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후배님 02 written by 시란 (남준 시점) 난 학창 시절 내내 그저 조용한 범생이었다. 잘하는 게 공부밖에 없어서 공부를 했고, 일탈을 배우지 않았기에 시도조차 못했던 평범하디 평범한 모범생. 고2가 될 때까지 내가 뭘 해야 할지 몰랐고 흔한 목표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난 그녀를 만났다. 내가 처음 본 그녀의 모습은 담임 선생님 호출로 교무실에서 선생님과 다투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니, 여주야. 이 성적이면 충분히 S대 경영학과 갈 수 있다니까! 이 좋은 성적 가지고 왜 하필 B대를 지원하려는 건데." "쌤. 내가 가고 싶어 하는 학과 중에서는 이 대학이 최고거든요. 무시하지 마요." "쌤은 그냥 네 성적이 너무 아까워서 그러지." "뻥치지 마요. 실적 올리려고 그러는 거면서. 암튼 몰라요. 난 여기 갈 거야." "여주야. 우리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S대 경영이면 인생 피는 거야. 나중에 후회할 거라니까" "내 인생이에요. 왜 쌤이 걱정해요!" "어휴 이 애물단지. 네 맘대로 해라. 니 맘대로 해." S대면 우리 엄마가 입에 달고 사는 단어였다. 남준아, S대를 가려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있어야 해. 남준아, 이번 시험에서 1등급을 맞아야 S대를 갈 수 있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목표가 있다면 좋을 텐데. "남준아. 왔니? 거기 앉아서 기다려. 잠시 이것만 처리하고 갈게." "아.. 네." 몇 분동 안 손에 들고 온 손바닥만 한 영어 단어장을 보고 있자 선생님이 다가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너만 희망 대학 안 썼더라고. 너희 부모님은 S대 희망이라고 쓰셨는데 네 의사도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가고 싶은 대학 있니?" "네." "어디. S대?" "아뇨. B대요." 평소 같았으면 부모님 의견이 제 의견이죠 뭐. 하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목표를 가진 그녀는 나를 그리고 내 인생을 바꿨다. 꿈을 가진 여주는 빛났다. 나도 빛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와 함께라면 나도 빛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그렇게 2년을 더 공부에 매달렸다. 그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게 변했다. 내가 S대 경영을 나와 자신의 사업을 물려받기 원하셨던 아빠를 설득했고, 매일 S대를 입에 달고 사시던 엄마를 설득했다. 그리고 난 목표가 생겼다. 앞만 보고 공부에만 매진하는 것 대신 내가 가고 싶은 학과, 배우고 싶은 과목을 찾아봤고 미래에 대해 고민했다. 그 결과 난 B대 문창과를 목표로 삼았다. 원래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학과를 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목표는 B대를 가서 그녀를 만나는 것이었다. 일부로 B대 근처도 가지 않았다. 그녀가 날 알아볼리는 없지만 그래도.. 짠 하고 나타나서 당신 덕에 꿈이 생겼다고,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 그때 정말 빛이 나는 것 만 같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늘 빛날 것일 같던 그녀가 남자 때문에 울고 있었다. 저딴 놈이 내뱉는 말 때문에 상처받고 있었다. 처음엔 꿈이 있다는 게 부러웠고 그다음엔 내가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줘서 고마웠고 이젠 그녀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무작정 달려가 그녀를 안았다. "저 딴 말 듣고 있지 마요. 내가 다 빡치네." 울지 마요. "짝사랑 같은 것도 하지 말고. 진짜 내가 다 좆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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