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마지막 글자에 받침이 없는 분은 조금 불편할 수 있습니다!
밤에 한 숨도 못 잤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마무리 된 것 같진 않았지만 오늘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 생각으로 등굣길에 오르는데 누군가 와다다- 소리를 내며 내 뒤를 쫓는 소리가 났다. '아침 댓바람부터 누구야 대체..' 하며 뒤를 도는데,
"권순영~"
"어제 김칠봉 만났다며?!!"
이름을 부르며 등짝을 손바닥으로 치는 전원우와 내 어깨에 자신의 팔을 올리며 특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이석민이었다. 내 등을 치던 손이 아픈지 손을 들고 반짝반짝을 시전하던 전원우가 날 보며 괜히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아무튼 동네 창피는 얘네가 다 하고 다니는 것 같다니까. 그나저나 그 얘기를 그렇게 크게 해서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만났다! 너 입 안 다무냐…?"
"끄아아! 만났대!!"
이것들이.. 왜 본인들이 더 좋아하는지 참. 아직 인형탈을 벗고 정식적으로 만난 적이 없는데. 이석민은 그걸 알면서도 저렇게 좋아하고 있다, 아주 그냥.
학교 정문이 보이고 오늘 선도를 서고 있는 김민규가 보였다. 어제 칠봉이가 김민규 얘기를 안 했다는 거에 놀랐었는데. 지금 이렇게 마주하고 있으니까 뭘 하진 않았지만 내가 이긴 것 같아서 기분 좋았다. 승자의 웃음을 보여주자 아무것도 모를 김민규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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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 자리 바꾸기? 벌써 짝 바꿀 때가 됐나."
교실 안에 들어오니 칠판에는 하얀 분필로 랜덤 자리 바꾸기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상위권의 친구들은 고맙게도 맨 앞자리와 두 번째 줄을 차지해줬다. 덕분에 중간에 앉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적당한 곳을 스캔하고 있는데 전원우가 내 옆을 지나치며 뒷문 옆, 맨 뒷자리를 차지했다. 착석을 마친 전원우는 덩그러니 뒤에 서 있는 나와 이석민을 보더니 본인은 혼자 앉고 싶으니 부랄친구 둘이서 저의 앞에 남은 두 자리에 앉으라 말했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으며 다시 앞을 보자 '랜덤 자리 바꾸기' 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이석민이 누굴 그렇게 찾냐며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에 슬리퍼를 벗어 발을 의자 위에 끼워 넣었다.
"아악!!! 뭐하냐, 지금?"
"여기 자리 있어."
"뭐라는 거야..
이석민 엉덩이에 깔린 내 왼발이 불쌍했지만 자리 인터셉트를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말을 무시하며 책상에 가방을 올리려 하자 내 가방을 옆 책상으로 밀었다.
"김칠봉 자리라잖아."
"…아."
"이리 와, 형이 잘 해줄게."
어느정도 눈치를 챈 듯한 전원우는 필통으로 자신의 앞에 있던 이석민을 쳐대며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김칠봉 자리라잖아.'하고는 교복 자락을 당겼다. 그러고는 자신의 옆자리 의자를 바깥으로 꺼내며 이석민에게 능글맞게 말하자 미간을 찌푸리며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얘네가 그러든 말든 내 신경은 온통 내 옆 빈자리였다. 아침마다 그렇게 빨리 오던 애가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니. 곧 그 아이의 자리가 될 내 옆 책상 서랍에 짤막한 편지와 젤리, 초콜렛이 담긴 봉투를 안에 넣었다. 내 책상에 매일 넣어줬던 칠봉이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괜스레 흐뭇한 마음이 생기며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내 책상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서랍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칠봉이가 매일 넣어 준다는 게 확실하다 해도 무색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만큼.
"허어…?"
"왜! 왜, 또!"
"진짜인가봐…, 와."
"뭐라는 거야."
"냅둬. 중증이래."
칠봉이가 지금 학교에 일찍 등교하지 않은 것도, 서랍 안에 젤리가 없는 것도 모두 낯선 일들이었다. 지금까지 항상 먼저 등교하던 애였는데. 서랍에 먹을거리를 넣지 말아보라는 말은 했어도 늦게 오란 얘기는 안 했다. 설마 감기에 걸린 게 아닐까..
"야, 저기 김칠봉…, 김민규랑 같이 들어오네?"
칠봉이가 먼저 교실로 들어온 후 뒤이어 김민규가 들어왔다. 벌써 선도 끝날 시간인가. 칠판에 쓰여진 글씨를 발견한 둘은 눈을 마주치며 몇 마디를 나누더니 같이 발걸음을 떼어 빈자리를 찾아다녔다. 여기서 더 늦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얼른 칠봉이를 불렀다.
"김칠봉!"
"응…?"
친한 친구와 앉아서 더 시끄러웠던 우리반이 내가 칠봉이를 부르는 소리에 조금 수그러들었다. 이것들, 이지훈이 조용히 하랄 때는 더 떠들더니. 커다래진 눈으로 나를 보며 서 있는 칠봉이와 그 뒤에서 눈만 깜빡거리는 김민규가 눈에 보였다. 인형 탈이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 건지. 자꾸 맥락 없이 생기는 자신감 덕에 온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내 맘을 끝까지 보여주자. 소리가 다 들리도록 꿀-꺽 삼킨 후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가슴이 위로 올라오도록 숨을 마신 후 말을 이었다.
"너, 내 짝꿍 한다며."
사실 멋있는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석민이 좋아하는 원피스에 나올법한 대사인 '너 내 동료가 돼라.'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말을 들은 칠봉이는 눈을 두어 번 굴리더니 입꼬리에 옅은 미소를 띄웠다. 김민규와 눈을 한 번 마주치고는 아무런 말 없이 뒤로 돌았다. 내 책상으로 가방을 치우자 사뿐 거리며 옆자리로 와 자신의 짐들을 올려놓았다. 의자를 빼며 내 옆에 앉음으로서 칠봉이가 내 짝꿍이 되었다. 내 의자를 발로 차며 웃음을 참던 이석민은 뒤를 돌아보는 내 눈을 보고 이내 발재간을 멈췄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본인이 더 좋아하고 있다.
"오늘은 좀 늦게 왔네..?"
"응, 늦잠을 자서."
우연의 일치일까, 선의의 거짓말일까. 그게 무엇이든 난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저 서랍 안에는 내 마음이 들어있고 얼른 그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굴뚝 같기 때문이다.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의 가방을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자연스러운 척을 하기 위해 공책을 펴 내가 보기에도 가증스럽지만 공부하는 척을 했다.
" '이젠 내가 줄 차례인 것 같아서. 용기 내 할 얘기가 있는데 항상 만났던 그 시간에 카페 앞으로 와 줬으면 좋겠어요. 토끼가.' "
편지를 나지막하게 소리 내어 읽었다. 글씨도 이상하고 문맥도 이상할텐데 칠봉이가 읽어주니 내 짧은 편지가 한 편의 시라도 된 것 마냥 격이 있어 보였다. 내 시선이 닿은 것을 느꼈는지 나를 한 번 흘끔 바라보았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연필에 눈을 옮기자 그제야 자신의 손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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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나 하리보 하나만..."
"안 돼. 이거 토끼님이 준 거란 말이야."
책상에 엎드린 채 쉬는시간을 보내고 있던 와중에 옆에서 내가 준 젤리를 자신도 달라며 떼를 부리고 있는 여자애 목소리가 내 잠을 방해했다. 등을 지고 있으니 망정이지. 그나저나 나는 이석민한테 아무렇지 않게 줘 버렸는데.
"야. 근데 그 토끼라는 사람. 괜히 탈 쓰고 귀여운 척 하면서 이 여자, 저 여자 꼬시기나 하고. 그러는 거 아냐?"
"토끼님 그런 사람 아니거든!!", "나 그런 양아치 아니거든!!"
이석민의 깐족거림 이후에 눈을 매섭게 떠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저 여편네가 진짜. 엎드려있다 괜히 발끈해 고개를 팍- 들어 그 여자애에게 소리치자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날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어떻게 알ㅇ, 아니 넌 갑자기 왜 끼어드는데?"
"…너는 직접 보지도 않은 사람을 그렇게 판단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허, 참나. 잠이나 자!"
"싫어!! 매점 갈 거야!!"
더 화를 내면 내가 토끼인 걸 저 애한테 티를 내는 것 밖에 더 될까 싶어 평소에 가기 귀찮아하는 매점을 간다는 말을 하며 자리를 박차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를 걷는데 그런 사람 아니라는 칠봉이의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내가 토끼인 건 알까? 얼추 눈치 챘을까..
근데 아까 나, 말 실수 한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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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쪄가 아! 낌! 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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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아낌쪄~
드디어 결말로 치닫는 스토리...☆ 어떠셨나요!?
곧 결말이 다가오고 추운 겨울이 옵니다... 대체 뭔 말을 한 거지?
순영이가 사실 좀 눈치가 없어요, 여기서.
대신, 석민이랑 원우 덕분에 모든 일이 술술 풀리겠네요. 역시 겸보르기니.
일주일 벌써 다 가버리고 이제 토요일이네요!!
여러분 날씨가 완전 추워요.. 감기 걸리지 마시고 제 글로나마 힐링하시길...!
아차차. 고3 수험생 여러분들, N수생 여러분들! 수능 대박나세요~~~♥
안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