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꾸
윤기
김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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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토끼네 학교 축제가 있는 날이에요!
윤기의 엄지손가락을 다섯손가락으로 움켜쥔 탄소의 표정이 오늘따라 몇배는 더 신나보이네요,
윤기는 오늘따라 걱정이 엄청 많아요,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덤벙거리는 멍청한 토끼 동생을 돌봐야하는데, 학교 행사 진행을 돕느라 토끼를 돌볼 시간이 없거든요.
옆에서 손을 꼭 쥔 채 열심히 엉덩이 춤을 씰룩쌜룩 거리는 토끼를 내려다 보면서, 남모르게 한숨을 쉬었어요.
"융기야 복나가! 앙대! 에휴- 한거 취소해 취소! 빨리!"
"그래, 취소 취소."
양손을 들며 항복하는 자세를 취하는 윤기를 바라보며 만족스럽다는듯 히히- 웃어보이곤 다시 엉덩이를 씰룩거리기 시작했어요.
"자 오빠가 용돈 줄건데, 탄소가 먹으면 안되는 거 말해봐,"
"음... 솜사탕이랑! 가루 붙어있는거!"
작은 손가락 한개를 뽁! 하고 들어 올린체 의기양양하게 소리치지만, 윤기의 성에는 들어차지 않나봐요,
토끼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아침에 엄마와 약속한 조항들을 하나씩 곱씹었어요.
"어.. 솜사탕은 이가 아야해서 안대고오....."
"또,"
"어.. 가루 있는 음식은 탄소가 꿀꿀이처럼 빨리먹다가 사레들려서 안대고오...."
돼지라는 말은 은근히 기분이 나쁘다며, 꿀꿀이로 정정해 부르는 탄소를 내려다 보며 한번 피식, 웃고는 짐짓 엄한표정으로 탈바꿈하는 윤기에요.
"또,"
"음......"
"아이스크림은 왜 빼먹는데?"
토끼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없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입꼬리가 추욱- 쳐졌어요.
"아이스크림 먹으면 감기걸리니까, 딱 약속지켜서 사먹기."
뚱- 한 표정의 탄소의 손가락에 제 큰 손으로 약속, 도장까지 꾹꾹 받아내곤,
"먹을거 사서, 도서관가서 오빠 기다리고 있어. 알겠지? 오늘 정국이 거기서 부스한다고 했으니까."
'민윤기- 빨리와서 이것좀 나르자-'
윤기가 토끼의 손에 5000원 짜리 한장을 쥐어주곤 무대설치를 마악 시작한 쪽으로 뛰어 들어갔어요.
먹거리 천지인 교정을 걸어다니는게, 오늘따라 이렇게나 힘이 드네요..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매대가 왜이리도 많은지, 결국엔 양손에 닭꼬지 하나와, 핫도그 하나를 들고 마지막 아이스크림 매대에서
"구슬 아이뜨쿠림 하나망 주떼여!!!"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마냥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토끼였어요.
-
"꾸가... 나왔더... 우리 마싯는거 먹자!"
"어.. 잠시만요, 형 탄소왔어요."
'빨리왔네? 걔 손에 들린것좀 읊어봐ㅋㅋㅋ'
"음... 닭꼬지 하나랑, 핫도그랑....."
아... 앙대!!! 지금 꾸기가 탄소가 구슬아이스크림을 사온걸 고자질 하려 해요!!
"앙대!!! 융기야!! 나 저얼때 구슬 아뜨쿠림 안샀다!!?? 나 진짜야!! 구슬 아뜨쿠림 초코맛 1500원짜리 절때 안샀서!!"
'정국아, 니가 우리 토끼좀 혼내라, 그리고 윤기오빠 많이 많이 화났다고 전해.'
-
"토끼야 윤기형아 지금 엄청 화났대, 왜 약속을 안지켜-"
녹아드는 구슬아이스크림을 쥐곤, 불안한지 이리저리 발을 동동구르는 토끼를 끌어다가 부스안, 난로가 가장 잘 쬐이는 곳에 앉혀놓곤,
-띵동
정국은 폰에 도착한 메세지를 읽다 이내 풉, 하고 웃음을 지어요.
-토끼 아이스크림 그거 다먹으면 감기걸리니까 반만 맥이고 너 먹어라, 그리고 어디 못나가게 딱 잡아놓고.
'화가 나긴 뭐가 나, 진짜 동생바보라니까,'
난로앞에 앉은 토끼가, 아이스크림이 녹을새라 입김을 호호 불어주는데, 도대체 호호 부는건 어디서 배워온건지, 아이스크림이 배로 더 녹아들고있단걸 토끼는 알까요?
"호호 부는거 어디서 배웠어?"
"몰라, 꾸가아... 아이스크림이 자꾸 녹아..ㅠㅠ"
"빨리 먹자, 다 녹기전에."
탄소의 손에서 아이스크림을 앗아든 정국이가, 이미 반쯤 녹아 구슬의 형태를 띄지 못하는 아이스크림을 동그랗게 떠 토끼의 입가에 대주자,
"와앙!"
맹수마냥 요상한 소리를 내며 아이스크림을 물어대는 탄소에요.
덕분에 정국이가 친절히 떠먹여줌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묻어나는 아이스크림에, 결국 엄지손으로 슥슥 탄소 입가의 아이스크림을 닦아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는 정국이에요.
그 광경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던 탄소의 얼굴이 단풍물들듯 빠알갛게 물들었어요.
"꾸가아... 하지마."
"왜?"
"더럽짜나.."
"뭐가 더러워, 으이구."
귀까지 붉은 물이들어 고개를 들지 못하는 탄소를 내려다 보다가, 정국이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모찌같은 양 볼을 큰손으로 감싸쥐곤 이야기했어요.
"내가 그렇게 좋아?"
"어?......으응?"
"내가 그렇게 좋으냐고,"
당황함으로 움찔거리는 탄소의 작은 콧잔등을 검지로 톡톡 건드리며 놀려대는 정국이 미운지, 탄소의 눈가에 울망울망 뜨거운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어요.
"왜 울어, 응? 왜."
큰눈에 그렁그렁 차오른 눈물에 당황한 꾸기가 허둥거리며 들고있던 아이스크림을 데스크에 올려두곤 눈물을 훔쳐줬어요.
"탄소는 꾸기가 조은데에... 으으...꾸기가 자꾸 놀려어.. 끅...끕.."
양볼이 여전히 정국의 손에 갇힌채, 발음이 안되는 꼴로 불만을 토로하는 그 작은 입술이 너무 귀여워, 심장을 부여 잡을뻔한 정국이 다시 표정을 가다듬곤 속삭였어요.
"정국이가, 토끼 좋아해서 그래."
정수리로 나비처럼 예쁘게 내려앉은 꿈같은 말을 듣곤, 서서히 눈물에 젖은 얼굴을 드러내는 토끼에요,
"끄윽.... 끕.... 꾸기도 진짜 나 조아...?"
부스안, 주황색 난로의 불빛으로 따듯한 온기가 둘을 조심히 감싸는 도서실 안에서, 토끼는 한자,한자 조심스레 입모양으로만 내뱉는 그 말을 예쁘게 눈안에 새겨요.
'어, 좋아.'
"꾸가아.... 고징말하면 천번받아ㅠㅠ 징짜야...?"
"그렇데도? 그리고 천번 아니고 천벌."
자꾸만 큰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마음에 안드는지, 뽀얀 얼굴에 눈물길이라도 생길새라 엄지손으로 연신 큰 눈물방울을 찍어내기 바쁜 정국이에요.
탄소가 옷 소매로 눈물을 훔쳐낼라치면, 쓰읍 하고 엄한 표정으로 소매를 거두곤 가만히 손을 양볼에 대줘요.
자꾸만 마주치는 눈빛에 부끄러움을 참아내지 못한 탄소가 다시금 고개를 푹 하고 숙이면,
"고개 들어봐 토끼야, 꾸기 안봐줄 거에요?"
"몰라아...."
미약하게 고개를 양쪽으로 저으며 투정아닌 투정을 부리는 탄소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정국의 표정에선 웃음이 떠나가질 않아요.
-쪽
정국이, 그 사랑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예쁜 이마에 따듯한 입술을 꾸욱 내리 누르면,
-뿅! 하고 잘 숨기고 있던 토끼의 커다랗고 복슬한 귀가 튀어나와요,
그 광경에 입꼬리가 귀에 걸린듯한 정국이 손등으로 입을 가리곤, 소리없이 빙구웃음을 지어냈어요.
"꾸가... 나 얼굴이 빨개져써..."
"왜?...크흑... 큼..."
토끼가 저를 놀린다고 생각할까, 마음대로 웃지도 못하곤 그저 '너무 부끄러워용' 하는 태도로 고개를 숙인 토끼의 양 볼을 손으로 꾸욱꾸욱 눌러봐요.
"몰라아...."
"고개 들어봐, 응? 귀는 또 왜 튀어나왔어. 부끄러워?"
"꾸기 나빠,"
앞에 앉아서는 탄소가 부끄러워할 말들만 골라 툭툭 뱉어내는 정국이 미웠는지 불시에 고개를 들곤 쪼만한 작은 두 손으로 정국의 눈을 가린채,
-쪽
정국의 볼에 작은 입술을 파묻는 토끼에요.
저돌적인 토끼의 태도에,
".......어?"
정국이의 양 볼이 발갛게 물든채, -뿅 하고 작고 까만 귀가 튀어나왔어요!
"꾸가, 왜 귀가 튀어나와떠?"
"몰라아......"
"꾸가아... 고개들어봐.... 부끄더?"
"탄소 나빠,"
정국이는, 놀릴땐 그렇게나 짓궂으면서, 막상 놀림을 당하니 부끄러움에 고개도 못드네요.
-
"토끼야, 누가 토끼 누구꺼야 물으면 어떻게 해야해?"
"음.... 토끼는 당근꺼야!"
앞길이 막막해진 정국이 이마를 짚으며 고민에 빠졌어요.
"아니지, 이제 토끼는 1-5반 정국이 꺼에요."
"왜에?"
"정국이가 토끼꺼니까,"
또, 잘 숨겨둔 토끼의 귀가 부끄럼을 견디지 못하고 뿅! 솟아 올랐어요.
빨개진 얼굴을 들키기 싫은지 정국의 품에 자꾸만 파고드는 탄소의 말랑한 볼을 움켜쥐곤,
"자 따라해봐, 토끼는 정국이꺼에요."
"토끼는.......꾸기....아몰라아!!!"
괜히 솜방망이 같은 주먹으로 정국의 가슴께를 콩콩 내리치며 정국을 책망하는 탄소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