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angle
06
"이상으로 발표 마치겠습니다."
정재현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우리의 발표는 끝이 났다. 그동안 힘들게 버텼던 나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그래, 그래. 시민아 개고생이었지만 괜찮아. 만족스럽게 끝났잖아. 그걸로 됐어, 그걸로 된 거야. 의자에 앉아있던 교수님의 미소를 슬쩍 곁눈질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
앞자리에 앉은 김도영의 동글동글한 뒤통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때 그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김도영이 민형이를 알리는 없고, 그냥 아무 의미 없이 툭 던진 걸까? 그렇게 넘기기엔 좀 찝찝한데. 입을 앙다물고는 김도영에게 가 있던 시선을 거뒀다. 안 그래도 불편한 김도영의 존재는 그 날 이후로 더욱 더 불편해졌다. 김도영 피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떻게 알았는지 정재현이 카페 단골 손님을 자처했다. 다들 나한테 왜 이래?!
"음, 아메리카노."
"…."
"아이스로 주세요."
정재현은 뜨거운 걸 싫어했다. 자기가 겨울에 태어나서 그렇다나 뭐라나. 사실 조별 과제 이후로도 정재현의 얼굴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었다. 늦었다고 말하는 딱딱한 낯의 정재현의 모습이 머릿 속에서 둥둥 떠다녔고, 그냥 흘러갈 줄 알았는데. 정재현을 볼 때마다 떠올랐기 때문에. 정작 제 자신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매일 같이 카페의 발 도장을 쾅쾅 찍었더랬다.
그리고 어느 날이었다. 계산기 앞에 서서 창 밖을 바라보던 태일 오빠의 말에 나도 따라 창 밖을 쳐다봤다.
"비 올 것 같다."
"그러게요."
사실 와도 상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기상 예보를 미리 보고 왔기 때문에 우산을 챙기기도 했고, 없어도 뭐. 카페에 굴러다니는 우산 하나 집어 들면 그만이었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나였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이상한 날이었다. 청소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던 중 짧게 울리는 알림에 가방 속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우산 있어?]
정재현의 문자였다.
토독토독- 두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답장을 써내렸다. 전송 버튼을 누르려는데 띵. 하고 알림이 또 한 번 짧게 울렸다.
[없으면 데리러 갈게.]
그 문자에 나는 미리 써두었던 글자들을 지우고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려두었다. 토독. [괜찮아 우산 있어.] 전송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가방 속에 넣었다. 옷을 잘 정리하고 카페 밖을 나왔다. 얇은 빗줄기들이 힘차게 바닥으로 곤두박질했다. 가방 속을 뒤적거렸다. 그러다 손에 잡히는 핸드폰에 홀드키를 눌러 아직 읽지 못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정재현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그래도 데리러 갈게.]
뭐지? 왜 데리러 온다는 걸까.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지각한 이후로는 정재현한테 잘못한 일 없는데… 왜… 이 문자에 답장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그런 내 머리 위로 큰 그림자 하나가 얹힌다.
"데리러 온다니까."
그 주인은 다름 아닌 데리러 온다던 정재현이었고. 정재현은 자기다운 검은색 우산을 내게 씌어주었다.
"왜 왔어?"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사실 이 질문을 할까 말까 살짝 고민했다. 아무 뜻 없이 온 건데, 괜히 정재현의 입장이 난처해지진 않을까 했다. 그런 내 걱정과 달리 녀석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웃을 때마다 코에 잡히는 주름이 눈에 띄었다.
"비가 와서."
"…."
"네가 비 맞고 갈 거 같아서."
그래서 왔어. 정재현의 대답에 눈을 끔뻑거렸다. 비가 많이 오던 그런 날이었다.
Triangle
"다녀오겠습니다."
"어어! 민형아 잠깐만!"
하마터면 놓칠 뻔했네. 내일부터 중간고사라던 민형이의 말을 기억력 제로인 내가 똑똑히 새겨들었다. 뭐라도 챙겨줘야 할 것 같은 누나의 마음이랄까. 그래서 밤 동안 고민했는데. 딱히 해줄 게 없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이제 막 나가려던 민형이를 붙잡았다. 손! 하고 민형이를 쳐다보니 민형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게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손에 ABC초콜릿과 작은 막대사탕 등을 민형이의 작지 않은 손에 쥐여주었다. 단 게 기억력에 좋다길래. 내가 고딩 때 듣던 소리를 해대며 꼬옥 쥐여주었다.
"감사합니다."
"민형아 시험 잘 봐!"
"잘 볼게요."
민형이는 내가 준 사탕들을 입고 있던 후드 집업 주머니 속에 넣고는 그렇게 집을 나갔다. 나도 얼른 학교 갈 준비나 해야겠다.
그렇게 대충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집 밖을 나갔는데. 글쎄 문 앞에.
"일찍 나왔네."
정재현이 서 있었다.
"여길 왜…?"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질문이었다. 그런 내 질문에 정재현은 특유의 미소를 짓고 입을 천천히 뗀다.
"왜라고 물으면, 음."
"너랑 같이 가고 싶어서."
"주소는 유타가 알려줬고. 이제 궁금한 거 풀렸어?"
나유타 이 미친놈이 결국은 일을 치는 구나. 정재현의 마지막 말에 지금쯤 세상 모르고 자고 있을 유타의 멱살을 잡아드는 상상을 했다. 상상? 아니 곧 현실로 실현될 그런 상황을 말이다. 학교를 갈 땐 정재현과 함께, 끝나고는 김도영과 함께. 난 어쩌다 이 신세를 지게 된 거지….
"난 이쪽으로 가야 돼. 너는?"
"어, 난 강교수님 수업이라서!"
나는 어색한 웃음을 얼굴에 띄운 채 정재현의 옆에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학교에 도착하고 정재현과 다른 수업에 마음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더랬지. 하지만 그 환호성도 얼마 안 가 이어지는 정재현의 말에 뚝 끊겨버리고 말았다.
"이따 점심 같이 먹자."
"어어? 아니 왜…."
"왜? 다른 약속 있어?"
"아! 유타랑 미리 약속한 게 있었는데, 깜빡했다."
"유타 다른 약속 있다던데?"
뭐 시바? 헉. 하마터면 진짜 욕할 뻔했다. 하긴 나유타는 나 말고도 친구가 많았지 참…. 아니 그래도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나한테 말 한 마디 없이? 그것도 정재현은 아는 사실을 내가 모른다고? 새삼 깨닫는 얄팍한 우정에 나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내가 강교수님 수업을 어떻게 들었더라.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들을 원망하며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정재현의 모습에 주먹을 작게 그러쥐었다. 나를 싫어하던 게 아니었나. 싫어한 거면 끝까지 싫어하지 왜 갑자기 다가와서 나를 이렇게 무섭게 만드는 거냐고 당장이라도 달려가 놈의 소매를 붙잡고 묻고 싶었다. 물론 그러진 못 했지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글쎄… 나는 아무거나."
아무거나라고 했지. 비싼 거라고 안 했습니다만……. 밖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돈 냄새에 나는 문을 잡으려던 정재현의 팔을 다급하게 잡았다. 아니, 무슨 가게가 이래? 아주 번쩍번쩍하네. 내게 잡힌 팔을 한 번, 내 얼굴을 한 번 보던 정재현은 왜? 라며 천연덕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니. 여긴… 좀."
내 지갑에 얼마가 있더라. 시간이 갈수록 얇아지는 지갑 사정에 울컥했다. 차마 비싸 보인다고 말은 내뱉지 못한 채 나는 주뼛거렸다.
"괜찮아. 내가 살게."
"아니, 얻어 먹기……"
"미안해서 그래. 할 말도 있고."
정재현한테 얻어 먹기는 더 싫었다. 싫었는데. 조금 쓰게 웃는 정재현의 미소를 보니 더 이상 말이 안 나왔다.
어니언's
이젠 주말에 오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네요. 오늘은 재현이 편 같죠?
다들 정글의 법칙 보셨나요? 전 본방으로 챙겨보면서 소리를 꽥꽥 질러버렸답니다. 재현나ㅠㅠ 다치지마ㅠㅠ
혹시 트라이앵글에서 보고 싶은 소재나 그런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항상 댓글 감사드려요. 진짜 글 쓰는데 힘이 팍팍 솟아난답니다. 독자님들 모두 감사드려요 ^___^
암호닉은 새 글마다 신청해주시면 돼요. 정리는 언제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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