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세요?
남자
어둡게 내려앉은 밤과 새벽의 그 애매한 사이. 어떤 남자는 힘이 풀려 버릴 대로 풀려버린 다리를 애써 움직여 걷고 있다. 비틀비틀... 곧 쓰러질 듯 걸음이 매우 뎌디게 보인다. 힘겹게 한 걸음을 내딛을 때 마다, 소복소복 눈이 밟히는 귀여운 소리가 난다. 아주 이질적이게도.
걸음 걸이와 상반되게 그는 깔끔한 정장 차림이다. 또, 깔끔한 정장 차림과 상반되게 밝은 블론드 색의 머리를 가진 남자다. 어두운 계열의 색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아주 밝은 백금발.
자,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게슴츠레, 반쯤 감고 있던 눈을 뜨니 확실히 눈꼬리는 위쪽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오똑한 코, 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그에 더 돋보이는 빨간 체리색의 입술까지.
누군가를 홀릴 듯, 몽환적인 동공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는 무엇을 갈구하고 있는 걸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위태로워 보이는 걸까.
".......하."
그는 굶주리고 있다.
여자
술을 많이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걸음걸이는 너무나도 정상적이다. 혼자 불안함을 떨치고 걷기엔 많이 늦은 시간의 거리인데도 여자의 발걸음은 당차기만 하다. 무슨 생각으로 짧은 반팔 티셔츠 위에 바로 패딩을 걸친 건지.... 춥지도 않은가 보다.
".....흐흐."
자신이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나는 소복소복 소리에 빠져들기라도 한 건가. 아이처럼 웃는 그녀는 매사에 긍정적인 것 같다. 그와 다르게 부정적인 눈을 가진 사람들은 여자를 이렇게 일컫곤 한다.
'바보'.
그들
큰 보폭으로 걷다 보니 여자는 자신보다 앞서가던 남자를 발견했다. 남자의 걸음걸이는 여자의 마음 한 켠에 존재하는 오지랖을 살살 건드린다. 그리고 오지랖을 건들기가 무섭게, 쓰레기 더미 사이로 픽- 쓰러지는 남자를 본 여자가 그를 향해 질주한다.
"저기요, 괜찮아요?"
여자의 표정에 놀라움이 가득 서려있다. 뭐, 알코올에 취했겠지. 라고 생각했던 여자의 예상은 무참히 밟히고 만다. 술 냄새가 아닌 그의 진한 향수 냄새만이 코를 찔렀으니. 술 냄새라해도, 저의 냄새였을 것이니.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남자를, 여자는 진심으로 걱정한다. 그것도 모자라, 여자는 자신의 패딩을 벗어 남자의 몸에 덮는다. 멍청한 건지 아니면 순진한 건지.
"어디 아파요...?"
"......"
"119, 119 부를까요?"
허겁지겁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려는 여자의 손을 남자가 저지한다. 그에 여자는 깜짝 놀란다. 그의 손이 너무도 차가웠기 때문에. 수족냉증을 앓고 있는 여자의 손보다 훨씬.
".....부르지 마."
"일어나셔야 되는데.... 입 돌아가요!"
남자는 감고 있던 눈을 게슴츠레 떠 대답한다. 그리고 여자의 행동 하나하나에 날이 서기 시작한다. 가까이 있기만 해도 남자의 오감을 건드는 그녀 때문에 남자는 더욱이 정신을 못 차린다. 방금 전, 여자와 몸이 닿았을 때는 남자는 더더욱 미친 것 같았었다.
"제가 뭘 해드려야 도움이 될까요...."
"...."
여자는 손을 벌벌 떨기도 하고, 들고 내리며 가만히 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작은 두 손목을 남자는 한 손으로 잡아 고정시킨다. 그녀의 촉감을 느끼자마자 남자의 미간이 푹, 좁아진다. 이상하게도, 어째 남자의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는다. 황홀해 보인다.
"진짜 구급차 안 불러도 되는 거 맞죠?"
"......"
"많이 아파요?"
"잠시만 어깨 좀 빌려도 될까."
"....네?"
"아니, 잠시만 빌릴게."
그는 그녀를 갈구하고 있다.
밤과 새벽사이, 남자와 여자의 첫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