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돌아왔다
(본격 구아내 꼬시러 온 구남편 박지민)
w.레브
한 쪽 어깨에는 가방을 걸치고 썩어버릴 듯한 몸을 이끌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벽에 기대어 6층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6층입니다-. 이제 다 왔다는 생각에 조금 더 노곤해지는 몸을 일으켜 집문 앞에 섰다. 이상하게도, 점심시간 즈음에 집 앞에 택배를 놓고 간다는 택배원의 문자가 있었는데 집앞은 깔끔했다. 아저씨가 잘못 경비실에 맡겼거니-,하며 집에 들어섰다. 나 혼자 사는 집 치고는 넓은 우리 집이…
부스럭
고요한 침묵을 깨뜨리는 소음이 날카롭게 울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주위를 살폈다. 집은 주인이 자리를 비운 그 상태 그대로인 듯하였다. 깜깜한 어둠.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에 익숙해질 법도 한 시간이었는데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을 더듬으며 거실 불을 켰다.
그리고 거기에는 평생 볼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보지 말아야 할, 볼 수 없던
남편이 있었다.
"박…지민?"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타지에서 만난 한국인은 참 깊은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말이 통한다는 점을 물론이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끈끈한 정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렇듯 타지에서 만난 박지민이란 내겐 특별한 사람이었다. 해외 파견근무 차 방문한 캐나다 외국 지사에서 처음 만난 우리 둘은 그렇듯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지민은 어린 시절에 캐나다로 넘어가 살게 되었다고 얘기했다. 무슨 사정이 있는 듯하였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길 꺼려했고, 그걸 아는 나 역시 굳이 캐묻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점심시간에 점심을 같이 먹는 동료에서 저녁을 같이 먹게 되고 나중에는 내가 잠시 머물던 숙소까지 데려다주는 사이가 되었다.
"연애 할래요?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아는 점 보다 모르는 점이 더 많지만, 여주 씨 놓치면 안 된다는 건 분명히 보여서요."
그리곤 마침내 연인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불같이 시작한 사랑은 이별도 빨리 다가오는 듯했다. 본사에서 국내 귀국 발령이 나왔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임을 망각한 채 시작한 사랑에 대한 대가도 컸다. 이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그리고 그 후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우리 이제 못 만나. 나 곧 한국 돌아가. 그동안 나한테 해줬던 말이나 행동 평생 기억할게."
"…."
"정말 정말 고마운 사람이야, 너는. 이렇게 떠나게 돼서 미안해. "
이 부분에서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우는 모습을 보여주긴 싫어 양손으로 두 눈을 비볐다. 지민은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나직하면서도 단백한 목소리로 내게,
"결혼하자, 여주야. 만난 지 얼마 안돼서 조심스러운 것도 알지만 결혼한 거 후회 안 하게 해줄게. 처음에 했던 말처럼 정말 너 못 놓쳐."
"…나 우리 가족 떠나 여기서 못 살아."
"내가 한국 갈게. 여기 있던 일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너 먼저 한국 가있으면 나 곧 뒤따라갈게. 이미 언젠간 한국 돌아가려 했었어. 그 계획, 조금 일찍 실행하는 것뿐이지."
20대 초반의 어떤 사랑처럼 쉽게 떠나갈 줄만 알았던 사랑이 이렇게 다시 돌아왔다.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기뻐서 울었던 것 같다. 날 잡아준 지민이가 너무 고마워서. 그 순간이 행복해서.
"이혼하자. 너랑 더 이상 얼굴 맞대고 못 살겠어."
"뭐…?"
"갈라서자고. 너는 너 길 가고 나는 내 길 가겠다고."
결혼은 현실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연애 때는 같은 겉모습을 하고선 지니고 있는 다름에 우리가 서로에게 흠뻑 빠졌다면, 결혼 후 그런 모습은 서로에게 결점으로 다가왔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기보다는 하나로 통일시키려 헛수고를 하였고 그 결과 싸움이 잦아졌다. 하루를 걸러서 싸우기를 수 백번 서로가 서로에게 결국은 백기를 들었다. 승자도 없었다. 그냥 지침, 그뿐이었다.
내 말에도 너는 큰 동요가 없었다. 이유도 묻지 않고 눈을 감더니 한숨을 쉬었다. 뭐,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뜻이었나. 아님, 내 입에서 이혼이란 말이 먼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나. 나도 이 말을 하는 동안 내가 후회할 것이란 건 알았다. 그래도 서로를 위해서,라는 구차한 이유를 붙이면 우리는 헤어졌다. 2년 전에 억지로 이어 붙인 인연은 이렇게 끊겨버렸다.
그리고 몇 주 뒤, 박지민은 캐나다로 돌아갔다.
그렇게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것만 같던 박지민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이 상황,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져버렸다. 어떻게 반응하지. 잘 지냈어? 오랜만이다? 너무나 구차한 구여친 같다. 미련 없는 구아내는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할까. 모르겠다.
"우리 집에 어떻게 들어왔어?"
수만 번의 고민 끝에 내 입에서 나간 첫마디는 바보 같게도 어떻게 들어왔느냐였다.
"비밀번호 그대로던데. 우리 결혼기념일."
이때까지만 해도 지민의 얼굴엔 아무 표정이 실려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이 대목에서 저세상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미련 없는 구아내는 개뿔, 추억팔이나 하는 아줌마로 안 보이면 다행이다. 그런데 뭐, 미련도 많고 추억팔이도 자주하는 거라 억울하진 않다. 실은 후회 많이 했거든.
"여기 왜 왔어? 뭐 놔두고 간 거라도…"
"여기서 잠시만 지낼 수 있을까?"
지낸다는 건 무슨 뜻일까. 말 그대로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듯이 멍해지면서 눈을 치켜떴다.
"잠시 일 때문에 한국에 오게 됐는데 지낼 때가 없어서. 한국에서 아는 사람이 너 말고는 없기도 하고."
"서울에만 해도 호텔이 깔렸는데."
"부탁이야."
머리가 빙 도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말을 하던 지민이 처음 만났던 그 날 그 모습 그대로인 것만 같아서. 2년 동안 넌 바뀐게 없다.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을 감쌌다. 이제 내 습관이 되어버렸나 보다. 자꾸만, 예전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실은,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2년 동안 죽도록 노력해서 잊지는 않아도 기억은 안 할 수 있었는데. 제길. 제자리다.
지민은 언제 또다시 캐나다로 떠나갈까. 짧을지 길지도 모를 그 기간 동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후회했던 그 선택을 돌릴 수 있을까하는 기대심리에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멍청한 김여주.
그냥, 넌 항상 그래, 지민아.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느꼈다. 남편이 돌아왔노라고.
안녕하세요 레브입니다!
이 글은 거의 1년 전부터 생각하고 쓰던 글인데 이제서야 용기내서 올려봅니다...! 많이 좋아해주셨음 좋겠어요ㅠㅠ
오늘 밤에 1편 올라올 예정입니다 글 진행이 왜이렇게 빨라? 하지마시고 1편부터 다시 천천히 풀어나갈 예정이니 기다려주세요!
마지막으로 암호닉 신청 당연히 받습니다 많이 신청해주세요~~~~~~ 그럼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서 뵈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