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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합니다. ”
  …….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을 뒤로하고 느린 발걸음을 옮겼다.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렇지않은 척 건물을 빠져나왔다. 횡단보도를 건너 익숙한 골목길로 들어서자 추악하리만큼 더러운 냄새가 코끝을 찔러왔다. 낯익은 술집 계단을 내려가자 내게 등을 보인채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여인이 보였다.



“ 엄마. ”
“ ……. ”
“ 아빠가 죽었대. ”



 ……. 끝까지 아무말이 없던 여인이 다시 한 번 술잔을 기울였다. 화장시킬거니까 그렇게 알고있어. 잠시 주춤하던 손이 장례식장에도 오지말라는 내 말에 멈췄다. 슬쩍 뒤돌아 나와 눈을 맞춘 여인의 눈에는 쓸쓸함이 가득 차있었다. …ㅇㅇ아.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왜.



“ 네 아비는 너한테 어떤 존재였냐…. ”
“ 존재하지 않았어야할 사람. ”
“ ……. ”
“ 나를 낳지 말았어야할 사람. ”



 여인이 눈물을 보였다. 어둡다, 어두워. 여인밖에 남지않은 빈 술집에는 야릇한 조명만이 시린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 죽지말았어야할 사람. ”



 혀가 잔뜩 꼬인 발음으로 물어보던 여인이 고개를 떨궜다. 이대로 가을은 흘러갔다.






 손이 시리다. 두 손을 모아 입김을 불어보다 패딩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뒤, 엄마는 종적을 감췄다. 늘 내게 뒷모습만 보여줬던 그 술집도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렸다. 주인없는 집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내 속마음을 감추듯이 목도리에 얼굴을 묻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구경하듯이 쳐다보다 다시 발걸음을 뗐다. 내 옆을 지나쳐가는 사람들속에 문득 복숭아같은 달큰한 향이 나는 것 같았다. 뭔가에 홀리듯이 시선을 틀어 뒤를 돌아보자 느릿한 걸음으로 앞을 가로지르는 소년이 보였다.



“ …저기요. ”
“ 네? ”



 분명했다. 그 소년의 손에는 복숭아가 들려있었다.






 여름은 흘러가버렸고, 지독하리만큼 아팠던 가을도 흘러갔다. 그 소년의 손에 들린 복숭아가 이상하리만큼 익숙해보였다. 마치 지금이 제철이라는 듯이. 복숭아는 대게 6~8월달에 많이 나온다. 아빠가 좋아하시던 복숭아가 마음에 걸렸다. 느린 발걸음으로 걸어가던 소년을 잡아놓고 이게 뭐하는짓인가 싶었지만 내겐 할말이 무수히 많았다. 그 중에서도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야기는 내가 그 복숭아를 꼭 사고싶다는 이야기였다.



“ 죄송한데, 지금 손에 들려있는거 말인데요. ”
“ 복숭아요? ”
“ 네, 제가 사고싶은데…. ”



 옅게 웃던 소년은 풋풋했다. 큰 눈을 도로록 굴리며 생각에 깊이 잠긴듯하던 소년이 다른손에 들고있던 쇼핑백을 열었다. …우와. 마치 지금이 여름인것같다라는 착각이 들게할만큼 복숭아는 잘 익어 싱싱해보였다. 지금 제 손에 들린건 드릴수없고, 챙겨온거 몇개 드릴게요. 정당한 값을 부르지않던 소년이 패딩주머니에 꽁꽁 숨긴 내 팔을 잡아끌어 손바닥 위에다 복숭아를 담아주었다. 손이 꽉 찰만큼 담아주던 소년이 덤이라며 패딩주머니에 두개를 집어넣어주었다.



“ 맛있게 드세요. ”
“ …아, 저 얼마를 드리면 되나요? ”
“ 돈은 필요없어요. 행복해보이니까 다행이네요. ”



 손에 들려있는 복숭아를 두어번 허공에 던졌다 받던 소년이 씩 웃으며 멀어져갔다. …행복해보인다고? 내가? 복숭아를 한아름 담고 있는 내 모습이 거울에 비춰보이는 것 같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썰렁한 집은 언제나 날 외롭게만 만들었다. 어렸을적부터 좋아했던 계란말이도, 그 작은 김치 한 조각도. 지금의 현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내게는 그저 큰 꿈이라고만 생각했다. 느릿하게 올라선 계단에 작은 집이 보였다.



“ …아, 복숭아. ”



 열쇠를 꺼내려했지만 내 손에 한가득 담겨져있는 복숭아들때문에 움직이려던 손을 멈췄다. 바닥에다가 복숭아들을 내려놓고 패딩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들어있는 복숭아때문에 열쇠가 어디있는지 잡히질않았다. 결국 복숭아를 빼고나서야 열쇠를 집어들고 문을 열수가 있었다. 문을 열어놓고 다시 복숭아들을 손에 담았다.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진 복숭아들을 싱크대위에 올려놓고나서야 문을 닫았다.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듯 둥그렇게 모여있었다.






 지각이다. 운동화를 구겨신고 식탁위 아무렇게나 올려두었던 열쇠를 집었다. 나가려는 발걸음을 쉽사리 떼지못한 이유는 어제 내내 먹지못하고 쳐다보기만했던 복숭아때문이였다. 작은 크로스백에 복숭아 하나를 집어넣고 문을 잠궜다. 굴곡이 완만하지못한 계단을 서투른 발걸음으로 내려가다 넘어질뻔한 수모도 겪어야했다.



“ 사장님! ”
“ ㅇㅇ씨, 평소 안늦으던 이렇게 늦게오면 어떡하나? ”
“ 죄송합니다, 제 타임 조금 더 늘릴게요. ”



 그냥 놀리려고 한말인데, 그렇게 고개를 숙일필요는 없어. 제자식보듯 좋게 웃던 사장님이 수고하라며 편의점을 나가셨다. 사장님이 멀어져가는 걸 본 다음에야 카운터로 들어가 메고있던 크로스백을 의자옆에 놔두었다. 살짝 열려있는 지퍼사이로 보이는 복숭아가 기분 좋게 만들었다. 목을 두어번 풀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짝 숙였던 고개를 들어 앞을보자 뒷모습을 보이던 손님에게서 익숙한 향이 나는 것 같았다. 복숭아향. 순간적으로 가슴이 벅차만큼 뛰었다. 혹시 그 소년일까?



“ 계산 해주세요. ”
“ …아, 네. ”



 아니다. 그 소년이 아니야. 하지만 내 앞에 삼각김밥을 내민 학생에게서 그 소년의 향기가 났다. 변백현. 검은 글씨로 수놓아진이름표가 보였다. 삼각김밥 두개와 콜라를 계산하면서 힐끔 학생을 쳐다봤다. 바지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던 학생이 보였다. …아, 저. 조심스러운 말투로 운을 떼자 지갑속을 들여다보던 학생이 시선을 틀어 나를 쳐다봤다.



“ 혹시 향수같은거 뿌리세요? ”
“ 향수요?, 아니요. ”
“ 아, 그러시구나…. ”
“ 왜요? ”



 아쉬워하는 내 모습에 저의 팔을 들어 킁킁 냄새를 맡던 학생이 저에게 무슨 냄새가 나냐며 물었다. 복숭아향이 나는 것 같아서요. 1900원이에요. 지갑속에서 천원짜리 두장을 건네던 학생이 아! 라며 손바닥을 퉁하고 쳤다. 백원을 거슬러주면서 의아한 표정으로 학생을 쳐다보자 삼각김밥과 콜라를 챙겨들던 학생이 제 친구가 복숭아향이 나거든요, 그놈한테 향이 배겼나보네요. 라며 씩 웃었다. 혹시 그 친구가 복숭아 소년이 아닐까라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봤다.



“ 그 친구도 이리로 올거에요. ”
“ …아. ”
“ 성격이 느긋한 놈이라 발걸음도 느리거든요. ”



 귀엽게 웃던 학생에게서 다시 한 번 진한 복숭아향이 풍겨져왔다. 살짝 뒤를 돌아 크로스백을 쳐다보니 주인을 기다리는듯한 복숭아가 보였다. 저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네 본래 주인이였음 좋겠다. 저기에서 먹으면 되요? 학생의 말에 앞을 쳐다봤다. 편의점 시식대를 눈으로 가르키던 학생이 나를 쳐다봤다.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자 고마워요. 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참 밝은 학생인것같다. 다시 의자에 앉아 그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통화를 하는듯한 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 어. 어, 맞아 그 편의점. 빨리와, 또 초세면서 걷지말고. ”



 익숙한듯 먼저 삼각김밥을 베어물던 학생이 통화를 끊고 휴대폰을 시식대위에 올려뒀다. 지루한듯 창밖을 바라보며 콜라를 따는 학생을 뚫어져라 쳐다보고있는데 내 시선을 느낀건지 카운터쪽을 바라보던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누나, 나한테 뭐 궁금한거있어요? 조금 멀리있지만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묻던 학생이 아예 의자를 카운터쪽으로 틀어 나와 눈을 맞췄다.



“ …아, 아니요. ”
“ 아니에요? ”
“ 네…. ”
“ 근데 왜 그렇게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지? ”



 혼잣말을 하는건지 물어보는건지 알쏭달쏭하게 말을 하던 학생이 문득 창밖을 바라보더니 손을 마구 흔들었다. 아, 그 친구가 오려나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쭉 빼고있자 저 멀리서 흐릿하게 형체가 보였다. 곧이어 그 형체는 느릿느릿하게 걸어오는 소년으로 변해있었다. 



“ …복숭아 소년. ”
“ 네? ”
“ 아, 아니에요. ”



 중얼거리는 내 말에 목을 뒤로 빼 나를 쳐다보던 학생이 아니라는 내 말에 콜라를 한모금 들이켰다. 점점 가까워지는 복숭아소년에 떨리는 심장을 주체할수가 없어졌다. 소년의 복숭아향기가 벌써부터 나는 것 같았다. 딸랑ㅡ. 작게 울린 방울을 뒤로하고 소년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어? 큰 눈을 더 크게 떠보이던 소년이 활짝 웃었다. 복숭아 소녀네.



“ 뭐라고? ”
“ 아니야, 아무것도. ”



 학생의 물음에 아니라며 고개를 젓던 소년이 카운터 가까이 다가왔다. 잘 지냈어요? 행복해보이네요. 행복해보인다던 소년이 카운터 뒤 의자에 있는 내 크로스백을 슬쩍 쳐다봤다. 어? 복숭아다. 먹으려고 가지고 온거에요? 크로스백 사이로 보이는 복숭아에 활짝 웃던 소년이 궁금한듯 물었다.



“ 아니요, 그냥 갖고있고 싶어서…. ”
“ 전시용으로 준거아닌데. ”
“ …아. ”
“ 농담이에요, 뭘 그렇게 놀라요. ”



 야 도경수 뭐해, 애꿎은 누나 괴롭히지말고 빨리와서 삼각김밥이나 먹어. 이름이 도경수인가보구나. 학생의 말에 뒤를 살짝 돌아보던 소년이 슬쩍 웃으며 멀어졌다. 역시나 소년에게는 복숭아향이 났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그 향을 맡고있는데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던 소년이 다시 카운터로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소년의 행동에 나른하게 엎어져있던 몸을 벌떡 일으키자 살짝 놀란듯 주춤하던 소년이 큰 눈을 이쁘게 접어보이며 웃었다.



“ 되게 빠르시네. ”
“ …아, 조금 놀라서. 뭐 필요한거 있으세요? ”
“ 필요한건 없는데, 누나에요? ”
“ 네? ”
“ 이시간에 학교가 아닌 편의점인걸보니 학생은 아닌것같고, 저보다 누나인가봐요? ”
“ 아, 네. 몇살이신데요? ”
“ 열여덟이요. ”



 소년의 대답 대신 학생의 대답이 들렸다. 대화에 끼이고 싶어한다는 소년의 말에 비죽 웃음이 새어나왔다. 매일 편의점 알바하세요? 이시간에? 시식대를 말끔히 치우던 학생이 카운터로 다가왔다. 소년의 옆에선 학생이 소년보다 궁금하다는게 더 많다는 듯 카운터위에 팔을 올려놓고 꽃받침을 하듯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 작업걸지마, 변백현. ”
“ 아, 왜. 누나 이렇게보니까 진짜 이쁘네요. ”
“ 고마워요. 백현학생도 이뻐요. ”
“ 예? 누나 그거 남자한테 실례되는말인거 알아요? ”



 아, 그래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자 아무렴어떠냐며 실없게 웃던 학생이 아, 내 가방. 이라며 다시 시식대로 돌아갔다. 아무말없이 소년을 쳐다보자 나를 보며 맑게 웃던 소년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난 나보다 어린줄알았는데. 누나, 번호 좀 찍어줘요. 소년의 말에 뜸들일 시간도 없이 11자리의 숫자를 찍어주었다. 소년이 저장되는 이름을 뭘로할까 생각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내 이름은….



“ 괜찮아요. 다음에 또 와야하니까 질문은 아껴둘게요. ”
“ 그럼 이름대신 뭘로 저장했는데요? ”
“ 비밀이에요, 말 안해줄거야. ”
“ 굳이 질문거리 안 만들어도 되요, 매일매일 놀러와요. ”
“ 정말 그래도 되요? ”
“ 네. ”
“ 그래도 알아가면서 설레고싶어요. 내일 또 올게요! ”
“ 그래요, 내일 봐요. ”
“ 안녕히계세요! ”



 학생과 소년이 나가고 닫히는 문틈으로 작게 일렁이는 종소리가 들렸다. 특유의 느릿한 걸음으로 사라져가는 소년을 보다가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에게도 드디어 꿈에 그리던 봄날이 올것같았다. 작은 행복을 같이 이뤄줄수있는 사람이 생긴것만 같아 기분이 좋았다. 살짝 열려있던 지퍼사이로 복숭아를 꺼내들었다. 복숭아는 그 어느때보다 말갛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복숭아 소년처럼.






ⓒ ㅡ소년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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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노래가 끝나는 타이밍에 저도 딱 다읽었어요....비지엠 들으면서 이 글 보니깐 되게 선선한 여름??에 기분좋은 하룬데 되게 아련한 기분이라서 뭔가 가슴이 울렁울렁해요...이런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항상 암호닉 신청 안 하고 글만 읽었었는데..암호닉 신청해도 될까요??암호닉은 복숭아로 할께요!!
11년 전
독자2
어! 블로그 하시나여..? 저 이거 본적있어요! 상황문답도 전부!!! 신알신 하고갈게여~
11년 전
독자3
오랜만이네여ㅠㅠ아무리생각해듀 경수랑복숭아는정말잘어울리는것같아요 ㅎㅎ 좋은글잘읽고가요!!
11년 전
독자4
신알신울리자마자달려왔어요~ 이번편도 재밌어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잘읽고가요!!!
11년 전
독자5
이글 블로그에서 본적있었는데!ㅎㅎ 신알신 온거보고 와서 바로 읽고 댓남겨용!
11년 전
독자8
으아니 이렇게 브금과 적절한 글이라니!!!!!! 두근두근 아련아련 일렁일렁 디오디오 한 글이네요ㅠㅠ 잘읽었어요ㅠㅠㅠ
11년 전
독자9
항상 잘읽고가요ㅠㅠ달달하고 좋네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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