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7
' 어쩔 수 없지... 네 마음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야지. '
승완이의 말이었다. 민현이를 만나면, 혹시라도 고백을 받게 된다면 거절하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말을 꺼냈을 때 한숨을 쉬며 승완이가 내게 한 말이었다. 내가 백날 옆에서 황민현이랑 잘해보라고 하면 뭐하냐. 어차피 선택은 네가 하는건데. 승완이가 그렇게 말하며 강의실 문을 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눈을 반짝이며 황민현을 잡으라던 승완이의 모습이 떠오르자 기분이 이상했다. 수업을 듣는 내내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거절을 할거라고 그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막상 민현이를 보면 그럴 수 있을까. 승완이에게는 다 말 할 수가 없었지만 민현이를 생각하면 왜인지 모르게 복잡했다. 한 마디로, 한 단어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감정이었다.
옹청이
[ 뭐하냐 ]
[ 나 오늘 저녁 먹을 사람이 없는데 ]
[ 혼밥하기 싫어 ]
[ 저녁 같이 먹자 ㅜ ] 오후 6 : 28
황민현을 만나러 가는 버스 안. 옹성우에게서 카톡이 왔다. 안돼. 오늘 약속 있어. 혼밥해 그냥. 단호하게 카톡을 보내자 옹성우가 여느 때처럼 답장 대신 전화를 걸어왔다. 이렇게 연락이 잘 되면서 어제는 왜 바쁘다고 카톡을 안 읽은거야.
[ 아, 왜 혼자 바쁜 척이야. 김여주. ]
" 바쁜 척이 아니고 진짜 바쁜거거든? 나 오늘 약속 있어. 진짜로. "
옹성우가 투덜거렸다. 그 목소리에 난 또 웃고야 만다. 혼밥이나 해야겠다는 체념 어린 말에 너는 그럴 필요가 있다고, 묵언수행이나 좀 하라고 말을 하자 금세 또 토라지는 옹성우다. 한결같은 옹성우의 반응은 질리지가 않고, 나는 결국 내릴 정류장이 다 돼서야 옹성우와 통화를 겨우 끊을 수가 있었다. 15분. 15분이라는 시간 동안 전화를 하는 내내 말이 끊긴 적도, 공백이 생긴 적도 없었다. 우리는 그만큼 편하고 가까운 사이였다. 물론 어쩌면 내게는 한없이 먼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황민현
[ 나 카페 앞에 있어 ]
[ 천천히 와 ]
[ 나 기다리는거 잘 하니까 ㅋㅋㅋ ] 오후 6 : 47
옹성우에 대한 생각도 잠시 황민현의 톡에 나는 닥쳐올 미래를 고민했다. 기다리고 있는 황민현을 생각하면 빠른 걸음으로 카페까지 걸어가는게 맞는데, 나는 오히려 좀 전보다 더 느린 속도로 걷고야 만다. 황민현이 하는 말이 고백이길 바라는 마음 반,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반이었다. 나는 참으로 이기적이고 나빠서, 조금전까지 옹성우와의 통화에 그렇게 설렜음에도, 그렇게 좋아했음에도 황민현을 거절해야만 한다는 그 생각은 자꾸 꼬리를 물어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냈다.
코너를 돌자 카페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황민현의 모습이 보였다. 문득 처음 황민현을 만났던 날이 생각났다. 저렇게 잘생긴 애가 왜 굳이 나를 소개 받겠다 했을까, 하는 그런 생각. 그 때는 옹성우가 내 안에 너무 많이 담겨있어서, 옹성우가 내 안에 너무 꽉 차있어서 황민현을 들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 어, 여주야! "
나를 발견하고 나에게 걸어오는 황민현을 보면서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나를 보며 설레는 표정으로 다가오는 너는 어쩌면 내가 옹성우를 만날 때 짓는 표정이 아닐까. 잠깐이나마 네가 나를 헤집었을 때를 생각하면, 옹성우 생각이 나지 않게 만들었을 때를 떠올려보면 그건 너와 내가 겹쳐보일 때였다. 너의 그 잘생긴 얼굴에서 나와 같은 표정이 지어질 때, 그 때 나는 오롯이 너에게만 집중을 할 수가 있었다.
" 맨날 기다리게 하네. 미안. "
" 얼마 안 기다렸는데? 너도 약속시간보다 빨리 왔잖아. 배고프겠다. 얼른 가자. "
나를 보며 해사하게 웃는 민현이를 보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만나자마자 배고프겠다며 날 생각해주는 황민현과 이도저도 아닌 지금의 관계가 끝나는걸 어쩌면 나는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밥 안 사줘도 됐는데... "
" 그래도. 내가 어제 약속 깨서 김새게 했잖아. "
" 그럼 커피는 내가 살게. "
밥을 먹는 내내 황민현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웃었다. 나는 나대로 일상 이야기를 했고, 황민현은 황민현대로 일상 이야기를 했다. 조별 과제를 같이 하는 선배 얘기부터 교수님과의 면담내용까지. 사소하지만 서로에 대해 궁금하지 않으면 할 수없는 얘기들을 나눴다. 이것저것 얘기를 하면서 물론 옹성우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민현이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았던걸지도 모른다. 옹성우에 관해 얘기하는 내 모습을, 내 표정을.
" 아, 맞다. 너 커피 안 마시던가? "
" ...응. 맞아. 기억하고 있었네. "
" 저번에 자몽에이드 주문했었잖아. 혹시나 해서. "
내 말에 황민현이 활짝 웃어보였다. 나는 황민현의 저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내가 마음이 있는 사람이 나에 대해 작은 것이라도 기억해주면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꽉 차서 터질 것 같은 그런 기분일 때 짓는 표정. 역시 황민현과 나는 닮았다. 황민현의 표정에서 자꾸만 내가 보였다. 그럴수록 마음이 무거웠다. 차라리 황민현이 티를 내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지금보다는 훨씬 가벼웠을까. 불도저같이 말을 훅훅 뱉던 황민현은 표정으로도 내게 밀고 들어왔다.
" 내가 주문하고 올게. "
카페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러 갔다. 자몽에이드 하나랑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 계산을 하고 기다리는 내내 황민현이 어떤 말을 내게 할 지 점점 두려워졌다. 이 관계가 끊어져버리는게 나는 무서웠다. 만나는 순간부터, 나에게 걸어오는 황민현을 본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들고 있었다.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와 잘 맞는 황민현을 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와 닮은 황민현을 나는 세차게 내칠 수가 없었다.
"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자몽에이드 나왔습니다. "
트레이를 들고 자리로 돌아가자 역시나 날 보며 씩 웃는 황민현이 보였다. 눈을 피하고 황민현에게 자몽에이드를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황민현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속이 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는데, 민현이가 날 불렀다.
" 있잖아. 여주야. "
" ...어어? "
나도 모르게 바보같은 소리를 내며 눈을 크게 떴다. 민현이가 그 모습에 다시 웃었다.
" 어제 할 말 있다고 했잖아. "
" ... "
손에 힘이 들어가고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내려놨다. 민현이의 표정은 새삼 진지해보였다. 어떤 말이 나올지 어떤 얘기를 꺼낼지.
" 혹시 기억나? 내가 너 소개팅 전에 만난적 있다고 얘기한거. "
" 아... 응. "
한참을 말이 없다 황민현 입에서 나온 말은 기억이 나냐는 말이었다. 아주 잘 기억이 난다. 처음 만났던 날, 파스타집에서 황민현이 나를 처음 봤을 때 우리 만난 적 있다고 했던 말. 술집에서. 나는 기억을 못하는 일이었다.
" 그 얘기 해주려고. "
아. 괜한 착각에 김칫국을 마셨구나. 머쓱해지는 기분에 아메리카노를 다시 마셨다. 어쩐지 황민현이 표정이 조금은 진지해졌다. 한결 마음을 놓고 들으려 하는데 저런 표정을 지으니 괜시리 나까지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황민현이 아랫입술을 쓸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의 첫만남에 대해서.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여주야. 너는 기억을 못하는게 당연할거야. 내가 너를 처음본건 나랑 성우가 입대하기 직전이었거든. 아, 사실은 말이야. 너를 처음 알게 된 건 그것보다 더 됐어. 새내기때, 나 1학년 때거든.
" 민현아. 너는 진짜 연애하지마. 하... "
" 언제는 스무살을 누리라면서 연애하라더니? "
" 이렇게 자주 싸울 줄 알았냐... "
성우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소주를 들이켰어. 그 때가 아마 스무살 가을쯤이었을거야. 성우가 여자친구랑 사귄지 100일도 더 됐을 때였고, 자주 싸웠을 시기였지. 여자친구가 툭하면 자기한테 삐진다면서 답답해했었어. 그리고 그럴 때마다 얘기를 들어주는건 나였고, 같이 술을 마시는 사람도 나였어. 생각보다 옹성우랑 나랑 많이 친해. 잘 맞았거든. 이상하게 잘 맞았어.
" 너 너무 마시는거 아니야? "
" 내버려둬... 차라리 엄청 취하고 다 잊고 싶으니까. "
나는 술을 잘 못해서 늘 성우가 술을 마시면 내 빈잔에 음료수를 채워서 짠, 하고 마시거나 맥주를 조금씩 마시곤 했는데 그날따라 유독 성우가 빠른 속도로 술을 마셨어. 우리 테이블에 소주가 2병이 금세 비워졌는데 내가 마셨던게 아니니까... 누가 다 마신진 알겠지? 성우가 1시간도 안 돼서 그렇게 술을 다 비웠는데도 계속 술을 더 시키려고 하더라고. 얼굴은 빨개서 계속 히죽 웃고 있는데. 내가 말리니까 성우가 나를 뿌리치곤 술을 더 시켰어. 평소엔 그 정도로 마신적이 없는 애였는데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 여자친구랑 반복되는 싸움이.
" 아... 미녀나... 너능... 진짜 연애..하지마라... 감정소모가.. 정말.. 진짜... 대애박.. 리얼... 완전... 헐... 쩔..어... "
" 이제 그만 마셔. 진짜로. "
" 아... 진짜... 힘들다... "
성우가 술잔에 소주를 따랐고, 난 내 잔으로 바꿔치기를 했어. 걘 그게 술인지 음료수인지도 모르고 잘 마시더라. 그만큼 많이 취했던거겠지. 그러다가 휴대폰을 꺼내서 갑자기 누구한테 전화를 거는거야. 나는 여자친구한테 전화를 건가 싶어서 전화를 뺏으려고 했는데 성우 걔가 절대 휴대폰을 안 놓더라. 그러고는 쉿, 하면서 헤실헤실 웃더라고.
" 너 지금 여자친구한테 전화하는거면 당장 끊어, 옹성우. "
" 아니야... 여자친구 아냐... 어어어. 받았따! 여주야!!!!!!! "
내가 알던 옹성우의 여자친구 이름이 아니었어. 정말로 여자친구가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전화를 건거였구나. 성우 표정이 엄청 밝아보였어. 혀가 풀려서 얘기를 하는데 내가 전화를 받는 당사자면 야밤에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짜증이 날 것 같더라고. 그런데 성우가 전화를 하다가 잘못해서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나봐. 상대방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어.
[ 야. 너 진짜 죽고싶냐? 술마시고 이 밤에 뭐하는 짓이야. 그렇게 술 마시고 나한테 전화하면 네 여친이 퍽이나 좋아하겠다. 이 미친놈아. ]
" 아잉... 여주야... 왜 구래.. 무섭게... 나... 지금 엄청 슬픈데... 쫌 슬플라 그르는데... "
[ 술이나 깨고 연락해. 뭐하는 짓이야. 지금. ]
나도 모르게 침이 삼켜지더라. 옹성우가 금방 풀이 죽어서는 전화를 끊었어. 그래. 그게 처음 네 목소리를 들은 날이었어. 옹성우 휴대폰에 '김여주' 라고 저장된 이름을 흘긋 보고 무서운 친구네... 하고 혼자 생각했었어. 그러다가도 좀 궁금하더라. 성우가 한번도 네 얘기를 한 적은 없었거든. 어쩌면 했을수도 있겠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네 이름을 얘기하지 않고 너랑 있었던 일화를 말했을수도. 그리고 난 그 얘기를 듣고 눈을 반짝였을지도 모를 노릇이고.
" 성우야. 집에 가자. 너 너무 취했어. "
" ...알았어... "
너한테 한 소리를 들으니까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더라. 신기한 애라고 생각했어. 여자친구도 아니고 그냥 친구인데 성우를 이렇게 몇마디에 K.O 시켜버리는 애가 궁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랬어. 응. 너는 전혀 몰랐겠지만 난 그 때부터 널 알고 있었어. 3년전부터 나는 김여주, 너를 알고 있었어.
참 재밌는게 성우가 술에 취하면 가끔 너한테 전화를 걸었고, 너는 한결같이 꾸준한 반응을 보였어. 내가 레퍼토리를 외울 정도였다니까. 굳이 옹성우가 너한테 전화를 할때 말릴 수도 있었는데, 나는 그 모습이 퍽이나 재밌어서 그냥 옆에서 계속 듣고 있었어. 궁금하더라. 네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그냥 단순한 호기심이었어. 정말로. 순수한 호기심. 성우를 휘어잡는 김여주란 애는 어떤 애일까, 어떤 애길래 저렇게 유쾌하게 옹성우한테 욕을 할까.
그리고 휴학계를 내고 나랑 성우가 입대하기 직전이었지 아마. 성우가 그 날 내가 본 두번째로 술을 많이 마셨던 것 같아. 여자친구랑 헤어졌었거든. 거의 1년을 사귄 애였으니까 성우 나름대로 정도 많이 들고 힘들어했던 것 같아. 많이 지치기도 했을거야. 싸우는 일도 많았고, 일방적으로 성우가 달래는 일도 많았거든.
" 진짜... 연애는 아니야... 다시는 안 해... "
" 너 하고 싶어도 못 해. 이제 군대 가는데 무슨. "
" 그렇게 팩폭하기 있냐... "
성우가 그렇게 말하면서 한 잔을 마시고, 또 한 잔을 비우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결국엔 또 옹성우가 만취해버렸어. 오늘도 왠지 너한테 전화를 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로 전화를 걸더라.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사이다가 담긴 소주잔을 들이키면서 성우한테 말했어.
" 또 김여주지? "
" ...엉? 어떻게 알았냐. 하긴... 내가 술 먹고 전화한게 한두번인가... "
옹성우가 그렇게 말하고는 키득거렸어. 그 날따라 너는 유독 전화를 안 받더라. 성우가 가만히 통화연결음을 듣다가 민현아. 하고 날 불렀어. 아, 이미 반쯤 풀린 눈으로 말이야.
" 여주 엄청 이쁘다? "
" ... "
" 보고싶어? "
옹성우는 왜 술에 취해도 장난기가 넘치는걸까. 내가 당황해서 어? 하고 되물으니까 오라고 해야겠다! 우리 민현이 소개해줘야지!!! 하면서 혼자 소리를 지르는거 아니겠냐고. 그러지 말라고 말하려는데 여보세요? 라는 익숙한 네 목소리가 들렸어. 그 목소리에 혼자 입을 꾹 다물었어. 솔직히 말하면 궁금하기도 했어. 네가 어떤 애일지.
" 김여주~~~~ "
[ 또 술 마셨지, 너. ]
" 여주야, 나 지금 우리 집 근처 술집인데~~ "
[ 빨리 들어가서 씻고 자. 얼른. ]
" 잠깐 오면 안돼? "
[ ...미쳤어? 지금 11시 넘었어. ]
" 택시 태워서 보내줄게. 오면 안돼? 나 너 보고싶은데 "
옹성우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너를 보고싶다고 말하고, 너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 하긴 나도 야밤에 이성친구한테 보고싶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이상할 것 같긴해. 그래도 너는 옹성우랑 오래된 친구니까 장난으로 넘길거라 그렇게 생각했지. 이때까지 전화를 받은 너를 보면 오지 않을거라고, 또 옹성우한테 욕을 하고선 전화를 끊을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 ...알았어. ]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차분한 목소리로 오겠다 말하는 네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어. 올줄 몰랐거든. 전화를 끊고 옹성우가 또 헤실헤실 웃었어. 여주도 내가 보고싶나봐! 그렇게 말하곤 앞에 있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라. 뭔가 기분이 이상했어. 나는 너를 다 아는게 아니지만, 아니 사실은 하나도 모르지만 네가 오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었거든. 하기야 1년동안 아는거라곤 목소리랑 이름이 다인데 내가 오지 않을거라 당연히 생각한게 우습지.
" 여주도 집이 이 근처라서 금방 올거야... "
성우가 졸린지 하품을 했어. 괜히 너를 부른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근데 네가 도착했을 때. 성우가 손을 휘휘 흔들면서 너한테 인사를 건넸을 때, 나는 그 순간 내가 성우의 오라는 전화를 말리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 스스로도 많이 궁금했었나봐, 네 모습이. 네가 어떤 사람일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는 사람일지. 그리고 너를 봤을 때 이상한 감정이 들었어. 뭔가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나 혼자 ' 김여주는 이런 사람일거야.' 라고 생각하다가 처음 마주친 순간이라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 하... 옹성우. 너 아줌마가 뭐라고 안하셔? 이렇게 맨날 술 마시면? "
" 엄마랑 아빠는 가기 전까지 후회없이 놀다 가래... 울엄마, 아빠 짱이지? "
" ...아줌마랑 아저씨가 널 포기했다는 생각은 안 드냐. 이 호구등신아. "
내가 있는걸 못 본건지. 너는 옹성우한테 다가가서는 잔뜩 걱정되는 얼굴로 옹성우를 훑어보고 있었어. 성우가 술 마시면 얼굴이 잘 빨개지잖아. 안 그래도 술냄새가 풀풀 나는데 얼굴까지 빨개져있으니까 너는 더 걱정이 됐나봐.
" 김여주, 나 바람 쐬고 싶다. 바람 좀 쐬자. 너 온김에. "
" ...진짜.. 하... "
네가 못 이기는 척하면서 옹성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어. 결국 난 인사 한 번도 제대로 하질 못했지. 어쩌면 네가 보기엔 나도 많이 취해보여서 아예 인사할 생각을 못했겠다 싶기도 해. 테이블엔 소주랑 맥주병이 굴러다니는데 그걸 옹성우 혼자 마셨다는 생각을 하겠나 싶더라고. 나도 슬쩍 일어나서 너희 둘 뒤를 따라 나섰어. 나도 그냥 바람이나 좀 쐴 겸, 그리고 이까지 온 너한테 음료수라도 한 캔 사줄까 싶어서.
그리고 편의점에 들러서 내가 좋아하는 자몽 음료수를 사서 술집으로 돌아가는데, 술집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너희 둘이 보였어. 옹성우는 바람을 쐰다면서 피곤했는지 네 어깨에 기대서 눈을 감고 있고, 너는 굳은 표정으로 앞만 보고 있더라. 어떻게 하지, 지금 가서 음료수 줄까. 하고 나혼자 고민하고 있는데 네가 천천히 손을 들더니 옹성우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이 보였어.
" ... "
성우는 정말로 잠이 들었는지 색색거리면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고, 너는 성우를 슬쩍 쳐다보며 머리를 쓸고는 다시 앞을 쳐다봤어.
" ...진짜 호구에 등신은 옹성우 니가 아니고 난데... "
네가 혼자 중얼거리더라. 음료수캔을 여전히 든 채로 네가 하는 혼잣말을 의도치 않게 엿들어 버렸어.
" 4년 넘게 너 좋아한 내가 진짜 호구에 등신인데... 너 포기하고 싶은데 그럴때마다 니가 못하게 하잖아. 자꾸 얼쩡거려서 내가 얼마나 힘든데... "
" ... "
" 진짜로 나 너 포기하고싶은데... 너 안 좋아하고 싶은데... 차라리 새로운 사람 만나고 싶은데... "
" ... "
" 왜 또 여자친구랑 헤어져... 왜... "
" ... "
" 술만 마시면 나한테 전화하는데... 왜 오늘도 오라고 그러는데... 짜증나게 지금도 기대서 자고 뭐하는 짓인데, 이게... "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해서는 허심탄회하게 혼잣말을 하는 너를 나는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어. 여주야. 그런 표정을 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게 나까지 안타까워서, 아무것도 모르고 밝은 표정으로 네게 기대있는 옹성우가 어쩐지 모르게 짜증이 나서... 나도 짝사랑을 안 해본게 아니라서 네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어. 너처럼 4년이라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를 깊게 마음에 담아본 적이 있었으니까. 나도 누군가를 오랫동안 힘겹게 앓아왔던 적이 있으니까. 어쩌면 너의 지금 그 모습이 꼭 짝사랑을 했던 내 모습과 비슷해보여서. 고등학교 때의 황민현과 겹쳐보여서... 고백조차 하지 못해 매일 속으로 앓았던, 그 때의 나 같아보여서. 그래서일까, 누구나 너같은 경험을 해본적이 있어서 그런걸까. 나는 네 감정이 너무나도 뼈져리게 느껴졌고, 일부러 네가 들어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꿋꿋이 서있었어. 네 옆에 옹성우는 널 봐주지 않지만, 너의 한참 떨어진 곳에서 널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조금이라도 주고싶어서.
오지랖이 넓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그 순간에 분위기에 취한건지, 너의 표정과 혼자하는 고백에 나를 이입해버린건지 그냥 그렇게 널 보고싶었어.
여주야. 나는 처음부터 네 먼발치에 있었어. 지금도 그렇겠지만, 네 한참 뒤에는 내가 있었어.
참 웃긴게 너랑 나랑 말 한번을 섞어본 적이 없는데 그 후로 자꾸 그 장면이 생각이 나더라. 옹성우가 너한테 기대서 자고 있고, 네가 슬프게 혼잣말을 하던 그 장면. 옹성우랑 훈련을 같은 곳에서 받게 됐는데, 가끔 인터넷 편지나 손편지가 오면 대부분이 네 편지더라. 옹성우가 자기가 친구하나는 정말 잘 둔 것 같다고 그렇게 말을 하는데, 정말로 부럽고... 질투가 나고 화가 났어.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 속에서 자꾸 울컥 뭐가 치밀어오르는 기분이 들었어.
네 편지는 참 담담했는데, 나는 알고 있으니까. 네가 어떤 감정으로 편지를 썼는지를 알고 있으니까.
자대배치를 받고 나서도 정말 가끔 그 장면이 떠오를 때가 있었어. 이상하지? 나도 그래. 그게 왜 그렇게 생각이 나는지 나도 모르겠더라니까. 내가 고등학교 때 심하게 좋아했던 그 애 얼굴은 이제 가물가물한데 그 감정은 여전히 생생해서 그랬던걸까? 하루는 옹성우랑 휴가를 맞춰서 나갔는데 그 때도 성우가 네 얘기를 하더라.
" 김여주랑 만나서 밥 먹으려고. 걔 요즘 기분이 통 별로거든. 인간 엔돌핀이 가서 활력 좀 불어넣어 주고 와야지! "
능청스럽게 말하는 성우의 모습에 또 왜인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어. 김여주가 이런 옹성우에게 반했다는건 제3자인 내가 봐도 알 수 있었어. 차라리 옹성우가 김여주한테 매몰차게 대하면 김여주가 그렇게 힘들어 할 일도 없었을텐데.
" ...성우야. "
" 왜? "
" 김여주라는 네 친구 있잖아. "
" 엉. "
" 남자친구 없다고 했지? "
" 응. 없지. 참 괜찮은데 왜 없는지는 나도 모르겠단 말이야... "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정말 나도 모르게...
" 나 전역하면 김여주 소개해주면 안돼? "
" ...엉? "
" 괜찮은 친구라며. 근데 남자친구가 왜 없는지 모르겠다며. "
" ...그렇지. "
" 나 소개해주라. "
" 네가 웬일이래...? 근데 김여주가 남소 받는거 별로 안 좋아해. 내가 다섯번 정도 소개해준다고 그랬는데 다 깠어. "
" 그래도 물어나 봐줘. "
혹시 알 수도 있을거란 생각에. 옹성우와 너, 그리고 내가 셋이 만난 날을 너도 기억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 때 전해주지 못한 자몽 음료수 대신 더 맛있는 밥을 사주고 싶었고, 더 맛있는 후식을 사주고 싶었어. 그렇게라도 너를 위로하고 싶었던걸까. 나도 모르겠어. #여주야. 내가 그 때 어떤 생각으로 옹성우에게 널 소개해달라고 말했는지 나조차도 모르겠더라.
" 소개팅 받는다는데? "
전역을 하고, 몇개월이 지났을까. 성우가 신이나서 내게 말했어. 너 소개 받는다는데? 웬일이지, 진짜로. 옹성우가 의아해하면서도 좋아했어. 성우가 너한테 마음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너랑 소개팅을 하는게 나쁜 일은 아닌거겠지. 혼자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너는 왜 이 소개팅을 하겠다고 한건지 궁금해졌어. 나를 알아서? 아니면 옹성우가 괘씸해서? 이유가 뭐였든 난 좋았어. 너를 정식으로 만날 수 있다는게 난 그냥 기뻤어. 왜인지는 모르겠어. 너를 좋아한것도 아니고 네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기뻤는지는 모르겠어.
" 민현아 근데 있잖아. "
" 응? "
나도 처음으로 해보는 소개팅이었어. 너도 그랬겠지만. 처음 만났을 때 너와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꽤 너랑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도 나처럼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정말로 일이 있어서 밥 밖에 같이 먹지 못했지만, 어렵사리 내가 너에게 다시 연락을 했을 때 네가 흔쾌히 응해줘서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 솔직히 너 되게 잘생기고, 매너좋고, 성격도 좋은데 여자친구 없는게 이상해서. "
너는 나를 적어도 그렇게 생각해주고는 있구나, 싶어서 안도했어. 사실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 너한테 내가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을까봐.
" 나 전역한지 얼마 안 돼서. "
" 아. "
" 아니야, 그런거. 너는 소개팅 홧김에 했다고 그랬지? "
두번째 만났을 때, 우리 치킨에 맥주 마시던 날 있잖아. 네가 나한테 왜 여자친구가 없는지 물었잖아.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어.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너는 모를거니까.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너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너는 모를테니까.
" 난 그 홧김을 계속 노렸거든. "
" ...무슨 말이야? 아니... 뭐야, 왜 신비주의 전략 써? "
네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어. 여주야. 너는 모르지? 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날 보는게 얼마나 귀여운지.
" 내가? 신비주의라고? "
" 지금 이해가 안되는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
" 진짜 말 그대론데? 나는 홧김을 계속 노렸어. 네가 몰라서 그렇지. 나중에 좀 더 친해지면 말해줄게. "
이제 '홧김을 노렸다'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될까? 나는 옹성우가 너에게 술을 마시고 전화했을 때, 내가 옆에 있었던 걸 감사하고. 옹성우가 너를 부른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게 해준 타이밍에 감사하고, 홧김에 소개팅을 받겠다는 네 선택에 감사해. 나와 생각보다 잘 맞는 너에게, 가끔은 내 옆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해사하게 웃을 때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바로 깨달은 나 자신에게도 감사해. 고등학교 시절을 같이 보낸 성우는 왜 모를까, 왜 모르면서도 너한테 그런 애정어린 눈빛을 받는걸까 가끔은 질투를 하기도 했지만.
" ...미안. "
" 미안할 필요 없어. 난 오히려 고마운데. "
" ...아니 그냥... 내가 갑자기 잡아 당겨서 안겼으니까... 기분 나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
" ..푸흡 "
" 아... 여주야, 웃지마. "
영화관에서부터 한결 편해보이는 네 모습에 나는 기분이 좋았어. 너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 엄청 떨다가도 계속 웃음이 나오더라고. 이상한 노릇이지. 네가 알바하는 곳까지 데려다주는 길에서 오토바이가 지나갔어. 나는 네가 다칠까봐 내 쪽으로 끌어당겼고, 어쩌다보니 안겨있는 모양이 되었어. 심장이 쿵쾅쿵쾅거리고, 온 몸에 갑자기 땀이 주륵 흐르는 기분이 들었어. 갑자기 널 안은 것도 부끄럽고, 혹시라도 네가 기분 나빠하진 않을까 걱정도 되고. 그러다가 마냥 웃는 네 모습이 예뻐서. 다행히 너는 아무렇지 않아했어. 오히려 기분이 좋아보이는 쪽이라 속으로 안도를 했지. 그렇게 서로를 보면서 웃고 있을 때, 네 등 뒤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어. 그리고 나는 봤지.
" 김여주. "
네가 옹성우에게 고개를 돌리기 전에 그 예뻤던 미소를 숨기고 당황한 표정을 짓는걸. 잔뜩 굳은 표정으로,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보던 네 모습을 나는 봐버렸어. 그리고 그 순간 다시금 느꼈어. 내가 너를 이렇게 좋아하듯이, 너를 오랜시간동안 생각해왔듯이 너는 나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옹성우를 바라보고 있었을거란걸. 나보다 더 깊은 마음으로 옹성우를 생각해오고 있었을거란걸.
" 여주야, 일단 들어가야지. 너 알바 시간 다 됐다. "
당황한 너를 다정하게 달래고, 나는 그 순간 조금 전의 생각을 정정해야만 했다.
" 아, 맞아. 나 알바. 참. "
옹성우를 바라봐 온 너만큼 오랜 시간은 아니었겠지만, 옹성우를 애닳아 한 너만큼 나도 너를 많이 원하고 있었다는걸.
" 아냐. 그럴 필요 없어. 지금 들어오신 손님, 내... "
" 저, 여주 친구에요. "
" 아... 친구시구나. "
" 어어. 맞아. 친구. "
그리고 잠깐이나마 읽은 너의 실망스럽고도 당황스런 눈빛에서, 우리를 친구라고 선을 그어버린 내게서 실망한 기색을 보이는 널보며 나는
" 여주야. "
" ...응? "
" 너 대답하기에 곤란해보여서 "
" ... "
" 친구라고 했어. 내멋대로. "
" ... "
" 너는 친구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
" ... "
" 난 좀 다르거든. "
" ... "
" 근데 너 그냥 곤란해보여서 친구라 그랬어. "
" ... "
" 그냥 그렇다고. 이 말 안 하고 집에 가면 내가 속상할 것 같아서... "
혹시라도 네 옆에서 항상 너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를 했었어.
이제는 완전히 내가 너에게 빠져버린게 틀림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게 네가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할 수는 없다. 너는 여전히 옹성우를 바라보고 있지만, 너는 여전히 옹성우의 뒤에 서있지만 그런 너의 뒤에 항상 너를 바라보는 내가, 항상 네 뒤에 서있는 내가 있다는걸 네가 알아줬으면. 그래줬으면.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 여주야. "
민현이가 말을 끝내고 나를 불렀다. 민현이의 말에 나는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 없었고, 어떠한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 ...이건 고백이지만, 받아달라고 사귀자고 하는 고백이 아니야. "
" ... "
네게서 나는 고백을 들었다. 사귀자는 말도, 나의 마음을 받아달라는 고백이 아닌 온전히 너의 속마음을 내뱉는 그런 고백.
" 그리고 받아달라는게 너한테 힘든 일이란거 나도 잘 알아. "
" ... "
" 성우랑 열일곱살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잖아. 내가 감히 어떻게 너희 사이를 짐작할 수가 있겠어. 그리고 네가 얼마나 성우랑 지금 관계를 깨는게 무서울지, 나는 상상도 못하겠어. "
민현이는 더 또박또박 내게 말했다. 나에게 위로를 해주듯이 그렇게 조곤조곤.
" 그렇지만 여주야. 그것만으로도 대단한거야. 그 관계가 네 마음 때문에 깨져버릴까봐 그 마음 억지로 참는거. 네 마음 꾹꾹 눌러 담아서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는거. 그거 정말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해. "
나는 더이상 민현이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내게 과분한 사람이 맞았다. 내게 한없이 과분한 사람이었다.
" 성우가 부럽다. 너한테 그런 사랑을 받는게 정말로 부러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한테 그런 사랑을 받아서. "
" ... "
" 그리고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었어. 여주야, 너도 사랑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사람이야. "
감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민현이는 늘 내게 따뜻한 말을 다정한 위로를 건넸다. 짝사랑을 하는 사람은 늘 작아지기 마련이다. 특히나 짝사랑 하고 있는 상대 앞에서. 난 늘 그랬다. 옹성우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서 무너지는 기분을 느껴왔다. 그리고 민현이의 저 말은 여때껏 수십번을 무너져 온 내 마음을 다잡아주는 말이었다.
" 나말고도 많은 사람에게 충분히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 너. "
" ... "
" ... "
한동안 우리 둘다 말이 없었다. 나는 민현이를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민현이가 무얼하고 있는지 알 수는 있었지만, 아마도 확실한 건 민현이도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을 거다. 카페의 노래 한 곡이 다 끝나고나서야 민현이는 말문을 열었다.
" 난 먼저 일어나볼게. "
" ... "
" 못 바래다 줘서 미안해. "
민현이가 평소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민현이가 떠나고나서야 고개를 들 수가 있었다. 내 눈 앞에는 민현이가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남긴 자몽에이드만 있을 뿐이었다. 민현이가 있었더라도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민현이의 지난 시간들의 감정을 내가 감히 추측할 수 있을까. 감히 생각할 수 있을까. 그 크기를 내가 헤아릴 수 있을까.
황민현도 내가 느꼈을 감정을 그대로 느꼈겠지. 그래서 민현이를 볼 때마다 내가 겹쳐보인거겠지.
" ... "
민현이가 가고나서 민현이의 말을 곱씹어보자 그제서야 민현이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좋아한다는 말도, 사귀자는 말도 없었지만 민현이의 마음이, 돌려서 말한 그 마음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민현이는 성우를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을 최대한 배려한거겠지. 황민현은 착해빠졌다. 6년이라는 내 시간을, 내 마음을 멀리서 지켜보며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왔다. 그러면서도 내가 부담스럽지 않게, 내가 천천히 돌아설 수 있게 노력한거겠지.
민현이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건 아니다. 내가 이렇게 오롯이 전해받았으니까. 황민현의 마음을 내가 깨달았으니까.
아, 그 순간 황민현과의 시간들이 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간다.
옹성우를 향한 내 마음을 알면서도 나와 발맞춰 걸어가주고 예쁘다 말해준 황민현이
혹여나 거절 당할까 긴장한 표정으로 약속을 잡던 황민현이
언제나 해사한 미소로 나를 봐주던 황민현이
기다리는걸 잘한다며 늘 약속장소에 먼저 나와 설레는 표정을 나를 기다리던 황민현이.
" 민현아... "
네가 가고나서야 네 이름을 부르는 내가 미웠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한 내가 바보같아서. 그저 우리의 관계가 끝나는 것을 두려워만 한 내게 솔직히 마음을 말해준 너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게 멍청하게도 후회스러워서...
네가 내게 모든 것을 말해주고서야 네 표정이, 네 행동이, 네 모습이 내게 박힌다. 마음 한 구석 어디엔가 깊숙하게 박혀버린다. 꺼내지도 빼내지도 못하게 그렇게 박혀서 점점 물들어간다. 나에게 옹성우는 태양이었다. 그리고 황민현에게 나도 태양이었다. 나는 옹성우를 바라보는 해바라기였고, 황민현은 나를 바라보는 해바라기였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결국 두 손에 얼굴을 묻고야 말았다. 너의 감정이 이제서야 폭풍우처럼 밀려온다. 지금껏 너와의 시간은 나에게 폭풍전야였단걸 나는 깨닫고야 만다. 너의 감정에 나는 그렇게 흠뻑 젖고야 말았다.
너와 둘이 있던 그 때마다 내 마음이 너로 가득 찼던 것처럼 지금도 나는 너로 가득찼어. 민현아. 너를 만나기 전 다잡은 마음은 이미 온데간데 없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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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왔죠?!!? ㅠㅠㅠㅠㅠ 아닌가... 여러분...
6편도 초록글 실화인가요? 저 지금 초록글 1페이지, 무려 1페이지에 있는거 보고 사담 쓰는 중이에요 꺼이꺼이 ㅠㅠㅠㅠㅠㅠ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감사해요 정말로 ㅠㅠㅠㅠㅠㅠㅠ
늘 읽어주시고, 추천 눌러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고, 신알신 해주시는 분들 사랑합니다. 애정합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
암호닉
호두 / 옹옹 / 요뎡 / 옵티머스 / 민트초코 / 콜국 / 푸름 / 빈럽 / 쩨아리 / 헬로키티카 / 꾸쮸뿌쮸 / 여름 / 루쇼 / 다녜리 / 뀨뀨 / 류제홍 / 포뇨 / 옹히 / 애플파이 / 여름동화 / 1111 / 밍밍 ♥ / 뚜기 / 두부 / 흰둥이
님들 ! 6편 8/27분 am 1:30 기준까지 신청 받은 암호닉입니다..!!
호오오옥시 암호닉 신청 하시고 싶은 분들!!!
★ 6편 댓글에 8/29 pm 11:59 까지 남겨주시거나
★ 7편 댓글 (이번편) 로 8/29 pm 11:59 까지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암호닉은 저 때까지만 받고 바로 [암호닉 공지] 글로 새로 띄울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암호닉 혜택 따로 없습니다 (현재 텍파나눔, 메일링 등 진행 예정 없습니다)
다만 소통을 수월하게 하시고 싶은 분들 신청해주세요!
답글은 하나하나 달아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T^T 그래도 오늘은 답글보다 글로 찾아오는게 독자님들을 더 기쁘게 하는 것같아 빨리 왔답니다..!
오늘은 민현이의 풀스토리가 공개 됐습니다...! 성우도 조만간 나올 예정이에요!
아직 못다한 얘기들이 많으니 앞으로도 함께 달려주시고 기대 많이해주세요!!!!!!!
(그리구 민현 독백으로 진행되는 부분에선 민현이가 여주에게 직접한 말들도 있지만, 마음 속으로만 한 얘기들도 있다는거~~~ 감안하고 봐주셔야해요 후ㅏㅎ후하)
오늘 브금은 특별히 가사가 있는 브금으로 했습니다
민현이의 마음이 더 잘 드러나는 것 같아서요
BGM 규현 - 내 맘은 어디에 두죠
그 말을 아나요
사랑은 둘이서 같은 방향을 보는 거라고
매일 난 뒤에서 혼자서 보는 곳
몰래 같이 또 바라보네요
따라 갈수록 눈물이 나고 가까울수록 그리워지는
내 맘은 어디에 두죠
민현아... 꽃길걷자 크흡..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성우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