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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백현아,
..아냐

 

 

나는 자꾸 찬열이의 표정이 생각나 마음이 찝찝했다.무언가 할 말이 있는데 참는 것 같아서,또 뭔가 화를 억누르는 것 같아서 조마조마했는데 그는 끝까지 별 말이 없었다.괜한 걱정인가….생각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컸다.휴대폰을 몇 번 들여다보기도 해봤지만 오늘따라 연락도 없었다.생각해보니 오늘 하교할때도 먼저 가라고 했었고….나한테 무슨 기분 상한 일이 있나.나는 답답해서 한숨이 푹푹 나왔다.

 

 

 


전화해봐도 될까.평소같았으면 그냥 걸었을 전화도 괜한 생각에 고민이 됐다.내가 뭘 잘못했지,무슨 말을 잘못했나.고민하다가 결국 궁금함에 전화를 걸어버렸다.별 일 아니겠지,생각하면서도 연결음에도 긴장이 됐다.1분이 다 돼가도록 전화를 받지 않아 끊을까,하고 종료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어떤 음성이 들렸다.

 

 

 

 

-아,씨바..야 백현아 나 좀 도와줘..

 


그런데 들리는 목소리는 찬열이 아닌 세훈이었다.왜 세훈이가 받지?둘이 여태까지 같이 있었나.시계바늘은 어느덧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미치겠다..
"..왜 그래?둘이 같이 있어?"
-그렇긴 한데..지금 이 새끼 집에 보내려고 하는데 완전 맛가버려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진짜
"맛이 가?"
-나도 제 정신은 아닌데..이 새끼 미쳤나봐 얼마나 처마신건지..너 지금 밖에 좀 나올 수 있어?

 

 


세훈이 정신없이 말을 해대는 바람에 자초지종은 알 수 없었지만 대충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지금 나올 수 있냐니….이 시간에?내 물음에 세훈이 제발,제발하며 애원했다.나는 입술을 물어뜯다가 방문을 살짝 열어 거실을 살폈다.엄마는 방에 들어간 것 같았다.몰래 나가도 되려나….

 

 


"..어디로 가면 되는데?"
-아,아 잠만..

 

 


세훈의 목소리도 그닥 좋아보이진 않았다.그건 그렇고 찬열이는 나한테 말도 없이….섭섭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세훈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


"아,진짜 미쳤나봐 얘..씨바아아"

 


세훈이 우는 소리를 냈다.옆에서 거들어주며 눈치만 살피던 내가 죽은거 아냐?하고 농담을 했다.지금이라도 버리고 갈까?여기 자리 딱 좋은데.하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혹시나,혹시나했는데 나빼고 모여서 술판이라도 벌인 모양이었다.세훈이도 적잖게 취해보였는데 지금 옆에 있는..찬열이만큼은 아니었다.뭐라 말을 하는 것 같긴 한데 눈이 텅 비었고 아예,세훈의 말 그대로 맛갔다.누가 자신을 거의 들쳐매다싶이 해서 끌고가는지,또 내가 왔는지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찬열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뭐라 입술을 달싹일 뿐이었다.

 

 

 

 

"집에 부모님 있으면 뭐라고 말해?"
"아냐..없어..오늘 없어.."
"...음.."

 

 


세훈이 순간 비틀거렸다.얘도 집에 보내야 하나….난 또 고민했다.세훈의 말로는 종인이도 같이 있었는데 먼저 자리를 떴다고 했다.원래 제 집에서 자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저녁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부모님이 새벽아침에 온다고 하는 바람에 찬열을 보내려고 했지만 애 상태가 너무 정상이 아니라 손수 데려다주던 와중에 내 전화가 온 것이라고 했다.그렇긴 한데…자꾸만 비틀거리는 세훈을 보니 왠지 조금 안쓰러웠다.찬열의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그럼 너도 빨리 집에 들어가..내가 알아서 데려다주고 올게"
"진짜?아 씨발...넌 천사야 고마워"

 

 

세훈이 짐 넘겨주듯 찬열을 떠넘기고 미련없이 뒤를 돌아가더니 손을 흔들었다.어색하게 손 흔들며 웃어주고는 찬열을 쳐다봤다.아,무거워….순간순간 목에 찬열의 숨결이 닿는데 이유 모르게 긴장이 됐다.자?자는건가?나는 찬열을 자꾸만 힐끔거리면서 힘겹게 한 발자국,두 발자국을 내딛었다.아,자꾸 닿잖아 숨!왠지 민망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 비밀번호 모르는데.."

 

 


혼자 중얼거렸다.당황해서 눈만 이리저리 굴리다가 찬열의 바지주머니를 뒤지니 다행히도 열쇠가 있었다.열쇠를 꺼내어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세훈의 말이 정말인지 불도 모두 꺼져있었다.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현관문에 발을 딛자마자 찬열을 거실에 쓰러지듯 눕혔다.아,힘들어.나는 어느새 눈을 감고 자는 듯 보이는 찬열을 어떻게 방으로 옮겨야 할까 고민했다.옷도 교복인데…갈아입혀줘야 하나..?나는 괜히 손톱을 깨물었다.

 

 

 

"찬열아..좀 일어나봐"

 


아무리 불러도 답이 없는 찬열에 어쩔 수 없이 결국 찬열을 질질 끌어 방으로 향했다.찬열을 침대에 겨우 눕히자 마자 힘이 들어 옆에 나도 그냥 누워버렸다.눈을 곱게 감은 찬열을 보고 있자니 뭔가 웃음이 나왔다.찬열이가 평소에 하던 것처럼 볼도 쿡쿡 찔러보고,꼬집어도 보고 입술도 톡톡거려봤다.평온하게 자던 얼굴이 약간 꿈틀했다.나는 계속 찬열의 볼을 콕콕 찔러댔다.

 

 

 

 

 

 

 

"...아"

 


순간 낮고 덜 풀린 목소리에 급히 손을 뗐다.뭐야,뭐야.당황해서 눈이 깜빡거렸다.놀라서 찬열을 빤히 보고 있는데 찬열의 눈이 스르륵 떠졌다.나는 그냥 입이 꾹 다물어졌다.

 


"..."

 


난 내가 왜 긴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게슴츠레한 찬열의 눈이 올곧게 날 향하는데 뭔가 숨이 막혀왔다.지금 상황,좀 웃기겠지..?나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나와 눈을 마주한 찬열이 말 없이 미소를 띠었다.으응?나는 또 당황했지만 계속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아..이젠 꿈에서도 나오네"

 

 


새삼스레 술냄새가 확 풍겨오는 느낌이었다.어..?나는 또 한 번 당황했다.꿈,무슨 꿈?찬열의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그가 술과 잠에 덜 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찬열아,이거 꿈 아닌데.

 


"너.."

 

 


찬열이 조금 인상을 찡그리며 내 볼에 손을 가져다댔다.뭐,무슨 말을 하려고….뭐라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그저 작은 미소만 띈 채 찬열과 눈을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아,지금 왜 이렇게 긴장되는거지..

 


"나한테 그래도 돼 너..?"

 

 

찬열이 알 수 없는 말을 했다.그 게슴츠레한 눈은 금방이라도 감길 듯 감기지 않고 나를 똑바로 마주했다.진짜,꿈인 줄 아는거야?나는 그 시선과 손길이 부담스러워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가 이때까지 얼마나 애썼는데.."
"...."
"걔가 뭐라고.."

 

 


두서없는 찬열의 말에 나는 머릿속을 정리할 새도 없이 그의 얼굴을 살피기 바빴다.무슨 소리하는거야 계속..?

 

 

"나..가끔 너한테 화내고 싶을 때 있는데.."
"..."
"이렇게 얼굴 보고 있으면 못하겠어"

 

 


자꾸..무슨 소리를.점점 공기가 답답해져오는 것이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를 보고 말을 이어가던 찬열이 순간 또 미소지었다.반응할 새도 없이 무언가 감싸는 느낌에 눈을 두어번 깜빡이고 살피니 찬열이 나를 느슨하게 안고 있었다.그걸 깨닫자 마자 숨을 후읍 들이켰다.술에 취한 찬열은 정말 이상했다.충분히 팔을 풀 수 있지만 몸이 딱딱하게 굳어 움직여지지도 않았다.또 찬열의 숨결이 목께에 반복적으로 닿았다.간질간질한 느낌에 입술을 꼭 깨물었다.어찌 할 방도가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
"몰라,모르겠다"

 

 


그 안긴 느낌이 처음 찬열이 위로해준 포옹과는 사뭇 달랐다.나는 그 상태로 몇 분이 지나고 찬열이 말이 없어지자 그제서야 나는 숨을 고를 수 있었다.오늘따라,정말 사람 숨막히게 하네….왠지 손이 떨렸다.

 

 

 

 

 

 

 

"좋아해"

 

 


다시 잠든 줄 알았던 찬열의 입에서 낮은 음성이 툭 뱉어졌다.그런데 그 말이 너무 이질적인 것이라 나도 모르게 다시 굳어버렸다.

 

"..말해도 되지..꿈이니까"
"..."
"좋아해"

 


좋아해,백현아.

 

좋아해
좋아해.

 

 

 

-

 

 

 

"아 미치겠다 진짜.."

 


찬열은 울렁이는 속과 지끈거리는 머리때문에 표정을 풀 수가 없었다.축 늘어진 세훈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씨발 내가 어제 술에 꼴은 너 질질 끌고 가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아 몰라 기억도 안나.."
"아 그러시겠지-"

 

 

 

 

세훈이 빈정거리자 찬열이 살포시 가운데손가락을 치켜들었다.찬열이 잠에서 깼을 때는 불 켜진 방 안에 교복 입은 자신뿐이었다.그래도 용케 집에서 잠들었구나 싶어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던 찬열이었다.물론,자신을 침대에까지 손수 눕혀준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을리가 없었다.세훈은 책상에 엎드려서는 찬열에게 손짓했다.

 

 

 

 

"가,가 꺼져버려.너 어제부터 변백현이랑 무슨 일 있지?왜 자꾸 나한테 와?"
"아무 일도 없거든?"
"근데 평소엔 생전 안그러더니,아니 아예 지 반은 오지도 말라더니 왜 이제 와서 나한테 들러붙어?"
"들러붙긴 누가.."

 

 

 


찬열이 괜히 세훈의 말을 받아치다 짜증을 부렸다.세훈은 그런 찬열을 유심히 보는 듯 하더니 손가락질까지 했다.

 

 

 


"너!이상하다니까!무슨 일 있잖아?"
"..아 없다고 씨발아!"
"있잖아!!"
"백현이 옆에 떡하니 김종인 있던데 뭐하러 가!"

 

 

 


찬열이 결국 속마음을 실토해냈다.그렇게 혼자 말하고는 또 어느새 분노에 차 씩씩거렸다.세훈이 아 그래?하더니,곧 그게 무슨 상관인데?하고 물었다.찬열은 순간 또  자신도 모르게 열이 올라 세훈에게 따졌다.

 

 

 


"시발 넌,눈치가 그렇게 없어?어?"
"아 뭐가?"
"나 김종인 별로 안달가운거 눈에 안보이든?"
"아..어쩐지 둘이 가끔 스파크 튀기더라"

 

 

 

근데 어제 술도 마시고 잘 놀더만.세훈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에 찬열이 이를 꽉 깨물고 내가 참는거지.하고 맞받아쳤다.

 

 

 

"그럼 나도 가지 뭐,가자"
"..됐어"
"변백쫄따구 그만 뒀냐?"

 

 

 

비웃는 세훈에 찬열이 한숨 쉬더니 간다,가 하고 일어섰다.찬열은 솔직한 마음으로 백현이 보고 싶었지만 백현의 반에 가서 백현을 봤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 보다 백현의 옆에 있는 종인을 봤을 때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 더 컸기에 애써 참았다.세훈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일어섰지만 사실 찬열은 아침잠이 덜 깬 백현을 볼 수 있을까-조금 기대하며 반을 나섰다.

 

 

 

 

 

 

 

 

 

 


아침잠이 덜 깬 백현-은 무슨.찬열은 종인과 대화하며 예쁘게 웃음짓고 있는 백현을 보자 자꾸만 마음이 간질거렸다.그래,내가 저런거 참아낼 감당이 안되서 안오는거였다고.찬열은 이가 갈렸다.세훈이 당당하게 걸어가서 종인의 뒷통수를 확 밀었다.찬열도 느리게 백현의 책상 앞으로 걸어가 백현을 내려다봤는데 순간 바로 눈이 마주쳤다.백현이 당황한 티가 역력하게 드러난 모습으로 눈을 이리저리 굴려댔다.

 

 

 

"아,아..찬열아 왔어..?"
"...."

 

 


뭐야…지금 어색해 하는건가.찬열은 백현의 그 황당한 반응에 기분이 확 상했다.김종인이랑 있다가 내가 오니까 당황스러운거지.찬열은 속에서 뭔가 끓어올랐다.옆의 김종인의 지켜보는 듯한 그 표정도,백현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 표정에도 열이 올라서 찬열은 백현의 말에 대답않고 억지미소를 띠며 '나 잠시만'하고 말한 뒤 금세 교실을 빠져나왔다.찬열은 교실 근처 텅 빈 남자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벽에 몸을 기댔다.하아-.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찬열은 술에 취해 잠들고 꾼 꿈이 생각이 났다.침대에서,예쁘게 웃는 백현이를 안아주면서 고백했던 것 같은데.단편적인 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았다.백현이는 내가 고백했을 때 뭐라고 했더라….생각하니 찬열은 자꾸 쓴웃음이 나왔다.찬열은 여태껏 자신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에 있어서 서툴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다만 안타깝게도 그 수많은 연애경험이 무색하게 마치 풋사랑을 하고 있는 것처럼 서툴러보일 뿐이었다.찬열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포기,해야하나.찬열이 백현을 좋아하는 것을 깨달은 뒤에 지금 처음 든 생각이었다.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종인이 나타나니 찬열은 그래야할까,하고 백현에 대한 마음을 포기할 것을 진심으로 고민할 지경까지 이르렀다.찬열은 백현과 종인이 같이 있는 것만 봐도,대화하면서 웃고 있는 것만 봐도 열이 올라서 미칠 것 같은데 백현을 좋아하면서 그런 모습들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게다가 아까 그 표정.찬열은 백현이 자신을 어색해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꿈에서 고백할 만큼 그렇게 좋아하고,질투나는데.그래도 포기해야 할까.찬열은 점점 씁쓸해졌다.그래야 할까.찬열은 고개를 저었다.

 

 

 

 

 

 

어디 마음대로 되면 그게 사랑인가.

 

찬열이 쓰게 한숨짓고는 벽에 기댔던 몸을 떼었다.

 

 

 

 

* *

터졌어요(드디어)..

휴 자주 올린다고 해놓고..개인사정때문에 또 며칠 지나서 올리네요ㅠㅠㅠㅠ

다행히 더이상 스토리가 늘 것 같진 않고..23~25화쯤에서 완결나게 되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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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드디어 말했다!! 찬열이가!!!!ㅎㅎㅎ백현이의 생각은어떨지...
10년 전
독자2
헐헐ㅠ궁디에요ㅠㅠㅠ찬백제발행쇼에요ㅠㅠㅠㅠㅠ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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