지 마쳤네요. 원우 같은 남자 어디 없나요...?
요즘 글이 잘 안써집니다 8ㅅ8 어떠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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