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는 관계가 없지만 스토리상 그들의 과거를 알고싶다면 봐주세요.
1인칭 주인공 시점입니다.
김석진(23. 시민)
눈 앞에서 동생이 큰 소리와, 큰 트럭과 함께 사라졌다. 주변의 시간은 흘러가는데 나의 시간만 멈췄다.
내 동생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가운 길바닥에서 잠들었다.
" 형! 형아는 슈퍼맨이야? "
" 내가 위험하면 항상 먼저 달려와 줘 형은! "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매일매일 고통에 시달렸다.
저리 큰 트럭과 부딪히며 얼마나 나를 불렀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항상 지켜주던 사람이 계속 멍때리며 보고만 있었는데, 나를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나를 영웅으로 생각하는 아이의 밝은 미소는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
아니, 이젠 볼 수 있을지도.
슈퍼맨은 죽었다.
민윤기 (22. 의사)
지긋지긋한 3수 생활이 끝나고 드디어 원하는 대학문턱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막상 고비를 넘고보니 멍한 기분이었다. 수능 끝난 고3의 기분보다 홀가분한 기분이다.
재수를 한다고 했을 때 다들 콧방귀를 뀌면서 나를 무시했다.
그 사이에 부모님도 뜻하지 않은 사고로 돌아가셨다.
3수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나를 뭘해도 안 되는 놈이라고 불렀다.
나를 그렇게 짓밟고 비웃었던 사람들만 가득 할 때 손을 내밀어준 유일한 친구가 있다.
얼굴만 보면 못생겼다고 존나 티격태격하지만 보고도 또 보고싶은건 부끄러워서 말 못한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탔고, 얼마지나지 않아 격렬한 흔들림이 지하철 안을, 사람들을 에워쌌다.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고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불길이 잡아먹을듯이 나를 덮쳤다.
속이 타들어가는 느낌은 받아본적 있어도 육체적으로 타들어가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괴롭고 숨이막혔다. 뜨거웠다.
정호석 (21. 시민)
부모님이 없는 누나와 난 지하 단칸방에서 어두운 생활을 하고 있다.
나를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려는 누나는 일찌감치 학교를 자퇴하고 어두운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술에 찌들어 들어온 누나가 오늘도 많이 힘들었는 지 울먹이며 들어왔다.
난 그런 누나의 모습이 싫어서 계속 누나에게 학교를 안 가겠다고 소리쳤고 내가 돈을 벌테니 일을 그만두라고 말했다.
그 때 했던 누나의 말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 나도 공부 하고 싶고, 여행도 가고싶어. 쇼핑도 마음껏 하고싶고. 카페가서도 친구들이랑 수다떨고 싶고... "
" 근데 나는 네가 성공하는 게 더 좋아. 하고 싶은 걸 잊을 수 있을 만큼. "
몇 달 뒤, 비가 모든 땅을 적시던 어느 날.
누나는 죽었다.
골목길에서 죽어있었다.
내 삶의 의미도 죽었다.
김남준 (21. 경찰)
나는 어린나이에 사형수라는 꼬리표가 달려있다.
3일 뒤에는 이 꼬리표가 떨어지고 고인이라는 이름 안에 관에서 영원히 숨쉴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죄를 나에게 뒤집어 씌웠다.
그녀는 여러 사람들을 납치,감금,살인했다.
항상 집에는 시체의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나는 잘못된 행동인지 몰랐다.
시간이 흐른 뒤, 자연스럽게 내가 그 짓이 잘못된 짓임을 알아차렸을 무렵, 경찰들이 집 수색을 했고
어머니는 경찰들이 오기 전 나조차도 알 수 없는 곳으로 도주했다.
그들의 수사망에 걸린 것은 나 밖에 없었다.
우리집에서 시체가 발견되었고, 우리집에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으니,
나는 거짓자백을 했다.
" 예. 제가 죽였습니다. "
어머니를 원망하지만 나는 아직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다.
바보같고 멍청하다고 욕해도 상관없다.
나는 진짜로 바보였고 멍청했기 때문에 '어머니'라는 이유로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박지민 (20. 마피아)
이미 다칠대로 다친 몸이지만 아픈 건 싫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떤 아줌마에게 유괴되었고 절망은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나는 웃는 방법을 잊었다. 우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에.
여기서 보내달라고 또 울었다. 맞았다. 죽지 않을 만큼만.
차라리 죽는게 편할지도 몰라 자살시도를 했다. 겁쟁이라서 그건 또 못하겠는지 울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어떻게 한 번에 편히 죽을 수 있을까.
김태형 (20. 시민)
재롱을 피웠다.
나를 보고 웃었다.
그 얼굴이 나는 좋아 더 애교를 부렸다.
" 정신지체장애 입니다. 또래에 비해서 언어나 학습발달이 많이 느릴겁니다. "
재롱을 또 피웠다.
나를 보고 또 웃었다.
그 얼굴이 나는 좋아 더 애교를 부렸다.
" 어머님 혼자서 힘드실 테지만 꾸준히 학습시켜주신다면.... "
재롱을 피웠다.
나를 보고 웃지 않았다.
그 얼굴이 나는 싫어 더 애교를 부렸다.
" 태형아. 엄마 어디 갔다올게. "
" 엄마 어디가? "
" 미안해. 엄마 용서하지 마. 알겠지?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보고 웃었던 엄마는 이제 나를 보고 웃지 않았다.
엄마가 어디 갔다가 온다고 해서 계속 기다렸다.
세월이 흐르고 성인이 된 나는 여전히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엄마는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애교를 부리면 짓곤하던 그 얼굴을.
내가 태형이야. 많이 기다렸어. 보고싶었어.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숨어버렸다.
지금 나를 보면 엄마는 웃지 않을거야. 내가 엄마의 인생에서 사라지는 것이 오히려 엄마를 웃게 만들거야.
그런데 너무 슬픈 건 엄마가 웃는 걸 볼 수 없는거야.
(마피아. 흑막)
나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사라지기도 하고 커지기도 한다.
밝은 것과 대조된다.
내 이름은 '절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