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다고. 나를 봐달라고. 사랑한다고, 김종인 너를
화이트 크리스마스 下
한참을 울고 지쳐 잠이 들었다. 기억 상으로는 민석이가 아마 문을 열고 나갔었던것 같았다. 깨어나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때묻지 않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얀 눈을 보니 그 날의 너와 내가 생각나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는 도중에도 니 생각이 자꾸만 나서 주저앉아 우려고 하는것을 간신히 버텼다. 역시 나, 도경수는 너, 김종인 없이는 살수 없었다. 이제야 깨닫고 후회해봤자 너는 나를 떠났다.
병원밖 벤치에 앉아 하늘 위로 고개를 들어보니 새하얀 눈꽃송이가 내 콧잔등을 간지럽혔다. 간지럽던 너와 나의 첫만남이 생각났다. 병원복 위를 수놓듯 내리던 눈이 병원복을 젖게 만들었다. 너와 내가 끝맺음을 한 날, 그 후로 몇일 뒤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울던 나를 기억해냈다. 어지러웠다. 병원복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 젖은 병원복 그대로 입고 있던 나는 슬슬 추워짐에 벤치에서 일어나려했다. 일어나려고 했다. 내가 좋아하던, 기다렸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돌아가려하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돌리려했다. 돌리지 말았어야 했다. 돌리지 않았으면 그랬으면 너에게 남았던 감정이 사그라들진 않았을테니. 너는 웃고있었다. 니 옆에 있는 나와 같은 환자복을 입고 있던 작은 체구의 남자를 보고. 강아지같이 생긴 그 남자를 보면서 너는 웃었다. 그리고 그 남자도 너에게 보답하듯 환하게 웃었다. 행복해보였다. 너와 나 사이를 가로막듯 너와 그 사람 주변은 따뜻해보였다. 젖어버린 내 환자복에 비해 너와 그사람은 따뜻해보였고 행복해보였다. 그래 이제 김종인에게 도경수는 완전히 없어졌다. 일말의 기대마저 없애버린 너의 모습에 나는 마지막으로 너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김종인"
내 목소리를 들은건지 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이내 나를 찾았다. 너의 눈이 나를 쫓았고, 나도 너의 눈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너의 이름을 되새겼다.
"...종인아.."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을 몇번이고 비비고 너가 있던 자리를 쳐다봤다. 너는 사라지지 않았다. 너의 옆에 있던 그 사람이 너를 부르고 나서야 너는 나에게서 눈을 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와 다시 눈이 마주쳤고, 나는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살풋 눈을 접어 웃어줬다. 마지막으로, 다시는 보지 않을, 다시는 볼수 없을 너에게. 그리고는 다시 병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게 마지막이었다. '끝'이었다. 이제 더이상 너를 볼 용기도, 볼수도 없었다. 병원실로 들어가 아직 딱지도 채 붙지 않은 손목을 어루만졌다. 따끔따끔한게 올라오는게 지금 내 속과도 같아서 입안이 썼다.
정신을 차리려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로 내 모습을 비췄다. 싫었다. 니 옆에 있던 그 사람처럼 하얀 얼굴도 싫었고, 니 옆의 그사람처럼 작은 내 체구도 싫었다.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화장실 타일에 주저앉아 그사람과 너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리고 이제는 더이상 볼수없을 김종인의 얼굴을 수백번 곱씹었다. 세면대의 물이 넘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옆에 있던 면도기를 들었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너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안녕 내 사람, 안녕 내 사랑, 안녕 내 김종인. 메리 크리스마스
나, 도경수의 마지막에는 하얀 눈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없었다.
필국이 |
암호닉 신청해주신 맹구/파랑새/고소미 분들 감사합니다!
BGM은 316-망향(No way to go home) 입니다ㅎㅎ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