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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 Cain, The World ; 낡은 탑의 지하 문이 삐걱거리며 요란하게 열렸다. 소년은 재빠르게 문 틈새로 파고들었다. 아무도 없는 내부를 빠르게 스캔한 소년은 악취가 풍겨오는 방치된 지하를 넘어 계단을 뛰어 올라 위층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인 틈새로 소년이 파고들었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소년의 몸 어딘가에 역십자가의 모양새를 한 흉터같은 낙인이 찍혔다. 소년의 왼쪽 맨발에 채워진 정교한 옴 문자가 새겨진 금제 발찌가 번쩍 빛을 발하고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소년의 존재를 모르는 듯 가만히 제 갈길을 향해 걸었다.



* Abel, The Wheel of fortune ; 탑의 아벨이라고 불리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탑의 중상부에 위치한 곳에서 비밀스럽게 머물고 있었다. 그는 신의 간택자였다. 동그랗고 맑은 눈 위로 신의 안개가 내려앉아 탁해질 때, 그는 신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탑의 사람들은 그의 몸 안에 들어 앉은 신의 자아를 찾아댔다. 아벨은, 속세에 지친 나머지 속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었다. 그는 이 탑을 나가고 싶어했다. 탑의 신이 간택한 인간은 여길 나갈 수 없다, 무겁게 짓누르는 신의 굴레는 그로 하여금 더 어두운 심연의 빛을 머금게 했나니, 어두운 구름을 응시하던 소년의 눈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자리했다.



『What A Horrible night.』


* Whore of Babylon, The Hanged Man ; 바빌론의 창녀라고 불리는 소년이 있었다. 사창가를 배회하는 소년. 여자마냥 곱상한 외모에 흰 피부, 회색빛 눈과 머리를 가진, 뚜렷한 삼백안이 매력적인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이 온 후에, 탑의 사창가에는 이런 소문이 돌았다. 그 소년은, 육욕에 미친 자들을 처단하는 신의 사자라고. 혹자는 바람의 아이라는 이야기도 넘실거렸다. 소년은 늘 어딘가에 맴돌며 꾸준히 같은 곳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탑의 사람들은 그를 종종 보았다는 말을 했지만, 그 사람들의 자취는 어딘가로 감추어졌다. 진실로 그 소년이 신의 사자인가, 하는 사람들의 억측이 허공에 둥둥 떠 다닐 뿐이었다.



* A God, The Sun ; 탑을 지배하는 자는 누구인가. 탑의 지배자. 탑의 왕이자 탑의 신. 신전 앞에 선 소년은 혀를 툭 찼다. 탑의 신, 태양의 가호 아래 우리는 영생을 누리리니. 금으로 만들어진 판 위로 새겨진 글자는 그가 혀를 차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신을 찬양하다니. 어디 찬양할 것이 없어서 신이라는 허울뿐인 존재를 찬양하는가. 소년은 통탄했다. 잔뜩 눌러 쓴 로브의 두건을 더 깊게 눌러 쓴 소년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후드 자락 사이로 소년의 금발이 흩날렸다. 금색의 빛가루가 소년의 뒤를 따라 흩어졌다. 아벨, 아벨은 어디 있는가. 탁한 음기를 잔뜩 머금은 아벨의 징조는 심상치 않았다. 이대로, 이대로 날아가 버리려는가. 그의 등에 자리잡은 검은 태양 문양이 붉은 빛을 띄었다.



* A Magician, The Moon ; 달의 눈을 가진 아이다. 눈동자가 투명했다. 투명하고 맑은 눈동자 속 푸른 기운이 감도는 안광이 그의 눈동자를 채우고 있었다. 아,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소년의 피부는 희었고 머리칼 역시도 푸른 빛을 띈 검은색이었다. 사람들은, 소년을 달의 아이, 혹은 빛의 아이라고 칭했다. 소년의 얇은 등줄기 옆에 자리한 날개뼈는 톡 튀어나와 있었다. 당장이라도 날개가 튀어 나올 듯한 그 모양새에 사람들은 간혹 그를 천사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18세가 되는 해에, 사람들을 피해 탑을 오르겠다는 일념으로 각 층 어딘가에 숨겨진 계단을 찾기 시작했다. 꼭 탑의 꼭대기에 있는 태양을 만나려무나, 제게 항상 되뇌듯 말하던 제 할미의 뜻을 따라 달의 아이는 그렇게 탑의 위로 떠올랐나니, 그의 날개뼈 위로 새겨진 검은 달이 푸르게 빛이 났다.



* A Sin, The Fool ; 탑의 지하. 탑의 최하층. 탑을 열고 닫을 수 있으며 탑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자.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탑의 규율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탑의 최하층을 지키는 수호인임과 동시에, 탑을 나갈 수 있으면서 스스로 구속되길 원하는 죄의 굴레에 걸린 자요, 어리석은 자였다.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알 길이 없었다. 자신을 심연 속에 밀어 넣으며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그 고통을 잊어낼 방도를 잘 알고 있지만 행하지 않는 가학적인 자.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만들어낸 심연이었다. 누군가가, 누군가가 이 곳으로 와 주기를 바란다. 오늘도 그는 허공에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은 자리에 고이면 썩기 마련이었다. 악취를 풍기는 물이 그 자리에 조용히 파원을 그렸다.



* The Tower ; 탑의 기류가 뒤숭숭해졌다.




+ + +


제 1 장


-조우-

02


+ + +




소년이 가고자 하는 곳은 이곳의 위층, 최상층도 아닌 탑의 지하였다. 소년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지하에서 자신을 부르는 자가 있다는 것을. 소년은 지하로 내려가길 강력하게 원했다. 그리고 소년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소년은 성인식을 치르기 이전에 출가하여 홀몸으로 탑을 내려가기로 결심했고, 실행에 옮겼다. 소년은 현재 자신이 머물고 있던 층에서 꽤나 많이 내려와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소년에게는 많은 미사여구가 붙었다. 그 이유인즉슨 소년이 머물고 간 층에서는 꼭 일곱번의 살인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살인의 이유는 간단했다. 아래층으로 가는 계단을 강제로 열기 위해서였다.


탐식, 탐욕, 분노, 시기, 나태, 교만, 음란. 7가지의 죄악이다. 아래로 가는 계단을 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 일곱가지 죄를 지은 자들의 심장에 고인 피 한 방울씩에 주술을 거는 사람의 피가 한 방울 필요하다고 했다.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다른 계단과는 다르게 아주 막다른 곳에 숨겨져 있으며, 열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했으며, 그 제물마저도 쉽게 구할 수가 없는 실정이었다. 물론 상식적으로 탑의 위층으로 갈수록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이 많았으므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위층으로 가기를 원했기에 아래층으로 가는 계단은 거의 폐쇄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 계단을 열기 위해서 소년이 알아낸 것은 강력한 흑마법이었다. 



『일곱가지 죄악을 녹인 피와 네 피를 섞어, 태양도 달도 뜨지 않은 새벽에 그 것을 제단에 뿌려라. 그러면 길이 열린다.』



소년은 품 속에 든 유리병을 몇 번이고 만지작거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유리 표면을 타고 음울한 기운이 소년의 손을 적셨다.




+ + +




“…누군가 들어왔었군.”



남자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어수선한 흔적을 확인했다. 구정물이 여기저기 튀어 있는 것을 보아 누군가가 바쁘게 달려간 듯 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누가 들어왔지?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열린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안 그래도 뒤숭숭한데 일이나 치지 않을까 걱정이군. 계단의 문을 닫고 바깥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다시 견고하게 봉해둔 남자는 자리에 걸터앉았다. 손에 들린 스태프를 이리저리 휘두르다 밀려오는 고독함에 한숨을 쉬던 남자는 바닥의 구정물을 끌어 올렸다. 무언가가 잡아 당긴 것처럼 이끌려 올라온 물줄기는 남자가 손을 내리자 툭 부서져 바닥에 튀었다.


남자는 이윽고 썩어버린 수면에 손을 대었다. 남자가 손을 댄 곳부터 서서히 물이 다시 맑은 빛을 띄었다. 몇 분이 지나자 완전히 맑은 물로 변해 투명한 빛을 뽐내는 수면에 그가 제 얼굴을 비춰 보았다. 오래도록 빛을 보지 않았던 탓에 희게 바랜 얼굴과 색이 점점 옅어져가는 입술은 이미 바짝 말라 있었다. 색이 빠져가는 탓에 점차 흰 빛으로 변해가는 머리를 그가 한 번 쓸어 넘겼다.


유독 그 날따라 누군가가 보고 싶은 날이었다.


허공에 중얼거려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는 언제까지 여기에서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자는 오히려 그 자유를 거부하고 있었다. 이것 참 아이러닉한 일이지 않은가. 혹자는 묻는다. 그는 멍청한가? 그는 그 질문에 씁쓸하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단지 곁에 있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 뿐이라고 그저 되뇌일 뿐이었다. 오늘도 텅 빈 그의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그 눈물은 이내 곧 말라 결정이 되어 땅에 가볍게 내려앉았다가 사그라들었다.




+ + +




헉, 헉. 소년은 정신없이 파고든 사람들 사이에서 헤매다가 어딘가로 흘러들었다.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해 북적북적한 사람들 사이에서 소년은 방황했다.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 사이에 소년만이 오도카니 서 있을 뿐이었다. 탑의 사람들과는 좀 다르게 소년의 피부는 까무잡잡한 편이었고 눈동자 역시도 검은색이 아닌 싯누런 빛을 띄고 있었다. 초원의 흑표범같은 모양새를 한 소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소년은 정말 무작정 탑에 기어들어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소년이 들어오는 시기에 맞추어 탑이 열린 것도 아니었으며, 순전히 자력으로 탑의 문에 단단하게 걸린 자물쇠를 깨고 소년이 침입한 것이었다. 소년은 제 발치를 내려다 보았다. 금제 발찌가 빛이 났다. 소년의 발은 맨발이었으며, 입고 있는 옷마저도 낡아 다 떨어져가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사람들은 바삐 지나가며 멍하니 서 있는 소년을 훑고 지나갔다. 소년은 사람들의 의문 가득한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서 있다가 이내 자리를 옮기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을만한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 소년은 문득 이상한 것을 보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이리로 오라 손짓하고 있었다. 소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 모두는 제 갈길을 가느라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무도 그 이상한 것의 손짓을 보지 못한 듯이, 그렇게. 소년은 이내 제게 손짓한 것이 있는 곳으로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 + +




아벨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금발머리의 소년은 더욱 초조해진 얼굴로 주변을 훑었다. 소년은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가 품 속에 간직하고 있던 구슬을 꺼내었다.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구슬의 표면을 가만히 문지르며 소년은 구슬을 들여다보았다. 아벨이여, 어디 있는가… 소년이 말하자 밝은 금색이었던 구슬이 삽시간에 까맣게 물들었다. 소년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하여… 소년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세게 깨물고서는 구슬을 다시 품 속에 집어 넣었다. 까맣게 변한 구슬이 품 속에서 울부짖으며 요동쳤다. 소년은 탄식했다. 아아, 나의 아벨이여. 나의 또 다른 자아.


소년은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골목에 앉아 생각했다. 설마, 그가 그 곳에 있을 리가 있을까. 소년은 안 좋은 곳으로 흐르는 생각을 거두려 애썼다. 하지만 제가 유일하게 찾아보지 못한 곳이 한 곳 있었고, 그 곳은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출입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자신이 머무르는 최상층과는 다르게 그 곳은 탑의 중간층 어딘가에 은밀하게 숨겨진, 탑에서 가장 음울하고 고요하며 가장 어두운 곳이어서 탑의 그림자라 암암리에 전해져 오던 곳이었다. 설마, 그가… 소년은 차오르는 불안감을 억누르기 위해 애썼다. 탑을 오르내리며 힘을 잔뜩 쓴 탓에 빛이 바래버린 금발이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났다.




+ + +




마지막, 낙인이 찍혀 있는 마지막 대상을 찾아야 한다. 소년이 불안에 가득 차 흔들리는 회색빛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나태한 자가 필요했다. 소년은 홍등가를 걸어다니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소년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옆에서 수상하다며 수근거렸다. 그럴 법도 했다. 소년의 행색은 꽤나 추레했으며, 신발도 신지 않았던 데다가 후드로 잔뜩 제 얼굴을 가려 두었기 때문이었다.


요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소년은 극심한 배고픔과 갈증에 제가 맨발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탓에 바닥에 긁힌 제 발에서 피가 서서히 배어나오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피가 자꾸만 빠져나가는 탓에 소년이 지나간 자리에는 피로 된 발자국이 남았다. 탈수와 공복에 지쳐가는 소년의 정신이 점점 몽롱해져갔다. 이러면, 이러면 안 되는데… 눈꺼풀이 무거워진 소년이 천천히 땅 위로 무릎을 꿇었다. 머리가 핑 돌았다. 눈이 뻑뻑하게 내려앉았다. 소년은 끝내 탄식했다. 아아…


여기서, 여기서 이렇게…


길 한복판에서 쓰러진 소년의 주위를 사람들이 감싸고 돌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 + +




투명한 빛의 푸른 계단을 천천히 밟아 올라가던 백현이 뒤를 돌았다. 뒤로는 어느새 끝도 없는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백현은 다시 마음을 굳게 먹으며 후드의 뒷 매듭을 동여매었다. 푸른 눈동자가 시린 빛을 발산했다. 백현은 문득 난 생각에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옷 가게의 그 소녀. 소녀를 생각하자 주머니 안에서 제 기운을 담은 문스톤이 미약하게 꿈틀대며 진동했다. 백현은 주머니에 담았던 돌을 꺼내어 보았다. 돌이 파랗게 빛을 내었다. 그리고 계단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백현은 서둘러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백현은 이를 악물었다.




+ + +




느긋하게 잎담배를 방 안에 태워 두고 시간을 죽이며 잠을 자던 사내는 또 자신을 시끄럽게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클로이! 옆 집의 포주가 또 다시 헐레벌떡 뛰어들며 말했다. 사람이 쓰러졌네! 그는 당황한 기색으로 잔뜩 튀어나온 배를 출렁거리며 제 집을 뛰쳐 나갔다. 클로이는 속으로 짜증을 내며 배를 벅벅 긁었다. 도대체 며칠 새에 이렇게 큰 일이 많이 터지나 싶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헤집고 들어가자 익숙한, 그러나 조금 더 마른 인영이 보였다. 클로이는 맥 없이 늘어져 있는 소년의 팔을 잡았다. 맥을 취해 보니 소년은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사람들을 헤치고 파고든 클로이는 소년을 단숨에 업어 들고 제 집으로 데려가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사람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그러마고 했다. 클로이는 소년을 들쳐 업고는 제 집으로 향했다. 가만히 늘어져 있는 소년의 숨은 곧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클로이는 소년을 데려가며 소년의 행색을 자세히 살폈다. 곧 누더기가 되어 가는 옷을 걸치고, 신발을 신지 않아 발바닥엔 피가 모래와 함께 엉겨 붙어 있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온 얼굴을 꽁꽁 감싸 눈만 내놓은 채로 쓴 후드가 있었다. 클로이는 애써 치밀어오르는 의문을 억눌렀다. 저번의 살인사건때 이렇게 비슷한 차림새를 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설마 그 아이가 이 아이였을까, 하는 애매한 의문이 들어 클로이는 더 이상 추론하는 것을 포기하고 제 집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가 제 집으로 향하는 동안 홍등가의 여인들은 그를 보고 수근거렸다.



영 성가신 것을 집에 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클로이는 소년을 침대 위로 조심스레 눕혀 두었다. 얼굴을 가린 후드를 살짝 걷어 내어 본 소년의 사내답지 않은 곱상한 얼굴은 안색이 파르라니 창백했고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듯 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클로이는 물을 떠 소년의 입에 흘려 넣어 주며 안색을 살폈다. 시체마냥 누운 채로 물을 받아 마시는 소년의 후드를 완연히 벗겨 내자 회색빛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클로이는 놀라움을 감치 못했다. 온통 검은 머리의 사람들 속에서 회색빛 머리를 가진 아이라니. 소년의 굳게 닫힌 눈꺼풀을 살짝 들어올려 확인하자 눈마저도 회색빛을 띄었다. 클로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년의 머리에 얹고 있던 손을 떼었다.



“…창녀.”



바빌론의 창녀. 소년에게 붙는 수식어였다.




+ + +




소년이 도착한 곳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소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히 여기서 누가 날 불렀던 것 같은데. 소년은 여전히 멍한 얼굴로 주변을 수색하고 있었다. 온통 까만 사람이 손을 내어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었는데, 막상 와 보니 손짓은 커녕 온통 까만 사람은 온데간데 가고 없었던 것이다. 소년은 잔뜩 이골이 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이잡듯 뒤졌지만 그런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헛 것을 보았나, 소년이 혀를 빼물었다. 그렇게 한참을 학학대고 있으니 저 멀리서 또 아른아른 누군가가 손짓하는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년은 그 형상을 따라가려다 흠칫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실체가 아니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이지. 소년은 잠시동안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를 찾을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 것을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설령 그것이 신기루일지라도.



『탑의 …를 찾아가세요, 소년.』


문득 소년의 뇌리에 누군가의 음성이 파고들었다. 소년은 가만히 자리에 그대로 서서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음성은 두 번 다시 더 들려오지 않았다. 망연자실한 소년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다시 두리번거리는 수 밖에 없었다. 신기루가 보일 때까지. 까만 것의 신기루는 음성이 들린 후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소년은 그렇게 한참을 서 있어야만 했다. 누군가의 어깨에 치여 정신을 차린 아이는 그제야 한 걸음 두 걸음 천천히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탑의, 탑의 어디로 가라고 했었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소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난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가슴에 그려진 표식이 불타는 듯 뜨거웠다. 소년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ㅡ소년의 가슴 정 중앙에는 역십자의 전시안이 그려져 있었다. 소년이 태어날때부터 갖고 있었던 표식이었다. 소년이 태어난 마을 사람들은 이를 불길한 상징으로 여기고 소년을 마을에서 추방했다. 그 때가 소년의 나이 18세였다. 소년은, 제가 추방당하던 그 날 새벽에 저를 키워 주었던 마을의 우두머리 주술사에게서 들은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탑의 아벨을 만나라. 그를 자유롭게 풀어 주어라.』


소년은 그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여기 주위에는 탑이 없는걸요. 주술사는 다시 제게 말해주었다. 마을을 나가게 되면 태양이 뜨는 방향인 동녘을 향해 쭉 걸어라. 동녘의 끝에 다다랐을 때 너는 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그리고 주술사는 소년에게 금으로 만든 발찌를 채워 주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소년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들어 마을을 나오자마자 태양이 뜨는 곳을 향해 계속해서 걸었다. 그렇게 가면서 소년은 숱한 죽을 고비와 절망을 안았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고생을 다 하며 탑에 당도한 것이었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동쪽에 위치한 탑 위로는 태양이 이글이글 빛을 뿜고 있었다. 소년은 탑을 올려다 보았다. 탑의 끝은 저 위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와아…”


소년은 경탄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소년은 그제서야 자신이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기쁨이었다.




+ + +




“헉…!”


소년이 퍼드득 발작하듯 몸을 튕기며 정신을 차렸다. 소년은 급하게 제가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누군가의 집에 있는 모양이었다. 저는 평소에 밖에서 잠을 청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집에 있다는 것은 곧 제가 쓰러지거나 했다는 것이 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소년은 제 얼굴을 더듬어 보았다.


후드가 벗겨지고 없었다.


소년은 황급히 옷자락으로 제 얼굴을 가리며 몸을 일으켰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소년은 이내 침대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디디었다. 소년은 문 너머로 사람의 인영을 확인했다. 아무런 기척이 없는 것을 보아 소년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었던 낡아 빠진 후드를 다시 칭칭 얼굴에 둘러 매었다. 얌전히 놓여 있는 가방도 열어 보았다. 그리고 소년은 사색이 되었다. 병이 사라졌다. 제 품 속을 뒤져 보아도 나오지 않자 소년은 허망한 얼굴로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소년의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이거 네 거지?”



소년이 옆으로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자 찰랑이는 붉은 액체가 든 병이 눈에 들어왔다. 소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뻗었다. 병은 소년의 손에 끝끝내 닿지 못했다. 소년이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하자 제법 덩치가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소년은 흠칫 물러섰다. 남자는 한 발짝 다가서며 물었다. 이거 네 거 맞지, 대답 해. 소년은 위압적인 남자의 태도에 눌려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흥미로운 눈으로 소년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네가 그 창녀구나. 소년은 많이 들어봤다는 듯 초연한 얼굴로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손에 들린 병을 금방이라도 바닥에 던져 깨어버릴 기세로 높이 쳐들었다. 소년의 불안한 눈이 남자의 꽉 쥔 주먹으로 향했다.



“내가 보기엔 지금 이게 너한텐 되게 중요한 물건인 것 같은데.”

“…….”

“그렇지?”



소년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던지지 말아 주세요. 버석버석 갈라진 목소리가 소년의 목을 타고 쇳소리로 튀어나왔다. 남자는 그제야 손을 내리더니 소년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애초에 던질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소년은 생각했다. 후드를 벗겨 낸 남자는 소년의 잔뜩 떡진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 3일 내리를 잤단다. 손에 든 병을 소년의 손에 쥐어 주며 남자는 짐짓 엄하게 말했다. 소년은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헛기침을 몇 번 했다. 내 이름은 클로이다. 네 이름은? 소년은 제 이름을 묻자 머뭇거렸다.



“제, 제 이름은…”

“네 이름도 모르는건가.”

“…세훈, 세훈입니다.”



곱상하게 생겨서는 거 참 요상한 이름이군. 남자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최근에 일어난 살인사건은 모두 네가 저지른 것 같은데. 그의 말에 소년의 몸이 흠칫 굳었다. 클로이는 세훈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재차 물었다. 맞나. 소년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가 이내 고개를 티가 나지 않게 살짝 끄덕였다.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까딱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망칠 거면 지금 쳐도 좋아. 도망칠 생각이 아니라면 오늘은 그 침대를 쓰도록 해라. 세훈은 뒤를 돌아 선 남자의 등을 보았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그의 등을 비추었다. 수많은 흉터 자국이 그가 상당히 굴곡이 진 삶을 살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흔적이었다. 소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를… 고하실 생각이신가요.”

“…글쎄. 나도 살인자는 좀 별로라서 말이다.”

“……제발, 제발 고하지 말아주세요.”

“왜지? 네 살인에는 이유가 있나?”



세훈은 남자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남자는 소년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소년은 가만히 입을 닫고 자리에 오도카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클로이는 픽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도 뭐 사람을 네 멋대로 죽이진 않을 테고. 소년은 그 말에 흠칫 몸을 떨었다.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 탓이었다. 남자는 애써 떨리는 몸을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살인은 하지 말아라. 그렇게 젋은 놈이… 하고 남자는 소년에게서 등을 돌린 채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문득 소년은 한 팔이 상처와 흉터로 얼룩져 있음을 발견했다. 그 팔은 유독 다른 신체에 비해서 붉었다. 소년은 대충 남자의 속사정을 지레짐작하고는 더욱 굳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남자는 무언가 생각난 듯 뒤를 돌더니 소년에게 꾸러미를 건네었다. 네 옷이다. 전에 있던 옷은 너무 낡아서 찢어져 버렸거든. 세훈은 남자가 건네는 꾸러미를 받아들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쓸데 없이 이야기가 길어졌군.”

“…….”

“잘 자라.”



남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걸음으로 세훈이 있는 방을 나섰다. 세훈은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클로이는 제 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조용히 한 마디를 더 던졌다.


지하에 가는 건 네 생각대로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세훈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 + +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푸른 계단의 끝이 보이자 소년은 기뻐하며 계단을 뛰어 올랐다. 그리고 계단의 끝에 있는 균열로 손을 뻗었다. 소년의 의식이 흐릿해지며 안으로 빨려들었다. 백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슬며시 떴다. 주위가 짙은 검은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황량한 검은 사막 위에 먹색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백현은 당황한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주위를 한 번 둘러 보았다. 허허벌판에 드문드문 깔린 안개, 그리고 달도 태양도 없이 시종일관 검푸른 하늘이 백현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숨을 들이쉬자 목까지 차오르는 답답함에 백현은 제 목을 틀어쥐고 주저앉았다. 이, 이게 뭐지.


여긴 어디지.


분명 계단을 탔는데, 자신은 제대로 된 다음 층으로 왔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여긴… 가쁜 호흡으로 인해 백현의 눈가와 코 끝이 빨갛게 물들었다. 컥컥 밭은 기침을 뱉던 소년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릿속이 탁한 습기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마치 아까의 그 지하 묘지에 들어와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어 소년은 오싹함에 치를 떨었다. 이 곳은 한 번도 제가 들어 본 적이 없는 지역이었다. 온통 까맣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곳. 설마 이 곳은 지옥이려나, 싶었던 소년이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잡히는 것은 없었다.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두르던 소년은 황망함에 오도카니 서 있을 뿐이었다. 백현의 푸른 눈이 잘게 떨렸다.



하물며 작게 빛나는 별 조차도 없는 칠흑같이 검은 하늘이 더욱 무겁게 그를 짓눌렀다.









*



이름이 서서히 하나씩 공개되고 있습니다.


뭐 웬만하면 다 눈치 채셨겠지마는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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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작가님~ 오래간만이에요. 통통입니다. 아ㅠㅠ 왜 이런 글을 다른 분들은 모르실까요. 이런 대작 저만 알고 있을테야!!!! 어서 빨리 비회원을 탈출했으면 좋겠네요. 오늘도 잘 읽었어요 작가님~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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