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nd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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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난스러운 분위기도 잠시, 진지한 목소리가 찬열의 방을 가득 채웠다. 잭이 말했던 통행세나 관세 말이야, 서프딘 대륙이랑 클로브 대륙이 순순히 받아 줄까? 일단 세금이 적용되고 나면 우리나 데이몬 대륙은 연간 엄청난 돈이 들어오겠지. 하지만 서프딘 대륙과 클로브 대륙은 그 반대일 것 아냐.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찬열이 대답했다. 그렇죠. 우리에게는 이득이 되겠지만, 저들에게는 손해가 되겠죠. 이득을 보는 쪽이 있으면 손해를 보는 쪽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지금 아쉬운 쪽은 저 쪽이예요. 우리는 데이몬 대륙과 무역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고, 사치와 향략을 즐길 수도 있어요. 서로 꼭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서프딘 대륙과 클로브 대륙은 특산품이 거의 비슷해요. 똑같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서로 똑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무역을 할 필요가 없죠. 그러니 두 대륙은 지금 새로운 것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서프딘 대륙, 하르트 대륙, 클로브 대륙, 데이몬 대륙 중 특산품이 다른 것은 오직 우리 하르트 대륙 뿐. 우리는 아쉬운 것이 없어요. 거절을 해도 데이몬 대륙과 무역을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저 쪽은 우리와 무역을 성사시키지 못 하면, 사람들의 원망이 그대로 왕을 향할 겁니다.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죠. 군중의 힘은 무서우니까요. 왕 자리를 지키고 싶어서라도 저 쪽은 반드시 무역을 성사시키려고 할 거예요. 그 과정에 어떤 대가를 치르던지 말이죠.
"그러니까 네 말을 요약하면, 저 쪽은 무역을 성사시키지 못 하면 왕 자리에서 강제로 끌려 내려올 수도 있으니 무거운 세금을 지고도 무역을 성사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 말이지?"
"바로 그 말입니다."
"흐음…. 그렇다면 세금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너무 많이 하면 오히려 효과가 반감될 수 있으니 적당한 수준으로."
"지금 무역을 하게 되면, 아마 액수가 큰 물건들이 많이 수입될 겁니다. 그러니 물건 가격의 3.5%만 받기로 하죠."
너무 적은 것 같은데, 내 욕심이 큰 건가? 왕의 중얼거림에 찬열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적다고 느끼실 수도 있죠. 천 카르(카르=원. 카로디아의 공통 화폐) 짜리 물건에 겨우 35카르밖에 못 받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무역을 하면, 천 카르짜리 물건은 하나도 안 들어올 겁니다. 처음으로 무역이 성사되었으니 액수가 큰 것을 들고 와서 팔아치우려고 할 거예요. 제 예상으로는 최소 액수가 백만 카르일 거예요. 백만 카르짜리 물건이라면 3만 5천 카르의 세금이 들어와요. 천만 카르라면 35만 카르, 1억 카르라면 350만 카르. 서프딘 대륙에서는 주로 억대의 물건을 우리 시장으로 들이밀 거예요. 거기에서 떨어지는 세금만 해도 엄청납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이예요. 너무 욕심을 내시면 안 됩니다. 찬열의 조곤조곤한 말에 왕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제 앞에 놓인 종이들을 한장 한장 들춰보며 찬열에게 질문했다.
"잭. 잭은 카로디아를 전부 여행해 봤다고 했지?"
"예. 하르트 대륙에서 시작해서 데이몬 대륙, 서프딘 대륙, 클로브 대륙을 갔다가 다시 하르트 대륙으로 돌아왔습니다."
"네 대륙은 서로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일종의 밀입국… 같은 겁니다. 각 대륙의 외각 지역에 가 보면 일정한 액수의 카르를 받고 가까운 대륙으로 태워다 주는 배들이 있습니다. 안전은 보장 못 하지만 방랑벽이 있는 여행자들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것들이죠. 잘만 되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이용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그럼 잭이 봤을 때, 네 대륙 중 어디가 제일 살기 좋았어? 지배층들은 평민들이 아무리 굶주리고 피폐한 생활을 해도 호화스럽게 사니까 들을 필요도 없고, 평민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말야."
찬열이 고민도 하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살기 좋은 곳은 잘 모르겠고, 살기 싫은 곳은 있었어요. 왕의 궁금한 눈에 찬열이 말을 이었다. 하르트 대륙. 네 대륙 중 가장 살기 싫은 곳이 하르트 대륙이었습니다. 선왕이 다스릴 때의 하르트 대륙은 처참했습니다. 선왕은 평민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고 오직 지배층들의 배를 불리기에만 바빴습니다. 대지주들은 사람들을 끌어와 소작농으로 부렸죠. 하루 종일 일하고 받는 돈은 천 카르였습니다. 알이 작은 감자 두 알의 가격이 천 카르였는데, 힘들게 일하고 받는 대가가 천 카르밖에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불평할 수 없었습니다. 그 천 카르마저 받지 못 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사방에 넘쳐났으니까요. 제가 여행을 시작한 이유도 굶주림 때문이었습니다. 데이몬 대륙으로 가자, 똑같이 일했는데 삼천 카르를 주더군요. 서프딘 대륙에서는 반나절만 일했는데 오천 카르를 주고, 클로브 대륙은 데이몬 대륙과 똑같이 삼천 카르를 주었습니다. 선왕이 하르트 대륙을 다스릴 때만 해도 저같은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다른 대륙으로 건너가는 사람들이요.
"…그러면 지금은 어때? 아부나 입에 발린 소리는 이미 지겨울 정도로 들었으니까, 잭이 느낀 그대로 말 해 줘."
"천국. 지금의 하르트 대륙은 천국이라는 말 빼고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횡포를 부리던 대지주들은 모두 사형 당했고, 평민들은 그 동안 일한 대가를 지불 받았어요. 심지어 심심하면 쳐들어와 약탈을 해 가던 도적 떼들도 모조리 사라졌으니,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평민들은 더 이상 소작농이 아니란 것에 감사하고, 자신의 땅을 가지고 그 땅에서 농사지어 먹고 사는 것에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폐하는 평민들의 구세주예요."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왕이 말 끝을 흐렸다. 그래도 아직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왕의 말에 찬열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못 말립니다. 그렇게 불안하시면 직접 나가셔서 살펴 보시던가요. 찬열의 말에 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럴까, 그럼? 왕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가볍게 웃은 찬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나라의 백성을 모두 구제할 수는 없는 법이었지만, 자신의 왕은 그것을 알면서도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아직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잔뜩 비웃어 주었겠지만,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왕이었기에 찬열은 비웃지 않았다. 빈말이 아닌 진심이었기에 비웃지 않았다.
"아, 맞다. 잭. 다이아몬드 왕국에서 왕이랑 기사가 방문한다고 하는데…. 왜 방문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동맹 때문이 아닐까요? 데이몬 대륙에서도 새로운 왕이 탄생했으니, 확인 차 방문하는 것이겠죠."
"데이몬 대륙 사람들은 무섭단 말이지, 정말. 평소에는 얌전했다가 뭐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벌떼처럼 달려드니, 원."
왕이 골치가 아픈 듯 얼굴을 찡그렸다. 찬열이 왕의 표정을 보고 귀엽다는 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