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 만만의 준비를 하고 지호네 집으로 갔다. 며칠 동안을 밤낮 불문하고 초록색 검색창까지 빌려 치밀하게 음모(?)를 짜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었다. 천하의 우지호도 내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으흐흐흐. 자신감이 넘쳐 박경은 휘파람을 부르며 양손을 앞뒤로 흔들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지호네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성심성의껏 공을 들여 만든 경이의 계획은 알고 보면 참 단순했으니……. 지호와 함께 티브이를 보다가 야한채널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농밀하고도 끈적거리는 분위기가 형성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튼 박경은 행복과 기대에 부푼 채로 지호의 집에 도착했고 대문 앞에 있는 화분을 뒤적거려 열쇠를 꺼냈다. 지금은 연인사이지만 10년을 베프로 지호와 지내온 경력이 있기 때문에 박경은 이미 지호에 대해서라면 모조리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지호네 집은 부모도, 형도 없이 우지호 혼자뿐이라는 것도.
예고 없이 쳐들어온 거라 지호가 분명 깜짝 놀랄게 틀림없다며 박경은 흐흐흐 이상한 미소를 짓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예상대로 신발장에는 지호의 스니커즈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살금살금 들어가니 지호가 거실 한쪽 면에 붙은 컴퓨터에 앉아 눈에 불을 켜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온지도 모른 채 골똘히 집중하는 지호. 박경은 뭐하나 싶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지호에게 다가갔다.
“야, 뭐해.”
“으아악! 아… 뭐야. 박경이잖아. 아씨, 온다면 미리 말을 하던가. 애 떨어질 뻔했네.”
자궁도 없는 새끼가 애는 무슨 애. 박경은 대놓고 자신에게 면박을 주는 지호가 얄미워 퉁명스럽게 말했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그런 게 있어.”
“뭐야 궁금하게.”
“나중에 알려줄게.”
황급히 인터넷 창을 끄고 어느새 컴퓨터 전원마저 끈 지호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일어서자 박경의 눈매가 의심으로 가늘어졌다. 흐음 수상한데……. 그러나 무뚝뚝한 지호의 태도로 보아 백날 때를 써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걸 아는 박경이기에 아쉽지만 오늘은 뒤로 물러나기로 했다. 하아, 이래서 친구였다가 연인이 되는 게 썩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박경은 무서울 정도로 지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자신에게 공연히 짜증이났다.
“근데 왜 온 거야?”
지호가 기지개를 켜며 어슬렁어슬렁 거실 소파에 가서 앉자 박경이 종이처럼 얼굴을 꾸겼다.
“내가 못 올 데 왔냐? 꼭 이유가 있어야 올 필요는 없잖아.”
속상한 마음에 말투에 잔뜩 날이 섰지만 지호는 그런 박경을 눈치 채지 못한 채 그저 심드렁하게 고개만 끄덕인다. 아, 답답해. 좀 전만해도 하늘을 날아다닐 듯 즐거웠는데 지금은 기분이 바닥까지 추락했다. 맨틀은 무슨 외핵, 내핵까지 뚫고 한없이 가라앉는다. 박경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쓰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호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저 놈 페이스에 휘말리지 말고 침착하게 계획된 대로만 하자. 박경, 아자아자! 속으로 스스로에게 응원까지 한 경이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심심한데 티브이나 보자.”
박경이 방긋방긋 웃으며 말하자 지호는 저 새끼가 약 처먹었나-하는 띠꺼운 표정으로 자신의 옆을 턱짓했다. 팔만 뻗으면 닿을 간격에 리모컨이 있었다.
“좀 주지 않을래?”
박경이 어금니를 악물며 말하자 지호는 또 못된 장난이 발동했는지 킥 웃으며 거만하게 대답했다.
“보고 싶은 사람이 가져가야지.”
“아씨 야, 너 팔도 길구만 그냥 손 뻗어서 건네주면 되잖아.”
“싫어, 귀찮아.”
으아아아 이 개새끼가! 박경은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지만 여기서 뒤집어엎고 나가면 며칠 동안 고생해온 계획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손톱이 살을 파고들도록 세게 주먹을 쥐며 분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어서서 빙 돌아 리모컨을 집고 자리로 돌아온 박경은 이를 까드득 까드득 갈아대며 티브이를 켰다. 시간을 보니 마침 자신이 미리 물색해놓은 19금 영화가 방영할 때였다. 꽤 운이 좋다. 박경은 몰래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프로그램을 고르는 척 무심하게 채널을 넘겼다.
“우죠 어디가.”
그때 갑자기 지호가 일어났다. 꿍꿍이속이 있는지라 적잖이 당황한 얼굴로 박경이 지호를 올려다보자 지호는 먹을 거 가져 오게, 라고 짧게 말한 뒤 어슬렁어슬렁 부엌으로 간다. 뭐야 난 또……. 찔리는 게 있는지라 박경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크게 안도했다.
[하앗 하응 앙..]
티브이에서는 동양인 여자가 침대에 누워 옷을 빨개 벗은 채 남자의 애무를 받고 교태어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으아, 귀에서 침 나오겠네. 처음 보는 것도 아니건만 박경은 왜인지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지호가 대충 박스에 있는 귤과 굴러다니는 과자를 챙겨 쟁반에 담아왔지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고 간간히 이어지던 둘의 대화도 어느새 뚝 끊겼다. 박경은 무릎에 손을 꼬옥 올려둔 채 슬그머니 지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지호는 정말 놀랍도록 집중하며 브라운관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 아, 아무렇지도 않나? 박경은 흘끔흘끔 곁눈질하며 지호의 상태가 어떤지 가늠해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약이라도 한 듯 기분이 몽롱해진다. 박경은 아래쪽으로 자꾸만 피가 쏠리는 것을 느꼈다. 박경과 우지호의 나이는 낭랑 18세로 상상만 해도 그냥 갈 정도로 혈기왕성하고 민감한 시기였던 것이다.
물론, 경이가 지호와 애로영화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부터 몰래 만나서 부모님이 없는 날이면 나란히 컴퓨터 앞에 앉아 음담패설도 하고 자위도 하고 뭐, 그런 사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친구로서 볼 때와 애인으로서 보는 건 많이 다르다. 민망했다. 그냥 너무 민망했다.
“아…….”
지독히도 허스키하고 섹시한 지호의 음성에 박경은 허리를 떨었다. 드디어 반응이 왔다!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박경은 함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사실 경이도 지금 그다지 여유로운 상태가 아니었다. 뭔가 자극이 필요했다.
우지호의 숨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에 비례해 경이의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리고 맥박이 고동쳤다. 어, 어떻게 운을 떼면 좋지……. 어느 정도 분위기는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제 시작할 계기만 있으면 된다. 박경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렬하고 끔찍한 쾌락을 맛보고 싶어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마치 금단현상이라도 찾아온 듯하다. 그때 지호가 몸을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왜……?”
완전히 쉬어버린 목소리로 박경이 중얼거리자 지호가 살포시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미질이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로 미간은 구깃구깃하고 그의 바지춤을 볼록(?)했다.
“박경.”
“…어?”
그래, 우지호 잘한다! 그대로 분위기에 휩쓸려서 한 번에 가버리는 거야. 좋아, 힘내라 힘! 박경은 속으로는 기쁨의 하모니를 열창하고 있었지만 겉모습만큼은 순진무구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잡아뗐다. 그런 박경의 모습에 지호의 눈동자가 진해졌다.
“……나.”
“으응.”
“화장실 갈게.”
잉? 이이이잉? 누가 봐도 흥분한 게 분명한데 지호는 아무렇지 않은 듯 화장실로 쏙 들어가 버렸다. 박경은 너무나도 당황해서 그만 흥이 깨져버렸다. 조금씩 고개를 들던 아들놈도 푹 수그러들고 티브이에서 앙앙대는 여자의 신음소리도 시끄러운 소음공해가 되었다. 황당함을 갖출 겨를도 없이 박경은 지호가 들어가서 쾅 닫은 화장실 문만 멀거니 바보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곧 이어 화장실에서 쏴아ㅡ하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
오랜만에 박경은 지호와 만나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지호는 요즘 어떤 일을 하느라 무척 바빴고 그래서 박경과 만나는 횟수가 점점 잦아들었던 것이다. 박경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그 날ㅡ 지호가 컴퓨터로 작업하던 것과 관련된 일이라고 추측했지만 신이 아닌 이상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본인이 입을 다무는데 어떻게 알 도리가 있겠냐만은.
지호와 나란히 거리를 걷고 있었지만 박경은 지호의 껍데기만 여기 있을 뿐 정신은 정작 다른데 가있다는 데에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밥을 먹는 내내 지호는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서 박경이 이끄는 대로 풍선처럼 딸려왔다.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 세네 번을 말해야 그때야 간신히 알아듣고 또 정신이 어딘가 다른 데로 팔려 있었다. 맨날 시간이 없다고 해서 보름 만에 겨우 약속을 잡은 건데 이런 자신과의 시간에도 충실하지 않은 지호의 모습에 박경은 물밀듯이 밀려오는 실망감에 푸욱 한숨을 쉬었다.
지호의 반응이 이러한데 박경이 말을 걸고 싶지 않은 게 당연했다. 벌써 한 시간 동안 아무 대화도 오가지 않는데 지호는 이런 분위기도 눈치 채지 못하고 뭘 그렇게 생각하는지 여전히 영혼이 나간 상태였다. 벌써 권태기인가……. 하아. 박경은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처럼 경이의 입에서 나온 하얀 입김이 허공에 점점이 뿌려진다.
처음 사귀었던 날로부터 행복치수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더니 이제는 더는 손 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심하게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박경은 점점 지쳐갔다. 아무리 봐도 사귀기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심지어 지호는 자신을 친구 이상으로는 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널 이렇게 좋아하는데……. 설마 사귄 것도 내가 너무 불쌍해서, 동정심으로 사귄 걸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늪처럼 아득해지고 암울해진다. 이런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일거면, 있지도 않을 희박한 가능성에 마음 졸일 거라면… 차라리 사귀지 않는 게 나았을까. 박경은 이제 헤어지는 데까지 고민하기 이르렀다.
빠앙-
“박경 이 미친놈아!”
혼자서 열심히 삽질하던 박경은 별안간 차 클랙션 소리와 지호의 고함에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들다가 뭔가 강력한 힘이 자신을 쑥 끌어당기는 걸 느끼고 그대로 중심을 잃은 채 쓰러졌다.
“씨발, 운전 똑바로 안 해? 죽을래? 씨바, 너 지금 사람 죽일 뻔한 걸 그대로 놓고 도망 치냐. 미친 새끼가 너 고소야. 거기 안서? 야, 야!”
굉장히 탄탄하고 푹신하다. 따듯한 온기가 올라오는 무언가가 좋아 박경이 멍하니 볼을 비비자 또 강한 힘이 자신을 떼어놓는다. 잔뜩 화가 난 지호의 얼굴이 들어왔다. 아, 그럼 여기는 우지호 품이었나.
“너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못 말리겠다는 어투로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거칠게 말하는 지호를 보고 박경은 미간을 찡그렸다. 지호는 길바닥에 볼품없이 넘어진 몸을 툭툭 털며 일어나자마자 영문을 모른 채 엎어져있던 박경의 뒷덜미를 잡고 일으켰다.
“차에 치일 뻔했잖아.”
방금 보다는 좀 누그러진 음성으로 말한다. 넘어진 탓에 군데군데 먼지가 묻은 경이의 옷을 툭툭 털어주던 지호가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는 경이의 머리에 딱밤을 먹였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바보야.”
걱정스러운 말투와 달리 지호가 내리친 머리는 혹이 올라올 정도로 얼얼하고 아파서 금세 박경의 눈가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존나 아파! 날 죽일 셈이냐, 우지호. 차에 치일 뻔한 걸 살려내서 때려죽이려는 게 분명하다며 박경이 툴툴거리자 지호가 씨익 웃는다. 평소 경박하게 학학 웃어대던 모습과 달리 입꼬리만 살짝 올려서 웃는 미소는 뇌가 멈출 만큼 예쁘다.
먼저 반한 사람이 진다더니 그 말이 진짜인가 보다. 좀 전까지만 해도 더없이 우울하던 박경은 오아시스처럼 겨우 맛본 잠깐의 지호의 관심에 설레서 구름이 하트로 보일 정도로 행복해졌다. 지호의 동작 하나하나에 자신은 너무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나비효과처럼 별것 아닌 그의 말투와 표정, 행동에 자신은 하루에 몇 번이고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이다. 박경은 이런 자신이 화가 날 정도로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먼저 반한 사람이 지기 때문이고, 자신은 지호를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박경, 이번 주 크리스마스 날 뭐 할 거야?”
연인들의 날이라는 크리스마스가 이번 주 토요일 날 있었다. 박경은 지호를 눈여겨보면서, 분명히 우지호는 크리스마스 날 가족이랑 보낸다느니 아주 고리타분한 얘기만 늘여놓을 게 뻔할 거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우지호는 개방적인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늙은이처럼 고지식한 부분이 있었다.
“가족이랑 보내야지. 우리 크리스마스이브에라도… 만날래?”
박경이 이렇게 말하자마자 지호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갔다. 조각상처럼 석화되는 지호의 얼굴을 보며 박경은 마음 한구석이 겨울바람보다도 더 차갑고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미안.”
아……. 가슴 한복판에 대못을 박는 느낌이다. 콱 찔려서 피가 콸콸 솟구친다. 아파. 박경은 눈을 내리깔았다. 금방이라도 풀썩 주저앉을 것처럼, 저 북쪽 툰드라에서 사납게 몰려오는 겨울바람에 산산조각이 날 것 같은 고목처럼 위태위태하게 서 있는 게 고작이었다. 코끝을 찡-하게하는 이 느낌이 무엇인지, 목 끝까지 북받쳐오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박경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걷던 둘의 손이 스쳤다. 박경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황급히 손을 떼었다. 불에라도 데인 듯 화끈거리는 손을 만지작대는 박경을 보는 지호의 눈동자는 깊게 가라앉는다.
***
거리에는 신나는 캐롤이 울리고 아이들은 저마다 산타클로스에게 소원을 빌며 크리스마스트리에 양말을 걸었다. 연인들은 사랑에 취해 딱 붙어서 길가를 활보하고 일가족은 오랜만에 찾아온 연휴를 만끽하며 다 같이 외식을 나간다. 불빛 전구가 꽃처럼 곳곳이 가로수와 건물에 펴 있는 지금은 일 년 중 어느 때보다도 더 환하고 밝은 밤이다.
박경은 그 풍경을 창문 너머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만 볼 뿐인데도 하하호호 즐거운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다.
애달프게 창문만 쓸며 박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호는 지금쯤 뭐할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지호가 떠오른다. 바닥에서, 냉장고 안에서, 벽에서, 식탁에서, 문에서 귀신처럼 지호가 나타난 덕분에 깜짝 놀라 눈을 비빈적만 해도 이미 손으로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자식은 나 따위는 아주 쉽게 잊고 신나게 놀고 있겠지. 냉소적으로 입꼬리를 당기며 박경은 창문을 손톱으로 끼기긱 긁었다.
짜증났다. 아, 정말 화가 난다. 아니 너무 아프고 괴롭고 슬펐다. 엄마랑 아빠는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해외로 뜨셨고 위로 있는 누나는 남친이랑 여행 간다며 2박 3일 동안 집에 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건 뭐 나 홀로 집에도 아니고 혼자 크리스마스 내내 집을 지키게 된 박경은 이런 자신의 처지가 너무 불쌍하고 가여웠다. 스스로 동정하다니 갈 데까지 가는구나. 박경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어?”
그때, 하얀 솜뭉치 같은 것이 박경의 눈에 스쳐지나갔다. 천사의 깃털 같기도 하고 아주 작은 흰 도깨비불도 같은 것이 어두운 밤하늘을 아름답고 순수한 하양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잘못 본건가 싶어 고개를 들고 창문에 바짝 달라붙은 박경은 바람이 많이 불어 하늘애서 내리는지 땅에서 솟는지 애매한 눈송이를 보며 입을 벌렸다.
“첫눈이다.”
올해 들어서 첫눈이었다.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비교적 이번 년도 겨울 날씨가 온화해 진눈깨비나 얼다만 비가 새벽에 찔끔찔끔 왔을 뿐 12월 말이 다되어가는데도 제대로 눈 한번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던 눈이 지금은 쏟아질듯 하얗게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첫눈을 맞으면 사랑이 영원하다던가……. 문득 박경은 거짓일게 분명한 속설이 떠올랐다. 송이송이 내리는 눈 사이로 지호의 얼굴이 지워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박경을 놀린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이브.
창문 밖 풍경은 아름답고 세상은 행복으로 풍요로웠다. 단지 박경이 서있는 자리만 동그랗게 원이 그어져 끔찍할 정도로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세상에 있는 어둠이라는 어둠은 전부 그러모아 박경에게 쏟아 부은 듯하다. 가슴이 시리다 못해 찢어질 것 같아서 박경은 벽에 쾅 하고 세게 주먹을 내질렀다. 손뼈가 부러졌나 싶을 만큼 어마어마한 고통이 뒤따르고 뼈마디가 하얗게 질렸지만 이 정도는 마음의 통증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박경은 지구멸망이라도 바라는 듯 행복한 크리스마스이브의 거리를 노려보며 지친 걸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서 잠이라도 자야겠다.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꾹 부여잡고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박경은 까무룩 눈을 감았다.
C L I C K ☆★ |
멜로디 / 망가리 / 마가레뜨 / 금귤 코너킥 / 쌀알 / 바나나 / 부스러기 미네랄 / 새주 / 설라 / 크림우유 쮸 / 탤탤 / 요플레 / 바지 / 떠불
님 감사합니다! 제가 덜렁이라 자꾸 암호닉 신청하신 분들을 까먹었어요 ㅠㅠ 그래서 아예 메모장에 저장해서 파일에 보관했습니다.. 혹시라도 저기서 암호닉이 빠지신분은 제게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당분간은 너무 혼란스러워서 암호닉은 받지 않겠습니다 ㅠ^ㅠ 시험끝나고 돌아오면 그때부터 받을게요~
그리고 상편...ㅋㅋ.... 이렇게 많은 덧글 처음 받아봐요! 부족한 소설인데 많은 분들이 메일링 신청해주셔서 얼마나 기쁘던지 ㅠㅠ~ 그런데 제가 사과우유만 그냥 띡 보내기가 뭐해서 에필로그도 완결한 다음에 한꺼번에 묶어서 보내드릴게요 이번주 안으로는 메일링 할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마지막으로 제 소설을 봐주시는 모든 분들 행복해져라 E~~yap♥♥
++ 곧 下편도 나갑니다! 아무래도 에필로그 분량조절에 실패한거같네요..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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