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황제 흥신소
EP. 1
‘황제 흥신소.’ 떡하니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유치 뽕짝한 이름의 간판이 하나 걸려있었다. 대체 왜 이름을 황제라고 지었는지 잘 모르겠다만 나는 분명 딱 365일 전, 그러니까 1년 전 까지만 해도 이런 곳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던 사람이다.
“저 출근했어요. 좋은 말로 할 때 어서 출근 도장을 찍어주시죠.”
“오, 좋아. 한 시간 지각하고 그런 뻔뻔함이 나오다니. 역시 내 직원다워.”
사람의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그랬다. 나도 몰랐지, 내가 이, 유치 찬란 뽕짝 타는 ‘황제 흥신소.’ 의 직원이 될 줄은.
황제 흥신소
: 여기가 흥신소인지, 그냥 쉼터인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사장님.”
“….”
“황제씨.”
“아,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아, 그로케 부루즤 말라거~ 애초에 저렇게 질색할거면 가게 이름은 왜 황제 흥신소로 지었담. 자기 이름 따서 지은 것 같다만, 황제라고 부르면 아주 질색 팔색을 하며 뛰어 다니는 사장(a.k.a. 황제)님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지루해요.”
“뭐, 한두 번 지루해?”
“저 그만 둘래요. 퇴직금 주세요.”
“너 그 말 입사하고 나서 매일 하는 말이잖아.”
다 사장님 생각해서 그런 건데. 출입문으로 들어오는 건 파리, 모기, 심지어 벌까지. 각종 벌레만 오고, 들어오라는 손님은 안 오시는데 쥐꼬리만큼 돈 벌고 둘이 돈을 나누자니 죄송해서요. 이럴 바에는 그냥 제가 그만두고 사장님 혼자 열심히 일 하셔서 그 돈 다 쓰시면 얼마나 좋아요.
전생에 래퍼였는지 속사포로 줄줄줄 나오는 랩 같은 말에 사장님이 음, 따위의 고민하는 듯한 소리를 낸 뒤,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커피 좀 사올래?’ 아오, 저 놈의 사장. 역시 내 말을 전혀 듣지를 않는군.
“저 오늘 부로 그만 뒀는데 왜 커피를 사오래요.”
“너 몰랐어? 지금 다시 면접 보고 있잖아. 그런 당돌함, 좋아. 지금부터 출근해.”
“와, 진짜 싫다.”
내가 파리라면 이곳은 아마 파리지옥이 아닐까. 평생 나를 옭아매려는. 혹시 모른다, 저 사람 다음 차기 사장은 내가 될 지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곧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와, 정말 싫다. 여기 차기 사장이 되는 건 정말 싫다.
“사장님 어서 나가서 홍보 전단지라도 뿌리는 건 어때요.”
“좋은 생각이야. 자 어서 나가서 뿌리고 와.”
“아오.”
내가 여기에서 1년 동안 일 하면서 느낀 게 있다면 저 사장은 움직이는 걸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것이다. 1년 간 일하면서 움직인 걸 본 게 열 손 가락 안에 꼽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화장실이랑 밥은 제외하고. 아무리 귀찮아도 밥은 꼭 여기서 차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있는 스테이크 집에서 먹고 온다. 더 웃긴 게 뭐냐면, 자기 혼자 간다.
“와, 어디서 김여주 머리 돌아가는 소리 들린다.”
“제 머리가 왜 돌아가요.”
“어떻게 하면 저 입술에 뽀뽀할 수 있을까, 이 정도?”
“어떻게 하면 저 강냉이를 다 털어버릴 수 있을까 정도는 생각해요.”
“미안, 조용히 있을게.”
맨날 말 하고 저래. 쯧, 거의 시계로만 사용되는 사장님의 휴대폰을 보다 혀를 쯧하고 한 번 찼다. 나는 그래도 이틀에 한 번 씩은 가끔 연락 온다. 게임톡. 아무튼, 이쯤 되면 그만 좀 쉬고 일 좀 해보고 싶다- 라고 생각할 즈음에 딸랑, 문에 달아놓은 귀여운 뻐꾸기 모양의 풍경이 발랄한 소리를 내었다.
“어서오세요, 황…제… 흥신소 입니다!”
“직원. 황제를 너무 작게 말하는 거 아니야?”
“차 드릴까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
“…마음이 시리다. 마음이 시려.”
조용히 좀 하세요, 손님이 말을 못 하시잖아요. 복화술을 하며 째려보자, 움찔하더니 곧 손님이 앉은 자리 맞은편에 다소곳이 앉아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라는 황제… 아니, 사장님이다.
“아내가 바람이 난 것 같아서요.”
“아이고.”
우리 사장님 전매특허 나왔다. 방송국에서도 탐나한다는 저 아줌마 리액션. 사장님은 정말 안타깝다는 표정을 하고서는 ‘제가 진실을 다 밝혀드릴게요.’ 라며 손님의 손을 맞잡았다. 진짜 웃긴다. 어쩜 저렇게 안타깝다는 표정을 잘 지을까.
사장님은 그 후로 아내 분의 성함, 나이, 의심 가는 남자 분 같은 걸 꼬치꼬치 캐묻더니 곧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3일 내로 증거물 다 모아서 드릴게요. 그 때 다시 뵙도록 하고, 돈도 그 때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죠.”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히 가세요!”
보통 사장님은 3일 내로 일을 끝내셔서 내가 별명을 하나 붙여드렸다. 삼일의 황제. 물론 이 별명으로 부르면 진짜 기겁을 하면서 싫어한다. 왜, 사랑스러운 별명인 걸. 은근슬쩍 사장님 옆에 다가가, ‘삼일의 황제 다시 재 부활 하는 건가요?’ 라고 묻자, ‘그거 근 한 달 만에 들어보는 별명이다. 감회가 새로워.’ 라는 사장님이다.
“왜요? 갑자기 막 정겹고 그래요?”
“아니, 여전히 거지같아.”
“저 그만 둘래요.”
이번에도 3일 안에 끝낼 수 있을지. 아니, 삼일에 끝낸다고 하면 그 만큼 나도 노동을 하는데. 이거 초과 근무 수당 받을 수 있는 건가요? 노조 가입하면 되는 건가요? 못마땅한 내 표정을 봤는지 턱을 괴고서 나를 바라보던 사장님이 말했다.
“사실 하루면 해결 될 것 같은데.”
“하루? 24시간?”
“어. 아, 맞다. 커피 사오라니까.”
“카페인 중독 걸려요.”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얼음 가득 넣어서.”
저렇게 주문을 할 거면 뜨거운 아메리카노라는 말은 왜 들어가는 건데.
황제 흥신소
“아, 부끄러워 죽겠어 진짜.”
사장님의 바람대로 카운터로 가,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얼음 꽉꽉 채워서 주세요.’ 라고 말했다.
‘대체 그럴 거면 왜 하필 뜨거운 아메리카노죠?’ 라는 말을 얼굴에 가득 띄우고 있는 알바생의 표정은 덤이고. 아주 그냥 민망해서 죽겠다.
“당신 나 못 믿어? 어떻게 흥신소를 가?”
“당신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어디서 싸우기라도 하나.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고개를 살짝 돌려, 뒤 쪽을 쳐다보자, 아까 우리 흥신소에 왔었던 남자분과 말다툼을 하고 있는 여자 분이다. 생김새로 보아하나, 나이대로 보아하나. 아까 남자분이 말했던 외도 중인 아내 분인 것 같은데. 분위기가 싸한 게 괜히 끼어들었다가 화만 볼 것 같아 고개를 숙이고 사장님께 문자를 넣었다.
[ 방금 그 손님이랑 아내 분 싸워요. 1층 커피숍. ]
“아가씨, 아가씨가 말 해봐. 내가 아내 뒷조사 해달라고 부탁했어?”
“에, 엑?”
얼떨결에 뒷목이 잡혀 어정쩡하게 서 있는 자세가 되어버렸다. 나를 본 건지 빠르게 내 쪽으로 다가와, 자신이 아까 아내 뒷조사를 해달라고 했냐며 떵떵거리는 남자분이다. 저기, 그, 뒷목은 놓고 말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제 생명에.
“내가 흥신소 가서 당신 이야기를 왜 하냐고.”
“아가씨, 말 해봐요. 저 사람이 도대체 뭐라고 그랬는지.”
그 아내 분도 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나와 남자 분을 번갈아 째려봤다. 저기, 저는 그냥 말단 직원일 뿐이고, 저는 하는 일이 커피 사다 드리는 것 밖에 없는 걸요.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그냥 다물고 오늘 사직서 낼 걸.
“고, 고객의 의뢰는….”
황제 사장이 매일 하는 말. 고객의 의뢰는 극비 처리가 된다. 심지어 이걸 써서 사무실 내 벽에 붙여놓기까지 했다. 그 말을 하기 위해 켁켁 거리며 입을 열자, 몇 초 있지 않아 놓아지는 내 뒷목이다.
“죄송하지만, 의뢰는 극비 처리가 되어서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사장님!”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가기도 귀찮아하시는 분이 1층까지 친히 무슨 일로 오셨담. 아직도 기침이 나오는 목을 잡고서 고개를 갸웃하자, ‘나 좀 멋있지 않았냐.’ 라며 나만 들릴 정도로 음흉하게 웃는 사장님이다. 네, 그런데 방금 다 깨졌어요.
“당신은 또 뭐야?”
“황…제… 흥신소 사장입니다.”
“사장님 황제가 조금 작았던 것 같은데.”
“의뢰 내용은 극비라서 알려드릴 수는 없다만, 왜 저희 직원이 여기서 뒷목을 잡혀 있었던 건지 여쭈어도 될까요.”
저게 나를 걱정하는 걸까, 말을 돌리는 걸까. 나는 ‘말을 돌린다.’ 에 한 표를 걸겠다. 뭐, 아무튼 사장님의 말에 아까 그 남성분은 아차 싶었는지 곧 고개를 꾸벅하고 사과했다. 음, 아뇨. 굳이 사과하실 필요까지는 없는데. 머리를 긁적이며 사장님의 뒤에서 나도 덩달아 고개를 꾸벅했다. 제가 뒷목이 잘 잡히게 생겨서 죄송합니다.
“넌 왜 고개 꾸벅거리는데.”
“목뼈가 탈골돼서요. 아, 사장님 저 방금 결심한 게 있어요.”
“뭔데.”
“저 그만 둘래요.”
“매력적이네. 오늘부터 출근해.”
그래, 내가 그만둘 수 있을 리가 없지. 괜히 사장님을 째려보며, 아까 그 남자 분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이미 화해는 끝났는지 껴안고 난리가 난 부부다.
“미안해, 자기야. 난 자기가 그런 줄도 모르고….”
“아냐, 의심하게 행동했던 내 잘못이야. 자기야!”
“자기야!”
“와, 민폐다.”
이래서 오늘 하루 안에 끝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한 거였나. 사장님의 예지력에 박수를 치고서는 똥 씹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돈 벌기 글렀네, 돈 벌기 글렀어. 공공장소에서 이제 찐한 뽀뽀라도 할 심상인지 서로의 얼굴을 애틋하게 만지는 부부의 모습이 곧 어떤 큰 손에 의해 가려졌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죠?”
“어린이 관람 불가.”
저 성인인데요. 말을 내 뱉으려다가 말이 안 통하는 상대임을 알고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엄마, 나 그냥 다시 취직할까? 다른 곳으로.
ⓥ0ⓥ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으아! 제가 나 42 너를 제대로 연재하기도 전에 새 작품을 들고 온 이유는! 갑자기 흥신소 물이 너무나도 땡겼기 때문이죠ㅠㅠ 그런데 뭐랄까 음산한 흥신소 글이 아니라, 그냥 발랄하고 허당끼 있는 흥신소! 매일 그만두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여주 vs 움직이기 귀찮아하는 사장님의 조합이랄가요... 분량 조절 넘 어려워요.. 어느 정도 써야 많이 쓴걸까 휴ㅅ휴..... 구독료는 엄서요... 구독료 받고 보여드릴 글이 아니기 땜운에.. 윽..!
암호닉은 언제나 신청 받아요! 댓글 많이많이 부탁드려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