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도령에게 시집가기
글 잎련
"..가게에 같이 갈래?"
나와 어떻게 혼례를 하게 되었는지 덤덤히 이야기하더니, 막상 말을 마치고 보니 민망한 것인지 한참을 아무 말이 없다가 건넨 첫 마디였다. 평소에도 자주 하던 말이었는데, 오늘따라 왜이리 쑥쓰럼을 타는지. 조금 붉어진 서방님의 귀에 몰래 웃은 내가 먼저 서방님의 손을 덥썩 잡았다. 당황스러워하는 서방님을 쳐다보며 씩 웃었더니 반대쪽 손으로 내 이마에 아프지 않게 꿀밤을 먹인다.
"놀리는 것이냐."
"제가요?"
서방님의 목소리가 조금 퉁명스럽게 들려왔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잡았던 손을 놓지 않는 모습에 미소가 저절로 피어올랐다. 일부러 더 눈을 크게 뜨고 반문하자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버린다. 놀리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구나 싶어 또 몰래 큭큭거리는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서방님이 잡고있던 손을 이끈다.
"가자,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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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은 나와 혼인하기 몇 달 전부터 아버지께 물려받은 가게를 하나 운영하고 있다. 작지는 않은 책방인데, 의외로 독서를 즐겨하시는 서방님은 꽤 적성에 맞는다고 하신다. 나도 책을 즐겨 읽었었고, 책 냄새와 나무 냄새가 섞인 오묘한 향을 좋아했기 때문에 신나서 서방님을 따라갔다.
"처음인가?"
"네!"
"왜 이리 신났어."
"그냥요!"
서방님과 함께 걸어서 그렇다고는 아직 부끄러워서 말을 못하겠다. 나란히 걸으며 마주잡은 손을 앞뒤로 흔들거리자 서방님이 신난 나를 보며 웃는다. 덩달아 웃음지은 나는 조금 앞에 보이는 가게로 걸음을 빨리하며 서방님과 잡은 손을 이끌었다. 넘어지니 천천히 가라는 서방님의 말에도 내 발걸음은 느려질 생각이 없다. 결국 서방님도 포기한 듯 헛웃음을 짓는다.
"오셨습니까."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답지않게 낯선 사람을 조금 어려워하는 내가 서방님의 뒤로 살짝 몸을 숨기자 책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나에게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보낸다. 가까이 서있던 분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던 서방님이 뒤로 숨은 나를 보고서 잡고있던 손을 놓고 내 어깨를 감싸더니 앞으로 데려온다. 으, 부담스러워..
"누구신지..?"
"부인."
순식간에 집중된 시선들에서 나오는 궁금함이 서방님의 한마디에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민망해.. 가족이 아닌 사람들 앞에서 서방님 부인 하는 건 처음이라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에 뒷걸음질 치다보니 서방님의 가슴팍에 툭 기대어 섰다.
"그만들 해."
"형님이 안해님 데려온 게 처음이지 않습니까!"
"쑥스러워 하잖아."
(안해님;'부인'의 옛말)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내 머리 위에 살포시 손을 올려놓은 서방님이 벗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장난을 말리자, 놀림이 섞인 야유가 들려온다. 어떻게 해야되나 싶어서 서방님을 살짝 올려다보니 여느 때처럼 나를 다정히 쳐다보고 있다. 괜히 더 부끄러워져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목 축일 거라도 드릴까예?"
"아,아 네..! 감사합니다.."
"얘 찬거 먹으면 추워하니까 따뜻한 걸로."
무심한 듯 나를 챙기는 서방님의 말에 어우- 하는 원성이 또 튀어나온다. 그와중에 설렌 나는 미소진 얼굴로 서방님을 쫄래쫄래 따라가 옆에 착 붙어 앉았다. 나란히 앉은 서방님과 나의 앞에 금세 사람이 채워진다. 다들 장난끼 가득 묻힌 얼굴로.
"저기.."
"네?"
"우리 형님 어디가 마음에 들었습니까?"
능글맞은 물음에 오히려 서방님이 더 난리다. 급하게 입을 막으려고 손까지 마중나간다. 시끌시끌하게 투닥거리는 모습이 오랜만에 서방님의 나이다운 모습이라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크게 터진 내 웃음에 잠시 적막이 돌던 가게가 서방님과 벗들의 웃음소리도 더해져 왁자지껄해진다.
"형님이 그렇-게 얘기를 얘기를!"
"진짜요?"
"...거 그만 하라니까."
한바탕 웃고 나니 한결 편해진 분위기에 벗들처럼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당연히 화제의 중심은 나와 서방님. 평소에 서방님이 벗들에게 나의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한다고 한다. 전혀 안그럴 것 같이 생겼는데. 의외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겨서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집중하자 서방님은 옆에서 한숨을 쉬며 손으로 얼굴을 쓸어낸다.
"곱다고 곱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길래 집에 한번 놀러가야하나 생각했다니까요!"
"곱긴 고우시네요, 형님한테 아깝습니다요."
아이고. 민망한 말들의 연속이다. 그래도 기분좋은 말들에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슬쩍 서방님을 쳐다보니 붉어진 귀로 앞에 놓여있는 땅콩을 벗들에게 던진다. 그 작은 것들로 멈출 줄 모르는 입을 막으려. 그러거나 말거나 이야기 보따리는 바닥나질 않는다.
"야 그만하고 일들 해 이제. 손님오셨다."
한창 재밌었는데 손님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 멈춰야만 했다.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손님들을 맞던 서방님의 벗들이 눈인사를 건넨다. 웃음으로 화답하며 생각했다.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고. 내가 모르던 서방님의 모습을 듣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옷 매무새를 정리하는데 서방님이 내 어깨를 감싸더니 가게 밖으로 이끈다.
"이제 집에 가야지?"
"서방님은요?"
"오늘 쉬는 날이다."
슬쩍 내 손을 잡아오는 서방님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장터를 걸었다. 서방님이 작은 갑판을 구경하고 있을 때, 길가에 핀 꽃들이 너무나 예뻐 나도모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노랗게 핀 들꽃들을 구경하다 서방님께도 보여드려야겠다 싶어 막 부르려는 찰나, 여전히 갑판을 구경중인 서방님의 뒤에서 볽을 붉히며 서방님을 바라보고 있는 두 명의 여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여간 눈을 뗄 수가 없다.
"서방님!"
"아, 연아."
발걸음을 서둘러 서방님 곁에 다가갔다. 꼭 붙어서는 것도 모자라 팔짱까지 꼭 꼈다. 평소답지 않은 내 모습에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서방님은 내가 여자들에게 보내는 찌릿한 시선을 보고서 그제야 알겠다는 듯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부인."
"네?"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서방님을 쳐다보니, 작은 꽃비녀를 내 머리에 꽂아준다.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시선에 괜히 부끄러워진 내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씁. 하며 내 얼굴을 양 손으로 감싸고 눈을 맞추는 서방님이다. 가슴은 두근거리지만 아까의 질투심이 아직 사그라지지 않아 표정이 풀리지가 않는다.
"누구 부인인지 참 곱다."
"..이제 아셨습니까."
"왜 이리도 토라진 것이냐."
"..."
어서 말해 보거라, 응?
달래는 듯 한 서방님의 말에도 뾰루퉁한 표정으로 서방님이 사준 비녀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뒷짐을 지고 있던 서방님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모른 척 하려고 했는데,"
"..."
"이리 귀여우면 나보고 어찌하란 말이냐."
잠시 까칠해졌던 내 마음은 , 서방님의 포옹과 말 한마디에 녹아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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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향내 풍기며 집으로 들어온 우리는, 시부모님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계신 우리 아버지의 모습에 서둘러 다가가 앉았다. 소소한 이야기를 하던 중, 따뜻한 차를 마시던 내가 칠칠맞게 치맛자락에 차를 조금 흘리고 말았다. 금세 스며드는 차에 다리를 조금 데인 내가 앗 뜨거, 하는 반응을 보이자 서방님이 더 놀라서 자신의 도포자락으로 치마에 묻은 차를 닦아낸다.
"괜찮은 거야? 뜨거운데 조심해야지. 약을 발라야겠다."
"아니에요, 이따가 발라도 되요 서방님!"
"혼나고 싶은 것이냐."
짐짓 단호하게 말하는 서방님의 모습에 꼬리를 내린 내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금세 방에서 약을 가져온 서방님이 발목 부근에 빨개진 부분에 약을 살살 발라준다. 세심하고 자상한 모습은 좋다. 좋은데, 다만 한가지 민망한 점은, 이 모든 상황이 시부모님과 아버지 앞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것이다. 시부모님께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고 서방님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약간 인상을 쓰고서 약을 살살 바르고 있다.
"근데 김서방."
"예?"
가만히 지켜보던 아버지께서 입을 열었다. 그때까지 난 몰랐다. 아버지께서 얼마나 폭탄발언을 하실지. 그때로 돌아간다면 서방님을 부를 때 입을 막을 것이다.
"너희, 합방은 할 생각이 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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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바쁜 와중에도 부지런히 글을 썼어야 했는데, 게으른 작가를 탓하세요ㅠㅠ
오늘도 읽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남은 연휴 건강히 잘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