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공부를...?!"
".....(끄덕)"
어차피 다 알게 된 마당이라,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친구는 내 말을 듣자마자 내 몸을 한 번 더듬어보며
걱정과 놀라움이 섞인 눈으로, 얼굴과 몸을 번갈아 쳐다본다.
"...나 고백했다."
"......? 뭔소리야."
".....걔한테."
"..!!... 미쳤어!"
친구는 그 말을 하며 내 버뮤다 삼각지대를 후려쳤다.
손에 닿지도 않는 곳이 아려서 몸을 베베 꼬며 친구를 흘겨본다.
하지만 친구가 더 화가 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뭐하자는 건데."
".....아오 씨.... 아파..."
"......"
"...그래, 믿기 힘들겠지만 결국 인정해버렸어."
"......"
"매저키스트인 건 아니야.
....그냥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어딘가..."
"그래서 걔가 뭐라던."
"......"
내 말을 잘라먹은 친구의 말에 입이 꾹 다물렸다.
친구가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치며 '야.' 하며 되묻는다.
난 고개가 푹 숙여진 채로 웅얼거리듯 대답한다.
"..상관없대."
"..............................."
"......"
"....와......."
"......"
"...너도 너고, 걔도 걔다."
할 말이 없다.
그와중에 한 켠으로는 아직도 나를 걱정하는 친구의 모습이 조금 기뻤다.
기쁘다는 걸 알면 한 대를 더 맞겠지만.
친구가 한숨을 푹 쉬며 내 손을 꼭 잡아온다.
"...친구야."
"......"
"그런 건 좋아하는 게 아니야.
좋아한다는 건 상대가 나를 배려해줄때,
사랑해줄때 느낄 수 있는 거지,
지금 이 상황은 그냥 네가 걔한테...."
"......"
"...됐고,
아무튼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딱 잘라 거절해."
"....싫어."
"뭐?"
"......"
나는 그동안 친구에게 말하지 못했던 것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입술을 한 번 깨물며 눈을 질끈 감다, 차분히 설명하기 위해 애써본다.
"...처음부터 너한테 말하기 싫었어.
네가 지금처럼 이해할 것 같아서. 그런데 역시나더라.
...내가 진지하게 말했어도 넌 똑같이 말했겠지."
"......"
"걘 항상 내가 진심으로 거부하면 멈춰줬어.
....무슨 뜻인진 모르겠지만, 내 공부를 봐주는 이유도 날 포기 못해서라고 했고."
"......"
"...네가 이해해주길 바라지 않았어.
그래서 말하고 싶지 않았고...
그리고...."
'그앨 나쁜 놈 만드는 게 싫어.'
"......알겠어."
"......"
"...더 이상 네 일에 참견 안 할게."
"......"
내가 앗 하는 사이에, 친구는 이미 저만치 달아났다.
3학년이 되어 다른 반이 되어버린 것이 복선이었나보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친구의 뒷모습에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다.
3학년이 되어도,
그애가 내 공부를 봐주어도,
내 수업태도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아니, 달라지긴 했다.
조금 다른 의미로.
나와 그애는 3학년때도 같은 반이 되었다.
달라진 것은, 그애가 3학년으로 올라오면서 선도부장 타이틀을 뗀 것이었고,
여전한 것은, 그애가 아직도 반장이라는 것이다.
"반장, 인사."
"...차렷."
예전 같았으면 차렷 자세를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눈에서
마지막으로 나를 담았을텐데,
이젠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경례."
"안녕히 가세요~"
3학년이라고 다를 건 없다.
노는 애들은 계속 놀고,
공부하던 애들은 공부하고.
다만, 후자가 조금 늘었다고나 할까.
이젠 쉬는 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날 찾아오지 않는다.
반장도, 친구도... 아무도 없다.
난 혼자 먼 강물로 흘러내려가는 것 같다.
학교에 나오기 싫다.
"...적어준 대로 하라니까....."
그애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쉰다.
이젠 이런 모습도 섹시한 느낌이다.
난 멀뚱히 옆에 앉아서 그애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내 시선은 안중에 없이, 자신이 내준 숙제만을 들여다보고 있다.
"...어려워?"
"......"
"......"
난 평소와 같이 아무런 대답이 없다.
하지만 그애는 평소와 달랐는지, 몇 번이나 머리를 쓸어넘기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오늘은 못하겠다."
"......"
난 말없이 그애의 손을 꼭 붙잡았다.
굵직한 손가락을 다시 제대로 움켜쥐며 나즈막히 말한다.
"가지마."
"......"
그애는 반댓손으로 내 손을 떼어낸다.
난 아프게 내 떼어진 손을 움켜쥔다.
그애가 가방을 챙겨 내 방문을 열어 나간다.
그렇게 무의미한 과외를 한 지, 얼마나 된 걸까.
계절은 어느 새 봄을 지나 여름의 초읽기가 되었다.
다들 하복을 입기 시작했다.
1학기 기말고사 기간이 되었다.
그애는 더 내게 신경을 써주는 듯 했지만 난 변함이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 방으로 들어오는 그애를 이젠 무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 책상에 혼자 앉아, 뭐라고 중얼거려도 난 핸드폰만 만지작 거렸다.
가끔씩 힘들어하는 듯한 얼굴을 하는 그애를 보면 마음이 흔들렸지만,
난 계속 삐뚤어지기로 마음을 굳혔다.
다들 일찍 하교를 하는 기간.
나는 반에 아무도 남지 않은 때를 기다려 천천히 반을 나선다.
"...저기."
"....? 어.."
태성이는 내게 멋쩍게 웃어보인다.
"...생각... 기다리려고 했는데..."
"......"
"......"
"...여름 방학 때... 같이 과외 배울래?"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