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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작업. 못 만나 미안] - 486큰코 오늘도 어김없이 도착하는 우지호의 문자. 역시, 올 줄 알았다. 글자 하나하나에서 흘러나오는 바쁨과 피곤함에 내가 다 몸서리가 쳐 질 정도니, 연락 안하는게 낫겠지. 애꿎은 문자만 몇 번 곱씹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오늘도 얼굴보긴 글렀네. 나는 '아마도' 우지호와 사귀고 있다. 01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랬던건 아니야. 처음엔 우리도 여느 연인들처럼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카페에서 얼굴 마주보면서 커피도 마셨지. 그냥 손 잡고 공원을 걸어도 행복했었고, 짧은 통화에도 설레었어. 그렇다고 우리가 오래된 연인이냐고? 음.. 고작 세 달이? 그런데 어쩔 수 없는게, 같은 직종이라 비슷한 점이 많아서인지 우리 둘은 금방 친해졌어. 우지호가 나보다 네 살이나 많지만 친오빠도 네 살 많다보니 그닥 오빠로 느껴지지 않아. 뭐, 말 놓은지 오래지만. 물론 우지호만 일방적으로 바쁘진 않아. 나도 올해 하반기에 데뷔를 목표로 둔 대형기획사 데뷔반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내가 약속을 깰 때도 종종 있어. 하지만 우지호는 못 이기지. 어쨌든 참 바쁜 우리, 사귀고는 있는데 너무 바빠서 사귀는 것 같지가 않아. 사랑하고 있는데 사랑하는 것 같지가 않아. 아, 이건 예왼가? * 분명 앨범 세션들이랑 미팅 있다고 했는데 왜 우지호가 여기있을까. 그것도 여자랑 단 둘이. 솔직히 이 상황에 내가 화 안나면 그게 보살이지, 사람이야? 분명 코워커라고 했는데, 여자라니. 세션'들'이라고 했는데, 단 둘이라니. 나로썬 용납이 안 가는 상황이야. 하하호호 웃고있는 둘을 보니 복장이 뒤집혀, 안뒤집혀?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지. 너가 불 같은 성격이면, 나도 불이지. "담아, 여기!" "누나 왠일이에요, 이렇게 먼저 연락을 다 하고." 아는 남자동생을 불러 우지호 테이블의 대각선에 위치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 왜 있잖아, 남자는 자기보다 어린 남자에게 열등감을 느낀대. 사실이 아닐지라도 일단 자신 외의 남자잖아? 어, 잠깐만. 그건 여자도 똑같은데? 그러니깐 지금 내가 화가 나는거고. 한참을 하하거리며 웃던 우지호가 드디어 내 쪽을 봤나봐. 그 올라간 눈썹이 미세하게 찡그려져. 담이 뒷통수를 무섭게 노려보던 우지호가 사태 파악을 했는지 손으로 휴대폰을 가리켜. 그러고는 입 모양으로 '휴대폰 봐.' 하는데, 내가 왜? "근데 누나, 뒤에 누나 남자친구 아니예요?" "어, 맞아. 신경 쓰지 마." 손사래를 치며 물을 한 모금 들이키니 담이가 하하 웃으며 나보고 여전하다는 말을 해. 누나 지금 저 형이 여자랑 밥 먹고 있어서 이러는거죠. "응, 넌 그냥 내가 사주는거 맛있게 먹으면 돼. 저 형이 널 해칠 일은 없을거야." 웃음 포인트가 없는데 괜히 생긋 웃기도 하고, 담이 접시에 이미 가득한데 괜히 더 챙겨주기도 해. 왜냐고? 우지호가 곧 터질때가 임박했거든. 이런 내 기대에 부흥하기라도 하는 듯 우지호는 여자에게 '잠깐만.' 하고 양해를 구한 뒤, 들고있던 포크를 쾅-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쪽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어와. "야, 너 나와." * 그 뒤로 어떻게 됐냐고? 어떻게 되긴, 인적 드문곳에서 대판 싸우다가 둘 다 질투에서 비롯된 언행이란걸 깨닫곤 끌어안으면서 화해하고 끝났지. 우리 둘 다 뒤끝은 없어서 그리 오래 가진 않아. 다만 불 같아서 금방 커지는게 문제지만. 근데 저 날, 내가 너무한거야? 솔직히 내 남자가 다른 여자랑 밥 먹으면 화나잖아. 그것도 나한텐 일 모임이라고 거짓말 하고. 어차피 갈 거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내가 안 보내주는 것도 아닌데. 그나저나 우지호 얘기하니깐 우지호 보고싶네. 많이 바쁘겠지? 맛있는거라도 사다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