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이었다. 엄마의 손길에 눈을 뜬 나는 일어나자마자 이를 갈며 분노를 표출했다. 나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밍기적 밍기적 일어서서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양치를 하며 샤워기에 물을 틀었다. 매일밤마다 알몸으로 자는게 습관이 되서 좋은 점은 일어나자마자 귀찮게 옷을 벗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어릴 때 부터 이런 것이라 오히려 옷을 입고자면 불편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속옷과 티 한장정도는 걸치기 시작했으나 어젯밤은 예외였다. 까진년이라는 말 한마디가 귓가에서 웅웅대서 참을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그나마 입고있던 속옷과 티도 홀딱 벗었다. 오랜만에 알몸으로 자고 일어나니 아침이 이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씻고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싸맸다. 그리고 어제보다 훨씬 여유로운 마음으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고 가방을 챙겨 방문을 나섰다. 나는 엄마가 차려놓은 아침밥에 입맛을 다시며 수저를 들었다. 엄마는 돋보기 안경을 끼고 신문을 읽고 있었다.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보니 어느새 자운이와 만나기로 한 시간에 가까워졌다. 나는 물을 마시고는 가방을 들러멨다. 엄마는 그제서야 신문에서 눈을 떼고 나에게 잘 갔다오라고 했다. 현관문에 서서 신발을 신고있는 나를 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너 치마가 그게 뭐야? 선생님한테 혼났어?"
원인은 치마였다. 나는 신발장에 있는 벽에 달린 전신거울에 비친 내 치마를 보면서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아닌데, 그냥. 왜? 너무 길어?"
"그건 긴 정도가 아니라 한복이라고 해도 믿겠다."
"잘 됬네. 나 간다."
나의 치마에 대한 엄마의 반응을 보니 희망이 보였다. 나는 간신히 발목에서 한뼘 정도 위에 올라와 있는 치마를 정리하며 집을 나섰다. 사실 어제, 나는 자운이를 꼬드겨 야자를 뺐다. 자운이도 공부할 의향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자운이와 함께 우리집에 들러 엄마가 찾아둔 나의 교복 치마 한 벌과 우리 언니의 또 다른 짧은 치마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그리고 자운이가 혹시 몰라 점심시간에 학생부에 새로 들어온 선생님에게 쫄라 받아온 긴 치마 하나를 다 해서 총 네벌이었다. 그리고 자주 가던 수선집에 갔다. 수선집 아줌마께서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고등학교를 올라온 이후로는 치마를 줄인적이 없던터라 거의 1년 반만에 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와 자운이는 아줌마에게 우리의 계획을 말씀해주셨다. 사실 다른 수선집에서는 거절했을테지만 아줌마는 하던 일도 멈추시고 우리를 도와주셨다. 작전명을 일명 '통치마 만들기'였다. 자운이는 도중에 엄마 몰래 야자를 뺀걸 걸리는 바람에 집에 불려갔다. 나는 나에게 화를 내는 자운이를 다독여주고는 수선집에서 아줌마를 계속 도와드렸다. 해가 지기전에 들렀던 수선집에서 나오고나니 어느새 달이 휘영청 떠있었다. 나는 흡사 목도리 길이와도 비슷한 치마를 목에 둘러메고 집에 돌아왔다.
이쯤되면 나도 내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가 의문이었다. 그냥 평소에 입고다니던 항아리 치마도 충분히 길었는데, 전학생한테 엿 한번 크게 먹이자고 작정하고 나니 돈도 시간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 항상 만나는 재활용 쓰레기장 앞에 서있는 자운이가 보이기 시작할 때 쯤, 자운이도 내가 보였는지 아주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아줌마는 역시 수선계의 갑이었다며 수다를 떨고나니 어느새 교실 앞에 도착했다. 사실 등교길에서 내 치마를 보고 웃거나 신기하다며 만져보고 간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우지호도 자신의 패배를 승복하겠지. 죽었어. 나는 아주 태연하게, 평소와 같이 문을 열었다. 내가 흥분한 탓에 문을 열때에 힘을 줬더니 생각보다 소리가 크게 났다. 나는 숨막힐 듯한 정적을 뚫고 내 자리로 갔다. 하지만 나는 나의 엉덩이를 의자에 붙일 수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OOOㅋㅋㅋㅋㅋㅋㅋ아침부텈ㅋㅋㅋㅋㅋㅋ개그치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나의 치마에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아, 정정하자면 내 뒷자리에서 엎어져있는 우지호 빼고. 나는 얼른 우지호에게 내 치마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교탁 쪽으로 나가 어깨를 뙇 펴고 큰소리를 떵떵 치기 시작했다.
"좀 섹시하냐?! 내가 우리학교 패셔니스타임ㅋ꿇엉ㅋ"
"ㅋㅋㅋㅋㅋㅋㅋ미친 OOO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였다. 목소리가 큰 자운이를 포함한 반 아이들이 웃어제끼자 시끄러웠는지 우지호가 부스스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나는 살짝 곁눈질하던 시선을 거두고 친구들에게 내 치마를 잔뜩 뽐냈다. 그러자 내 앞에 하도 많은 애들이 몰려와서 정작 보고싶은 우지호의 얼굴이 가려졌다. 나는 괜히 패션쇼를 하는 것 마냥 워킹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같잖은 드립에도 사진을 찍는 시늉을 해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우지호를 봤다. 그러자 어제 나를 뚫어져라 보던 그 째진 눈과 다시 한번 눈이 마주쳤다. 나는 보란듯이 활짝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했다. 나를 본 우지호는. 그니까. 우지호가 날 보고. 심지어. 무려. 우지호가. 글쎄. 웃었다. 그것도 활짝. 입을 벌리고 깔깔 웃었단 말이다!!!!!!!!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 더 격하게 포즈를 취했다. 눈을 감고 한 손은 허리에, 또 한 손은 머리에 대고있는 섹시포즈가 이번 컨셉이었다. 순간 나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기대했던 친구녀석들의 환호성이나 호응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쥐 죽은듯 조용해졌기 때문이었다.
"OOO."
"..안녕하세요 선생님...."
"..지금 뭐하는건가?"
"아..저..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실장으로서 모범을 보이고자 예쁜 교복을 입고 포즈를 취해봤습니다..어떠..신지요.."
하여튼 나는 중학교떄 부터 종소리를 못 듣는 것이 문제였다. 나의 주위에 가득하던 친구들이 없어진 것을 느꼈을 법도 한데 우지호가 웃었다는 사실에 정신이 팔려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아, 그리고 아무도 몰랐겠지만 나는 실장이었다. 함정 발견. 나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선생님의 눈빛을 견뎌내기 힘들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나의 임기응변에 대한 평가를 기다렸다.
"아까 했던 그 자세 그대로 뒤로 나가 서있어라."
"네.."
선생님의 한마디에 반 전체가 빵 터졌다. 나도 빵 터지고싶다, 이것들아! 나는 툴툴대며 뒤로 나갔다. 그리고 아까 취했던 섹시포즈를 다시금 취했다. 선생님의 수업에 집중하려던 찰나, 우지호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선생님 얼굴에 우지호의 웃는 얼굴이 씌여진 것 처럼 눈 앞에 그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 앞에 있는, 오른쪽 맨 끝 뒷자리에 앉은 우지호를 봤다. 보기도 싫을만큼 재수없었던 그 뒷통수에 자꾸 눈이 갔다. 눈 마주치면 안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우지호가 내 쪽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섹시 포즈를 취한 체로 자신을 보고있는 나를 보더니 우지호는 말했다. 물론, 가장 가까이 있는 나만 들릴 수 있는 목소리었다.
"웃긴 년."
그래. 나 웃긴 년이다, 이 웃긴 새끼야. 얘는 사내새끼가 상스럽게 왜 계속 년년거리는거야? 이게 내 나름의 복수라는걸 모르는건지 우지호는 계속 나를 보며 실실 웃어댔다. 게다가 내가 어제 받았던 그 똥을 자기한테 고스란히 대포로 퐝퐝 쏴댔는지도 모르고 나를 까진년에서 웃긴년으로 등업시켜주었다. 하여튼 호락호락한 녀석은 아닌 것 같다, 너 이 새끼. 나는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희열과 두근거림에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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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서 죄송해요 상황 설명하느라 럽라를 다음편으로 미뤘어요ㅠㅠ
어여쁜 독자들의 심장어택을 책임질!!!!!!!!!!!!!!!! 러브라인은 3편부터 시작입니다..★ 너무 전개가 느린가요ㅠㅠㅠㅠㅠ
짧은 댓글 한줄조차 쓰니에게는 사랑입니다 ★ 참고로 주인공은 고2에요!!! 우지호는 2학기 시작할 때 전학온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