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애비를 둔 아들이라는 꼬리표는 가히 어떠한 흠도 잡을 수 없는 성적에 가려져 학교생활을 편히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내 의지와는 다르게 나는 모범적인 면모와 함께 언제나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어느 사람들이 말하길. ' 그냥 더도말고 덜도말고 평범하게만 살자. '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 애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마약을 한 것 처럼 창백한 얼굴의 그는 언제나 힘 없이 걸어다녔고 말 보다는 피식- 하는 바람빠지는 소리를 더 많이 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눈을 뜬 모습 보다는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힌 모습이 더 잦았고 바람이라도 불어 긴 머리칼이 그의 얼굴을 스치며 살랑일 때엔, 차마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기도 했다. 또. 하루에 한 갑씩 담배를 피워대는 중한 흡연자 치고 지나치게 나긋한 목소리는 시도 때도 없이, 너무나도 자주 듣고 싶다는 생각도 들곤한다.
그를 표현하는 나의 말들은 제 어머니를 잃어버리기 전과 지금이 많이 달랐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직후부터 그의 방황은 남자들과 술을 마시고 몸을 부대끼며 밤을 보내는 것으로 번져갔다. 나는 그런 그를 딱히 말리진 않았다. 나의 입장에선 그가 진정으로 원치 않으면 모르는 남자들을 내가 없는 동안 집으로 데려오던가, 같이 밤을 새던가. 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덧붙여, 그가 행복하는게 현재로써 나의 목적이기도 하니까.
* * * 남고생 A * * *
만 오천원이요.
여깄습니다.
누구보러 왔어요?
네?
아니, 젊은 이가 이런 곳엘 다 오길래.
아버지 보러왔습니다.
..아.
내 말에 택시기사님은 더이상 묻지 않겠다는 심보인지, 아니면 범죄자의 아들을 태우고 왔다는게 꺼름칙했는지 표정을 굳히고 차에서 내릴 것을 재촉했다.
나도 내 의지로 이곳에 오는 건 아니었다. 오지 않으려고 생각할 때 쯤 날아오는 편지가 나를 이곳까지 걸음하게 만들었다.
" 잘 지내니? "
" 네. "
" 네, 아니오 밖에 모르는건 여전하구나. "
" 그런가봐요. "
핏기 없는 보라빛의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버지는 어딘가 굉장히 불안해보인다. 달달달 떠는 다리는 반대편에 내가 있는 책상에까지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듯 진동을 했다.
곧, 아버지는 나를 향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혼잣말을 하듯 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 하늘 같은 애비를 감방에 처넣어놓고 자식새끼는 잘 지내다니 "
" ..경찰이 처넣었지 제가 처넣은건 아니죠. "
" 옘병 "
쾅!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실핏줄이 곤두선 두 눈은 분노로 차오른 듯 했다.
나는 그를 가만히 올려다볼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감정을 갖고 마주하는 와중에 두 명의 경비관이 달려들어 아버지를 억제하고 면회실을 빠져나갔다.
나를 더러 악마의 자식이라고 외쳐대는 그가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로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부르고 마침 그 애한테서 연락이 왔다.
" 응. "
- 어디야.
" 잠깐 바람 쐬러 왔어. "
- 몇 시에 와
" 글쎄.. "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무슨 일인지 그 애는 30분 안에 오는거냐며 물었고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아니라 대답했다.
응, 이라는 말 없이 나의 대답에 전화를 뚝 끊어버리는 발신자를 뒤로하고 택시에 올라탔다.
bgm; pavane
낯선이가 떠나간 자리를 말 없이 치우는 나를 그 애가 소파에 다리를 잔뜩 모으고 앉아 바라본다.
그 애가 허물처럼 벗어놓은 교복과 속옷을 주워 빨래통에 넣고 여기저기 흩날린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애인이야?
내 물음에 그 애는 대답 대신에 담배를 꺼내 문다.
" 담배 안 끊어? "
" 일찍 뒤지면 너한테 좋은거지 뭐, "
" 무슨 말을 그렇게 해. "
" 어차피 이미 너네 아빠한테 죽었을 운명인데, 나중에 뒤지던, 내 운명이 그건가보다 하는거지. "
" 그렇게 따지면 내가 너랑 이러고 사는 이유는 뭐겠어. "
그 애는 천천히 담배를 내려놓는다.
나는 뒤를 돌아 베란다로 가 빨래거리를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빈 빨래바구니를 들고 거실로 돌아왔을 때에도, 여전히 나를 바라보는 그 애.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웃는건지 비웃는건지.
어쨌든 웃었으니까 좋게 받아들여야 하는건지..
담배를 피우는 것을 포기한 그는 다시 또 어디론가 나간다.
품이 큰 내 옷을 입은 탓에 짧은 반바지가 보이지 않아 남들의 시선을 받기에 좋은 복장을 하고선 말이다.
어딜 간다고 말을 하는 애는 아닌지라 딱히 나도 행선지를 묻지 않았지만, 정 없이 닫히는 문 소리는 매번 심장을 쿵하게 만든다.
이런 이야기들을 종합해 볼 때, 소위 작은 사회라고 불리우는 곳의 알지 못할 누군가가 만든 규칙에 맞추어 도덕적인 삶을 영위하길 바라는 학교에서 그의 이미지는 흔히들 말하는 양아치라고 표현하는게 옳다고 볼 수 있다. 그와 반대로 학교가 원하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내가, 제 삼자들은 진실 근처에 닿을 수도 없는 어떠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는 것은 당사자들이 말 하지 않아도 아주 비밀스럽게 물결의 파동처럼 잔잔히 퍼져나갔다. 그 결과, 자기 딴에는 내 친구의 말마따나 그 둘은 그렇고 그런 사이라더라. 썩 깨끗하지만은 않은 관계라더라. 라는 가십들로 나와 그 애를 치장하여 한순간에 선생이라 불리우는 꼰대들의 시선 안에서 불편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런 것들이 내가 지내는데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아무리 세상에 관심이 없다해도 반나절을 지내는 것에다 실질적으로 지배를 받는 입장에서의 나는 당연히 사람들의 시선을 되도록이면 받지 않고 싶었다. 그 역시 제 어미와 천지 원수인 남자의 피를 물려받은 아들내미를 좋아할리가 있을까, 생각하고 모르는 사이처럼 지내려는데. 오히려 그가 나를 찾아오고, 말을 걸고, 그저 아는 사이라며 힐끔힐끔 쳐다보기 바쁜 구경꾼들에게 둘러대기엔 밖에서건, 안에서건 애매한 행동을 보여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
그렇다.
나도 이젠 나와 그 애가 어떤 선상에 놓여있는지,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이 관계를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있는 단어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