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 (설정) 링크입니당~ https://www.instiz.net/name_enter/43311259 너무 밝은 분위기만 많이 쓴 것 같아서 살짝 다운시켰어요 호호 원래는 이것도 엄청 가볍고 설레는 설정인데 쥬륵.. - 수학은. 존나. 미친거다. 그거 아니고선 내 머리로 납득이 안된다. 가우스고 유클리드고 다 죽었으면. 뭐 재밌다고 이걸 연구했을까. 수학자들은. 존나. 미친놈들이다. 펜 뚜껑만 물어뜯고 있기가 30분째. 내 머리론 존나게 삼각 함수가 안 외워져서 포기하고 일어났다. 바람 좀 쐬고 오면 나을 것 같기도. 독서실 문을 빼꼼 열자마자 반대편에서 나오던 친구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수학?" "너도?" 비밀스럽게 서로 끄덕이고 독서실 옥상 한 칸 하늘로 올라갔다. 수학샘이 나눠준 프린트로 종이비행기를 접었다. "삼각 함수 미친거 아니냐? 공식 내가 다 세어봤는데 26갠가, 24갠가 그렇더라. 24시간인줄!" "말도 마라, 넌 미분이라도 들어갔지, 난 극한에서 놨다." "자연 로그는 또 어떻고. 미쳤다, 진짜. 우리 벌써부터 이러면 나중에 적통 기벡은 어떡하냐." "아, 몰라. 포기해, 포기해." 울컥 솟아오르는 감정을 실어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대가리를 살짝 접은 비행기는 오답에 작대기를 긋듯 시원스럽게 하늘을 채점했다. ".. 대학은 어떡해." "서울 우유, 연세 우유를 거쳐서 매일 우유네, 진짜로. 매일매일 건강하기라도 하자." "아 진짜, 4 초반대 내신으로는 샘이 인서울을 논하는게 창피한거라고," "아니 무슨 학생들 공부하겠다는데 자리 하나를 이렇게 안 내주냐." "아아악. 몰라몰라. 어떡해. 벌써 고3이야." 머리를 잔뜩 헝크러트리고 테이블에 엎어졌다. 채점을 마친 비행기가 난간을 넘더니 펜처럼 데구르르 굴러 시야에서 떨어졌다. "중간 옥상에서 맞는거 아냐?" "맞으라 해.. 알바냐. 꼭지 접어서 아프지도 않," 까지 했는데 그 비행기를 든 사람이 옥상문을 열고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어떻게 우리인지 아냐면, 그야 옥상에 우리뿐이었으니까. "이거, 너네가 날렸어?" "아, 응. 혹시 맞았어?" 같이 엎어져있던 친구가 번갯불에 콩 볶듯 벌떡 몸을 세우고 반문한다. 진짜 맞았나봐 싶어 사과하려고 밍기적 밍기적 일어나니까, 어, 최한솔이다. "최한솔?" "아? 뭐야. 너도 이 독서실이야?" "너도야?" 최한솔이라고 해서 딱히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거나 하는건 아니라지만, 그리고 같은 반이더라도 그다지 친하지도 않다지만 그래도 막상 보니 반가웠다. 친구가 호들갑을 떨었다. "너 혼자야?" "아, 응. 친구들이랑 같이 끊으면 또 놀거 같아서." "잘됐다. 우리랑 밥 같이 먹자." "그래, 뭐." 얼떨결에 2-2 기말고사를 향한 나의 고잉메리호에 선원이 늘었다. 좋아한건 의외로 담임선생님. "잘됐다. 너네끼리 좀 도와서 공부도 하고 그래라. 원래 비슷비슷한 애들끼리 뭉쳐야 공부가 더 잘 돼. 공부 잘하기만 했던 애들은 못하는 애들 눈높이를 이해를 못해서 설명을 못하고, 그렇다고 너네보다도 못하는 애들이랑 같이 하면 걔도 몰라서 공부를 못해. 조합 딱 좋다. 이번에 성적 빡 올리고 고3 가자." "네에.." 욕인듯 아닌듯한 의외의 말에 나는 떨떠름하게 교무실을 나왔다. 한솔이의 표정을 보니 걔도 비슷한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비슷비슷한 애들. 선생님이야 쉬운 단어를 골랐겠지만 그 말은 우리에게 참 어려웠다. 비슷비슷한 애들. 비슷비슷하단 말이지. 눈에 띄지도 않고 공부를 엄청 잘하지도 않고, 그냥 그저 그런듯이. 엇비슷하게. 몰개성해져버렸다. 순식간에. 나는 다소 멍하고 찌뿌둥한 하루를 보냈다. 내신 걱정에 피가 마르는게 어디 나뿐이랴. 부모님은 더했다. 이 어중간한 내신에 쓸 곳도 딱히 없어 수시고 정시고 지원서를 뽑을 곳도 마뜩찮았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며 나는 자꾸만 쪼그라들었다. 한 1m쯤으로. 친구는 더했다. 80cm. 나와 비슷하게 줄어든 한솔이가 주억거리며 교실을 들어왔을때, 어느새 친해진 우리 셋은 알아서 뭉쳐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스터디 그룹을 할까?" "애들이 우리랑 하려고 하겠냐. 다 잘하는 애들이랑 하려고 하지." "우리끼리는?" "야, 당연히 놀지!" "아, 맞아맞아." 생산성 없는 토론에 야자 시간이 금방 흘렀다. 달력에 또 하루를 X 쳤다. 기말고사까지 이제 9일. 다들 입때껏 공부해놓은 것을 정리하느라 바쁘겠지. 과외가 있어 먼저 집으로 간 친구의 자리를 보다, 한솔이가 책상을 두드렸다. "가자, 독서실." "어? 어, 그래." 무거운 하굣길이었다. 누군들 공부를 못하고 싶어 못할까. 외우는건 영 젬병이고 한국사는 일찌감치 포기했으니 그나마 가능성이 남아있기라도 한 이과로 가자 싶어 온게 실수였던가.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를 조선 왕조마냥 줄줄 외는 상위권 아이들을 그저 부럽게 쳐다볼뿐, 우리에겐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이과라고 하면 다 공부 잘하는줄 아는데, 2학년을 다 마친 지금에 와서 과를 바꾸겠다고 할수도 없고. 한솔이가 팔뚝을 툭툭 쳤다. "무슨 생각해, 아까부터." "아, 그냥. 내신도 어정쩡한데 어디 쓰나, 싶어서." "담임 나한테도 그 소리 하던데." "뭐, 어디 쓰냐고?" "응." "에휴." 상위권을 위한 선생님들은 차고 넘치지만, 아예 전문대를 쓰기에도, 4년제를 쓰기에도 어정쩡한 4점 중반대 내신을 위한 선생님은 거의 없었다. 암만 봐도 전문계 넣기엔 아깝다고. 근데 4년제 들어가려니 쓸 자리가 없는걸.. 나는 식품공학과를 가고 싶었고, 친구는 생물학과, 한솔이는 화공이 꿈이었다. 전화기, 그 화공. 아무나 들어가는게 아니라고들 하는 그 화공. 문득 솔이를 쳐다봤다. "넌 진짜 더 힘들겠다." "응? 왜?" "전화기 안그래도 빡세잖아." "아.. 그렇긴 하지. 응." "아니 뭐, 그렇다고 내가 뭐 안 빡세고 그런 뜻이 아니라, 전화기 가겠다고 하면 주변에서 기대 엄청나게들 하고 그러지 않나." "좀, 그러시긴 하지." 멋쩍은듯 웃는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에휴. 고3에 치이고 상위권에 치이고, 어정쩡한 고2 중위권은 갈 데도 없어 우린 결국 독서실로 돌아갔다. "힘내자." "어, 그래." 대답은 서로서로 했어도 힘이 날 리가. 머리가 계속 어지러워 결국 1시간만에 펜을 놨다. 옥상으로 올라가자 그보다도 일찍, 솔이가 나와있었다. "네, ... 아니, 근데 엄마," 통화중인가보다. 나는 다시 테이블에 앉아 종이비행기를 접었다. 저번에 매겼던 하늘은 몇 점이던? 물어보고 싶었다. 거기 뭔가 해답이 있던? 놀란건 그 순간이었다. "아니라고." 솔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이씨.." 놀라서 접던 비행기도 놔두고 가만히 등을 바라보고 있는데, 시끄러운 전화 너머와 달리 손을 꺾어 눈물을 닦는 팔이 그리도 고요할수가. "나도 안다고. 한다고. 왜 못 믿는데. 와서 보라니까, 그럴거면?" 안 봐도 비디오. 각이 나왔다. 성적이 오르지 않는 너를 타박하시는 어머니, 독서실에서 뭘 하고 오는거냐고 몰아붙였을테고 너는 억울했겠지. 어휴, 선생님 바라시던게 이런겁니까. 중위권은 중위권끼리 놀면서 서로의 애환을 이해해라. 난 상위권을 챙길테니. 너희까지 챙기기엔 내가 너무 바쁘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혼나기만 할 심정. 나라고 해줄 수 있는게 많진 않았다. 한자 중에 가운데 중 자가 제일 싫은, 나는 중위권. 전화 끊기를 기다려 가만가만히 다가가 등을 딱 두번, 두드렸다. 못본척 고개를 푹 숙이고 독서실 내 자리로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왤까.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불행이라고 해야할지, 솔이는 그 다음날 멀쩡해보였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우리는 어김없이 독서실을 갔고, 답도 없는 입시 상담을 나누었고, 밥을 먹었고, 옥상에 갔다. 기말고사까지는 이제 나흘. 나는 가끔 솔이의 눈을 보았다. 끝까지 나를 괴롭히는 삼각함수가 속상해 숨죽여 울었다. 왜.. 기말고사도 진짜 며칠 안 남았는데 좀 외워져라, 좀. 봐도봐도 똑같고 써도써도 그대로인 sin, cos, tan, csc, sec, cot 를 몇 번을 보는지 너무 지긋지긋했다. 풀어도 풀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독서실 방을 나섰다. 코를 두번 풀고 솔이의 자리로 향했다. 엉금엉금 오리걸음으로 커튼을 걷자, 영어 듣기 중인 솔이가 이어폰을 빼고 나를 내려다본다. '수학 물어보려고.' 입모양으로 벙긋거리고 문제집을 펼쳐 책상에 올렸다. 'sin 제곱에 cos 제곱 더하면 1이잖아. 여기서 나머지 공식 파생되는 원리 외워야 돼?' 절박했다. 서술형에 나온다고 말씀하신 것도 들었는데, 누구라도 좋으니 아니라고 말해줬으면. 내 두뇌에 리미트를 걸면 포화로 발산할텐데. 솔이는 가만히 턱을 괴고 나를 보고 있었다. '어? 외워야 돼?' 밑줄이 새까만 문제들이 미치도록 부끄러웠다. 미안. 이게 한계인걸 어떡해. 슬그머니 나 자신이 줄어들었다. 한 60cm까지 줄었나 싶을때 솔이가 문제집을 빼내려는 손을 누르고 귀퉁이에 글씨를 적었다. [괜찮아] 뭔 이야기일까. [너 할만큼 했잖아] 아. 그런데 이것도 위로라고 받아들이기엔 내가 좀 지쳤나봐, 솔아. 풀이 죽어 문제집을 슬그머니 내리던 팔을 그대로 잡고 솔이가 허리를 굽혀 입을 맞춘다. "흡..?!" 놀라서 딸꾹질같은 비명이 그대로 새어나왔다. '뭐..?' 솔이가 서글프게 웃는다. 나무같은 허리를 다시 내려 내 뺨을 감싸쥐고 웃는다. '괜찮다고. 괜찮을거라고.' 솔이가 고개를 틀어 다시 입을 맞춘다. 음. 기분이 묘하군.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기말고사를 나흘 앞둔 열여덟의 첫키스는 생각할게 너무 많아서 집중하기가 힘들다. "울지 말고."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이마를 맞댄 솔이는 빙그레 웃는다. 뺨을 쓸고 이번엔 고개를 반대로 튼다. 나 괜찮은데. 안 괜찮아서 운거 아닌데. 솔이의 영어 문제집 사이, 날리지 못한 비행기가 끼어있는게 보인다. 나는 좀 안 괜찮아져도 상관없지 않을까 싶어 눈을 감기로 했다. 솔이가 웃는다. 내가 웃는다. 비행기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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