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꾸
윤기
김탄소
-
"형 죄송해요, 하필 오늘이 도서관 담당일자라..."
"아니야 임마, 언제든지 부탁할일 있으면 해, 토끼 저거 표정봐라 니가 죄송할 일인지ㅋㅋ"
주말 아침부터 쾅쾅 울려대는 현관문에 다가가, 차마 두려움에 문을 열지는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당근을 꼬옥 쥐고만 있었는데요,
"뭐야 전정국이네,"
토끼의 키로는 볼 수 없는 인터폰에 비춰진 주인공은 바로 꾸기였나봐요! 토끼는 문을열어주는 윤기의 뒤에서 작은 엉덩이를 열심히 흔들어대며 춤을 췄어요.
"꾸기가 토끼집에 놀러와떠여~♪ 옴마나! 토끼는 너무 싱나요~♪"
윤기가 이 광경을 봤다면 카메라를 들곤 가족 단체톡에 올려 몇일간 놀림거리가 됐을 테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꾸기를 맞이하는데 정신이 팔린 윤기는 아쉽게도 토끼의 앙증맞은 엉덩이 춤을 볼 수 없었답니다.
토끼는 생각했어요! 오늘이 17년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 말이죠..
"킁킁, 뭐야 토끼야? 으으, 경종냄새."
꾸기의 크고 듬직한 손에 쥐어진 앙증맞은 손의 주인공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
"오늘 도서관 사서 담당일자인데, 동생이 집에 혼자있어야 되는걸 까먹어서,"
"토끼랑 둘이 붙여놓으면 되겠네, 김탄소 정민이 잘 돌볼 수 있지요?"
뒤에서 우물쭈물 다가서지 못하는 탄소를 손으로 잡아끌어다간 현관앞에 세우는 윤기에요.
"뭐야, 사자형아 집에 왜 토끼가 있더? 혹시 나중에 모글라고 살찌우눈고야?"
살벌한 멘트에 귀를 바르르 떨며 움츠러든 토끼주변을 뱅글뱅글 돌며, 토끼를 관찰하는 정민의 모습에
"융기야아...."
눈알을 도록도록 굴리며 눈치를 보는 토끼였어요.
"전정민 말 예쁘게 안하지?"
꾸기가 토끼의 귀를 살살 쓰담으며 동생을 타박하자, 토끼의 양볼이 누가봐도 '나 지금 윽수로 부끄러워예!!' 말하듯 빨개졌어요.
"탄소야, 동생 잘 부탁할게."
문을 나서는 꾸기의 뒷모습에 작은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헤헤, 웃어대는 토끼의 볼을 살짝 꼬집은 윤기가,
"난 그럼 좀 더 잔다. 사이좋게 놀아야 해요 알겠지?"
토끼는 아직도 꾸기의 온기가 느껴지는 귀를 작은손으로 살살 만지다, 작은 목소리로
"녜에..."
하고 대답했어요.
-
"야 토끼, 너 우리형아 조아하지!"
"어?... 으응...!"
"흥, 건방지기는 토끼주제에, 우리 형아는 내가 맘에 안든다그러면 안만나거든!? 그니까 나한테 잘해야대! 아게찌?"
"응!! 정미나 우리 엄마놀이하까!"
"그러던지,"
-
"정미나... 따가워..."
토끼는 피가 송골송골 맺힌 팔뚝을 내려다 보며 울상을 지었어요, 어린탓에 힘조절을 못하곤 우악스럽게 토끼의 팔을 낚아챈 탓에 날카론 손톱이 박혀 상처가 나기 일쑤였지만,
노는데 정신이 팔린 정민이는 토끼의 상처따위 안중에도 보이지 않았답니다.
"남편~ 식사하세요옹~"
어느새 피딱지가 앉은 팔뚝으로 냉장고에서 손질된 당근을 꺼내 식탁위에 올려놓는 탄소를 거만하게 바라보는 정민이었어요,
"재규어는 당근 안먹거든!! 바보야!"
"이거, 내가 쩨일 조아하는건데에?"
"실타니까아!!!!"
정민이가 당근이 담긴 접시를 바닥으로 내팽겨치며 소리치자,
쨍그랑- 하고 접시가 깨지고 말았어요.
"어... 으으... 접시가 깨져따아... 융기가 혼내는데에..."
아니나다를까, 방에서 모처럼맞이한 주말을 만끽하던 윤기가 피곤함이 가득 끼인 얼굴로 거실로 나왔을땐,
바닥에 처참히 조각난 접시조각들과 당근, 그리고 당황한나머지 접시조각을 밟아 피가 새어나오는 토끼의 발이 눈에 들어찼어요.
-
"손 귀에 안붙혀? 응? 누가 그렇게 위험하게 놀으래!"
"잘모태써어... 흐앙... 토끼가 당그니 머글라고 올려두다가 떠러뜨려써어.... 우으으...."
"안니에요, 민이가 당근 시져서 그릇 밀어버려떠ㅜㅠㅠㅠㅠㅠ 토끼야 미안내 흐아앙....."
뭐가그렇게 서럽고 미안한지, 대성통곡을 해가며 눈물의 화해를 하는 둘의 모습을 지켜보다, 몰래 동영상 촬영을 해 정국에게 전송버튼을 누르곤.
"사이좋게 놀거지요? 그리고 정민아, 토끼는 약한 동물이라 상처가 잘나요, 이거봐 정민이랑 놀다가 상처 난거."
융기가 토끼의 팔에난 상처에 약을 조심스레 발라주며 말하자,
"토끼야 미안내... 정미니가 손톱이 쪼금 날카로워....."
"갠타나..."
윤기는 그 앙증맞은 둘의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는,
"우리집에선 원래 미안하면 뽀뽀해주는데?"
짖궂게 말하자, 정민이 작은 손가락을 쪼물대며 한참을 고민하더니만,
-쪽
토끼의 말랑한 볼에 작은 입술을 꾸욱 하고 찍어냈어요.
-
-띵동
"어!! 형아다 형아!"
"꾸기야!? 꾸기왔어?"
어떻게 저렇게 기뻐할 수가 있지, 에휴 동생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더니,
보이지도 않는 인터폰 앞을 얼쩡대는 두 수인의 귀가 쫑긋 하고 서올라 흔들리는꼴이 귀여워 그냥 넘어가기로 하는 융기에요.
"정민이 사고 안치고 잘 놀았어요 형?"
"말도마라, 토끼 여기저기 상처난거만 보면 속상해 죽겠어."
정민이 들리지 않게 조용조용 속삭이듯 말한 윤기가 탄소를 슬쩍 바라보자, 상처난 팔을 정국에게 들킬까 얼른 등 뒤로 숨겨버리는 토끼에요.
윤기도 약을 발라주며 한참이나 한숨을 푹푹 쉬어댔는데, 꾸기마저 속상해하면 토끼는 정말 슬플 것 같았거든요..
"탄소야, 다음엔 정민이랑 둘이 놀러올게, 오늘 고마웠어"
토끼의 복실복실한 귀를 쓰다듬어준 정국이 허리를 펴곤 정민의 손을 쥐었어요.
"형, 또 올게요.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그래, 임마"
토끼는, 아침과 똑같이 볼이 붉어진 채로 정국이와 정민이가 나간 현관문 앞을 한참이나 서있었어요.
-
"어, 이거 비밀잉데, 말해주까?"
"뭔데,"
노을이 내려앉은 저녁, 오늘따라 유난히 신나보이는 동생의 손을 단단히 잡고는 집으로 향하는 두 형제의 뒷모습이 보이네요.
"토끼가, 형 좋아한데, 근데 오늘 보니까 형이랑은 안어울리는거같아,"
"왜?"
"나만 아는 그런게 이써어! 어쨌든, 어쩔 수 없이 내가 사귀는 수밖에!!"
호기롭게 외치는 정민을 내려보며, 꾸기는 생각했어요.
'이녀석 토끼 엄청 마음에 드나보네'
"그리고, 오늘 나... 토끼한테 뽀뽀해따..? 그래서 결혼해야해!"
정민의 손을 움켜잡은 정국의 손에 어느순간 힘이 들어갔어요,
"토끼 형아껀데,"
"앙? 모라구?"
"토끼 형아꺼라서, 너 결혼 못해, 그리고 이제 너 토끼집 가지마."
"아 왜에!!! 다음에 또 놀러간다고 토끼한테 약속해딴 마리야!!"
"안돼 못가, 토끼 내꺼야."
평소같았으면, 눈에넣어도 아프지 않을 동생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처럼 말하던 정국이었지만,
토끼만은 양보못해! 하는 단호한 표정으로 정민을 내려다보는 꾸기에요.
-
다음날,
"토끼야 이리와봐,"
음악실, 햇볕이 나른하게 들어오는 창가에 기대 꾸벅꾸벅 졸고있는 토끼를 찾아와,
정민이 낸 상처 하나하나에 노오란 뽀로로밴드를 붙여주는 꾸기에요.
"꾸가, 호오 해줘"
"호오... 이제 안아프지?"
"우응..."
잠결에 자신의 품으로 자꾸만 파고드는 탄소를 내려다보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질 못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