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과 연애의 상관관계
W. 파아란음표
EP 4. 성적과 연애의 상관관계 :거절만 하지마.
매일 같이 집에 가면 뭐하나, 치밀한 전정국은 내게 애매한 정보만을 계속해서 흘렸다. 남자친구는 없는 것 같다. 공부에 관심이 많다. 요즘에는 아침을 먹는다. 등등 그나마 이런 객관적인 정보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예쁘다던가, 귀엽다던가. 이런 주관적인 정보는 전혀 도움이 되지를 않았다. 물론, 김아미는 객관적인 정보보다 주관적인 정보를 들을 때 더 좋아했지만. -주관적인 정보는 대체 왜 좋아하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 며칠이면 될 줄 알았던 전정국과의 하교가 어느새 2주가 다되어 가고 있었다. 딱히 알아낸 건 하나도 없이.
- 김탄소
"..."
- 미안, 기다렸어?
"응, 나는 지금 너 때문에 자그마치 5분을 낭비했거든. 앞으로는 이럴거면 미리 늦는다고 알려줄래?"
- 그럼, 기다려줄거야?
"아니. 먼저 가야지. 오늘처럼 시간 낭비하지 않고"
고작 2주 사이에 같이 하교하는 게 익숙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2주가 되도록 제대로 된 정보 하나 얻지 못해서 그걸 위해서 늦는 전정국을 기다리느라 자그마치 5분을 썼다. -물론, 기다리는 동안 영어단어장을 펼쳐보긴 했지만- 정보를 얻으려다가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될 거 같아서, 급하게 뛰어오는 전정국에게 앞으로는 미리 말해달라고 했다. 그 말에 뭔가 기대하는 듯한 표정을 하다가 내 대답에 이내 다시 풀이 죽었다.
매사에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게 행동하다가도 갑자기 저렇게 시무룩해진 듯 눈에 띄게 축 쳐진 전정국을 보고 있으면 묘한 죄책감이 생기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니까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곧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 같아서. 곧 전정국에게서 시선을 돌려 앞을 보고 걸었다. 어느새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몸을 움츠려도 찬바람이 온 몸을 휘감고 지나쳤다. 에취-. 낮부터 으슬으슬한 것 같더니 결국 감기에 든 건지 잔기침이 계속 나왔다.
기침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계속 나를 쳐다보던 전정국이 미간을 찌푸렸다. 감기 걸렸어? 근데 옷이 왜 이렇게 얇아. 감기 걸릴 줄도 밤에 이렇게 날씨가 쌀쌀해질 줄도 몰라서 평소처럼 입고 나온 옷이 얇아보였는지 전정국은 내 옷을 가리키며 옷이 너무 얇다고 지적했다.
"옷을 얇게 입는다고 다 감기에 걸리는 건 아니야"
- 그치만 넌 걸렸잖아.
"난 원래 감기에 자주 걸려, 별 거 아니니까 신경쓰지마"
뭔가가 불만인 듯 나를 쳐다보던 전정국의 시선을 무시하고 애써 독서실로 걸음을 옮겼다. 항상 이것저것 물어보거나 이야기를 하던 전정국은 왠일로 조용히 독서실을 향해 걷기만 하다가 들어가기 전 제가 한 약속을 지켰다.
- 이건 좀 내가 안 좋아하는 부분인데
"무슨 말이야?"
- 내가 좋아하는 애.
"좋아하는 애한테 안 좋아하는 부분도 있어? 근데 왜 좋아해?"
- 이건 걱정돼서 안 좋아하는 거니까.
"그래, 그래서 그게 뭔데?"
- 잔병치레가 잦은 거 같아.
그러더니 먼저 독서실로 쏙 들어가버렸다. 몸이 약한 애인가? 아무래도 전정국이 좋아하는 애는 연약한 느낌을 주는 아이인 거 같다. 전체적으로, 근데...우리학교에 그런 애가 있었나. -사실 원래 남한테 관심이 없어서 기억이 안 나는 걸 수도 있다.- 고민을 하며 독서실에 들어가자, 독서실 아저씨가 여전히 나를 보고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학생.
"네?"
- 아직이야?
"...뭐가요?"
- 아, 왜 그. 남학생이랑.
"그 남학생이요?"
- 아, 그 얼마 전에 여기 등록한 학생. 잠시만,
"..."
- 그래, 전정국. 그래 그 친구랑 아직이야?
"뭘 말씀하시는 거예요?"
- 아직인가보네.
알 수 없는 말과 하던 아저씨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내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며 손을 휘휘 내저어 보이셨다. 꼭 나만 모르는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전정국은 여기 독서실을 계속 다녔다고 했는데, 얼마 전에 등록한 건 뭐지. 설마, 전정국은 내가 있는 독서실까지 따라와서 나를 견제하고 있는 걸까? 녀석의 치밀함에 몸서리가 절로 처졌다. 역시 전교 1등의 치밀함은 따라하기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
또, 없어. 전정국이 또 없었다. 항상 내가 나올 시간쯤에 독서실 문 앞에 먼저 나와 서 있던 녀석이 없었다. 평소보다 늦게 나오나 싶어 기다리기 시작하는데 5분이 다되어 가는데도 전정국이 나오지 않았다. 혼자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전정국이랑 같이 독서실에 다닌다는 사실을 안 후부터 더 늦게까지 남아있었던 터라 길이 무서워 혼자서 집에 가기가 조금 두려웠다. -나는 겁은...별로 없다...아닌가.-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서 부모님께 전화를 하려고 하던 차에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 김탄소! 김탄소!
뒤 쪽에서 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전정국이 뛰어오고 있었다. 쟤는 어디갔다가 저기서 오는걸까.
- 미안, 또 기다리게 해서.
뛰어온 게 힘이 들었던지 거칠게 숨을 쉬며 말하는 녀석에게 차마 시간낭비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자 전정국은 제법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그래도, 안 가고 기다려줬네?
"딱히...뭐,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야"
나도 모르게 제발이 저려서 말을 내뱉고는 아차, 싶었다. 무엇보다 내 말을 들은 전정국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걸 내가 봤거든.
- 아, 무.서.웠.어?
"그, 그런거 아니거든."
- 그래,그래 아니라고 하자.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이는 전정국이 얄미워서 정말 한 대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노려보다가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전정국은 어,어. 하면서 나를 한달음에 따라잡고는 나를 놀렸다.
- 쓰읍, 무서운데 혼자 가고 그러는 거 아니야.
가는 길 내내 놀릴 거 같아서 화제를 돌리고자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그건, 됐고. 너, 어디 갔었던 거야? 독서실에서 안 나오고 왜 그쪽에서 와?"
내 말에 낮은 탄성을 내뱉더니 아까부터 손에 쥐고 있던 검은 봉지를 흔들어보였다.
- 와, 이걸 빼먹을 뻔 했네.
"..."
- 누가 무섭다고 하는 ㅂ...
"그거 뭔데?"
능청맞게 나를 보고 놀리는 전정국의 말을 급히 끊으며 손에 들고있는 봉지를 가리켰다. 그러자 전정국은 씨익 웃으며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 이건 핫팩이고, 이건 목감기, 이건 일반 감기약, 목캔디랑 ...
한참 물건들을 설명하는 데 어째 전부 감기와 관련된 물건들이었다.
"너 감기 걸렸어?"
- 아니
"설마...그럼 미리 대비하는 거야? 시험 기간에 아플까봐?"
역시 나보다 더한 놈인 것 같다. 전정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걸어가자. 전정국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면서 내 손에 핫팩 하나를 쥐어줬다.
- 춥다며.
"춥다고는 안 했는데"
- 감기 걸렸잖아.
손에 쥐어준 핫팩이 따뜻했다. 방금 전에 본 건 포장되어 있었는데. 전정국을 의문스레 바라보자 픽 웃던 녀석은 내 핫팩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미리 주머니에 넣어놔서 따뜻한 거라고, 나중에 따뜻하게하면 가는 길에 추울테니까 미리 데워놨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손이 따뜻해지며 점점 몸도 따뜻해지는 듯 했다. 라이벌인 나를 신경써주는 게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져서 전정국에게 왜 나에게 이걸 주냐고 묻자.
-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너는 그냥 받기만 해. 거절만 하지마, 거절만.
장난스런 말투와는 달리 눈빛은 진지해보였다. 인간미 없고 싸가지 없는 전교 1등인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친구를 잘 챙기는 아이인 것 같았다. 친구...친구 맞겠지?문득 든 친구. 라는 단어를 생각하자 전정국을 다시금 보게 되었다. 혼자서 종알거리며 감기약의 종류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는 전정국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웃음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해서, 손 안의 온기가 고마워서. 친구. 그래 이제는 친구라고 생각은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새 도착한 집 앞에서 고맙다고 말을 하고 먼저 발을 떼자. 전정국은 내 가방을 잡아서 나를 세웠다. 그리고는 손에 제가 산 약들이 들어있는 봉지를 쥐어주었다.
"이걸 왜 줘?"
- 내가 감기 걸린 거 아니잖아, 감기약은 감기 걸린 사람이 쓰는 거야. 똑똑한 김탄소가 그것도 몰라?
"아니, 그게 아니라..."
- 됐어 오늘은 중요한 거 안 물어봐? 매일 안달나 하더니
"...아, 맞다"
- 오늘의 정보는
중요한 걸 까먹은 내가 한심스러워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잡념을 없애려고 노력하다가 전정국의 말에 고개를 들어 녀석을 응시했다. 그런데 전정국은 말을 하다 말고는 나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꼭 그 때의 눈빛과 비슷했다. 반으로 찾아가 연애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을 때의 그 여유롭고 압도적인 눈빛. 나도 모르게 주춤 한 발을 뒤로 빼자 전정국은 픽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가 말했다.
- 걔는 생각보다 여러모로 겁이 많다는 거야. 무서운 거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전정국의 말을 늘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힘든데, 오늘은 그 말보다 아까의 그 눈빛이 어쩐지 더 힘들게 느껴졌다.
*
- 오늘은 집에서 쉬는 게 낫지 않아?
"괜찮아, 그 정도는 아니야"
- 아닌게, 아닌 거 같은데.
아침부터 꽤 높은 열이 나는 나에게 걱정스레 묻는 엄마에도 나는 꿋꿋하게 신발을 신으며 집을 나섰다. 힘들면 무리하지 말고 집으로 와. 문이 닫힐 쯤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3에게 이까짓 열이 뭐 대수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며 학교로 향했다.
자습실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문제집을 펼쳤다. 뜨거운 이마에 눈까지 열이 전달되어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듯 했다. 고개를 잘게 흔들며 집중을 해보려해도 초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결국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문제를 풀어졌고, 괜스레 짜증이 올라왔다.
- 김탄소. 아침 먹어야지
늘 남들보다 일찍오는 나, 그리고 나보다 빨리 아니면 나 다음으로 일찍오는 전정국이 오늘도 아침을 사들고 온 듯 했다. 머리가 아파서 전정국이 말을 걸지 않았으면 했지만, 평소처럼 내 옆자리 의자를 끌어내고 자리에 앉은 전정국은 내게 우유를 건냈다.
- 자, 마셔. 공부도 먹어가면서 해야되는거야.
"...됐어"
- 한동안 잘 먹더니, 또 왜. 뭐, 내가 시끄럽게 해달라는 말이야?
근 며칠 간을 당연하게 해온 일이 오늘은 유독 신경에 거슬려서 짜증을 내버렸다.
"신경끄라고!"
웃으며 장난스레 우유를 건내던 전정국의 손을 쳐버리면서 우유가 바닥으로 볼품없이 떨어졌다. 떨어진 우유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계속 받아주다가는 앞으로도 이러겠다는 생각에 더 신경질을 냈다.
"이게 뭐야, 너 때문에 이것도 치워야하잖아"
처음에 우유가 떨어졌을 때 얼떨떨해하던 전정국의 눈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있었다.
- 내가 치울게. 계속 방해했네. 미안하다.
싸늘한 말투로 말을 내뱉고는 전정국은 제가 흘린 우유를 전부 정리했다. 나는 그저 가만히 그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다 치운 전정국이 앞으로는 다신 방해안할게. 그렇게 말을 내뱉고는 나가버리는 순간에 자습실의 다른 아이들이 들어오면서 그만 사과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왠지 모르게 무언가 크게 잘못한 느낌이었다.
그 순간 '거절만 하지마, 거절만' 왜인지 그말이 떠올랐다.
머리는 점점 더 아파오고 열이 더 오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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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사실은 수능도 있었지만, 글을 쓰기 싫어서 미뤄두고 있었는데.
자꾸만 몇분이 글을 읽으시는지 구독료가 들어오는데 죄책감이 들어서 가져왔습니다.
앞으로는 아마 자주 올 수 있을거예요...
왜냐면... 하는 게 없어요. 진짜.
늘 재미없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암호닉은 늘 받고 있어요.
근데, 제가 암호닉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힘들어서...
암호닉은 이번 편부터 새로 받는 걸로 할게요.
기존에 신청하셨던 분들도 다시 해주세요!
그리고 별로 재미는 없지만, 그 첫사랑 썰과 전남친 썰을 공유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받고 싶은 분이 계시기는 한거죠...? (왠지 없을 거 같아...)
혹시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마구마구 퍼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