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아아아아-
터져 나오는 함성소리. 농구 경기가 한창인 이곳은 학교 체육관이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은 하나같이 민윤기-라 함은, 아마 농구부에서 가장 인기있는 아이일 것이다-를 눈으로 쫓기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농구라는 스포츠에 그다지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니고, 안타깝게도 나는 민윤기라는 아이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내 친구들 때문이었다.) 친구들은 호들갑을 떨며 방금 드리블 한 걸 봤냐는 둥, 자기한테 손을 흔들어 줬다는 둥. 나는 그럴 때면 고개를 절레절레 내 젓는다.
-다음 주면 시험이거든 바보들아.
친구들의 야유가 쏟아진다.
*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야자를 끝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 중, 나혼자 집 방향이 달라 항상 혼자 버스를 타고 하교를 하곤 했다. 교문에서 친구들과 헤어진 뒤, 이어폰을 두 귀에 꼽곤 홀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그 날 따라 유독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이 없었다. 버스 도착 시간도 꽤 남아있었고. 사람도 없겠다,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작게 흥얼거리며 괜히 땅도 차보고,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마주친 눈.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작은 웃음소리까지. 이제까지 뒤에서 제가 흥얼거리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황급히 고개를 다시 돌리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보지만 그렇다고 몰려오는 부끄러운 감정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정말 숨고 싶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 순간 마침내 도착한 버스에 저기가 쥐구멍이라는 생각을 하며 얼른 버스에 올라타 교통카드를 찍는데 뒤이어 들려오는 동전 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보이는 얼굴이었다.
망했다. 지금 내 심정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였다. 쪽팔리는 그 상황을 피하려 버스에 올라탔건만. 당황스러운 눈을 감추지 못하고 얼른 고개를 돌려 자리를 살폈다. 하필이면 버스 안 남은 자리가 딱 두 자리, 그것도 앞뒤로. 그 짧은 순간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앞자리에 앉을지, 뒷자리에 앉을지. 뒷자리에 먼저 앉아 버리면 뭔가 기다리는 사람이 된 것만 같잖아. 정작 당사자는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지만 나만 혼자 속으로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먼저 앞 자리에 앉았고, 뒤이어 네가 내 뒷자리에 앉았다. 내 뒤에 앉은 네가 무척이나 신경이 쓰여 계속 머리를 손으로 빗으며 '나는 지금 네가 무척이나 신경이 쓰인다'라는 티라는 티는 다 낸 거 같다. 다행히 그 아이가 나보다 먼저 버스에서 내렸고, 그날 잠들기 전 이불을 몇 번이나 찼는지 모르겠다.
*
Boy view
오늘 있었던 농구 경기 때문에, 피곤하다며 야자를 빼곤 친구들이 일찍 집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혼자 하교를 하게 되었다. 나도 그럴걸 그랬나, 야자시간을 잠으로 날렸기 때문이다.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평소에도 여긴 사람이 많이 없지만, 오늘은 어찌 한 명도 없었다. 이상함을 느끼며 정류장 의자에 앉으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의 흥얼거림이 제 귀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의자 제일 끝에 앉아 몸을 조금씩 들썩이며 신이 난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 정류장 바깥쪽으로 나가려던 찰나 제 쪽으로 고개를 돌린 여자아이 때문에 왠지 훔쳐보았다는 기분이 들어 당황했다가도, 그 여자아이도 많이 당황스러웠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곤 저를 바라보기에 나도 모르게 작게 웃음이 났다. 순식간에 고개를 돌리곤 흥얼거림을 멈추었는데, 괜히 미안했다. 얼마 후 도착한 버스에 황급히 올라타는 여자아이를 따라 버스에 올라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요금을 내는데, 제 앞에서 카드를 찍다 말고 뒤를 돌아보며 아까와 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곤 저를 바라보는 여자아이에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자리에 앉았다. 공교롭게도 마지막으로 남은 자리가 그 아이 뒤였다. 제가 신경이 쓰이는 건지 자꾸만 작은 손으로 머리를 빗어대는 걸 웃음 지은 채 바라보았다. 곧 제가 내릴 정류장이라는 안내방송에 자리에서 일어나 내릴 준비를 했지만.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그 순간 내내, 아니 잠들기 전까지 동그랗게 뜬 그 두 눈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학교 내 유명+인기스타 윤기와 전혀 관심없던 여주가 이어지는 그런 클리셰 돋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