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링: 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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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한 단어 6개: 케이크, 생크림, 초콜릿, 딸기, 이불,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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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곁에서 지낸다고 해도, 의외로 알아내기 힘든 것들이 있다.
서로 넘나들지 말아야 할 선이 어디까지인지 확언할 수 없는 사이라면 더욱 더.
연습생으로 만나, 데뷔를 향한 라이벌이었다.
같은 팀으로 뭉쳐, 함께하는 동료가 되었다.
농담처럼 지긋지긋하다 말할 수 있는, 하루의 하루를 모두 함께하는 사이라면,
그 선은 과연 어디에 삐뚤삐뚤 그어져 있을까.
그러니까 문제는, 자랄수록 상남자의 정도를 걷고 있는 남성체의 표본같은 멀대 녀석의 케이크 취향을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차라리 선물이라면.
그래, 선물이라면 차라리 쉬울테지. 자잘한 물건부터 화장품, 옷, 가방, 신발, 그 어느 것에도 호불호가 분명한 녀석이라 묘하게 비슷한 아이템들만 걸치고 다니니까.
축구공 모양 케이크?
고개를 저었다. 팬들이 선물해주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숙소에서 잠깐 주목받았다가 위장으로 사라질 케이크였다. 그런 엄청난 신경 따위, 쓸 일이 아니라고.
종현은 거짓말을 되뇌었다. 그런 엄청난 신경 따위, 쓸 일이 아니다.
"뭘 고민해-?"
딸기, 딸기, 딸기를 사자! 생크림 위에 딸기가 한가득- 옆에서 진기형이 알 수 없는 멜로디에 딸기, 생크림, 우! 하는 정체불명의 가사를 얹어 노래를 불렀다.
"그건 형 취향이잖아. 형 생일까지 기다려."
"내 취향이 민호 취향과 판이하게 다를 거라는 편견을 버려!"
옳지, 말 잘 한다 나! 스스로를 격려하는 추임새를 넣는 진기형의 말도 일리는 있겠지.
무엇보다 어차피 내가 고르려는 건 다같이 먹을 케이크가 아니었다.
"그럼, 이걸로 정한거다?"
냉큼 직원에게 '이 딸기 생크림 케이크 포장이요!'를 외치는 형의 뒷모습은 아무리 봐도 본인이 더 신난 것 같단 말이지...
싱가폴 콘서트에서 거하게 케이크를 얼굴로 잡아먹은 건, 팬들과 함께 하는 이벤트일 뿐.
생일에는 늘 작은 케이크를 사서 우리끼리 초를 끄고 케이크를 나눠 먹는 조촐한 축하를 해왔다. 밤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바로 날아와 여독을 풀 여유도 없이 진기형과 민호 생일 케이크를 사러 나온 참이었다.
길다면 긴 시간을 함께 지냈어도, 정작 이 많은 케이크들 중 민호가 가장 좋아할 케이크가 무엇인지 자신있게 집어낼 수 없다는 사실에 입맛이 썼다.
그것이 비단 케이크 뿐일까.
오늘 밤 너의 반응조차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종현아! 가자-"
벌서 자동문 버튼을 터치하고 있는 진기형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차에 가 있으라고 손짓을 해 내보냈다. 아까부터 눈에 들어온 작은 초콜릿 조각 케이크.
다같이 먹을 케이크가 아니라
민호가 한 입에 넣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작은 케이크를 골라야 했다.
"계산해드릴까요-?"
"저, 혹시..."
이거, 케이크 맨 아래에 넣어주실 수 있을까요.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선물에 직원이 싱긋 웃었다.
"그럼요, 잠시만요."
선물이라면 차라리 쉬울테지. 자잘한 물건부터 화장품, 옷, 가방, 신발, 그 어느 것에도 호불호가 분명한 녀석이라 묘하게 비슷한 아이템들만 걸치고 다니니까.
정정한다.
이 작은 선물 역시 케이크만큼 고르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종현은 인정해야만 했다.
사이즈야 평소 악세사리를 자주 하기 때문에 알아내기 어렵지 않았지만, 그것이 컨셉용 악세사리가 아닌 그저 본인의 '것'이라면? 눈 앞의 어떤 디자인을 대입해봐도, 늘 휑한 손가락에는 상상 속에서조차 그 어느 것도 이질적이기만 했다.
오늘 밤, 이 초콜릿 케이크를 다 먹은 녀석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웃을까. 짓궂은 장난이라며.
그저 고맙다고 할까. 생일 선물이구나 할까.
아니면, 알아줄까.
내 마음.
이렇게 나는 너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서로 넘나들지 말아야 할 선이 어디까지인지 확언할 수 없는 사이라서.
너와 나 사이에, 어떤 모양의 선이 그어져 있는지 알 수 없어서.
가방에 케이크를 숨기고, 숙소로 돌아가니 민호와 태민의 위닝 한 판이 벌어져 있다.
저거 또 시작이네, 한 번 시작하면 세 판은 기본인데-
옆에서 케이크를 번쩍 들고 숙소로 들어서던 진기형이 투덜대는 소리를 들으며, 미간을 찌푸리고 화면을 응시하는 민호의, 윗니에 붙잡힌 아랫입술을 바라봤다.
"케이크-! 케이크 먹어야지! 고만 해 고만!"
진기형의 외침에 방에서 나온 기범이 소파와 TV 사이에 털썩, 주저앉고 나서야 게임 삼매경이던 두 사람이 아쉽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는 건 어쩐 일인지 지고 있는 민호의 스코어를 확인했기 때문일거다. 이기고 있었으면, 어림도 없지.
"종현아 불, 불 꺼!"
여전히 서 있는 종현에게 불을 끄라고 재촉하며 진기형과 태민이 촛불에 불을 붙였다. 생일 축하 합니다- 하고 태민이 노래를 시작하니, 기범이 냉큼 이하생략, 이라고 끝맺음을 내 버린다.
"생일 축하해!"
"형 생일 축하해영!"
"최씨- 축하축하!"
"고마워- 고마워-"
뭐라도 말할까, 의미 없는 축하해 한마디라도 던져볼까 벌린 입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꾹 닫혀버린다.
오늘 밤, 나는 너에게 무책임한 고백 한 조각을 던져보려 한다.
그래서 평소처럼 의미 없는 말은 건네고 싶지 않아.
다들 케이크에 달려들어 정신 없는 와중, 슬쩍 민호의 방으로 들어섰다.
다섯이서 하나의 방을 쓸 때보다 좋은 점은, 그 체취가 한 공간에 가득 차 있다는 것.
물론 나쁜 점도 있다. 이제 더 이상 2층침대에서 옆으로 돌아누워 대각선으로 보이는 맞은편 1층의 민호를 바라볼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여전히 같은 이불이 덮여있는 민호의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이불을 몇 번 손으로 쓸어보다, 베개도 몇 번 꾹꾹 눌러보다, 그러다, 이불을 들춰 가방 속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 조각 케이크를 밀어넣었다.
자기 위해 이불을 들추는 그 순간이 스타트일 것이다.
오늘 밤, 나는 너에게 무책임한 고백 한 조각을 던져보려 한다.
우리 사이에 그어진 선의 모양을 확인하고 싶어서.
너의 반응을 확신할 수 없지만, 그로 인해 내가 넘나들지 말아야 할 선을 볼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무섭도록 목이 타는 밤이 지나고,
홀로 5일간의 일본 일정이 있어 출국하는 발목에 사슬이 묶여있는 것 같다고 종현은 생각했다.
봤을텐데.
너의 반응을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어떤 것이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무반응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홀로 떨어질 시간이 주어진 게 다행일까.
그런 결과라고... 생각해야 할까.
돌아오는 날은, 진기형의 생일이었다.
케이크는 누군가 샀을 것이다.
아니다.
태민이 없는 네 명이서 케이크를 먹어야 할테니 진기형 성격에 대충 넘어가자 했을지도 모른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마다,
가만히 누워 있을 때마다,
아무리 기다려도 닿지 않는 녀석의 반응에 나는 그 선을 확연히 느끼는 중이었다.
너와 나 사이의 선은 이렇게나 굵고 길구나.
연습생으로 만나, 데뷔를 향한 라이벌이었다.
같은 팀으로 뭉쳐, 함께하는 동료가 되었다.
농담처럼 지긋지긋하다 말할 수 있는, 하루의 하루를 모두 함께하는 사이인 우리의 선은,
딱 거기 까지만이었다.
그 이상의 서로를 지칭하는 말은 허락하지 않는, 딱 그 발치에 그려져 있다.
웃었다.
뭘 바란 건 아니었으니까... 다만 거절이라도, 직접 듣고 싶었다.
알아채지 못한다 해도, 내 마음도 모르는 바보 정도의 핀잔은 마음속으로 하고 싶었다.
말없이 손을 놓게 만드는 건, 이건 상남자 스타일인가... 웃음이 나왔다.
일본에서 산 개 탈을 쓰고 공항에 들어섰다.
너는 볼테지. 이런 장난을 치는 나를.
그러면 아, 다행이다. 역시 김종현은 장난으로 시작해서 장난으로 끝나는 사람이구나, 해주겠지.
그렇게 생각해서 숙소에 도착한 나한테 웃어주면 좋겠다.
장난이 심했다? 하고 내 가방 속 스파이더 맨 가면을 보며 탐을 내줬음 좋겠다.
그 언젠가 할로윈 때 스파이더 맨으로 분장하고 싶다던 너를 위해 사온 내 마음은, 몰라줬음 좋겠다.
케이크를 사서 들어선 숙소가 썰렁했다.
오늘 아무런 스케줄도 없을텐데... 기범이는 뮤지컬 첫공을 앞두고 연습에 갔나.
"왔어?"
신발을 벗느라 케이크를 발치에 내려두고 워커 지퍼를 내리는데, 두 발이 다가와 앞에 섰다.
그 발을 잠시 쳐다보다,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를 알 수 없기에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이 얼굴을 마주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케이크 사왔네."
"...응. 진기형 생일이잖아."
웃거나, 장난을 치거나,
"...이 케이크에도, 이런 거, 들어있나."
...그럴 수 없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얼굴도 가만히 종현을 내려다 보고 있다.
조그만 얼굴 옆에 쫙 펼쳐진 손, 그 길쭉한 손가락, 그 어느 곳의
"반지... 끼웠네."
"끼라고 준 거 아니야?"
"맞아."
어떤 의미던 네 손에서 빛나길 바란 거, 맞아.
"...잘 어울리네. 난 씻고 좀 쉬어야겠다."
옆을 지나쳐 방으로 향했다.
반지가 빛나는 손 옆의 조그만 얼굴에,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없어서.
그래, 반지구나. 손가락에 끼우는 거구나. 그럼 끼워야지. 그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없을 터인 그 얼굴을 계속 바라볼 수 없어서 방으로 숨으려 했다.
"...호수 한가운데 돌멩이 하나 던지고."
"..."
"엄청 큰 호수라 물결이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뒤돌아서 가버리고."
"..."
"괜히 얻어맞은 호수 바닥에 그 많은 돌멩이는 어쩌라고."
"..."
"그 동안 모를 줄 알았냐, 김종현."
조금씩, 살짝, 남몰래.
슬쩍슬쩍 건드리는 돌멩이가 바닥에 쌓여가는 거, 너도 몰랐잖아.
"나도 확신 없어. 형이 자꾸 그러면."
내 마음이 엄청나게 큰 호수인 걸 어떻게 하란 말야. 김종현이 나한테 이만큼이나 큰 존재인 걸 어쩌란 말야.
그 파동이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적어도 그 자리에서 기다려야 할 거 아냐.
"김종현이 그동안 던진 돌멩이, 진짜 아프다."
초콜릿 케이크를 다 먹은 녀석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웃을까. 짓궂은 장난이라며.
그저 고맙다고 할까. 생일 선물이구나 할까.
아니면, 알아줄까.
"...알아줄까."
응. 민호야.
알아줘.
알아줘, 내 마음.
나는 너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다.
서로 넘나들지 말아야 할 선이 어디까지인지 확언할 수 없는 사이라서.
너와 나 사이에, 어떤 모양의 선이 그어져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삐뚤삐뚤,
서로에게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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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데 거의 1시간 20분 걸렸네. 너무 오래 걸렸다;;; 미안. 호현도 처음 써봐서... 단어놀이 하면서 처음 써보는 커플링 두 번이나 써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