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이 지고 나면.
_연모
"벌써 5년 전 이네"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제 일 처럼 생생한데 5년 전 일이라니,
이런 생각을 하게된 이유는 사실 방금 이삿짐 청소를 하다가 실수로 어떤 액자를 떨어트려 발견한 옛사진 때문이었다.
그 애와 나의 관계는 특별한 듯 하면서도 평범한, 흔한 말로 우정이라고 해야하나.
또 생각해보면 우정이라 하기도 뭐 하다.
그 애가 가던날 나와 그 애 사이에서 무언가 묘한 기류가 흘렀기 때문이다
보통의 초등학생 같은 경우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가 자신과 전학이라는 이별을 하게 되면
예를 들어 '꼭 다시 만나자~' '연락 해야해~' '가지마 엉엉' 등등... 이런 결말을 맺으며 끝나게 된다. 아 물론 예외는 있다
그건 바로 나 같은 경우다. 어쩌면 확실하게 우정이라고 단정지을수 없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그게 무슨 감정인지, 아니. 감정이라는 단어를 써도 적절한건지 모르겠다.
그때 우리는 어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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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뭐야 또 내가 술래야? 완전 너무한거 아니야? 어떻게 나만걸려!!!"
그날따라 유독 나만 술래에 걸렸다.
애들이 짠건지 우연히 그날만 운이 안좋았던건지, 매우 불쾌한 날 이었다.
나는 그렇게 하루종일 잡히지도 않는 애들 뒤꽁무늬만 쫓아 가고 있었다.
"야 얘 죽겠다 죽겠어. 우리 좀 쉬었다가 할까?"
그때 그애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숨 턱 끝까지 차오르던 나에게 더없이 좋은 손길이었다.
"고맙다 권순영"
그애의 이름은 권순영이었다.
"자, 음료수! 너 포도주스 좋아하잖아"
"권순영이 어쩐일로? 고맙다~"
"그냥 오늘따라 사주고 싶어서"
집으로 가는길, 웬일인지 권순영은 나에게 이상하게 친절했다.
평소엔 사달라고 그렇게 조르고 졸라도 니 돈으로 사먹으라던 권순영이었다.
"근데 너도 포도주스 먹어? 너 포도냄새 싫어하잖아"
"그냥, 너가 그렇게 좋아하길래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나 하고"
권순영은 포도향만 맡으면 진저리를 치는 녀석이었기에
내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나 할말 있는데"
"웅? 말해~"
"그게 말이야.."
"그게 뭐~"
"그니까...."
"그니까 뭐~"
말꼬리를 흐리며 계속해서 말을 미루었다.
이상한 날, 권순영이 친절했던 날. 그날의 마지막은 내 머릿속을 가득 헤집어 놓았다.
"나 전학가."
그 다음날 반 교실에는 어색한 공기만 흐르고 있었다.
나랑도 친했고 권순영이랑도 친했던, 말하자면 술래잡기 놀이의 멤버들.
그 애들도 우리 둘 사이의 미세한 흐트러짐이 느껴졌는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어쩐지 어제 너무 친절하다했어."
그때의 나는 알수없는 기분에 휩싸여 혼잣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도 친한친구들이 전학간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미련없이 보내줬는데.
근데 왜 권순영이 간다니까 기분이 이상해지지? 하는 생각.
그렇게 혼잣말로 하루를 끝내고,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순영이가 전학을 가게 되었어요"
알고있다. 굳이 말안해줘도 된다.
직접 권순영 입으로 들었으니까.
이때 만큼은 여태까지 하나도 원망스럽지 않던 담임선생님이 원망스러워졌다.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속상한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어..얘들아 그동안 나랑 놀아줘서 고맙고!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우리 6반 다시 만날수 있겠지? 진짜 즐거웠어!"
난 너를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다시 만나지 않을거야.
이런 생각들이 권순영이 하는 작별인사를 가로막았다.
'왜 심통이 난거야 최주희 ..'
난 그때 무슨 감정이었길래 그런 생각을 한 것일까
왜, 속상한 마음이 자꾸만 들었을까.
작별인사가 끝나고 난 후에도 나는 권순영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권순영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야 권순영~ 아쉬워!!진짜 아쉬워!! 다른 학교가도 연락해라"
"그럼그럼 당연하지"
"우리 술래잡기팸 어쩌냐..니가 대장인데"
"대장이 가니까 속상하냐?"
"당연하지...좀 일찍말해주지 당일날 말하는게 어디있냐!!"
"미안, 어차피 연락하고 지낼거잖아"
"짜식아~"
나도 저랬다. 친한친구인 지은이가 전학을 갔을때에도 저랬다.
저 모습이 내 모습이어야 했다.
왜 그러지 못하고 보고만 있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청소 끝!"
'잘가 권순영'
그게 권순영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이게 아닌데, 과거회상을 왜 하고 있는거야.
다 지난일인데.
"여보세요?"
"어 주희야 엄마야"
"어, 엄마 왜?"
"이삿짐 청소는 다했니?"
"아직~ 청소하다보니까 옛날생각 나는 물건들이 많네"
"으이그 딴짓하지 말고 얼릉 치워라~ 치우고 나서 기숙사도 좀 둘러보고 해야지."
"네네~"
잡생각에 빠져서 아무것도 못했다.
괜히 엄마한테 잔소리나 듣고, 사진한장에 기분이 이상해진 날이다.
"♪♬"
"여보세요? 엄마 왜 또~"
"..."
"여보세요? 엄마?"
"주희야"
"어...?"
"나야 권순영. 잘지냈어?"
...오늘은 참 이상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