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카페모카에 샷 추가요
(부제: 모태솔로)
"아이스 카페모카에 샷 추가요."
또 왔다.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 그리고 오늘, 금요일까지. 수요일 빼고 다 왔으니 오늘까지 하면 이번 주에만 네 번이다.
학교 안에 있다 보니 보통 오던 사람이 자주 오긴 하는데, 올 때마다 이렇게 같은 메뉴를 꾸준히 시키는 사람은 드문 편이다.
나는 오천원입니다. 라고 말했고,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갑에서 그를 닮은 파란색 카드를 꺼내며 싱긋 웃었다.
메뉴를 주문할 때에는 무표정인데, 계산을 할 때에는 해사하게 웃는 게 표정이 바뀌는 데에서 오는 갭이 참 크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문서를 커피를 만드는 하성운에게 넘겼다. 그는 꼭 기다리는 것도 앉아서 안 기다리고 서서 기다린다. 얼마나 걸릴 줄 알고...
슬쩍 곁눈질로나마 그를 보았다. 오늘은 세로 줄이 그어진 스트라이프 셔츠에 회색 슬랙스를 입었다.
작지 않은 키에 널찍한 어깨, 하지만 슬림한 몸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가 다갈색이 되어도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샷 추가한 아이스 카페모카 나왔습니다."
서서 기다리던 그는 들고 있던 컵홀더와 빨대를 가지고 익숙한 손짓으로 움직이더니 이내 눈인사를 하며 매장을 나갔다.
나는 멍하니 또 그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제법 긴 다리가 휘적휘적 걸으니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금방 문 앞에 다다랐다.
주말에도 올까? 다음주에는? 내가 일하는 시간에 안 오면 어쩌지? 부질없는 고민을 해보다가 푸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그를 좋아하는 게 맞다고 말이다.
너 쟤 좋아하지? 에스프레소 샷을 뽑아내던 하성운이 낭창한 목소리로 묻는다. 나는 녀석을 가볍게 무시하고 빈 플라스틱 컵에 물을 따랐다.
목이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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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를 보겠습니다.
먼저, 카라바조입니다. 카라바조의 '자연주의'는 현실감 있는 표현을 특징으로..."
그를 처음 본 건 '서양미술의 이해' 시간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닥치고 외우는 데에는 꽤 자신이 있어서 선택한 교양이었다.
막상 듣다 보니 외울 게 많다는 것보다는 미술사 내용 하나하나에 빠져서 듣게 된, 나름 잘 고른 과목 중 하나였다.
내 자리는 보통 가운데 분단의 뒤에서 네 번째 혹은 다섯 번째 정도였다. 교수님이 부담스러울 만치 가깝지도 않고, 그렇다고 잘 안 보이지도 않는 딱 좋은 위치.
그 위치에서는 스크린도, 칠판도 잘 보이는데 무엇보다 잘 보이는 건 바깥 풍경이었다.
학기가 막 시작되었던 봄, 교정에 예쁘게 피어나는 벚꽃에 시선을 빼앗겨 교수님보다는 바깥에 더 시선이 간 날이었다.
한참을 바깥에서 흩날리고 있는 벚나무를 바라보다가, 그 언저리에서 나와 같이 벚나무를 보고 있는 듯한 뒷통수를 발견했다.
칠흙같이 검은 머리와 널찍한 어깨. 군더더기 없이 떨어지는 뒷모습에 문득 그의 앞모습이 궁금해졌다.
".....아."
그 뒷통수가 벚나무에 고정된 시선을 돌려 교수님을 보기 위해 자리를 고쳐 잡았을 때, 나는 단번에 탄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잘생겼다. 날카롭게.... 어느새 나의 시선 또한 벚나무가 아니라 그의 깎아내린듯한 콧대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느 학과 사람일까. 몇 학번일까. 몇 살일까.... 교양에서 만난 사람에게는 직접 묻지 않는 이상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호기심만 커져갔다.
그러면서 조금씩 서양미술의 이해 시간을 기다리게 된 거다. 할 수 있는 건 먼 발치에서 뒷통수만 보는 게 전부면서도,
그 뒷통수만으로 호기심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수만가지 질문을 만들어내는 게 재밌어서. 목소리도 들어본 적 없는데 말이다.
교실이 아닌 곳에서 그를 보게 된 건 그를 처음 본 날 후로 한 달 정도 지나서였다.
나는 교내 도서관에 있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그 곳에 그가 온 것이었다. 그 날도 아이스 카페모카에 샷을 추가했던 걸로 기억한다.
매일 몰래몰래 멀리서 훔쳐만 보다가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날이 오기도 한다니 참 새롭고 신기했다.
나는 공연히 뛰어대는 가슴이 혹시나 들킬까봐 걱정하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낮은 편은 아니었는데 듣기 좋게 맑고 깔끔했다. 그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준비되면 말씀드릴게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지 않았다. 어디를 가는 걸까, 하는 쓸 데 없는 질문이 또 생겨났지만 이내 목구멍 뒤로 넘겨버렸다.
그가 주문한 음료는 금방 만들어졌고, 나는 그에게 컵을 내밀었다. 그게 내가 그에게 주었던 맨 처음의, 샷 추가한 아이스 카페모카였다.
"오빠, 저 사람 잘 생겼죠?"
"누구?"
정직원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하성운. 나이는 나보다 한참 많은데 은근 동안이다. 여자 손님들한테 인기가 좀 있다고 하긴 하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다.
대충 턱으로 그 남자의 뒷모습을 가리켰더니 아, 황민현? 한다. 나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물었다.
"어떻게 알아요?"
"사회대 학생회장이잖아."
"진짜요?"
"....야, 너 여기 너네 학교야."
"......"
그도 그럴 것이 학교 생활에 크게 관심이 없으니 어느 대학 학생회장이 누구인지는 별로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듣고 보니 그 직위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보니 학생회장처럼 생긴 것 같다.
나는 하성운에게 혹시 무슨 과인지도 아냐고 물었다. 경제학과란다. 경제학과와 서양미술의 이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조금 고민해보다가,
이내 나의 국어국문과와 서양미술도 관련성이 1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 고민을 관뒀다. 생각이 다 무슨 소용이냐.
"인기 많던데... 좋겠네."
"...오빠도 인기 많다면서요."
"응, 나도 인기 많지."
"그런데 왜 부러워요."
"그런 게 있어, 꼬맹아. 남자들의 세계."
....뭐래. 생긴 건 안 그렇게 생겨서 하는 말을 보면 4차원이 따로 없다. 가끔은 무슨 말을 하는지 영 이해하기 힘들어 아예 모른척하는 게 편한 때도 있다.
여튼, 하성운은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포스 앞에 섰다.
사회대 학생회장 황민현이라.... 이미 머릿속에 제대로 자리를 잡아버린 그의 직위와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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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아이스 아메리카노 여덟 잔이랑 아이스 캬라멜 마끼아또 세 잔.
샷 추가한 아이스 카페모카 한 잔. 총 열두 잔이요."
교내 카페다 보니 과실이나 연구실 등지에서 종종 케이터링 서비스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었다.
오늘은 사회대 학생회실로 오라고 하길래 그런가 보다, 하고 준비를 해서 끙끙대며 들고 갔다. 여자 혼자서 열두 잔을 들고 가는 건 좀 무리이긴 했다.
그렇다고 주문이 밀리지도 않는 이런 널널한 시간대에 알바를 여러 명 쓸 수도 없는 노릇.
음료를 만들어야 하는 하성운은 매장을 지켜야 했기에 나 혼자서 끙끙대며 열두 잔을 겨우겨우 들고 학생회관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문턱에 들어서자마자 한계가 온 것이다. 아... 처음부터 열두 잔은 무리였어. 후회를 해봤지만 이미 늦었다.
어찌 할 방법이 없어 강아지마냥 끙끙대며 더 이상 나아가지를 못하고 제자리에 맴도는데,
"도와드릴까요?"
조금은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어.... 감사합니다."
황민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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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 탑승한 엘리베이터는 평소보다 왜 이렇게 일찍 올라가는지. 둘만 있는 시간을 조금 즐겨보려 했는데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사회대 학생회실을 향했고, 나는 그보다 훨씬 키가 작으니 속도가 느린 게 당연했다.
학생회실 앞에 도착한 그가 제게 열두 잔을 모두 달라고 하길래 놀란 눈으로 올려다 보았다. 무거우실 텐데요... 문만 좀 열여주세요.
이야기를 했는데도 영 요지부동이다. 그래서 열두 잔을 모두 넘기고 나는 문만 열었다. 실 안에는 그를 제외하고도 거진 열 명의 사람이 있었다.
책상 위에 음료를 올려둔 그가 제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오늘 뭐 한 방 쏘시는 모양이네...
카드 단말기에 그를 닮은 파란색 카드를 스윽 긁어냈다.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눈인사를 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실에서 나오려고 했는데.
"저기,"
그가 책상 위에 올려둔 음료 중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어 내게 건넸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와 그의 손에 들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번갈아 쳐다봤다.
뭐지...? 잘못 가져왔다는 건가? 아니면....
"이거, 그쪽 거예요."
내 귀를 의심했다. 나? 나한테 주는 거라고? 이걸?
내가 지은 표정이 제법 바보 같을 거다.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서 짐짓 표정을 정비하고 다시 물어보려는데,
내 질문을 막으려는듯 그가 부연설명으로 입을 열었다.
"그쪽 주려고 산 거예요. 그러니까 받아요.
케이터링 오느라 고생했다는 의미예요."
케이터링 갈 때 거리가 멀면 팁을 좀 쥐어준다거나 하는 손님은 있었지만 음료를 통째로 내미는 손님은 처음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또, 주는 걸 안 받기는 뭐 해서 일단 받아 들긴 했다. 매장에 돌아가면 하성운을 붙잡고 이건 대체 무슨 경우냐고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황민현은 얼떨결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든 나를 보며 싱긋, 예쁘게 웃었다. 무슨 남자가 웃는 게 저리 곱니. 이런 상황에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참 주책이다.
나는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끝으로 걸음을 서둘러 학생회실을 벗어났다.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내 뒷모습에 누군가의 시선이 닿는 게 느껴졌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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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엄청 말라 보였나 보네."
".....아이씨."
"아이씨? 야, 너 많이 컸다? 이제 오빠가 오빠로 안 보이나 보다?"
"아니, 그런 게 아니잖아요. 기껏 이야기했더니..."
"너가 막 땀 흘리고 그러니까 미안해서 아메리카노 하나 쥐어줬나 보지.
별로 깊게 생각할 건 아닌 것 같은데."
매장으로 돌아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아냐며,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썰을 풀었더니 너무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하성운이다.
그래? 별 거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맥이 풀려 어깨가 축 처졌다. 하성운은 일해, 일. 하면서 잔소리를 해왔고 나는 오빠가 뭘 알아요, 하면서 괜히 뾰루퉁한 소리를 냈다.
그 후로 며칠간 황민현은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에 네 번을 와서 커피를 사가던 사람이 갑자기 코빼기도 보이지를 않으니 제법 궁금해졌다.
물론 서양미술의 이해 시간에 보면 되긴 했지만, 그건 다분히 일방적인 행위라 성에 차는 일이 아니었다.
매장에 와서 커피 주문 정도는 해주어야 정면에서 얼굴을 실컷 볼 수 있으니 좋았다. 왜 안 오는 걸까.
정말 케이터링 갔던 날은 그냥 내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그런 거였나... 괜히 감동했네.
그래놓고 막상 서양미술의 이해 시간에는 전날 밤 잠을 한 숨도 못 잔 여파 탓에 수업 내내 꾸벅꾸벅 졸았다.
혼자 듣는 강의였고, 주변에 누가 보고 있을 사람도 없었지만,
이렇게 미친듯이 졸고 있는 걸 교수님이 보면 태도 점수를 깎기라도 할까봐 내심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물론 마음을 졸이는 것과 졸지 않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10분 쉴게요. 화장실들 다녀오세요."
10분 쉬겠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의 끝이었다. 나는 마취총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엎드려 10분을 꽉 채워 잠이 들었다.
그러고 다시 교수님의 말씀을 시작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비몽사몽 눈도 제대로 못 떴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책상 위에 뭐가 있다.
[오늘 졸린가 봐요. 제 아침거리 사면서 같이 사왔어요.
-민현-]
샌드위치와 우유다. 마침 아침 안 챙겨먹었는데. 나 아침 안 먹은 거 알았나...
근데 민현?... 민현이 누구지? 하면서 기억을 뒤지다가, 황민현? 그 사람? 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가 앉은 자리에 시선을 돌렸다.
그는 짐짓 숙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속이 물음표 백만 개로 가득 찼다.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그러나 이미 수업은 시작된 바, 나는 그를 향해 눈인사를 꾸벅, 했고 그는 내게서 시선을 떼고 교수님을 바라봤다.
잘 쓰지는 않았지만 정갈하게 적힌 글씨가 있는 쪽지를 보니 왠지 마음에서 뭔가 곰실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
중간고사가 금방이라 생각했는데, 기말고사는 더 금방이었다. 서양미술의 이해는 금요일 수업이라, 이 시험이 끝났다는 건 곧 종강을 의미했다.
나는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팔이 아프도록 답안을 써서 냈고 그제서야 내 머리속에 있는 건 탈탈 털어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기가 끝나는 건 좀 서운했는데 그래도 학점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미소가 흘러나왔다.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살았다. 방학이라고 놀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학교는 오지 않을 테니 마음이 한 결 가벼웠다.
"저기요."
많이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냥 낯설지도 않은 목소리가 건물 밖을 나서려는 내 발목을 잡았다.
그간 그때, 그러니까 샌드위치와 우유를 줬던 때처럼 그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있었다.
때로는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달달한 것들을 잔뜩 주고 간 적도 있었고,
황민현이 속한 동아리에서 케이터링을 시켜놓고 또 내게 무작정 아이스 초코를 갖다 댄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연락이 온다거나, 무언가 사적으로 만나자고 한다거나 하는 게 없었기에 나는 늘 긴가민가 할 뿐이었다.
그쯤 되니 하성운도 남자로서 황민현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간다고 하던 차였다.
"아,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그...혹시, 방학 때도 카페에서 일해요?"
"어... 아니요. 방학 때 학교에 없어요."
방학 때 학교에 없다는 말을 들으니 아차 싶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그다. 그런 벙 찐 표정마저 잘생겨서 그가 정말 잘생겼음을 새삼스레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런데 왜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고, 그는 한참을 입을 달싹이다 겨우 내게 말을 꺼냈다.
"그...."
"......."
"좋아해요."
"예?"
또 내 귀를 의심했다. 이 상황은 마치 라잌... 내가 사회대 학생회실에 케이터링 갔을 때, 마지막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내 거라고 했을 때와 같은 기분인데.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예? 하고 물었고, 나를 놀라게 한 단어를 꺼낸 그는 오히려 태연한 표정이었다.
너무 맥락 없이 터진 고백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이게... 그는 입을 닫고 눈만 꿈벅였다.
사적으로 한 번이라도 연락한 적이 없는 사이다. 가끔 먹을 거나 주면 받아놓고 고맙다고 하는 사이, 딱 그 정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좋아하는 건 나지,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게 그다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은 아니었다.
"좋아한다고요."
"......"
"실은... 처음부터 좋아했는데.
제가 이런 적이, 처음이라..."
처음? 처음이요?
잘생긴 건 알았는데 자꾸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건 처음 안 사실이었다.
-
"아이스 카페모카에 샷 추가요."
후에 본인 피셜로 들은 사실인데, 황민현은 모태솔로라고 그랬다. 왜요? 라고 물었더니 글쎄... 하며 말을 흐렸다.
하성운에게 황민현이 모태솔로인 걸 알았냐고 그랬더니, 당연히 알았지 너는 그걸 모르냐며 또 타박이 이어졌다.
그래서 자기가 아리송했던 거라며, 최소 무성욕자 아니면 마법사 혹은 연애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 이 세 가지 중 하나라고 들었는데,
그런 사람이 네게 자꾸 뭘 갖다주니까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더 있었겠냐는 거다.
나만 몰랐어, 나만. 황민현 모솔인 거 나만 몰랐어.
어떻게 나만 모를 수 있지? 왜 아무도 나한테 이야기하지 않은 건데? 내가 알아볼 생각은 추호도 못했으면서 이제 와서 마음이 소란했다.
그래도 온통 미스터리 투성이었던 게 지금은 좀 많이 해결이 되었다.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서, 누구를 좋아해본 적이 없어서 할 줄을 몰랐던 것뿐이지, 막상 하게 되니 거의 본능적으로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람 말문을 턱 막히게 하는 멘트로 심쿵을 선사하는 때도 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오늘도 예쁘네."
한없이 티없고 순수한 눈으로 짐짓 진지하게 이런 멘트를 날리면 나는 당황해버리고 만다.
오히려 나야말로 두어 번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한 사람인데, 모든 게 처음인 그 앞에서 얼어버리니... 희한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봐요.
처음 아니죠?"
이렇게 나를 당황시킬 때마다 내가 그에게 물으면,
"처음이래도.
내 모든 처음이야, 네가."
라는 답과 함께 눈이 잔뜩 휘어지는 미소가 딸려온다.
나는 그에게 카드를 내밀면서 잠깐 와보라 손짓한다.
가까워진 그의 입술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춘다.
어색하기만 했던 이 순간이, 어느새 조금은 익숙해져 그가 웃으며 나를 받아들인다.
뭐, 좋아하는데 모태솔로가 무슨 상관이람. 좋으면 됐지 뭐.
"샷 추가한 아이스 카페모카 나왔습니다."
우린 딱, 샷 추가한 아이스 카페모카처럼 사랑하고 있다.
때론 달콤하게, 때론 쌉싸름하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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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질문타임 하는데 어떤 독자님이 단편은 안 쓰냐고 하셔서... 원래 단편도 써보고 싶었는데 시간도 없고 기회도 없다가, 주말 밤에 비도 오겠다 급 감성 터져서 질러놓고 갑니다... 뜬금없는 신알신과 그 신알신이 강과장이 아니라는 소식에 놀라셨다면 제 의도는 절반은 성공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셨다면 나머지 절반도 성공이고용... 헤헤 엄청엄청 가볍게 쓴 글이니까 엄청엄청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보면 지나치게 오그리토그리해서 막막 힘들지도 몰라욬ㅋㅋㅋㅋㅋ 모태솔로 황민현X얼빠 여주를 캠퍼스물로 그리고 싶었습니당... 다들 안녕히 주무시어용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