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시원한 여름바람이 내 머리를 스친다. 상황에 맞지않는 이 이질적인 바람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듯 했다. "왔네요?아저씨" 금방이라도 앉아있는 난간에서 떨어질것 같은 위태로운 아이는 연신 물장구치듯 발을 흔들거렸다. "못오면 어쩌지 걱정했어요. 마지막 인사는 해야하는데.....그래서 눈물날것같았어도 꾹 참았어요. 나 잘했죠?" "학연아. 내려와. 제발......" 목이 막히고 머리가 멍해져서 말이 잘나오지 않았다. 그저 내려와 달라고 울부짖을뿐. "아저씨. 울지 말아요. 그렇게 울면 내가 갈 수 없잖아. " 안가면 되잖아. 응? 연아....제발......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잔뜩 고여있었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안돼요...... 이제 가야하는 걸......아저씨 오기전에 한참동안 여기 앉아서 아저씨 생각했어요. 차가운 겨울 길바닥에 누워있던 내게 같이 가자고 손 내밀어주던 날, 벚꽃흩날리던 봄에 손잡고 걷던 그 거리, 아저씨랑 처음 여행갔던 여름날 코끝에 스치던 바다냄새, 같이 밟았던 가을 낙엽위에서 첫키스. 그리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날까지. 영화필름 돌아가듯 머리로 스쳐지나갔어요. 어떻게 해야 마지막까지 웃으며 인사할 수 있을지 고민도 했어요.근데.....흡....쉽지가 않아서......" 아이는 긴 니트소매자락 끝으로 눈물을 연신 닦아냈다. "후...... 그래도 이젠 아저씨 혼자 살 수있을거같아서 마음놓고 떠날 수 있을 거 같다......." 아니야. 학연아. 아니야 "나 없다고 그때 처럼 술마시고 밥 안먹고 울면 안돼요..흑..흡....밥 꼬박꼬박 챙겨먹고 담배피지 말고 건강해야 해요..... 횡단보도 건널때는 초록불켜지자마자 가지말고 기다렸다 가요. 차 출발전에는 안전벨트 꼭 매고.......내 생각은 조금만 해줘요. 아프지 않게....이제 울지 말고 고개들어요. 잘생긴 아저씨 얼굴 한번이라도 더 봐야지." 고개를 들어 본 아이는 눈물을 담은채 웃으려 애썼다. 정말 마지막인걸까? 연아. 마지막으로 아저씨가 할말이 있어. 들어줄래? "말해줘요." 사랑한다. 지금 이순간도. 그리고 앞으로 흘러갈 시간속에서도...... "나도. 나도 사랑해요. 아저씨.......이제 가볼게요. 사랑해요.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 희미해져가는 학연이는 마지막 까지 두 눈에 나를 가득 담은채 노을 지는 태양속으로 사라졌다. 주저앉은 나를 학연이를 만지던 바람이 쓰다듬었고 내 사랑은 그 여름바람과 함께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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