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만 정장 바짓단 아래로 빛을 받을 때 마다 반짝이는 검은 구두가 빠르게 움직인다. 발끝에서 시선을 올리면 긴 다리를 감싼 정장바지에서 부터 군살 없는 허릴 감싸는 소가죽의 벨트와 구김 한 점 없는 흰 색의 와이셔츠가 몸을 부드럽게 감싸고 돈다. 더 시선을 올리면 깔끔한 차림새와는 대조되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고 며칠새에 더 야위고 창백한 준면의 얼굴이 보인다. 자꾸 입술이 마르는 듯 혀로 밑입술을 축이는 탓에 입술이 붉게 부르텄으며 잠도 잘 못잔 탓에 눈밑에 검붉은 자욱이 내려앉았다. 준면이 이곳으로 오기까진 오랜 고민이 흐르고 난 후였다. 그만큼 간절했고 급했기에 이곳으로 올 수 밖에 없었지만,
손목을 들어 시계를 봤다. 한시가 급하기에 발걸음을 더욱 서둘렀다. 창백한 손목을 감싼 메탈소재의 시계 초침소리가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다,
노크를 할 새도 없이 문고리를 돌렸다. 문 옆 데스크에 앉아있던 비서가 그런 준면을 보곤 놀란 눈을 하며 달려왔다. 준면은 망설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커다랗고 고급스러운 나무소재의 문이 열리자 먼지 한 톨 없는 흰색의 대리석 바닥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민석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해서 준면은 순간 헛구역질을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구두의 뒷굽과 딱딱한 대리석의 마찰음이 방 안에 울러퍼졌다.
넓은 보폭으로 열 몇걸음쯤 걸었을까 동물의 가죽을 그대로 벗겨만든 카펫의 푹신한 느낌이 신발 앞코에서부터 느껴졌다. 준면은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호랑이의 머리가 바로 저를 바라보고있었다. 다시 고갤 들었다. 민석의 둥근 듯 날렵한 얼굴이 보였다. 일을 하고 있었던 듯 금테의 안경을 콧잔등에 얹어놓은 그의 시선이 준면을 잠시 바라보다가는 준면의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있는 비서에게로 옮겼다. 상황을 설명하라는 듯 한쪽 눈썹을 찡그린다.
"이사님께서 갑자기 문을..."
민석의 시선이 준면에게 잠시 닿았다 떨어졌다. 비서가 무어라 말을 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나가봐요. 민석이 말하고 그녀는 도망치듯 자릴 피했다. 아마도 그녀는 오늘이 이 회사에서의 마지막 근무가 될 것이다.
"형 무슨일이야."
이미 알면서도 모른 척 물었다. 준면은 몇번 마른세수를 하다가는 한숨을 내쉬며 한손으로 머릴 쓸어넘겼다.
"...없어졌어."
그러니까, 내 아내가...
아내라는 말에 민석이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벗었다. 없어졌다고? 확인하듯 묻자 준면이 고갤 끄덕였다. 이내 화가 나는 듯 제 발 밑에 있던 호랑이 머리를 세게 발로 쳐낸다.
민석아, 김민석. 그러니까 니가...
이 씨발 니가...
니가 그랬어?
준면이 민석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붉어진 눈시울에서 분노와 간절함이 섞여들어있었다. 민석은 차게 식은 표정으로 그런 준면을 바라봤다. 형도 참 엉망이구나, 민석은 준면이 측은해보이기까지 했지만 참을 수 없는 분노 또한 느끼고 있었다.
몇분이나 지났을까 민석이 히죽 웃어보이곤 이내 방 안이 울릴 정도로 웃어재끼기 시작했다. 준면은 어안이 벙벙한 듯 배를 잡고 웃는 민석을 멍하니 바라봤다.
"형, 무슨 코미디 찍어?"
신경질적으로 제 넥타이를 쭉 잡아당긴 민석이 자신의 책상에 걸터앉았다.
"형은 진짜 쓰레기야."
준면을 쏘아보며 뇌까린 민석이 신경질적으로 욕짓거릴 내뱉었다.
"그러게 왜 분에 넘치는 짓만 골라서 해. 그러니까 이 사단이 났잖아. 어쩔거야?"
민석이 답답한 듯 틴케이스 안에 담긴 담배 한 보루를 입에 물었다. 선천적으로 천식을 가진 그였지만 가끔 제 멋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면 담배를 찾곤 했다.
"형이 그 애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민석의 말을 잠자코 듣고있던 준면이 그에게 다가갔다. 망설임 없이 민석의 멱살을 잡곤 그대로 책상에 눕혔다. 냉기 어린 동생의 눈의 저를 뚫어보는 듯 해서 잠시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씨발. 니가 뭘 안다고, 준면의 눈에 민석의 흰 목덜미가 보였다. 남자치고 그리 굵지 않은 목, 저가 어릴 때 몇번이고 쥐어본 저 모가지를 꺾고싶었다. 항상 눈엣가시였지만 그래도 혈연이란 것은 무시 못 할 존재감을 갖고있었다. 오늘 민석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심장 깊숙이에서부터 피어올랐다. 민석은 담배를 입에 문 채 히죽대며 준면을 올려다보고있었다.
"형, 있잖아."
"..."
"그 애는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있을 수도 있어."
"..."
준면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했어?"
그 애의 아버지 말이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준면이 민석의 목을 졸랐다. 민석은 목에 힘을 풀고 준면을 바라봤다. 뽀얗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입가에 있던 담배가 떨어져서 책상 위를 나뒹굴었다. 준면이 손에 힘을 주었다. 이마에 핏대가 섰고 맺혀있던 눈물이 떨어져 민석에 뺨에 흘러내렸다. 둘의 표정이 마치 뒤바뀐 듯 했다. 목이 졸리는 사람보다 조르는 사람이 더욱 고통스러워 보였으니.
죽어, 씨발 죽어!
준면이 잘게 중얼대며 민석을 더욱 몰아붙였다. 민석은 숨이 막히는 지 잠시 켁켁거렸다. 온 몸에 힘을 주고 민석을 압박했다. 순간 민석의 표정이 처연해졌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 마치 죽기 전 주마등처럼 인생이 스쳐가듯 어떠한 생각을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준면은 그런 민석의 모습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문득 민석이 태어났을 때가 생각났다. 새하얗던 천사는 자라가면서 타락해버렸다. 어쩌면 태어났을 때 부터 타락해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민석을 죽이는 자신이 정의롭게까지 느껴졌다. 민석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기절할 것 처럼 몽롱했다. 준면은 웃고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 마냥 웃고있었다.
그런 형의 얼굴을 바라봤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형과 저가 닮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어느때보다 형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이젠 민석의 얼굴이 검붉은색을 하고있었다. 민석은 마치 유언이라도 남길 것 처럼 입술을 뻐끔거렸다.
"형..."
"..."
"...그... 애한...테...도... 이랬...어?"
순간 준면은 손에 힘을 풀었다.
이성을 찾은 듯 뒤로 자빠졌다. 민석은 제 목을 부여잡고 죽을 듯 기침을 해댔다. 준면이 그런 민석을 바라봤다. 뒷 목이 식은땀에 젖어 축축했다. 바닥을 짚고 일어서다가 몇번을 휘청댔다. 현기증이 다시 크게 일었다. 젖은 눈가를 대충 손등으로 훑곤 비틀대며 밖으로 나갔다. 민석은 여전히 죽을 듯 기침을 하고있었다.
*
강간을 당할 뻔 했다.
오세훈이 일을 나간 저녁이었다. 평소 같은 집에 사는 조직원들이 나를 노리는 것 정도는 알고있었다. 여자냄새를 맡기라도 하는 지 오세훈만 없으면 낡은 문고리가 혹시라도 열려있을까 오다가다 잡고 돌려보는 것 정도는 알고있었다는 거다. 근데 그 망할놈의 낡아빠진 문고리가 하필이면 고장나서 열릴 줄은 몰랐다. 나는 방 구석에 앉아서 이불을 꼬매고 있었고 문이 열린 곳엔 남자가 정승처럼 서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짧게 훑는 시선에 말 그대로 소름이 돋아서 굳어버렸다.
안녕, 그가 날 보고 건넨 첫 마디였다. 잠시 주윌 둘러보다간 원래 자신의 방의 주인인 마냥 안으로 들어온 남자가 문을 걸어잠궜다.눈 밑에서 임술 위까지 난 상처자국이 지나치게 위협적으로 보였다. 파고들 틈 없는 구석으로 몸을 더 밀어넣었다. 경계어린 눈으로 그를 쏘아보자 피식 웃으며 내 앞에 쪼그려 앉은 그가 큰 손을 들어 내 뺨을 쓸어만졌다. 고갤 돌리자 강압적으로 턱을 잡고 억지로 시선을 맞추게 했다.
"너 생각보다 예쁘구나."
"닥쳐."
"내가 얼마나 저 방문 앞에서 니 생각을 했는 지 몰라... 어떻게 생겨먹은 년일까 하고 말이야."
"..."
"대체 어떤 여우같은 년이길래 오세훈이 껌뻑 죽는걸까 하고 궁금했다고."
"..."
"너도 날 기다렸지?"
남자가 얼굴을 가깝게 들이밀었다. 예전에 도박장에서 맡았던 약 냄새와 담배냄새가 더럽게 섞여나고있었다. 그의 손에 잡힌 턱뼈가 아스러질듯 아파서 고갤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자 그가 재미있다는 듯 낄낄대며 한손으로 내 머릿칼을 잡았다. 외마디 비명이 흘렀다. 울고싶지 않았는데 두려움에 눈물이 흐를 것 같아서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노려봤다.
"그래도 오세훈 그 새끼가 그렇게 인정머리 없는 놈은 아니었네."
"..."
"혹시몰라, 저 문 일부러 열어놓고 간 걸지."
"..."
"아님 우리 고양이가 열어뒀을까?"
남자가 더럽게 웃으며 한쪽 손으로 내 뺨을 쓸어만졌다.
그를 노려보다가 있는 힘껏 소릴 지르자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곤 다시 낄낄거린다. 힘을 줘서 손을 깨물자 욕짓거릴 내뱉으며 세게 뺨을 때렸다. 고개가 돌아갈정도로 맞은 탓에 볼이 부어오른 것 처럼 얼얼했다. 고갤 돌릴 틈도 없이 남자가 날 바닥에 눌러 눕혔다. 뜨겁고 차가운 뱀같은 손이 허벅지를 잡았다. 너무 무서워서 온몸이 떨렸다. 오세훈이 보고싶었다. 그냥 날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간절했다. 더이상 하지 말란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인형이 된 것 마냥 그의 손에 따라 아무렇게나 주물러졌다. 가만히 있으니 얼마나 예뻐- 하고 말하며 속옷을 끌어내리려 하는 그에 고장난 인형처럼 팔을 퍼덕이다 손에 따끔한 느낌이 퍼졌다. 약간은 정신이 들어 통증이 오는 오른손을 바라보니 아까 바느질 하던 바늘에 손가락이 찔려있었다. 붉은 피가 흘러 이불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남자는 어느새 내 다리 아래로 내려가 무릎에 입을 맞추고있었다. 더러운 느낌에 발로 차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떨리는 왼손을 들어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차가운 손이 닿자 놀랐는지 그가 눈을 올려 날 바라봤다. 이내 씩 웃으며 입맛을 다신다. 역시 너도 날 원했던 거야. 더럽게 속삭인 그가 다시 내 위로 올라왔다. 키스를 하려는 듯 내 뺨을 감싸고 얼굴을 들이미는 그에 순응하는 듯 왼 팔로 뒷목을 껴안으며
오른손에 있던 바늘을 재빠르게 그의 눈에 밀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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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짧죠. 급하게 썼어요. 내일 기ㅜ숙사 가야해서...오늘 내용도 이상하쥬? 저도 왠지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아서 잘랐어요 따흐흑... 점점 막장이 되어갑니다...원래도 막장이었지만요... 똥꼬발랄한 글 쓰고싶은데...전 이미 많이 썩은 사람인가봐요...아 또 슬푸다..그리고 배고프다...
최대한 자주 오고싶은데 바쁘네여ㅠㅠ 얼마전에 무슨 글잡 무료날이었담서요,,, 댓글 왕창 달리고 아주 좋았더랬죱... 새 독자분들 많이 오신 거 기념해서
다음주 일요일까지 암호닉 받을게요. 공지에 올려놓겠음다...(라구 했는데 아무도 없으면 어카지...
아 그리고 암호닉... 더이상 안 오시는 분들 정리 할텐데 생존신고라도 해주십셔,,, 알록달록 닉들 지우기 마음아프단 말이엥료ㅠㅠㅠㅠ
암호닉
뽀로로님치즈팝콘쓰님꺄링님리잰님꾸르렁님지코밥님오윈님내 붕붕이님미니미니칩칩님변녀님똥백현님알콩님이방구님코낸내님카미님경수시님핑쿠핑쿠님포도가시님알찬열매님며니하트님매드님단호박님우주님부농부농해님니니님행복님나란여자님와플집사장님슈만슈밍두님스젤웃님메론방구님딸둥이님레몬솜님또리님카사블랑카님스폰지밥님요미님왕만두님밍님눈꽃님초록이님뾰루지님규니니님메추리알님됴됴새님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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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 뭘로하지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는데님0616님5월6일의 창문님유기농오렌지님큥이뀨뀨님고사미님비행기님814님0815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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