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zy Crazy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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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명은 뭐라고 알릴까요, 선생님. 진실을 말했다가는 오히려 더 상황이 악화될 것 같습니다."
"…해리성 기억상실증이라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에서 지내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겠죠.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
정신병원─ 이라고 하면 무슨 생각부터 떠오를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통 하얀색의 건물, 격리되어 있는 환자들, 끊임없이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떠올릴 것이었다. 그것은 복도를 걸어가는 경수도 마찬가지였다. 의사는 경수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말 해 주었다. 하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것은 아닐텐데. 머리를 긁적이며 걸어가던 경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의사 선생님이 말한 대로 믿는 수밖에는 없었다. 자신이 정신병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내 병은 그게 아니라 이것이다' 라고 말할 만큼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전문가이니 알아서들 하겠지─ 라고 생각한 경수가 한 병실 앞에서 우뚝 멈춰섰다. 504호. 5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꺾은 후 열 네 걸음만 가면 있는 곳.
앞으로 어느 정도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쓰게 될 방이었다. 2인실이라는 말을 들은 터라, 자신 말고 또 누가 있는지 궁금했고, 또 불안했다. 설마 사이코패스랑 한 방은 아니겠지? 다중인격자랑 같은 방은 아니겠지? 온갖 상상을 하던 경수가 크게 심호흡했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누구이든간에 친하게 지내야 생활이 편해질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문고리에 손을 올려 방문을 연 경수는 들어가자마자 눈으로 쏟아지는 햇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햇살이 비치는 곳에 앉아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남자를 보고 숨을 멈췄다. 남자가 경수의 기척을 느낀 것인지 번개와 같은 속도로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그 기세에 놀라 경수가 뒤로 한 발자국 주춤 물러섰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고, 음악을 듣고 있었고, 눈까지 감았는데 어떻게 안 것일까.
"누구야, 넌?"
"아… 환, 환자요."
바보같이 말을 더듬어 버리고 말았다. 이 병실에 있는 이상 어차피 똑같은 환자일텐데. 그냥 '앞으로 이 방 쓸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나을 뻔 했다. 당황해서 말 하자 남자는 쓰고 있던 헤드폰을 아예 빼서 옆에 내려놓았다. "앞으로 이 방 쓰는 거야?" 남자의 질문에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수의 행동에 남자가 기대고 있던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은 채 경수의 앞까지 다가왔다. 고개를 살짝 숙여 경수를 요모조모 뜯어보던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경수가 그저 멀뚱히 서 있자 "악수하자고." 하며 경수의 손을 잡아챘다. 손에 힘을 주어 팔을 흔들던 남자가 신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드디어 룸메이트가 생기는구나, 나도! 내가 얼마나 심심했는데, 왜 이제서야 오는 거냐?"
"죄송합니다."
경수가 생각했다. 아니, 잠깐. 내가 이 남자한테 죄송한 게 뭐가 있어. 늦게 입원한 게 잘못한 거냐?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 하고 속으로 꿍얼대자 남자가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이는? 이름은?"
"열 아홉살이고, 도경수예요."
"난 열 여덟. 그래도 빠른이니까 말 놓고 동갑으로 치자. 오케이?"
"마음대로."
뭐야, 나보다 어렸어? 이번에는 경수가 남자를 탐색했다. 그러고 보니 꽤나 잘생긴 얼굴이다. 이 남자는 병명이 뭘까? 사이코패스? 아니면 나랑 같은 기억상실증? 경수의 의문은 풀어주지 않은 채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김종인. 앞으로 몇 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룸메이트니까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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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인이는 잘생겼습니다. 경수도 잘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