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까진년이라고 했던걸 취소해줘서 고맙다고 해야되는건가.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느새 조용해진 복도를 보니 점심시간이 끝난 것 같았다.우지호랑 눈싸움하느라 소중한 나의 낮잠시간을..분노의 이갈기를 시작하려던 누군가 나의 등을 찰싹 때렸다.
"ㅇㅇㅇ! 음악실 가야되. 얼른 오샘."
자운이의 목소리었다. 어느새 나의 음악책까지 챙겨온 자운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는 음악실로 향했다.
수업 시작시간보다 조금 늦게 들어왔지만 음악 선생님은 아무 말 하지 않으셨다. 역시 준수쌤. 젊었을때 뮤지컬도 많이 하셨다는 준수쌤은 으컁컁 웃으며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다. 시험기간이 아닌 이상 이론 공부를 하지않는 선생님이었기에 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그때 우리반에서 키가 제일 작은 동영배가 손을 들었다.
수업 시작시간보다 조금 늦게 들어왔지만 음악 선생님은 아무 말 하지 않으셨다. 역시 준수쌤. 젊었을때 뮤지컬도 많이 하셨다는 준수쌤은 으컁컁 웃으며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다. 시험기간이 아닌 이상 이론 공부를 하지않는 선생님이었기에 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그때 우리반에서 키가 제일 작은 동영배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희 전학생 왔는데 노래 시켜요!!!!"
동영배다운 제안이었다. 사실 동영배도 2학년 1학기때 전학왔었다. 그때 1교시부터 음악이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우리반 애들이 노래를 시켰다. 동영배는 수줍은 표정으로 나오더니 갑자기 턴을 도는 바람에 우리반 애들이 화들짝 놀랬다. 갑자기 춤을 추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동영배 덕분에 음악실은 흡사 클럽과도 같았다. 선생님도 신이 나셨는지 화려한 반주와 함께 애드리브를 넣어주셨다. 그렇게 한바탕 쇼가 끝난 뒤 한명도 빠짐없이 동영배와 선생님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나는 동영배의 말을 듣자마자 오늘도 클럽데이겠구나 싶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말했다.
"맞아요!!! 노래 시켜요!!!"
"38번 우지호에요!!!"
"우와!!!!!"
"38번 우지호에요!!!"
"우와!!!!!"
나를 시작으로 아이들이 입을 열었다. 전학생 우지호의 존재를 알리며 우리반 아이들이 노래!노래! 를 외쳤다. 선생님은 으컁컁 웃으며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더니 말했다.
"저, 지호학생? 나와서 노래 불러봐요! 제가 반주 맞춰줄게요."
우지호는 아주 덤덤했다. 동영배는 수줍은 표정이라고 지었지 너는 뭐냐? 우지호는 당황한 기색은 커녕 썩소를 지으며 피아노 옆에 섰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선생님에게 귓속말을 하는 우지호였다. 우리는 오늘 아주 놀자판이겠구나 싶어 기대를 잔뜩 했다. 이윽고 말을 끝낸 우지호는 갑자기 인상을 쓰더니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갸우뚱하는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가 시작함과 동시에 고개를 까닥였다. 나는 순식간에 얼굴이 굳었다. 이거 뭔가 힙합인데? 지금 힙합 클럽이냐 여기?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한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우지호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빵 터졌다. 너 랩퍼구나. 그것도 허세 가득한. 생각해보면 저런 힙합 반주를 피아노로 하는 선생님도 신기했다.
"Yo, 너 꿈이 뭐니? 이렇다 할 비전이 존재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usiness man, 억단위 연봉, 1프로들의 세계? 경찰관? 변호사? 가수왕? underground? 금의환향? 여기서 잠깐, 노력은 왜 배제해?"
"큭컼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usiness man, 억단위 연봉, 1프로들의 세계? 경찰관? 변호사? 가수왕? underground? 금의환향? 여기서 잠깐, 노력은 왜 배제해?"
"큭컼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ㅋ"
나와 동영배를 제외한 우리 반 아이들은 입을 헤벌레 벌리고 우지호를 바라봤다. 나도 평소에 힙합을 즐겨듣는 편이어서 우지호의 랩에 관심이 갔다. 그런데 그냥 너무 웃겨서 웃음이 나왔다. 아, 왜 이렇게 웃기지? 참고로 동영배는 우지호의 랩이 시작되자마자 옆에 가서 꾸물거리며 춤을 췄다. 얼핏 보면 초밥 만드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둘의 공연에 폐가 터질 것만 같았다.
"와, 우지호군에게 박수!"
드디어 끝났다. 선생님도 놀랐는지 박수를 쳤고, 그에 따라 우리반 아이들도 박수를 보냈다. 물론 기립박수였다. 우지호의 랩은 상당히 심오한 가사였다. 뭐, 내 귀에 들린 것은 음탕한데만 쓰이는 혓바닥이라던가, 개좆이라던가, 시발년 정신차려와도 같은 임팩트 있는 가사였다. 저거 무슨 가수 노래인가. 멋진 정의의 사도 납셨네. 나는 한바탕 웃고난지라 얼굴이 화끈했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열을 식히고 있는데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우지호였다. 너는 나랑 눈을 안마주치면 입에 가시가 돋냐?
우지호는 내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반했냐?' 나는 또 웃음이 터져버렸다. ㅈ,지금 자기의 랩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있어...!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이를 어쩜 좋아...! 물론, 제대로 못 듣기는 했지만 얼핏 들은 바로는 듣기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다 떠나서 너가 하니까 웃겨. 진정한 웃긴 년은 너였어 우지호!
우지호는 내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반했냐?' 나는 또 웃음이 터져버렸다. ㅈ,지금 자기의 랩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있어...!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이를 어쩜 좋아...! 물론, 제대로 못 듣기는 했지만 얼핏 들은 바로는 듣기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다 떠나서 너가 하니까 웃겨. 진정한 웃긴 년은 너였어 우지호!
"자, OOO. 나와서 노래 한곡해요."
"ㄴ,네? 저요? 왜요?"
"ㄴ,네? 저요? 왜요?"
나 왜? 나는 우지호의 반했냐, 그 한마디 때문에 책상에 엎드려서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고있는 도중이었다.
웃은게 죄야? 날 왜 불러?
"아까 지호가 나왔을 때 부터 시끄럽게 웃는걸 보니 노래하고 싶어서 그런거 아니였어요? 얼른 나와요^^."
"아니, 쌤, 그니까! 아 하기 싫어요!"
"야,ㅇㅇㅇ. 빼지말고 해라! 아까 그 섹시포즈로 노래해주면 안되냐?"
"맞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쌤, 그니까! 아 하기 싫어요!"
"야,ㅇㅇㅇ. 빼지말고 해라! 아까 그 섹시포즈로 노래해주면 안되냐?"
"맞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요, 선생님.. 아니..나는 어느새 애들의 손길에 의해 아까 우지호가 섰던 곳으로 나가게 되었다. 뭐? 섹시포즈? 이것들이 진짜!!!!!!!! 또 내 섹시미를 보고싶었던거야? 아잉. 부끄러워. 물론 처음에는 당황스러워서 하기 싫다는 말을 했지만 나는 워낙 음악을 사랑하는 2학년 5반 실장으로서 봉사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정도야 껌이지. 섹시댄스를 출까 싶기도 했지만 이미 한번 써먹었던 컨셉이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생각해보았다. 지금 내가 체육복을 입었으니까…좋아! 결정했어! 가는거야! 데헷!
"선생님! 닐리리맘보로 갑시다!"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쟤진짜미쳤나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쟤진짜미쳤나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은 물론 온 교실이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갑자기 동성로에서 갔던 국수집이 생각나네..거기 이름도 닐리리맘보였는데..★ 어쨌든 나는 내 항아리 치마와 형제인 항아리 체육복에 맞춰서 한 선곡이 아이들 반응이 생각보다 좋아서 나도 얼씨구나 기분이 업됬다. 한때 나의 애창곡이었던 닐리리맘보의 반주를 들으니 저절로 춤바람이 들었다. 나는 흥겨운 가락에 맞추어 한국 전통 무용을 추기 시작했다. 물론 엉터리였겠지만 나의 쀨과 쏘울은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기에 충분했다.
"닐리리야 닐리리~~닐리리 맘보~~정다운 우리님 닐리리~~오시는 날에~~홍수에 비바람 닐리리~~비바람 불어온다네~~~~님 가신 곳을 알아야~~알아야지~~~~ 나막신 우산 보내지~보내드리지~~~닐,리리야 닐리리 닐리리 맘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들의 터질듯한 웃음소리와 함께 종이 쳤다. 나는 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내 자리로 돌아왔다. 자운이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본게 한두번이 아닌지라 별 반응이 없었다. 우지호의 랩에 빠져 내 노래를 아예 듣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지만, 어쨌든 우지호의 팬이 된 것만은 확실했다. 음악실을 나서며 나는 동영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왜냐하면 나의 닐리리맘보에 맞춰 춤을 같이 춰주었기 때문이다. 영배 별명이 괜히 흥배가 아니었어. 나는 또 한건 했다는 기쁨에 방실방실 웃었다. 노래를 시작하기도 전에 우지호가 웃는 모습을 보자마자 웃음이 났다. 아마 웃겨서겠지.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던건 너무 많이 쪼개서겠지. 암. 그렇고말고.
"야,ㅇㅇㅇ."
우지호였다.
우지호는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나와 걸음을 맞추어 걸었다.
얘 나 좋아해? 왜 매일! 언제! 어디서든지! 내 옆에 거머리처럼 따라오는거야?
"왜? 너야말로 내 노래에 반했냐? 누나가 가락 쫌 하지?"
우지호는 내 말을 듣더니 또 한바탕 웃었다. 자운이는 계속 늘어놓던 우지호 랩에 대한 칭찬을 뚝 그치고는 내 옆에서 핸드폰을 만졌다. 언제쯤 핸드폰 중독에서 벗어날런지 모르겠다. 쟤는 좀 심각해.
"와, 진짜. 그런가봐."
"뭐가 그런가봐야?"
"뭐가 그런가봐야?"
얘 독심술하니? 내가 마음 속으로 자운이의 핸드폰 중독의 심각성에 대해 논하고 있던 참인데 그런가봐, 라니.
너도 자운이가 핸드폰 때문에 계속 교무실 들락날락하던게 안타까웠냐.
"반한 것 같다고."
"응?"
"너한테. ㅇㅇㅇ."
"응?"
"너한테. ㅇㅇㅇ."
그래, 자운이한테 안타까웠구나라고 단정지으려던 참이었는데. 우지호의 말은 가히 충격이었다. 저거 고백이야? 너 이상형은 까진년인 것 같았는데 안 까진년에다가 섹시포즈를 즐기고 항아리 체육복을 입은 상태로 닐리리맘보를 부르는 웃긴년이었구나? 이제 잘 알았어. 이런 터무니 없는 장난까지 칠 줄알고, 너도 참 웃긴년이야. 랩 잘하는 웃긴년. 너의 혀는 음탕한데에 안쓰이는 대신 이런 장난에 주로 쓰이나보구나?
"눈치가 느린거야? 아니면 일부러 그런 척하는건가?"
"뭐라고?"
"뭐라고?"
내가 아무 말 없이 있는게 뭐가 어때서? 정확히 말하면 속으로 진지한 독백을 즐기고있던 중이었는데 우지호는 나보고 눈치가 느리냐고 물어왔다. 나는 도무지 상황파악이 되지않았다. 나한테 반했다는 우지호도, 그걸 듣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도. 방금 문득 깨달은게 한가지 있다. 그것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내가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은, 설렘때문이었다는 것. 점심시간부터 괜히 콩닥콩닥 뛰는 가슴은 바로 내가 설레고있다는 증거와도 같았다. 와, 미쳤어. 왜 설레? 나 왜 설레니? 너네도 설레니?
"어쨌든, 나는 고백했으니까 먼저 간다."
고백 한번 알차게 하는구나. 내 골도 빡빡 때려가면서. 나는 갑자기 옆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솔로는 떠나가는구나..흡!"
"자운아!!!!"
"자운아!!!!"
자운이는 말끝을 흘리며 우는 시늉을 하며 달려갔다. 나는 자운이에게 낭자! 낭자! 나를 버리고 어딜 가시오! 라는 정말 시덥잖은 드립을 날리며 쫓아갔다.
크게 두근거리는 심장은 내가 뛰어서 때문일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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