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도착했는데 중학교때 친했던 세훈이가 와 있었다.
우리 형, 왔네! 하며 달려들어 안기는 게 반가워 방방 뛰었더니 그 긴 놈이 나를 내려다 보며 귀여워한다. 내가 분명 형임에도, 뭔가 함부로 떼어낼 수 없다.
그에 오세훈은 계속 내 머리를 쓰다듬거나 하며 우리 형, 나 보고 싶었어? 하고 묻는다.
사실 김종인 때문에 세훈이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이니 원했던 대답이 나왔는지 씩, 웃는다.
준면이 형은, 잘 지내?
뭐, 그렇지. 그 형이 어디 가서 못 지낼 사람이야?
그렇지, 형은?
나?
응. 요새 연애한다는 소문났더라? 웃긴다, 그치. 형 내 껀데.
내가 왜 너 꺼야?
내가 형 좋아하니까.
분명 이상한 논리인데도 뭔가 부정할 수 없게도, 오세훈은 너무 당당했다.
김종인이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싶은데 세훈이는 내 연애 소식을 듣고 놀려 주고 싶어서 장난 치는것 같아 김종인한테는 별 얘기 안하기로 생각했다.
형이랑 사귀는 사람 누구야? 궁금하다.
어? 왜.
남자라며.
으이? 그걸 어떻게 알아?
김종인인가, 준면이 형 사촌 동생. 맘에 안 들어.
툴툴 거리면서 소파에 막 드러눕는다. 엄마가 오세훈을 전부터 이뻐 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혼났을 꺼다.
그리고 팔을 뻗어 소파 밑에 앉으려는 나를 끌어당긴다. 뭔가 묘하게 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 상황인데, 세훈이가 몸을 옆으로 눕더니 소파에 등을 댄 나를 뒤에서 안는다.
아, 김종인이다.
야, 오세훈. 어떻게 알았냐니까?
준면이 형이 입이 무겁지 못해서 다 뱉었지. 우리 경수가, 우리 경수가. 하더니 나한테는 제수씨인건가, 하고 중얼대고. 아, 진짜 이상해.
진짜? 준면이 형이? 아, 이 형 안 되겠네!
준면이 형보단, 우리 형이 안 되겠어. 나 놔두고 연애나 하고.
너 여자 만나잖아. 걘 어디 두고 나한테 고나리야.
내가 무슨. 형뿐이지, 나는.
능글거리는 말투로 대꾸하고서 내 뒷머리를 쓰다듬는다. 생각해보니 나만 고딩 이지, 오세훈 얘는 중딩인 게 엄청 당돌하다.
쪼그만 게, 형 연애 사나 캐묻고 말이야. 사실 쪼그만 놈은 아니란 걸 알지만.
나, 오늘 형네 집에서 잘 거야.
어? 왜!
우리 엄마 아빠, 여행 갔어. 올해가 20주년이라나. 형네 엄마가 나 여기서 자라고 불렀어.
야! 거절을 해야지, 니가 어린애도 아니고.
내가 어리지, 그럼 늙었어? 형도 나 보고 싶었다며.
그건 그냥 인사지, 멍청아!
그럼, 안 보고 싶었어?
너도 우리 집 온다니까 그때야 나 생각났을 거면서.
난 아닌데, 형은 그랬나 보네? 형 졸업하고 계속 형 보고 싶었는데.
뻥치네.
뻥은 무슨, 하며 몸을 일으킨다. 내 옆으로 다리를 내리더니 그대로 쑥, 내려와 앉는다.
형 사귀는 사람 보여줘. 집으로 불러도 돼?
뭘 불러, 알지도 못 하는 게.
진짜로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휴대폰을 뒤적이고서 곧장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끊기고, 상대편에서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진짜 김종인이다.
형, 저 세훈인데. 그때 만났던. 네, 저 지금 경수형 집이에요. 왜긴요, 형이 저 보고 싶다고 불러서. 저 오늘 경수 형이랑 같이 자는데.
별 이상한 얘기를 하더니 형도 올래요? 하더니 곧 네, 하고 끊는다.
뭐야, 너! 하고 소리 지르니 그 형 온대. 하고 씩, 웃는다. 남의 연애 사를 다 꿰고 있는 놈이, 모른 척 몇 번 떠보더니 나를 속였다. 이 나쁜 오세훈 같은 놈이!
초인종 소리에 누구세요, 하며 문을 열었더니 김종인이다.
저녁에 있던 일 때문인지 눈은 제대로 못 보면서 크흠, 헛기침과 함께 손을 잡아온다.
신발을 대충 벗어 놓고 나를 잡아 거실로 들어간다. 엄마가 신발 보면 화 낼 텐데.
야,야. 엄마 보면 화내! 신발 정리하구, 응?
아, 쟤가 짜증나게 하잖아! 쟤 오늘 너랑 자?
어, 우리 집에서 자긴 하는데….
왜!
엄마가 불렀대, 쟤네 집 비거든.
아, 애새끼도 아니고! 집 비면 친구들 불러다 노는 게 정상 아니냐고!
나도 가라고 그랬지, 엄마가 불렀다는데, 어떡해.
짜증나. 너, 우리 집 가자. 쟤 너네 집에 재우고.
툴툴거리는 김종인을 가만히 보던 오세훈이 갑자기 맥을 뚝 끊는다.
저 형이 뭔 짓을 하려고, 형 가지 마, 어?
야, 오세훈! 너 도찐한테 껄떡대지마!
말이 좀 이상한데? 경수 형, 원래 내 거에요.
씨발, 진짜. 아, 짜증나!
둘 다, 그만해. 시끄러워, 유치하게.
도찐, 나야, 저 새끼야.
너지, 멍청아! 저녁엔 쪽팔려서 눈도 못 보더니, 이 멍청이가.
야, 도찐! 그거는!
뭐! 오세훈, 너도! 언제부터 나랑 죽고 못 살았다고, 이 멍청이까지 불러서. 이게 뭐야!
야! 그러면 나 모르게 오세훈, 여기 재우려고 했어?
작년까지 뺀질 나게 드나들던 앤데, 그걸 너한테 말해서 뭐하냐? 괜히 사람 피곤하게.
그치, 우리 형 잘한다. 종인이형, 집에 가세요.
시끄러, 너. 둘 다 그냥, 집에 가.
난, 형네 엄마가 부른 건데?
됐어, 꺼져! 김종인, 너도.
꺼져? 나도 꺼져? 도찐, 다시 말해봐, 나도 꺼져?
아, 미치겠네.
애들 싸움도 아니고, 둘이 대체 언제부터 알았는지 이름까지 불러가며 투닥 거린다. 그 사이에 왜 내가 끼어 있는 건지, 미치겠네. 꺼지라고 한번 했다고 상처받은 눈빛은 또 뭔지.
오세훈, 집에 안 갈 거지?
응.
그럼 내가 가야겠다.
우리 집? 도찐, 우리 집 와?
아니, 미쳤어?
그럼!!! 하고, 시끄럽게 양쪽에서 빽, 소리를 지른다. 쿵짝이 나보다도 잘 맞네. 둘이 사겨라, 그냥.
내가 미쳤다고 이 싸움에 끼어서. 백현이네 집을 가야지! 헷.
.
손을 잡는 김종인을 보고 오세훈이 옆에서 툴툴 거린다.
오세훈은 백현이를 모르니까 따라올 수 없고, 김종인은 백현이 보다 박찬열이랑 친해서 집까지는 못 올거다.
도찐.
왜?
가기 전에, 나 봐.
왜.
당연히, 나라고 했지?
어.
그러면, 아까 했던 거….
미쳤지, 김종인.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는 오세훈 한번 이겨보겠다고 오세훈 보란 듯이 말하는데, 애도 아니고. 진짜, 유치하게. 말은 그렇게 해놓고도, 잡은 손을 깍지 끼니, 좋다고 웃는다. 세훈이가 투덜거리며 내 손목을 붙잡는다.
형, 나 배고픈데. 형네 집에서 먹은 것도 없단 말이야. 집엔 당연히 먹을 거 없구.
이제 들어가서 뭐, 먹어. 엄마가 주겠지, 아이스크림은 먹지 말고.
아이스크림, 왜?
김종인꺼 라서.
손을 간질이는 느낌에 김종인을 쳐다보니 웃고 있다, 이겼다는 눈빛으로.
오세훈의 거지같은 표정에 신났는지 어깨도 하늘위로 솟을 듯 했다. 어째, 키는 내가 제일 작은데도 내가 제일 어른인 기분인지.
다 먹을 거야, 하고 투덜거린 세훈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김종인은 자, 이제 가자아! 하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내가 진짜 변백현네 집에 가는 게 아닌 줄 아나보다. 진짜로 갈 건데.
어딜.
우리 집.
왜, 너네 집을 가.
오세훈, 갔으니까. 오늘은 우리 집 가서 자.
백현이네 집 간다니까?
거길 왜 가!
그럼 너네 집을 왜 가!
우리 사귀잖아.
그럼, 니가 우리 집 와서 잘래?
아니! 오세훈 있잖아. 오세훈 있는 거 싫어.
아 근데, 둘이 언제부터 알았어?
음, 긴데. 하고 말을 이어가는 김종인이 말하는 내내 짜증을 부렸다.
준면이 형이 친한 동생을 소개시켜준다며 데려간 자리에 오세훈이 있었고, 오세훈은 준면이 형 말실수로 우리 둘이 사귀는걸 알고 있었다.
오세훈이 먼저 김종인을 보고 싶어 해서 준면이 형이 일부러 부른 건데, 김종인이 오자마자 오세훈은 경수, 경수 하면서 내꺼 드립을 막 쳤단다. 예를 들어, 우리 경수랑 나랑 중학교 때 사이 되게 좋았는데, 집에도 드나들고, 한 침대에서 잠도 같이 자고. 뭐 이런 식의.
그걸 들은 김종인의 반응이야 뻔했다. 사귄다고 해봐야 겨우 손잡고 안은 게 전부였을 때인데, 오세훈이 그렇게 밀고 나오니 질투도 질투지만, 자존심부터 상했을 거다. 엄마끼리도 친한 사이라니, 대놓고 욕도 못하겠고, 준면이 형이 친한 동생이라며 소개시켜준 자린데 기분 나쁜 티를 내봐야 좋을 거 하나 없어 참았단다.
잘했어, 김종인. 너, 엄청 잘했어.
잘했어?
응, 잘했어. 내가 세훈이 혼낼게.
그럼 이제 내 편인거지?
아까 뭐 들었냐, 당연히 너라니까.
그럼, 자, 가자!
어딜?
종인이네 집.
이게!
.
손을 잡아끌려는 김종인을 겨우 떼어놓고 백현의 집 앞까지 왔다.
연락 없이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들어가기 전에 연락은 해야겠다, 싶어 카톡을 보냈다.
변백현아ㅏ 너 집이지?
백현 dㅇㅇ
집에 누구 있어?
백현 아니! 오ㅐ?
너네집 앞
들어간다
백현 으아ㅏ아니!!!
백현 야아!!!!아!!!!
백현 도경슈ㅠㅠㅠ
백현의 카톡을 못 본척 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비밀번호야, 찬열과 함께 뚫은 지 오래다.
그리고 거실엔, 박찬열이 있었다, 백현의 무릎에 누워 잠을 자는.
-
짠! 찬백!
이제 막전개 끝ㅋㅋㅋㅋㅋㅋㅋㅋ
에피 4로 끝낼 예정이에요 어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