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Signal
어둡게 내려앉은 밤하늘과 달리, 바로 그 아래, 빽빽이 즐비한 네온사인들은 정말 눈이 아플 정도로 반짝였다. 시끄러운 소음들이 귓가에 쿵쿵 박혀왔지만, 익숙하다는 듯 무시하곤 상가 뒷골목으로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지친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는 장소였다.
한 손엔 수능 기출 영단어 책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가방 옆쪽에 위치한 수납공간의 지퍼를 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불순한 물체일 수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내겐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용도에 불과했다.
단정한 교복 차림, 금색 실테 안경, 그리고 얼마나 외워댔는지 모를 영단어 책과 중지와 검지 사이에 끼운 담배. 아마, 다른 무엇도 이보다 이질적일 순 없을 것이다.
오직 학업 성적이 최상위권이라는 이유로 신뢰와 총애를 쏟아부었던, 궂은 부담만 가득 안겨주었던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좋게만 작용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를 더욱 몰락시켰다.
숨을 깊게 쉬면 쉴수록, 좁은 골목에 뿌연 연기가 가득 찰뿐이었다.
"크흡,"
"....."
"아, 미안."
뭐지, 이 쌩뚱맞은 웃음소리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홱 돌렸더니 옆에 우두커니 서서 웃음을 흘리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깨 한 쪽, 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검은색 기타 가방, 그리고 술을 마셨는지 붉게 상기된 두 볼.
"진짜 특이하네."
"....."
"왜 피우는 거야?"
힐끗 그를 곁눈질하고는 거의 다 타버린 담배를 땅바닥에 던진 후, 발로 힘껏 지져 껐다. 물론,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반말을 내뱉은 것, 또 무의미한 질문까지. 짧은 시간 동안, 그 남자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단서들이었다.
"... 관여하실 자격은 없으신 것 같은데요."
"그래?"
키득거리는 그의 웃음은 비웃음이 아니었다. 내가 느끼기에도 순수성 가득한 그런 웃음 쪽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래서, 더 기분이 상했나? 차라리 비웃음이면, 면전에 대고 욕이라도 할 텐데 말이야.
"그래도 많이 피우진 마, 몸에 안 좋아."
한창 깔깔대던 그는 서서히 웃음을 그쳤고, 마지막 잔웃음까지 마저 지우고는 급 심각한 표정을 띠었다. 신경 쓸 필요 없대도. 오지랖이 넓은 사람인 건지, 계속 상기 시켜주자니, 내 입만 더 아파질 것이 눈에 훤했다. 뭐, 애초부터 그럴 생각조차 없었지만.
남자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곤,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들었다.
"에헤이-"
".... 아,"
"이건 내가."
내 손이 아닌, 남자의 손에 의해 담배가 타들어 갔다.
불씨를 붙이려 한창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참에 그가 내 입에 물린 담배를 가볍게 빼내어 자신의 입술 사이에 끼워 넣었고, 익숙한 듯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있는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 뻔뻔하게 저의 담배를 피우는 남자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화가 치밀어 오를 것 같아 가방을 고쳐 맨 후, 그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아니, 가려고 했다.
갑자기, 내 가방을 잡아 돌려세운 남자만 아니었다면.
"아무리 여름이라 해도, 저녁엔 아직 좀 춥거든."
"....."
"나중에 만나면 줘."
.... 특이한 건 내가 아니라 저 자신이겠지.
"아, 그리고 책 보면서 담배 피우지 마! 종이에 불붙는다!"
급하게 걷던 남자는 골목 전체에 울리도록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하곤 내게 외쳤다. 남자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부동의 자세를 취했다. 마침내, 그가 완전히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파란색 타탄 체크 무늬의 남방이 내 어깨 즈음에 걸쳐져 있다는 것을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이게 김재환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Heart Signal
사람들의 옷차림이 더욱 가벼워졌다. 이제 더 이상 일교차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하복 위에 얇은 외투 따위를 걸칠 필요 또한 없어졌다. 이제, 완연한 여름이라고 칭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나는 중요한 6월 모의고사를 치고, 다른 학업에도 열중하고, 또 가끔 스트레스가 한계치에 다 달았을 땐, 허구한 날 담배를 퍽퍽 피워대기 바빴다. 그 전과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남자를 곱씹으며 피우게 되었다는 것?
그의 옷을 돌려줄 방도는 당연히 없었다. 이름도, 나이도, 연락처도 남자에 대해서 아는 게 단 한 가지도 없었으니깐.
그래도, 혹시 몰라 가방 한 켠에 옷을 항시 넣어두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와의 만남을 대비해서.
__
그날따라, 버스에 사람이 많았다.
창문을 통해 본 버스의 상황은 나의 인상을 찡그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버스 카드를 한 손에 꼭 쥐고, 만원 버스 속 사람들을 겨우 비집고 손잡이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잡힐 듯 말 듯 아슬 아슬했다.
겨울도 아닌 여름의 만원 버스는 말 그대로 최악. 땀 냄새는 물론, 사람의 살과 살이 부딪히는 진득한 기분 나쁨이 아침부터 나를 짜증 나게 했다.
심지어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는 얼마나 난폭하게 운전을 하시는지, 거의 넘어지기 직전에 이르렀다. 이게, 무슨 고생이야. 그냥 택시 탈걸.
"이, 미친놈이!"
이럴 줄 알았어, 기사 아저씨의 험한 육두문자가 들려왔다. 앞에 중형 차는 빨간 신호에 차를 멈췄을 뿐. 버스가 본인 속도에 못 이겨 급정차를 해버린 나머지,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될 대로 되라지. 눈을 있는 힘껏 꽉 감았다.
"야, 무슨... 넌 얘가 대책 없이 눈을 감으면 어떡해."
".... 어,"
"괜찮아?"
극적으로, 누군가의 낯선 팔이 내 배 부분을 단단히 지탱해준 덕에 넘어지는 것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그 누군가가 내 기억에서 너무 낯익고 선명한데.
이게 김재환과 나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