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남군 가지말라는 그의 말에 놀라 고개를 휙-돌려 그를 바라봤다. 내 눈을 바라보고 있던 그의 얼굴이 눈물로 번져가고 있었다. 아무말도 못하고 벙-져있던 나에게 다가와 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연신 가지말라며 흐느끼고 있었다. 정장을 갖춰입은 나와 달리,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눈물을 흘려대는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 미안했다.
"미안해요. 미안해서 당신 얼굴을 못 보겠어."
그에게 다가갈 자격이 없었다. 돈을 받고,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 부탁받은 그 잔인한 짓을 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부끄러웠다. 나를 계속 안고 있는 상태로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계속 울어대는 그에, 내 어깨가 축축히 젖어갔다.
나의 바지 끝자락을 잡고있던 그의 손을 떼어 바닥에 내려놓고 미안해요.라고 하며 다시 나가려는 순간, 그가 일어나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제발......여기 좀 있어주면 안돼요?" 너무나도 간절한 그의 말에 마음이 약해졌다. "성규씨, 내가 너무 미안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울어도 되니까 나한테 기대."
그를 차마 보고있을수만은 없어 몸을 돌려 그를 꽉-끌어안았다. 내가 그를 끌어안자 깜짝 놀란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괜찮아요, 나 어디 안가요.라고 수도없이 말했다. 나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고있던 그가 어느새 잠이 든듯 미동이 없었다. 가벼운 그를 안아들고 방구석에 놓여있던 이불을 깔고 그를 내려놓았다. 추워보이는 그의 몸 위로 내 옷을 덮어주고 차마 돌릴 수 없는 발걸음을 뗐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 내가 못 구해줘도, 제발, 그때까지만 살아있어줘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의 집에서 나온지 1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찬 내 머리속에 잊어버려야지, 도와주지도 못할 사람이다.라고 자꾸만 되뇌여도 그가 생각나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그를 강간하는 짓은 못하겠다고 명수에게 전화를 걸려고 핸드폰을 꺼냈다. 윙-하고 핸드폰이 울리며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명수'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하고 답하려던 순간,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라며 그의 말을 끊었다. 네.무슨 일이신데요.우현이 기분나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일은 잘 처리했습니까?"
"아니요."
뭐라구요? 언성이 높아지는 그에 귀를 막고 시끄러워.라고 조용히 내뱉던 우현이 오히려 자신이 화가 난 듯 말했다. "아니, 당신, 어떻게 그런 사람을 강간하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더이상 못하겠네요. 이제 그만- "야."
못하겠다고, 그만두겠다고 말하려던 순간 그가 내말을 뚝.끊었다. 정적. 그가 이어서 말을 한다.
"너 이거 관두면 계약파기야, 알아? 잘하면 5천인데, 관두면 10배 물어주는거 알지? 내가 알기론 너, 그럴만한 돈 없는걸로 아는데."
내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모든 걸 다 꿰뚫고 있는 그의 말에 나도 어쩔 수 없이 죄송합니다, 제대로 일 처리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나에겐 그럴만한 돈이 없었다. 찔리는데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한 이유가 돈이 필요해서,였다. 우리 형이 3년째 식물인간으로 살아가는 걸 보며, 의사들은 그냥 안락사 하시죠,라며 권유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형이 나한테 어떤 존잰데. 부모님 없이 둘이서 살아가던 어렸을적에 나를 키워준 사람이 누군데. 절대 형을 포기할수 없었다.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거고 5천을 받으면, 형의 병원비로 내려던 생각이었다. 한 순간의 감정으로 인해 형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에게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남우현씨, 지금 당장 일 처리하고 오세요. 아니면, 알죠?"
마치 그의 꼭두각시가 된 것처럼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그의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보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나를 달랬다. 형을 위한 일이니까, 내가 하고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니까. 다른 사람이 시켰을 뿐이야.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고. 죄책감 가질 필요가 없다고. 그의 집 마당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아무 생각 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대로 잠을 자고 있었다. 색색- 아기처럼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런 그를 무시한채 카메라를 꺼내 녹화 버튼을 눌러놓고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일어나."
그를 거칠게 흔들었다. 아아- 우현씨, 나 좀만 자면 안돼요...?라고 투정을 부리는 그를 보며 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건, 독해지지 않고선 할 수 없다고. 발로 툭-툭 그를 차며 일어나.일어나라고. 그에게 막 대했다. 그래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길래 일어나라고!라고 소리쳤다. 이럴 줄은 몰랐는지 갑자기 성규가 눈을 번쩍 떠 나를 쳐다본다. 우, 우현씨. 왜그래요. 화났어요? 놀라서 우물쭈물거리며 나의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다. 일어나라고 했으면 빨리빨리 알아들어야지, 그렇지, 성규야? 다정스레 그와 눈을 마주치며 손으로는 그의 턱을 잡고 말귀 못알아 들었어?라고 조용히 속삭였다. 우현씨, 갑자기 왜이래요.내가 잘못한거 있어요...? 확 달라진 태도에 적응이 안 됬는지 계속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그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입 닥치라고, 시끄러우니까.
"성규야, 이제부터 내 말 잘 듣는거다, 알겠지? 우리 앞으로 매일 볼 사인데, 내 말 잘들어야지 편해."
"우현씨, 아까는 안 그랬잖아요......저한테 왜그래요,갑자기.."
나에게 계속 아까의 상황을 되뇌이게 하도록 애쓰는 그를 보며 정말 미안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릴 찍고 있는 저 카메라때문에. 정반대의 말,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거야, 우현아. 미안해도 어쩔 수 없어. 조금만 참자.라고 굳게 다짐하며 그의 배를 발로 퍽- 찼다.
"윽-" 윽-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뒤로 나동그라졌다. 안그래도 연약한 그의 몸인데, 아까의 일로 더 힘든 그인데, 그런 그를 때렸다. 그의 눈에서 소리없는 눈물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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