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였다.
처음 본 순간... 그대를 雪花 라 일컬으니 너는 내게 스며들어와 하얀 '눈꽃' 이 되었다.
"오셨습니까."
주인에게서 매작과가 담긴 종이봉투를 받아든 장린은 태환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서있는 나으리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 인사에 쑨양이 대답 대신 빙그레 웃어보인다.
나으리에게 손목을 붙들린채로 두 눈만 꿈벅이던 태환은 장린에게 눈인사를 해보이는 그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스며나오는 눈물을 참으려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그 모습에 장린을 향하던 그의 시선이 태환을 향한다.
"어찌..눈물을..."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에... 손목에 닿아오는 온기에... 그가 눈앞에 있는 것이 현심임을 깨달아 태환은 가슴이 마구 뛰어올랐다.
툭-하고 하얀 뺨 위로 떨어져 내리는 눈물 한방울.
까만 속눈썹에 매달리는 눈물 방울을 바라보던 쑨양은 바닥에 놓인 짐꾸러미를 바라보다 그 중 하나를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미안한 표정으로 장린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혼자 들고 올 수 있겠느냐."
"걱정하지 마십시오."
먼저 돌아가시라 길을 내는 장린에게 쑨양은 작게 고개를 끄덕여보이고 여전히 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태환의 손을 잡아
앞으로 걸어나갔다.
"어찌 이리도 눈물이 많으신겁니까."
"......................"
"그대가 울면... 제 마음도 아픕니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 시끄러운 웅성거림에도 나으리의 목소리만이 정확하게 귓가에 들려온다.
붉어진 눈으로 고개를 들어올린 태환은 자신의 손을 붙들고 앞서 가는 그의 넓은 등자락을 바라보다, 마주 잡은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자신의 손을 감싸고 있는 커다란 손.
꼼질꼼질 움직여 더욱 꼬옥- 쥐는 태환의 손길에 앞서 걷던 그의 고개가 천천히 돌려진다.
".....그리웠습니다......"
촉촉히 젖은 까만 눈을 깜박이며 조심스럽게 건네온 태환의 한마디에 쑨양의 얼굴에 웃음이 서린다.
붉어진 얼굴로 입술만 오물거리는 그를 바라보던 쑨양은 마주 잡은 태환의 손을 더욱 꽉- 쥐고 그대로 내달려
복잡한 장터 길을 벗어났다.
붉은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급한 걸음을 내딛던 쑨양은 인적이 드문 곳에 세워진 헛간 뒤로 몸을 들였다.
자신의 뒤를 따르던 태환의 손을 잡아 더욱 힘을 주어 당긴 쑨양은 넘어지듯 안겨오는 그의 등을 감싸며 헛간 벽에 몸을 기대었다.
그와 동시에 손에 들려있던 보따리가 바닥을 나뒹군다.
헛간 벽과 돌담 사이에 몸을 숨긴채 숨을 고르는 두 남자.
인적 없는 조용한 공간에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들려온다.
시름이 가득한 얼굴로 말에서 내린 김재호는 기방 아이가 알려준 장소에 눈길을 멈췄다.
인적 하나 없는 허허벌판 한가운데 서있는 오래된 나무 한그루.
여인이 원하는대로 불에 태워져 이곳에 뿌려졌다는 초연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있는 곳.
눈썹을 찡그리며 작은 한숨을 내 쉰 김재호는 나무에서 시선을 거두고 거친 숨을 내쉬는 말의 갈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제 돌아가거라."
힘껏 말의 엉덩이를 치자, 요란한 울음을 터트리며 저멀리 달려나간다.
허허벌판을 힘차게 달려나가는 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김재호는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섰다.
무거운 걸음으로 나무 곁에 다가간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기둥에 손바닥을 대고 천천히 눈을 감아내렸다.
"그곳은... 편안하느냐."
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 찾아온것은... 쓸쓸하게 말라버린 가지를 마주 할 자신이 없었음이다.
.....이곳에 뿌려진 초연의 흔적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음이다.
봄을 맞이해 흐드러지게 피어난 푸른 잎들.
겨울의 초라한 모습보다 풍성해보이는 모습에 김재호는 위안을 삼았다.
기둥에서 손을 떼고 등을 기댄채 바닥으로 내려앉은 그는 부드러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잎에 시선을 두었다.
수많은 가지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햇살.
그 눈부심에 눈가를 찡그려보인 그는 품속에 고이 담아온 낡은 시전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시전지를 펼쳐든 그가 곱게 적힌 초연의 마지막 인사를 다시금 눈으로 읽어내리고
입가에 쓸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너를 잊어달라 하였느냐..."
때마침 불어온 살랑이는 바람에 그의 손에 들린 시전지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너를 원망하라 하였느냐..."
시전지에 얼룩진 초연의 눈물자국을 손끝으로 쓸어내린 김재호는 다시금 불어오는 바람에 시전지를 날려보냈다.
"나 또한 너의 마음과 다를 것이 없다. 내 마음의 정인이 아닌... 다른 여인을 마음에 품고 평생을 살아야한다면...
이제는 그만 이 끈을 놓고 싶구나."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시전지를 차분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의 두 눈이 천천히 감긴다.
"아버지..!!!"
병판대감의 여식과 혼인 할 것을 명하는 아버지의 강압에 김재호는 이사이로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다.
그 부름에 이조판서의 짙은 눈썹이 일그러진다.
"저는 따르지 않겠습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준비라... 어떤 준비를 말하는게냐!"
"저는..."
차마 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는 모양에 이조판서는 이를 바드득 갈며 그를 향해 벼락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설마 아직도 그 계집을 떠올리는것은 아니겠지! 이미 죽어 사라진 계집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기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
"한심한 놈... 제 아비 품에 놀아난 더러운 계집에게 어찌 그리.....쯧."
쯧쯧..혀를 차며 나지막이 내뱉는 이조판서의 말에 김재호가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눈썹을 일그리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 아버지를 향한 그의 어두운 눈빛이 흔들린다.
"뭐라..하셨습니까."
희미하게 떨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문 김재호는 아버지를 향해 겨우겨우 입을 떼었다.
"지금...뭐라 하셨습니까!"
참다 못해 벌떡 몸을 일으킨 김재호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아버지 곁에 다가섰다.
두 눈에 살기를 띄운채 이를 악물며 소리를 내지르는 그.
김재호를 바라보는 이조판서의 짙은 눈썹이 일그러진다.
"네놈이...감히!!! 지금 나에게!!!"
"방금 뭐라 하셨습니까!!!!!!"
다시금 터져나온 외침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장정 하나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당장 이놈을 끌어내라! 계집 하나에 미쳐서 감히 제 아비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초연이에게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그 불쌍한 아이에게 대체!!! 무슨 짓을...!!!"
"이봐라! 당장 끌어내라!!"
온몸으로 저항하며 끝까지 되물었지만 이조판서는 답이 없었다.
짙은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천천히 찻잔을 들어올려 한모금을 삼키는 그의 모습에 김재호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강한 저항에 사내 몇이 더 들어오고서야 김재호를 제지해 방밖으로 끌어냈다.
험한 손길로 끌려나가는 제 자식의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미동없이 앉아 있던 이조판서는 손에 들린 찻잔을 서안 위에 올려두고
방밖으로 끌려나간 김재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는 오늘부터 병판대감 여식과의 혼인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마당 위로 내던져진 김재호는 방안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명에 찢어질듯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으로 흙바닥을 내려친 그가 뜨거운 눈물이 스미는 두 눈을 질끈 감아내리고 조용히 읊조린다.
"어찌 이리도 잔인하시단 말입니까. 이번만은 아버지가 원하시는대로 되진 않을겁니다."
지나간 기억에 한숨을 내 쉰 김재호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떠올리고 품속에 감춰온 작은 호리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입구에 막혀진 나무 조각을 거둬낸 그는 병 안에서 풍겨져나오는 술내음에 미간을 찌푸렸다.
"미안하다...초연아. 내 너를 지키지 못하였다. 그런 끔찍한 일을 겪게하고... 나를 밀어내던 너를 원망하였다.
이 한심한 나를....."
점점 붉어져 뜨거워지는 눈가에 매달린 눈물.
호리병 입구에 입술을 가져다댄 김재호는 망설임없이 고개를 뒤로 젖혀 그 안에 담긴 술을 삼켜냈다.
"이 한심한 나를... 마중 나오겠느냐."
손에 쥔 호리병에 그의 뜨거운 눈물이 떨어져내린다.
목이 타는 듯한 느낌에 마른 침을 간신히 삼킨 그는 가슴 깊은곳에서 터져나오는 기침에 호리병을 바닥으로 떨구고
입을 틀어막았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뜨거운 느낌.
멈추지 않는 기침을 토해내며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댄 그가 선혈이 묻어난 손을 바닥으로 떨구고 피가 묻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번 생에는 이 마음을 다하지 못하였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마음에 품은 여인은...오직 너 하나였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그의 두루마기자락이 흩날린다.
바람결에 스산한 소리를 내며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내리는 푸른 잎들.
뺨을 간질이는 나뭇잎의 느낌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인 그는 서서히 흐려지는 의식에 천천히 두 눈을 감아내렸다.
따스한 봄.
사랑하는 정인이 기다리는 그곳으로... 그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겨우 잦아든 거친 숨을 삼킨 쑨양은 꼭- 쥐고 있던 그의 손을 가까이 당겼다.
그 힘에 쑨양의 가슴으로 안겨오던 태환이 머리 쓴 갓 때문에 다시 뒤로 밀려났다.
튕기듯 밀려난 몸.
그 모습에 두 남자의 입술을 비집고 동시에 웃음이 터져나온다.
"하...사내의 복장은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입꼬리를 한껏 내리며 아쉬워하는 나으리의 말에 태환은 살며시 웃어보이고는 자신의 갓에 달린 끈을 당겼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머리에서 갓을 내린 태환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품안으로 한달음에 안겼다.
가슴에 귀를 댄채 포옥 안겨오는 따스한 체온.
자신의 허리를 꼭 감싸고 얼굴을 부비적거리는 태환의 행동에 쑨양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당겨안았다.
"저 또한 그대가 그리웠습니다."
태환의 등을 토닥이며 꼭 끌어안은 쑨양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귓가에 닿은 숨결이 간지러운지 푸흐흐..웃음을 터트리는 태환.
살짝 몸을 비틀어 그에게서 상체를 떼어낸 태환은 자신을 바라보는 나으리의 깊은 두 눈을 마주했다.
"정말이십니까?"
대답 대신 열과 성을 다해 고개를 끄덕여보이는 나으리의 모습에 태환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오른다.
허리에 두른 팔을 떼어 나으리의 가슴에 손을 올린 태환은 그대로 그를 밀어 헛간 벽에 기대게 하고 천천히 까치발을 들어올렸다.
두 눈을 꼬옥 감고 천천히 다가오는 고운 얼굴.
살며시 떨리는 그의 속눈썹을 지그시 바라보던 쑨양은 입술에 닿아오는 온기에 가슴이 터질듯 뛰어댔다.
뒷목을 조심스럽게 감싸 당기자, 태환의 폭신한 입술이 더욱 깊이 박힌다.
달짝지근한 조청 맛이 느껴지는 달달한 입맞춤.
짧은 입맞춤을 끝으로 입술을 떼어낸 두 남자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제 가시겠습니까~?"
나으리의 가슴에서 손을 떼어내고 뒤로 물러서려던 태환은 자신의 허리를 감싸오는 손길에 다시 그의 품에 안겼다.
태환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이는 쑨양.
가만히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태환의 얼굴에 홍조가 떠오른다.
[오늘밤만은... 그대를 놓아드릴 수 없습니다.]
(짧은 번외입니다^^)
흔들리는 호롱불 밑에서 서책을 읽던 쑨양은 피곤해진 눈가를 쓸어내리고 길게 하품을 했다.
"벌써 시간이 이리 되었나."
창호지에 짙게 물든 어둠.
몸에 걸쳐진 겉옷을 벗어내려 매듭을 풀던 쑨양은 작은 인기척과 함께 들려온 손기척에 짙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나으리..."
조곤조곤 들려온 맑은 목소리.
창호지에 비치는 흔들리는 그림자를 보던 쑨양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떠올렸다.
"주무십니까..?"
다시금 들려온 목소리에 작은 한숨을 내 쉰 쑨양은 흠..하고 헛기침을 해보이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들어오십시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빼꼼히 열리는 문.
환하게 웃으며 방안으로 들어서는 태환의 모습에 그를 바라보는 쑨양의 깊은 눈동자가 흔들린다.
"오늘은 좀 늦어져서... 피곤하십니까...?"
침장위에 앉아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나으리의 굳은 얼굴에... 태환은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애써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이며 가까이 오라 손짓을 하는 모습에 태환은 한달음에 그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
"오늘은 어떻습니까?"
"음..."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자신의 입술만 바라보고 있는 태환의 반짝이는 눈빛에 쑨양은 이마만 긁적였다.
"이 조합은...아닌가... 보기에 별로이십니까?"
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축- 쳐진 어깨로 되묻는 태환의 물음에 쑨양은 얼른 손을 내저어보였다.
너무 훌륭했다.
너무 훌륭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청에서 돌아온 이후, 밤마다 계속되는 태환의 모습에 쑨양은 한계점까지 도달했다.
새로운 여인의 한복을 만들때마다 고운 자태로 방안에 들어서는 그.
어떠한지 묻는 그의 물음보다, 여인보다 더 아름다운 그의 모습에 시선이 끌렸다.
짙은 곤색의 비단 위에 붉은 매화가 새겨진 저고리를 입고 고운 얼굴로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쑨양은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매화와 같은 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자꾸만 가까이 다가와 저고리며 치마를 들추는 행동에
쑨양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몸을 돌려 앉았다.
"...에..?"
커다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괴로워하는 나으리의 모습에 태환의 두 눈이 커다랗게 떠진다.
"나..나으리..?"
"하아......"
"혹, 피곤하신데 제가...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침울해진 목소리로 입술만 오물거리던 태환은 여전히 돌아앉아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나으리의 모습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얼른 주무십시오. 내일 봐주셔도 됩니다."
나으리의 어깨를 향해 뻗었던 손을 급히 내린 태환은 고개를 숙여보이고 몸을 일으키려다 자신의 손목을 붙드는
손길에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태환의 손목을 잡아 자신쪽으로 당긴 쑨양은 중심이 무너져 비틀거리는 그의 허리를 감싸 그대로 침장 위에 뉘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듯 두 눈을 꿈벅이는 태환을... 그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제 마음을 모르십니까?"
".....예...?"
"어찌 이런 고운 모습으로 밤.마.다 저를 찾으시는겁니까."
"아니..저는...그저..."
변명을 위해 입술을 여는 그에게 짧은 입맞춤을 건넨 쑨양은 입술 끝을 올려 살며시 웃어보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낮에 오십시오. 자꾸만 제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낮에는 나으리께서 일이 바쁘시어..."
"..............."
"하인에게 물을..까요...?"
"..............."
"아니면... 장린에게 묻겠습....."
태환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쑨양은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의 동그란 콧망울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그건 더더욱 안 될 일입니다."
"아니..그럼..."
이도저도 안된다는 나으리의 말에 미간을 찡그린 태환은 여전히 자신의 손목을 붙든채 웃고있는 그를 향해 입술을 삐죽였다.
"그나저나...왜 사내의 옷은 안 만드는 것입니까."
"그것은..."
"......?......"
"...제가 만드는 사내의 옷은...제것과 나으리것 뿐입니다."
우물쭈물거리며 답을 하는 그를 향해 피식- 웃어보인 쑨양은 왜 웃느냐 되묻는 태환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오늘 장린이 입고 있는 금빛의 두루마기가 하도 고와서...어디에서 난것인가 하니, 그의 소매 끝에 설..."
화들짝 놀란 얼굴로 나으리의 입술을 손끝으로 막은 태환은 터져나오려는 웃음때문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에 입술 위에 놓인 태환의 손을 떼어낸 그가 마주 웃어보인다.
"그것은...그동안 고맙기도 했고... 화려한 두루마기는 나으리 보다는 장린이..."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입을 연 태환의 말에 쑨양은 미간을 찡그리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아니, 저에게는 안 어울린다니, 이런 섭섭한 말이... 저도 화려한거 잘 어울립니다."
"관청에 다니시려면 단정한 색감의 옷만 입으셔야 하지 않습니까."
"어허~ 집에서, 그대와 장에 갈때, 그대와 꽃구경 갈때, 입을 일이 얼마나 많은데..! 저도 만들어주십시오. 금빛 두루마기!"
아이처럼 질투를 하는 모양에 결국 웃음을 터트린 태환은 깔깔거리며 웃다가 벌어진 입술 사이로 느껴지는
말캉하고 부드러운 느낌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떠올렸다.
"그런 의미로... 못 놓아드립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저고리 고름을 풀어내는 그의 모습에 태환은 두 팔을 뻗어 쑨양의 목을 감싸 안았다.
까만 눈동자에 서리는 고운 웃음.
푸흐흐..하고 작게 웃어보인 태환은 자신의 목을 쓰다듬는 그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태환의 하얀 이마와 고운 뺨에 부딪히는 부드러운 입술.
조심스러운 손길로 저고리를 벗겨내는 그의 손끝에 꼭꼭 숨겨두었던 보드라운 어깨가 드러난다.
어깨선을 따라 깊숙히 박히는 숨결에 작은 신음을 토해낸 태환은 나른해지는 눈꺼풀을 천천히 감아내렸다.
설화.
꽃이라 불렸던 그가, 사랑하는 정인의 안에서 천천히... 피어나고 있다.
이른 아침.
기척 없는 나으리의 방앞에 선 하인은 어젯밤 갑자기 꺼진 호롱불을 기억해내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돌아섰다.
까치발을 들고 조심조심 걷는 하인의 얼굴에 능글맞은 웃음이 퍼진다.
"이거 원... 우리 나으리, 살이 쭉쭉- 빠지시겄네. 오늘은 닭이라도 한마리 푸욱...삶아야하는건 아닌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바닥을 응시한채 조용히 걸어나가던 하인은 눈앞에 갑자기 드리워진 그림자에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나으리께서는 아직 기침하지 않으셨습니까."
마당을 들어선 장린의 등장에 하인은 한달음에 그에게 달려가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대보였다.
"쉿-쉿- 아직 기침안하셨소."
조용히 속삭여오는 하인의 목소리에 안채로 시선을 돌린 장린은 자신을 붙들어 밖으로 끌어내는 손길에 걸음을 옮겼다.
"나으리께서 어제 좀 바쁘셨소."
"일이 많으십니까. 요즘 많이 수척해보이시던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 장린에게 가자미 눈을 뜬 하인은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몸을 베베 꼬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에 장린의 눈썹이 치켜 떠진다.
"뭐~바쁜 일들이 있으시오~ 밤마다..뭐...이런저런 일들이 있지 않겠소?"
킥킥..웃으며 그를 지나쳐 걸음을 내딛는 모습에 장린이 하인을 붙들어 세웠다.
그제서야 웃음을 의미를 알았는지 장린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하인의 곁에 다가선다.
"이른 아침부터 어딜 가시는 겁니까."
"장에 가오~ 닭이라도 한마리 삶을까 싶어서... 나으리 몸보신을 좀 해드려야 할 듯 싶소~"
"그럼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혼자 남아 있는것은 곤란하다는 그의 표정에, 하인이 그리하자 답하고 장터를 향해 걸어나갔다.
앞서 걷는 그의 뒤를 장린도 부지런히 따라 걷는다.
"장린께서는 정인이 없으시오? 외롭지도 않으시오?"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에효~ 한창인데... 어찌 그리 재미없게 사시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앞서 걷는 하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장린은 피식- 웃어보이곤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는 하인께서는, 나으리와 도련님의 모습이 부러우십니까?"
어울리지 않는 장린의 우스갯소리에 하인은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가 곧,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고는 실눈을 뜬채 손을 세워 입을 가린 그가 장린을 향해 조용히 속삭인다.
"부.러.우.면.지.는.거.요~"
***
안녕하세요~흰둥이입니다!
드디어 '설화'가 끝이 났네요^^
번외편은 따로 준비하지 않고...보너스 컷을 좀 넣어봤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라니.....저는 패배자군요ㅠㅠㅠㅠㅠㅠ
두 남자의 알콩달콩이 너무 부럽습니다ㅎㅎㅎ
연재한 글 세개중...가장 길었던 여정이었네요.
처음 생각했던것보다 너무 어려웠던 설정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많이 남는 이야기지만,
나름대로...완결까지 마무리 지은것에 감사하며 위로하려 합니다.
부족했던 저의 글...
그동안 많이 아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김재호의 마지막이야기가 완결과 함께 연재되었는데요,
너무 슬픈 결말이죠...?
고민이 참 많았는데...초연을 향한 그의 마음이 너무 한결같고...
비밀로 묻어두려던 초연과 이조판서의 사건을 밝혀야겠다...생각을 바꾼 이후로
이런 결말에 다다랐네요...ㅠ
다음 세상에서는 초연과 다시 만나 아프지 않은 사랑을 하길 바래봅니다...ㅠㅠㅠㅠㅠㅠ
마지막 인사는 메일링 통해서 할께요~
메일링은 정리가 되는대로 공지하겠습니다!
제가 아직 바쁜터라...좀 많~이 기다려야하실지도...몰라요...ㅠ
늘 함께 해주셨던 많은 분들!!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