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태도와 가치관이 유사한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 그뿐 아니라 인종, 종교, 문화, 정치, 사회 계층, 교육 수준, 나이가 유사한 사람들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좋아한다. 물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이다. 이런 유사성 원리는 데이트나 결혼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유사성 원리가 데이트나 결혼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걸 맞추기 원리'라고 한다. 사람들은 다 똑같다. 저마다 개성 있고 다른 척하지만, 어디까지나 '척'일 뿐이다. 결국에는 자신과 닮고 비슷하며 유사한데다, 끝에는 똑같은 것만 찾아다니고 어울린다. 그렇게 나는 그 수많은 '척'들에 데이고, 질리고, 지루해질 때마다 이사를 하며 내 몸을 옮기거나, 크게는 직장까지 옮겨 다녔다. 그런데 새로 직장을 옮기면서 또 하나 깨달았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신들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신은 내 편이라는 말은 내게 존재하지 않으며 작용하지도 않았고, 않고, 않을 것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는 않았다.
걸 맞추기 원리
w. 23cm
"홍빈 씨는 이름이 뭐예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는 듯한 홍빈의 표정에 상혁은 웃으며 답했다.
"홍빈 씨한테 직접 듣고 싶어서 그래요. 이름이 뭐예요?"
"‥이홍빈이요."
"귀엽네요. 콩 같고."
상혁은 제가 말하고도 만족했는지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홍빈은 '콩'이라는 말에 흠칫하더니 꽤 친근감을 느낀 듯했다. 그야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만 부르던 홍빈의 몇 안 되는 별명 중의 하나였기 때문. 한 마디로 나쁘지 않았다.
"음‥. 이름 다음에 나이 묻는 건 너무 흔한 코스니까, 별자리? 별자리는 뭐예요?"
정말 생각지도 못했고,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상혁은 홍빈의 생각과 예상보다 훨씬 엉뚱한듯했다. 별자리라니…. 7080 시절 때도 이런 구식적인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 별자리는 눈에 박아놓았는지 두 눈을 반짝이며 물어오는 상혁에 홍빈은 자신의 별자리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했다.
"‥천칭자리요."
"아하, 그럼 생일은 9월 말이랑 10월 말 사이에 있겠네요. 생일은 지금 물어도 안 가르쳐줄 것 같으니까 일단 밥 먹으러 갑시다."
홍빈을 꿰뚫기라도 했는지 이것저것 읊어나가던 상혁은 이내 주차를 끝내고 차에서 먼저 내린 뒤 홍빈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홍빈은 그 와중에 또 한 번 후회를 했다. 제가 먼저 내렸다면 도망이라도 갈 텐데, 하고.
"이모, 나 왔어요!"
"아이고, 혁이 아냐?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짜식, 취직한 티 내기는."
진짜 이모인지 가짜 이모인지는 모르겠으나 상혁과 꽤 친해 보였다. 물론 상혁이 넉살 좋은 것도 있었지만.
"그런데 못 보던 친구네? 이야, 인물이 훤-하네."
"그쵸. 진짜 예, 아니 잘 생겼어."
저를 칭찬하기 바쁜 둘의 대화에 뻘쭘해져서 고개를 숙이고만 있던 홍빈은 상혁의 뭔가 무마하려는 듯한 웃음에 고개를 살짝 들었다. 홍빈은 다행히 못 들은듯했다. 상혁의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표현을 말이다. 예…. 이하생략.
"야, 친구 배고프겠다. 오늘도 먹던 대로 줘?"
"음‥. 뭐 먹을래요? 아, 아니다. 이모, 그냥 랜덤으로 줘."
상혁은 이모의 센스를 믿는다며 콜라와 사이다 한 병씩을 시키고는 홍빈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홍빈은 랜덤 자판기도 아니고 뭔가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거나 괜찮아요.'라고 답할 자신을 상혁이 미리 짐작하고 저렇게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 친구가 잘생겨서 갈매기살도 넣었다. 많이 먹어요, 친구."
상혁은 이모에게 나는 안 잘생겼냐며 웃으며 핀잔을 주고는 자연스럽게 집게와 가위를 들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홍빈은 온 종일 회식 생각에 골머리를 앓은 데다 상혁과 마주치고 밥까지 먹으러 오게 되면서 곤란함에 목이 타 있었는지 콜라를 향해 어색하게 손을 뻗었다. 병따개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홍빈에 상혁은 그의 작은 손에 쥐어진 긴 콜라병을 다시 가져갔다.
"손 다쳐요. 내가 해줄게."
아니 숟가락으로 따는 것도 아닌데 무슨 유난인가 싶었으나 상혁은 진심인 듯했고, 홍빈은 당황스러웠다.
"근데 콜라 좋아하나 봐요? 난 사이다가 더 맛있던데."
제 취향까지 하나씩 밝혀가며 홍빈의 컵에 콜라를 따라주고는 어느새 다 익은 고기를 홍빈의 앞 접시에 놓아주었다.
"안 먹을 거 같긴 한데, 고기만 먹으면 안 좋아요."
상추와 깻잎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밀어주며 상혁이 말을 건넸다. 그에 홍빈은 자신이 채소는 거들어보지도 않는 초딩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보란 듯이 깻잎을 한 장 가져갔다.
"상추는요?"
상혁은 상추의 끝을 살짝 부러뜨려 버리곤 홍빈을 향해 들어 보였다. 그에 홍빈은 고개를 저었다.
"깻잎은 향이 너무 세지 않아요? 상추가 먹기 편하던데."
콜라와 사이다에 이어 상추와 깻잎까지. 상혁은 신기함에 장난기라도 발동했는지 깻잎에 고기를 올리고 있는 홍빈에게 쌈장과 기름장이 담긴 그릇을 밀어 주었다. 이번에는 또 뭔가 싶어 쌈을 싸다 말고 자신을 쳐다보는 홍빈에 상혁은 턱으로 쌈장과 기름장을 가리켰다. 이내 당연하다 듯이 쌈장을 살짝 덜어 고기 위에 얹는 홍빈을 보고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설명하자면 신기함 반, 안타까움 반?
"고기의 참맛은 기름에 찍어 먹어야 느낄 수 있는데…."
과연 고기의 참맛을 말하는건지 기름의 참맛을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상혁은 그 '참맛'을 모르는 홍빈이 안타까운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쌈장만 공략하던 홍빈의 그릇에 고기를 놓아준 상혁의 집게는 김치를 향했다. 그리고는 김치를 불판에 올리려는듯 했지만 상혁은 멈칫하더니 집게를 내려놓았다.
"‥놓아도 돼요?"
이번에도 홍빈은 기다렸다는듯 고개를 저어 보였고, 상혁은 묵은지라면 환장했기에 아쉬웠지만 묻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실수할 뻔했네. 김치 안 좋아해요?"
홍빈은 또 한 번 고개를 저었다.
"그럼 뭐 김치볶음밥 이런 거만 먹나? 우리 사촌 누나가 그렇던데."
김치를 가려 먹는다는 사실이 살짝 부끄러운지 홍빈은 고개를 숙이곤 끄덕였다.
"역시. 그럼 리조또도 좋아하겠네?"
리조또를 꽤나 좋아하는지 홍빈은 반가운 듯이 세차게 끄덕였다. 그런 홍빈이 귀여운지 상혁은 살짝 웃음을 터뜨리며 홍빈의 그릇에 고기를 몇 점 더 놓아주었다.
"다음 회식 땐 리조또 먹으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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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이 독자님들! "잘 부탁드립니다. 23cm에요.'" 요즘 인티도 못들어오고 글도 못썼더니 손이 굳_굳.. 막막하네요. 분량도 이것밖에 못써내다니 (암울).. 역시 저한테는 단편이 맞나봅니다. 포인트 없이 편하게 읽어주세요. 이 망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혁콩사랑, 나라사랑! |
+) 암호닉 = 밍 / 코알라 / 깡통 / 운이 / 귤껍질 / 먼지 / 삼이 / 칰칰 /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