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복도 유타
어니언
아빠의 직장이 옮겨지면서 나는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머나먼 곳으로 말이다.
"일본 가면 잘생긴 사람 많으려나?"
일본, 나는 일본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지금 잘생기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고 이 친구야… 낯도 가리고 소심킹인 내가 과연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나가복도 유타
1日
"自己紹介してみる?"
(자기소개 해볼래?)
"아, 私の名前は김시민です."
(아, 제 이름은 김시민입니다.)
"君の席はあそこ."
(네 자리는 저기.)
"はい."
(네.)
일본으로 전학 오기전 짧게 배운 일본어가 빛을 뽐내는 순간이다. 평소에 일본어 공부 좀 해둘 걸 그랬다.
그래도 이 학교엔 한국인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몇몇 있었다. 몇몇이라고 해봤자 전교에 나까지 합하면 4명 정도?
선생님이 가리킨 내 자리는 창가 쪽 맨 끝자리였다. 자리로 가는 걸음마다 반 아이들의 이목이 따라붙는다.
"안녕?"
응? 한국어?
가방을 고리에 걸고 교과서를 책상 서랍에 넣을 찰나에 옆자리의 남자애가 등을 내 쪽으로 돌리더니 내게 인사를 건넨다.
낯선 땅에서 듣는 한국어가 신기해 나도 모르게 그 남자애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쳐다보면 쑥스러운데."
그렇게 말하는 남자애의 상기된 두 귀가 눈에 띄었다.
"한국어… 할 줄 아네."
"응. 동방신기 팬이거든."
그래서 혼자 공부했어.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린 채 말하는 남자애의 모습이 정말 즐거워 보여서 나도 따라 웃었다.
유타, 나카모토 유타. 제 이름은 유타라고 말하며 내게 뻗은 그 손을 따라 잡았다. 커튼을 펄럭거리게 만드는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가을이었다.
유타는 키타고등학교 축구부 주장이라고 했다. 시간 되면 경기를 보러 오라며 축구화를 손에 들고 교실을 나갔다.
방과 후 선생님과의 간단한 상담을 끝내고 가방을 가지러 교실로 들어갔다.
해가 떨어지려는지 주황빛의 노을이 아른아른 교실을 비추었다. 제 자리 쪽으로 가면 갈수록 선명하게 들리는 아이들의 고함 소리 그리고 공을 찬 소리.
창문으로 다가가 운동장을 쳐다보니 연습이 한창인지 각자 편한 옷 뭐 편한 옷이라고 해봤자 티셔츠 한 장이라거나 체육복이었다.
아무튼 그런 편한 옷을 입고 운동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남자애들을 바라보았다.
"こちらへ!"
(이쪽으로!)
운동장 한 가운데서 얇은 흰 티 한 장을 걸친 채 축구공을 뻥뻥 차대는 유타의 모습이 보인다.
축구에 대해선 1도 알지 못하는 축알못이었지만 그래도 잘한다 못한다 쯤은 그냥 봐도 알 수 있었다. 유타는 축구를 잘한다.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교실을 그리고 학교 건물을 빠져나왔다.
운동장과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자판기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음료수라도 뽑아서 마시면서 가야겠다.
대충 복숭아로 보이는 그림이 그려진 캔음료를 뽑으려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눌렀는데.
"ありがとう."
(고마워.)
언제 내 옆으로 온 건지 허리를 굽혀 뽑은 음료를 재빠르게 가져가 딸칵 따버리는 유타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 입을 작게 벌린 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땀으로 샤워를 한 건지 땀에 티셔츠가 군데군데 젖어있었고 머리는 물기가 가득했다.
"머리는 물이야."
"응?"
"오해하고 있는 거 같아서."
머리에 가득한 물기도 땀으로 착각한 나를 눈치챈 유타가 말했다. 아, 물. 물이구나. 난 또 땀 때문인 줄 알았네.
"あしたね."
(내일 보자.)
자판기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빈캔을 넣고는 그렇게 사라졌다. 조금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다.
나가복도 유타
2日
"出て."
(나가.)
"はい."
(네.)
일본으로 전학 온 지 일주일 정도가 되었을 때 알게 된 건 유타는 공부엔 영 흥미가 없는 학생이라는 거.
"中本 悠太."
(나카모토 유타.)
"…."
"中本 悠太!"
"에?!"
그리고 잠도 많아서 매일 복도로 쫓겨나가는 학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수학 교과서를 베개로 삼은 채 자고 있던 유타는 선생님의 호통 소리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고 그에 수학 선생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듯 활활 타오르는 얼굴을 하고 계셨고 반 아이들은 이 상황을 바라보며 저들끼리 하하 호호 웃어댔다.
"김시민."
"はい."
(네.)
"君も出かけて."
(너도 나가.)
"네?"
이유인 즉슨, 옆에서 유타를 안 깨우고 뭐 했냐며 슬립방관죄라는 죄목으로 나까지 복도 신세를 맞았다.
복도로 나가니 벽에 등을 붙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유타가 문 열리는 소리에 내 쪽으로 고개를 휙 돌린다.
"안녕!"
안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누구 때문에 복도로 나오게 된 건데.
유타와 살짝 떨어진 곳에 나도 따라 무릎을 꿇고 앉았다.
차가운 복도 바닥의 냉기가 온몸을 타고 흐른다. 오소소 닭살이 돋을 것만 같았다.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수학 선생님의 말소리 저 너머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귀 소리가 듣기 좋게 귀를 감싼다.
그러다 훅 끼쳐오는 차가운 바람에 팔뚝께를 비비고 있으면.
"자."
"…?"
"입어."
제 가디건을 내 쪽으로 던져주는 유타의 옆선이 보인다. 또 두 귀가 빨갛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게 있는데.
"유타가?"
"응. 나카모토 공부 잘해."
1등 놓친 걸 한 번도 못 봤다니까?
어느새 친해진 앞자리의 하루나의 말에 나는 도시락에 있는 계란말이를 쿡쿡 찌르던 걸 멈췄다.
"곧 있으면 나카모토 생일이네."
"응? 그래?"
"응. 우리 반은 반끼리 파티 해줘. 파티라고 하기에도 소소하지만."
나가복도 유타
3日
10월 24일 그러니까 유타의 생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상점가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일본으로 전학 온 지 한 달이 좀 지났을 때였다.
뭘 줘야 좋아할까? 뭐가 좋을까? 따위의 고민을 하며 학교가 끝나고 장장 3시간 동안을 혼자 돌아다녔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선택한 건.
"괜찮겠지."
축구화, 아니 신발 주머니였다.
신발 주머니만 달랑 주긴 좀 그래서 그 안에 라멘이라던가 젤리라던가 간식거리들을 꽉꽉 채워 넣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마음에 안 들어도 뭐, 뭐! 몰라!
그렇게 다음 날 10월 25일이 되었고 유타의 생일이 정말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하지만 유타는 평소와 다름 없이 여전히.
"中本 悠太."
(나카모토 유타.)
"… はい."
(네.)
이젠 선생님의 나가라는 소리 없이도 자연스럽게 복도를 향하는 유타의 모습에 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先生."
(선생님.)
"うん?"
(응?)
"私も行きます."
(저도 나갈게요.)
그렇게 말하고 교실을 나가는 날 쳐다보는 선생님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긴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어요. 센세.
"에?"
"안녕."
복도로 나가니 전에 봤던 그 모습 그대로 벽에 등을 기댄 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유타가 나를 보더니 두 눈을 크게 뜬다.
"이거."
"…."
"お誕生日おめでとう."
(생일 축하해.)
그리고 저번에 가디건도 고맙고. 어색하게 뻗은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차마 유타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인 채 선물을 건넸다. 아직 하루가 남았지만, 내일이면 뭔가 못 주게 될 거 같았다.
파티하느라 반엔 아이들로 가득할 거고 그 자리에서 줬다간 무슨 소문이 퍼질지 모르기에.
"대박."
"응?"
"진짜 고마워. 생각도 못 했는데."
대박이라는 감탄사에 슬쩍 눈을 들어 올리니 평소에도 잘 웃고 다니는 그였지만 그런 미소와 다른 또 다른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선물을 끌어안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기뻐하는 유타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던 건지 유타는 그런 내 얼굴을 한 번 스윽 쳐다보고는 그대로…
"ありがとう."
(고마워.)
"…."
"本当に."
(진짜로.)
제 품에 나를 빈틈없이 가두어버린다.
그렇게 다음날에 B반끼리 그러니까 우리 반끼리의 소소한 생일 파티가 시작되었다.
책상을 붙이고 붙여 가운데에 큰 케잌을 놓고 칠판 벽 쪽을 알록달록한 색깔들의 풍선으로 꾸며놓고 칠판엔 축하한다는 글들이 가득했다.
나와 유타는 서로 생크림을 얼굴에 묻히고 묻혀가며 그렇게 재미있고 소란스러운 날을 보냈다.
나가복도 유타
4日
"네? 갑자기요?"
"졸업식 끝나고 다음날 바로 갈 거니까 짐 미리 챙겨두고."
헤어짐이란 예고 없이 이루어진다.
아빠의 직장 문제 때문에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것도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가을이 시작하는 날에 왔으며 봄이 시작하려는 듯 날씨가 꽤 포근해지는 그런 날 나는 떠나게 되었다.
"에? 떠난다고?"
"응. 졸업식하고 다음 날에."
점심시간에 마주 앉아 도시락을 꺼내며 나는 하루나에게 말했다.
하루나는 한국 드라마 팬이라 유타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어가 능숙해 하루나와 대화할 때 만큼은 한국어를 주로 썼다.
하루나의 배려였다.
"유타는?"
"…."
"알고 있어?"
"… 아니."
말할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모른 척해 줄 수 있어?
내 부탁에 하루나는 입안 가득한 밥을 오물오물 씹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도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거야. 걱정 가득한 눈을 하고서 하루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졸업식의 3월 6일이 되었고.
아이들의 눈에는 설렘 반 그리고 슬픔 반으로 가득했다.
"유타한테는 말했어?"
"… 아직."
"아직도?!"
빨리 말해야지 말해야지 하며 미루고 또 미루다 보니 어느새 졸업식 날이 되어있었다.
저 멀리서부터 이쪽으로 뛰어오는 유타의 모습에 나는 재빨리 검지를 입에 갖다 댔다. 말하면 안 돼.
내 행동에 하루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등을 돌려 앉았다.
"늦었지."
"괜찮아. 아직 시작 안 했어."
"그럼 다행이고."
숨을 고르는 유타의 옆선을 가만히 응시하다 선생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모든 졸업식의 일정이 끝나고 강당을 나가자마자 쏟아지는 여학생 무리에 나는 유타와 떨어지게 되었다.
대충 대화를 엿들어보니 같이 사진을 찍자는 등, 두 번째 단추를 달라는 등, 더 나아가서 고백을 하는 여자애까지 보았다.
맞다. 유타 인기 많았지.
축구부 주장에 얼굴도 저 정도면 잘 생겼고, 성격도 뭐…… 하루나의 말로는 교내 인기 투탑이란다.
투탑이 뭐야 투탑이 오글거리게. 언제 한 번 혀를 끌끌 차는 나를 보며 콧대가 으쓱해져선 자랑을 하는 유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 이런 사람이야."
따위의 개소리를 지껄이곤 했었지.
"시민!"
그 많은 여자애들 사이에서 낑낑거리며 나온 유타는 큰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이쪽으로 성큼 다가왔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그런 유타의 손을 잡아 내 쪽으로 잡아끌었다.
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유타는 어정쩡한 자세로 나에게 붙잡혀 있었다. 그래, 여기서 더 끌면 안 돼.
"유타."
"왜?"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유타의 미소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왈칵 울음이 터질 뻔했다.
입술을 꾹 깨물며 저를 바라보는 옅게 떨리는 내 시선에 유타 역시 얼굴에 웃음기를 싹 지우고는 짐짓 진지한 낯으로 나를 바라본다.
"무슨 일 있어?"
걱정 가득한 두 눈을 하고서 나를 바라보는 유타의 모습에 입술을 더 꽉 깨물었다.
"왜 무슨 안 좋은 일……"
"나 한국으로 돌아가."
"에?"
"나 한국으로 다시 가게 됐어."
한 마디 한 마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며 힘겹게 내뱉었다.
감은 눈을 살짝 뜨며 유타의 표정을 살폈다. 굳었던 표정이 서서히 풀리더니 이내 환하게 웃는다.
환하게 웃는다?
"잘 됐네. 축하해!"
"… 어?"
한국에 가면 보고 싶었던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원래 살던 곳에 돌아가는 거잖아. 더 좋은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유타가 정말 축하한다는 듯이 쳐다봐서 그래서 나는 그냥 그 자리를 피했다.
사람이 어떻게 저래? 슬프지도 않나? 나만 유난 떠는 건가?
반대로 유타가 떠나게 된다고 하면 난… 난…… 그냥 아, 생각하지 말자.
나가복도 유타
5日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고작 하루긴 했지만 유타는 그 날까지 아무런 연락 하나 없었다.
진짜 뭐야?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정말로? 나만 슬퍼? 나만 떠나는 게 싫어?!
텅 빈 집안을 한 번 둘러보다 문고리를 잡아돌렸다.
"… 안녕."
그리고 보이는 얼굴에 풀썩 주저앉아 버리고 만다.
"어디 아파? 괜찮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급 창피해진 느낌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따라 한 쪽 무릎을 굽혀 나와 눈높이를 맞춘 유타는 내 어깨를 아프지 않게 잡은 채 이리저리 나를 살폈다.
고작 그 하루 목소리 못 들었다고 얼굴 한 번 못 봤다고 혼자 화내고 슬퍼하는 내가 나도 참 낯설었다.
"좋아해."
그래서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난 이 말을 뱉을 수밖에 없었던 거야.
아닌 척하면서도 난 유타를 좋아하고 있었던 거였다.
무릎에 얼굴을 박은 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고개를 들면 바로 유타의 얼굴이 보일 거고 그럼 되게… 민망하잖아.
"시민."
"…."
"나 봐."
머리 위로 내려앉는 낮은 음성에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바람 빠진 웃음을 지은 유타는 곧 제 두 손을 올려 내 볼을 감싸 쥔다.
떨림 하나 없이 나를 쳐다보는 그 곧은 시선에 나는 눈알을 도르르 굴려 시선을 피했다.
"私も"
(나도)
"…."
"好きだよ."
(좋아해.)
그렇게 말하며 나를 꽉 안아주는 유타가 좋았다.
천천히 뒷머릴 쓰다듬어주는 유타의 손길이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었지만 그도 잠시 나는 한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도 가까워지면 더 가까워졌지 멀어지지 않았다.
그 부분에 있어선 유타의 노력이 정말 크게 느껴졌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주었다. 유타는 그런 애였다.
(사진)
ㅡ 오늘은 관람차를 타고 왔어. 시민 너랑 같이 탔으면 더 좋았을 텐데.
관람차를 배경으로 한 유타의 브이 셀카를 보며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옆에 있던 김도영은 혀를 끌끌 찼다.
"아주 머얼리 떨어져 있으면서 다른 애들보다 더해."
"뭐가?"
"걔도 참 대단하고, 너도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친구야."
ㅡ 내가 전에 말했던 친구들. 오늘 얘들이랑 동방신기 콘서트 보러 갔다왔어. 얘들이 너 보고 싶다 그러더라.
그렇게 유타와의 연애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예쁘게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고.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것은 일본으로 전학을 가게 된… 음 유타의 옆자리에 앉게 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