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받침이 들어가지 않으시는 분은 살짝 불편하실 수도 있습니다...
(전지적 아낌쪄시점)
서랍에 손을 넣어 쪽지와 먹을거리가 든 봉투를 꺼내 보고 있자니 네가 순영이에게 매일 줬던 게 생각났다. 그리고 분홍색 쪽지와 귀여운 모양의 젤리들이 속을 채우고 있는게 자신의 마음이 가득 찬 것 같아 괜히 웃음을 보이는 너였다. 앞에 있는 수학 문제집의 기호들이 읽히지 않을 정도로 집중을 못하던 차였다. 분홍색 종이에 적힌 글들을 몇 번이나 읽으며 내용을 곱씹어보던 너는 종이가 뚫어질 정도로 한참을 바라봤다. '용기 내서 할 얘기...'라 생각하던 네가 잠시 멍을 때리자 옆에 앉아있던 민규가 한 마디 내뱉는다.
"이모, 뭐해."
"ㅇ, 어?"
팔꿈치로 네 손을 건드리던 민규는 자신의 이모인 너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한다. 고개를 저으며 잡생각을 잊으려 하는 것을 지켜보던 민규가 머뭇거리다 너의 공책 귀퉁이에 무언가를 끄적인다.
'토끼님한테 쪽지 받았어?'
고개를 끄덕이던 너를 보는 민규는 '너 권순영 좋아하잖아.' 하고 적었고 샤프를 들어 그 아래에 '토끼님. 순영이야.'라 적으며 민규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는 너였다. 전혀 놀라지 않으며 원래 알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적었다.
'뭐해. 만나러 안 갈 거야?'
아홉 글자에서 눈을 떼질 못하던 너는 다녀오겠다며 민규에게 작게 얘기하고는 가방을 챙겨 조용하게 교실 뒷문으로 나갔다. 화장실에서 나오며 손에 있는 물기를 털면서 걸어오던 석민이가 교실 밖으로 나오는 너와 마주쳤다.
"야자요정 어디가, 아직 야자 안 끝났는데..?"
"어, 그게…"
"혹시, 카페… 가는 거야?"
동그랗게 커진 너의 눈이 석민이를 빤히 쳐다보며 깜빡거리기만 하자 살짝 웃으며 교실 문 가까이로 다가오는 석민이였다. '얼굴에 티 나는 게 어째 둘이 똑같냐.' 하며 교실 뒷문을 시끄럽지 않게 열고 들어가다 잠시 멈칫하더니,
"안녕! 화이팅!"
하고 안으로 들어 가버린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 잠시 교실 뒷문을 보다 얼굴에 다 티가 난다는 말이 떠올라 확- 달아오르는 느낌이 드는 너였다. 저의 마음도 알았고 당신 마음도 알았으니 이제 가 볼까 하는 생각에 가방끈을 붙잡으며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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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둘이 만나던 시간은 저녁 7시가 조금 넘어간, 깜깜하지도 밝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지금은 7시 56분.
행여나 8시가 넘어버려 너무 늦을까, 시간이 땡-하고 지나면 이 기회가 사라져버릴까 조마조마해 하며 카페로 온 넌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카페의 불이 전부 꺼져 있던 것이다.
"…너무 늦었네, 내가."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조금만, 정말 조금.. 벤치에 기대 앉으며 나지막히 내뱉었다. 이제 정말 끝일 것 같은 마음에 기분이 뒤숭숭해진 너는 기대하며 기다렸을 순영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이번이 아니면 서로의 마음을 확인 할 수 있는 기회와 지금처럼 말을 붙이며 다가갈 수 있는 기회까지 몽땅 없어져 버릴까 두려웠던 걸까.
그때,
너의 어깨로 무언가 얹어지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자 토끼탈을 쓰고 있는 남자가 손수건을 건넸다.
"어, 토끼…."
"안녕."
탈을 쓴 채로 너에게 인사를 하는 토끼.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는 않은 채 토끼에게 받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몇 초가 흐르고, 토끼탈은 너를 카페 안으로 불렀다. 불이 전부 켜지지 않아 어두컴컴했지만 너는 그게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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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먼저 들어간 토끼가 불을 켜자 벽과 바닥에는 떼다 만 풍선들과 예쁜 색 들이 나열된 가랜드까지 파티용품들이 카페 안을 채우고 있었다. 아마 고용주인 정한이가 카페를 빌려주면서 용품들까지 빌려준 모양이었다. 살짝 붉어진 두 눈으로 카페 안을 훑어보던 너의 앞 쪽에 서서 마주 앉으려 옆 테이블에 있던 의자를 가져와 조금은 떨어져 앉는 토끼였다. 그런 토끼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던 너에게 말을 하자 토끼 탈 안이 울리기 시작했다.
"예쁘게 꾸미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 올 것 같아서 불을 꺼 놨어. 하나 둘 정리하면서 마음도 정리하려 했거든."
"…바보야. 이제 이거 안 써도 돼."
의자에서 일어나 토끼의 앞에 바로 섰다. 그리고 머리를 가리고 있던 탈을 천천히 벗겨냈다. 토끼는 아무런 저항 없이 곧은 자세로 기다리고 있었고, 탈이 끝까지 벗겨지자 순영이는 소매 끝으로 땀을 닦아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너와 눈이 마주치고 순영이에게 눈시울이 붉은 채로 웃음을 띄웠다.
"그럼 정리하던 마음 다시 꺼내자. 오늘 토끼님 얘기 들으러 왔어."
그리고 한참을 뜸을 들이던 순영이는 아무런 행동과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투명한 물에 분홍 물감을 떨어트린 듯 서서히 예쁜 웃음을 보였다.
"..좋아해."
토끼탈도 쓰지 않은 채 자신감 있게 얘기하던 순영이는 너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몇 주간 서로의 마음을 애타게 하고 목에 갈증이 나게 하던 감정들을 세 음보로 표현하고 나니 개운하기라도 한 듯 눈을 꽈악- 감았다 뜬 순영이 너와 천천히 눈을 마주쳤다.
"나도, 많이 좋아해."
너의 속이 있던 말들도 다 뱉어내고 나서야 순영이 활짝 웃을 수 있었다. 기뻐하던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숙인 채로 입이 귀에 걸리듯 행복하게 웃었다.
*
*
*
(순영시점)
탈도 안 쓴 채로 너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해버렸다. 그리고 너의 대답은 네가 좋아하는 달달한 복숭아 플래치노와 같았다. 마셔본 적도 없지만 네가 한 말들은 내게 달콤하게 와닿았다. 칠봉이를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땀이 범벅이던 옷을 갈아입고 땀을 닦아 낸 후 카페 밖으로 나가자 의자에 앉아 창 밖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앞에 마주 앉아 그런 칠봉이를 쳐다보고 있자 '어, 왔어?'하며 내게 웃어주었다.
"내가 땀이 좀 많아서…."
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 하자 별거 아니라는 듯 한 표정을 보여주며 '여름인데 땀 안 흘리는 게 이상하지. 수고 많았어.' 하고 말해주며 고맙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칠봉이를 데려다주기 위해 카페 문을 닫은 후 카페의 왼쪽 길을 쭉 따라갔다.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지만 이상하게 낯설지 않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항상 네가 가던 길이라 그런 듯 했다.
"매일 맛있는 거 줘서 고마워."
"나도 오늘 잘 먹었어."
주머니에 있던 남아있는 초콜렛을 꺼내서 내게 보여주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멋져 보이고 싶은 맘에 '네가 친구들이랑 먹는 거 보고 좋아할 줄 알고 샀어.' 하고 말하자,
"어쩐지, 내 얼굴이 따갑더라."
하고 너스레를 떨며 장난을 쳤다. 이석민이나 전원우가 이런 말을 했다면 정색은 물론이거니와 눈을 찔러줬을지도 모르지만, 너는 아니었다. 이런 장난을 치는 네가 너무 귀여워 미칠 것 같았다. 소소한 대화를 하며 골목에 끝을 지나 조그만 공원 안 쪽을 가로질러가던 참이었다.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한 발짝 뒤에 있던 나를 쳐다봤다.
"저기 좀 앉아있다 갈래? 얘기도 좀 하다가…."
"응, 좋아."
칠봉이도 내 마음과 같았나보다. 아직은 헤어지기 싫은. 섣불리 잡지 못하고 있던 손을 먼저 잡아오더니 이내 날 그네로 끌고 갔다. 빠른 걸음으로 칠봉이를 따라가 초록색 그네 위에 앉았다. 나를 앉혀 놓고 자신도 옆으로 가 주황색 그네에 앉아 발을 조금씩 굴리기 시작했다.
"근데 토끼탈이 나인 줄 어떻게 알았어…?"
"비-밀. 근데 네가 나 좋아한다는 건 몰랐어."
칠봉이는 말 하면서 괜히 부끄러운지 그네 줄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게. 나도 좋아한다는 말은 괜히 부끄럽고 후덥지근 해지네. 기왕 질문을 시작한 김에 조금은 찌질하지만 꼭 물어보고 싶은 걸 물어보겠다 생각하고 입을 떼었다.
"혹시, 김민규랑은 무슨, 사이야?"
"민규?"
김민규라 물어봤으나 민규라고 답 하는 걸 보니 친밀하고 깊은 사이인 듯 했다. 여자애들이 유치하게 인기투표를 하고 있을 때면 단연 1등은 김민규였고, 그 옆에는 항상 칠봉이가 붙어 다녔었다. 그래서 꼭 한 번은 내가 묻고 싶었다. 어떤 사이인지. 근데 진짜 친한가보네...
"맨날 김민규랑 붙어있고. 그래서 난 네가 나한테 했던 말들이 걔를 좋아한다는 건 줄 알았어…."
속에 있던 말들을 신세한탄 하듯 내뱉자 내 얘기를 들으며 살짝 웃던 칠봉이가 푸하하- 소리를 내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내 발 끝만 보고 있다 시선을 돌려 쳐다보자 입을 가리며 웃다 이내 나와 눈을 맞췄다.
"내가 걔를 왜 좋아해~ 민규랑 나랑,"
"가족이야."
우리와 다른 목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자 누군가 축 늘어진 나뭇가지를 손을 걷어내며 그네 쪽으로 걸어왔다. 그네에서 일어나 걸어오는 사람을 쳐다보니, 그 누군가는 칠봉이의 가족이라던 김민규였다.
"당사자 없다고 뒷담까기 있어?"
"그런 얘기 한 거 아니거든~? 너랑 내가 어떤 사이냐고 물어보길래."
"가족...이었어..?"
벙찐 내 표정이 재미있기라도 한지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맞추며 웃었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기보단 웃기기만 했다. 칠봉이가 김민규를 좋아하는 줄 알고 쩔쩔맸던 상황들이 떠올라 낯이 확 뜨거워졌다. 그런 나를 보던 김민규는 '얘가 내 이모야.'하고 말 하며 자신이 생각해도 웃긴지 땅을 쳐다보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우리 이모가 너 되게 좋아해. 잘 해줘라?"
"야, 부끄럽게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야자쟁이가 야자도 째고 나온 거 봐. 알겠지?"
짜식. 그래도 자기 가족이라고 칠봉이를 엄청 챙겼다. 칠봉이는 부끄럽다며 김민규의 팔뚝을 주먹으로 때려댔고, 아프다며 코를 찡긋 거리다 자신의 팔에 있던 두 손목을 잡아 떼어놓은 채로 내게 말했다. 김민규 손에 있던 칠봉이의 팔목을 잡아 풀어주고 내 옆으로 살짝 당겼다.
"당연하지. 걱정 하지 마."
칠봉이와 눈을 맞추며 살짝 웃자 '놀고들있네-'하며 미간을 찌푸리던 김민규는 나를 쳐다보더니,
"걱정 안 할테니까 집에는 들여보내라. 가자, 김칠봉"
하며 뒤를 돌아 걸어가고 있었다. 옆에서는 '큰일났네, 순영이. 쟤가 우리 아빠보다 무서워.' 하고 날 올려다보는 칠봉이였다. 연애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고난이 시작되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보다 무서운 조카가 있는 연애는 순탄치 않겠지만 무엇보다 너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잘 자고,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올게."
"여기까지? 아냐, 힘들텐데 안 그래도 돼!"
"카페에서 가까워. 내일 보자!"
데리러 온다는 내 말에 카페 일 하느라 힘들 텐데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된다며 손사래까지 쳐가면서 괜찮다는 말을 했다. 집에서도 꽤 멀지 않은 거리이기에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었으니 얼굴이라도 많이 보고 싶었다. 네가 버스를 탈 때 서서 가는 편인지, 앉아서 가는 편인지 알고 싶고, 졸릴 때는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게 하고 싶었다.
못 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카페 앞으로 오겠다며 손을 흔들어주며 내일 보자고 한다. 손을 펄럭이듯 흔들며 뒤를 돌아 집으로 향했다.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던 것 같다.
*
*
*
겁 많고 걱정 많던 토끼의 고백은 그의 걱정과는 달리,
그 어느 때 보다 토끼의 모습은 용맹한 사자와도 같았고, 커다란 코끼리보다 더 커다랬으며 강아지보다 더 사랑스러웠다.
해가 쨍쨍히 뜨는 한 여름.
풀잎이 청량한 빛깔을 보이며 자신이 머금고 있던 신선한 공기를 내뿜었다.
마치 토끼의 고백이 성공했다는 것을 온 세상에 알리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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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아낌쪄입니다!
일단 저 돌 맞을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광광)
완결이 났는데요!
제가 아직 토끼의 고백에 미련을 못 버릴 거 같아요ㅠㅠㅠ
(태어나서 완결 처음 내봄)
에필로그나 그 이후 이야기는 차차 올릴 예정입니다.. 하하!
여름이 시작하기 전에 이 글을 처음 구상 했었는데 벌써 첫 눈도 내리고 12월도 성큼 다가왔네요.
올해가 지나가기 전에 일단 눈 앞에 있는 것들 좀 치워버리고 얼른 돌아오겠습니다!
토끼의 고백 연재하면서 여러분들과 소통하는 거 너무 재미있었어요ㅠㅠ
독방 추천도 감사드리고 초록글도 너무 감사드려요...♥
줄 수 있는 건 꿀잼인 글 밖에 없는데 그것 마저도 없어서 더 송구한 맘....
좋은 작품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안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