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경호원
ㄱ 핏치핏치
네엣
"야 너 얼굴 왜그래?"
"네? 뭐가요?"
"터질 것 같은데."
카페로 돌아오자마자 들리는 도영오빠의 말에 흠칫 놀랐다. 뭔가 찔리는 기분이라서. 도영오빠는 내가 백화점에서 정재현이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를텐데, 혼자 괜히 오버했다.
"아 뛰어왔더니 좀 덥네요! 어후 왤케 날이 좋냐! 그쵸!"
"겨울인데 덥다고?"
겨울인데 더울수도 있지 뭐! 나를 여전히 이상하게 바라보는 도영오빠를 애써 무시하고 아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오늘도 끊임없이 몰려오는 손님에 지치다가도, 주머니 속에 잡히는 작고 네모난 종이가 느껴지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으, 죽겠다."
"좀 쉬어. 이건 내가 할게."
"진짜요..? 아 감동."
"됐어 징그러."
도영오빠에게 내 마음 깊숙히 숨겨져있던 잔망을 꺼내 굳이굳이 표현하는데, 징그럽다며 휙 가버린다. 단호하셔라. 민망한 마음에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다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문자, 보내볼까. 한 손에 핸드폰, 다른 한 손에는 명함을 꼭 쥐고 잠시 고민했다. 그래! 친구끼리 연락도 못 하냐. 핸드폰 잠금을 풀고 번호부터 저장했다.
"뭘로 저장하지.."
정재현.은 뭔가 딱딱해서 마음에 안들고, 재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간 것 같고. 이게 뭐라고 끙끙대며 고민하다, 아까 정재현이 준 피치워터가 내 머리를 스쳤다. 그 후에 나는 망설임 없이 타자를 치고 저장을 눌렀다.
[복숭아 010-1997-0214]
누가보면 연인사이의 애칭 같았지만, 딱딱하게 이름만 저장하는 것 보다는 훨씬 마음에 들었다. 정재현만 보면 복숭아가 생각나기도 했고. 생긴게 거의 인간 복숭아 수준이다. 복숭아를 닮은 정재현이 나에게 피치워터를 건네는 모습이 생각나 잠시 큭큭거리다, 메세지 버튼을 눌렀다.
"음..바빠? 아니야아니야. 아 뭐라고 보내지!"
세상에. 누가보면 짝사랑하는 남자한테 뭐라고 연락할지 고민하는 것 처럼 보이겠다.
..사실 맞는 것 같다. 원래부터 아련아련히 기억나던 정재현이, 저렇게나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서 나한테 엄청나게 잘해주는데. 당연히 다시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날 수 밖에. 긴 고민을 마친 내가 보낸 문자는, 겨우 다섯 글자였다.
[나 이름이야!]
겨우 이렇게 보낼거면서 고민은 왜 했는지. 뒤늦게 후회되어 얼굴만 꾸깃꾸깃하며 자책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또 스팸이겠지, 하며 감흥없는 눈으로 화면을 확인하는데 보낸 사람에 복숭아 라고 적혀있었다.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엄청 기다렸네. 일 언제 끝나?]
[나 오늘 일곱시! 왜?]
나름 답장을 빨리 했다고 생각했는데, 답장이 없다. 사실 삼분밖에 기다리지 않았지만. 하지만 나같은 사람들한테는 삼분이 세시간처럼 느껴진다는 거 다들 공감할거다. 마침 도영오빠가 불러서 핸드폰을 집어넣고 카운터로 향했다. 일이나 해야지, 일!
"너무해.."
결국 그 뒤로도 답장은 없었다. 씹은거야, 지금? 내 문자를? 오래 기다렸다면서. 정재현 거짓말쟁이.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입이 비죽 튀어나왔다. 일곱시 땡 할때까지 기다렸건만 여전히 답장은 없었다.
"오빠 저 먼저 갈게요-"
기운이 다 빠진 목소리로 인사하고 카페 밖으로 나왔다. 백화점엔 아직도 불이 환하게 켜져있다. 많이 바쁜가.. 이해해야지 싶으면서도 속상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괜히 힘이 더 빠져서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오늘 힘들었어?"
"으악!"
"아이구. 미안. 놀랬지."
"너..너.."
땅을 보고 걷는데 갑자기 앞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기겁을 했다. 그냥 사람이어도 놀라는데, 정재현이라서 더. 아, 나는 놀라는 것도 왜 이런거야.. 좀 귀엽게 놀라던가! 내가 생각보다 더 놀라서 당황했는지 미안미안, 하며 웃어보인다.
"여기 왜있어?"
"너랑 집 같이가려고."
"나랑?왜?"
"아니, 어제 못 데려다준거 미안하기도 하고.. 오늘 형들때매 당황하고..뭐 아무튼."
"그건 뭐야? 케이크?"
"아. 어머니 생신이시잖아, 오늘."
재현아.. 그렇게 웃기 있냐. 나 진짜 지금 다리풀려서 넘어질 것 같은데. 집에 같이 가자는데 굳이 마다할 필요가 있나. 그저 아싸! 할 뿐이지. 케이크까지 사준 게 고마워서 내가 들려고 하는데, 고개를 저으며 등 뒤로 숨긴다.
"내가 들게!"
"안돼."
"왜?"
"니가 들고가다가 엎으면 어떡해."
또 장난이다 또. 얄밉다는 눈빛으로 째려봤지만 사실 싫지는 않았다. 금세 알았어 알았어, 하고 웃으며 나를 달래는 정재현이 너무나 다정해서. 같은 방향까지만 같이 가는 줄 알았던 정재현은 어느새 나를 따라 우리 집 쪽으로 걷고있었다.
"너 진짜 안 가도 돼? 늦었는데."
"늦었으니까 가면 안 되지."
"어?"
"어이구, 더군다나 집이 골목에 있네. 위험해 위험해."
위험하다며 너스레를 떠는 정재현을 바라보다, 속 뜻을 알아차리고는 혼자 설레어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 얼굴 빨개진 거 들키면 안되는데. 다행이 차가운 밤공기에 금방 열이 내려갔다.
"근데 오늘처럼 번호 물어보는 사람 많지."
"아니, 뭐."
"뭘 거짓말을 하려고하냐? 아까 난 직접 봤는데."
"별로 관심없어."
"솔직히 아까 그분 이쁘긴 했는데."
아까 낮에 봤던 여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대답이 없던 정재현이 갑자기 우뚝 멈춰선다. 갑자기 옆에서 사라진 정재현에 나도 뒤를 돌았다. 왜그러지? 의아하게 쳐다보는데, 정재현이 나와 눈을 똑바로 맞추며 말했다.
"안 예뻤어, 하나도."
"..그런가."
"응. 그 얘기는 이제 그만."
"...응."
나에게는 그저 순수한 궁금증이었는데, 정재현에게는 꽤나 기분나쁜 일이었나보다. 취향이 아닌가? 이야기를 딱 끊어버린 정재현 덕에 집에 가까워질 때 까지 입을 쉽게 열 수 없었다. 집이 눈에 보일때 쯤, 먼저 입을 연 건 정재현이었다.
"미안. 괜히 분위기 이상하다."
"야 내가 미안하지, 쓸데없는 얘기나 하고."
"집 어디야?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아, 저기야. 세번째 집."
정재현은 마냥 편치만은 않은 표정으로 살짝 웃었고, 그런 정재현의 표정에 나도 헤벌레 웃어보일 수 없었다. 그렇게 조금은 어색한 상태로 집 앞까지 왔다.
"고마워 진짜진짜."
"아냐. 종종 데려다줄게."
"안그래도 되는데.."
"얼른 들어가. 춥다. 어머니께 생신 축하드린다고 전해주고."
"응. 너도 얼른 들어가."
"잘 자, 이름아."
나에게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정재현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착각일수도 있지만,
터무니없는 생각일수도 있지만,
2010년, 7년 전의 정재현.
너는 정말 날 좋아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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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초록글+추천18☆☆☆☆☆☆축
여러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오열)
다음화에서는 재현이와 여주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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