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CHEEZE 좋아해
[워너원/박우진] 좋아해
펜을 휘휘 이리 저리 돌렸다. 탁. 휘휘 돌리던 펜을 돌리던 손가락에서 펜이 엇나가 결국 문제집으로 떨어졌다. 아까부터 계속 생각나는 네 웃음소리에. “우진아” 하고 부르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맴돌아서, 아직도 교복에서 느껴지는 너의 향기에 무언가 낯선 느낌의 붕 뜨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펜을 다시 쥐고 괜히 복잡해진 머릿속 생각을 털어버리겠다고 고개를 세차게 흔든 뒤 다시 수능특강 통계 레벨 2 문제를 읽어 내려갔다. 아, 다시 내가 18년차 소꿉친구인 너에게 처음으로 설렘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그 때의 네가 생각이 나버렸다.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선 날 보자마자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던 네 목소리도 또 생각이 나버렸다. 마치 자신을 위로해 달라는 너의 눈빛에 나는 왠지 모르게 너에게 빠졌고, 사춘기가 찾아온 뒤로 너는 점점 여자가 나는 점점 남자가 되어가는 그 성장기의 모습들이 익숙하지 않아 너와 조금은 멀리 하던 그 시절, 너를 꼭 안고서 서툴게 너의 등을 쓸어주던 그 느낌까지 모조리 생각이 나버렸다.
아, 오늘 수학 문제 풀기는 글렀구나 생각하고 수능 특강을 탁, 덮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엎드려 누웠다. 연습장에 알 수 없는 낙서들로 채워 가며 생각들을 점차 정리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낯선 감정이, 이 익숙하지 않은 붕 뜨는 느낌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고 싶었다. 머릿속 가득한 너를 대체 어떻게 정의해야 내 머리도, 이 감정도, 이 느낌도 모두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한동안 잠에 들지 못하고 침대에서 뒤척이며, 오늘 하루 너와의 일상을 되짚어보고, 성장기의 모습들이 익숙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너에게 다가갔던 그 이유를 오랜 밤들의 그 행동들을 이제는 정의 내리고 싶었다. 이 감정은 그래도 여자 친구가 있는 나름 같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3년째 같은 반을 이어오고 있는 박지훈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낫지 않을까 싶어 박지훈에게 카톡을 보냈다.
야 박지훈 자냐?
박지훈
ㄴㄴ 왜
수학 수행 대비한다고 문제집 풀 거라면서요
수행은 고이 접었나봐?
형님은 그런 거 대비 안 해도
충분히 점수 잘 나오거든요;
됐고 이 감정 뭔지 알려 줘봐
박지훈
참 나; 너 저번에 그러고 몇 점 받았게?
그리고 너보다 생일이 반년이 내가 빠른데
내가 행님이지;
ㅋㅋㅋㅋㅋ? 무뚝뚝으로 소문나신 네가
감정도 있으세요..?
뭔데
아 그니까 걔 때문에 밤잠 설쳐보고 이불킥도 해보고 뭐지
어 막 낯선데 적응 안 되는 붕 뜨는 감정에 뭔가 낯선 이상한 감정임
뭐라 그래야 돼;; 아무튼 좀 이상함 막 걔만 보면 괜히 기분 좋아짐
박지훈
? 님 누구 좋아하세요?
와 천하의 박우진을 저렇게 만들다니
그 애 누군지 몰라도 진짜 대단하다
아 있음
ㄱㅅ
핸드폰의 홀더를 잠구고, 휴대폰을 엎어놓고, 다시 책상에 엎드리기까지 좋아한다, 라는 감정을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김선영을? 18년씩이나 못 볼 꼴 다 봐온 김선영을? 처음에는 미쳤다고 내 뺨을 탁탁, 하고 때려도 보고 심술이 나 괜히 책상을 발로 차 보았다. 그 와중에도 ‘좋아한다’ 이 짧은 문장은 가득 내 머릿속을 메웠다. 정말 내가 널 좋아하는 것일까. 박지훈이 자기 여자 친구를 좋아하는 그 감정과 내가 김선영을 좋아하는 그 감정이 정말 동일한 걸까 싶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질수록 박지훈의 말이 맞는 듯 했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네가 점점 여자가 되고 내가 남자가 되던 그 시절 나는 계속 너를 피해 다녔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죽을 지경이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그냥 같은 반에 널리고 널린 하나의 여학생도 아니고, 소꿉친구였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고, 너무 친해서 절대 여자로 안 보일 것만 같던 너였다.
“좋아.. 한다..”
연습장에 ‘좋아 한다’, 라는 문장을 쓰며 읊조렸다. 그 뒤, ‘사랑 한다’, 라는 말을 연습장에 쓰며 똑같이 읊조렸다. 눈을 마주하면, 네 웃음소리를 들으면, 너에겐 별거 아닌 의미 없는 행동 하나에 의미 부여를 하고 터질 것 같은 마음이 드디어 정의가 내려졌다.
나는 김선영을 좋아한다. 아니, 아마 짝사랑 하는 것 같다.
나름의 사담 |
하하, 고3이 수학 문제집이 생각나는 게 겨우 수능 특강이었습니다. (쓰니, 고3, 문과, 수포자 5년차) 그래서 문제집을 수능 특강으로 잡았어요. 원래는 옆에 독서가 펴져 있길래 독서로 할까? 하다가 깔끔하게 포기했습니다. 치즈 노래 듣고 갑자기 삘타서 막 적은 글이라 만족할련지 모르겠네요. 원래 제 글은 대화보다는 감정이나 상황을 묘사하는 게 긴 글이 제 글이라(이건 어떻게 해도 안 변하더라고요 대화체를 많이 넣을 수록 이상해서 싹 갈아 엎고 싶은 심정이 든달까.) 만족하시길 바라며 저는 이만 자야겠어요. 아 그리고 카톡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거 나름대로 쓴건데 저거.. 친구들이랑 항상 저래 대화해서ㅎ..ㅎ.. 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