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그러니까 그날은 뭔가가 많이 달라보이는 날이였어. 항상 그 자리에만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길고양이도 그 날 따라 자꾸만 울부짖으면서 내 품을 벗어나려고 했지. 엄마를 찾는 걸까 생각이 드는 찰나에 내 핸드백에 넣어뒀던 휴대폰이 툭하고 빠져버린거야. 너는 이게 뭐라고 생각해? 단순한 귀신의 장난? 아니면 내가 몰랐던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핸드백에 걸려있다 빠져버린 휴대폰? 아니야, 이건 모두 늑대의 짓이야. 그래, 이건 모두
항상 지나왔던 버스 정류장을 지나가면서도 은연중에 자꾸만 스친듯이 나는 낯선 향때문에 미칠 것 같은거야. 너도 잘 알잖아, 내가 워낙 냄새에 민감한거. 그 향은 이때까지 내가 맡아왔던 냄새와는 확연히 다른 향이였어. 인간이 내는 체취와는 다르고, 동물에게서 나는 냄새라기에는 또 달랐지. 그래서 난 그 자리에 못 박힌듯 가만히 서서 똑같은 버스 3대가 지나갈때까지 멍하니 그 향의 근원을 찾으려고 했어. 그러나 결국 찾지 못 했지.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겨우겨우 정류장을 지나쳤어. 내가 자주 드나들던 빵집을 지나고 항상 똑같은 알바생이 똑같은 자리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는 편의점도 지났지. 그리고 매일 돌던 골목길을 도는 순간, 그
시선을 틀어 나를 쳐다보다 아래를 내려보는 그 늑대 때문에 내 고개까지 절로 숙여졌지. 그 늑대는 본능을 취하고 있었어. 쉽게 말하면 사냥을 하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저의 아래에 깔린 여자를 보던 늑대가 그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다 입맛을 다시더라고. 저의 밑에서 기절해버린 여자를 두고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이였어. 비가 오는 걸 원체 좋아하지 않는터라 이미 짜증은 짜증대로 났고, 거기다가 직장상사한테 제대로 찍힌터라 불만은 튀어나온 입을 뚫고 나올 기세였지. 점심시간이 끝나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마침 남는 시간에 대출한 도서를 반납하러 가려고 했던 참이였는데 잘됐다며 작은 심부름까지 달고 나왔지. 한 손에는 우산을 쥐고 한 손에는 책과 휴대폰을 든채로 회사를 빠져나왔어. 웅덩이진 곳을 이리저리 피해다녀도 젖어가는 운동화를 보자 괜히 운동화로 갈아신었나 싶어서 발을 내려다보다 다시 길을 걸었어. 근데
본능적으로 내 발걸음은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고, 내 앞을 가로막은 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 평온하기 그지없더라. 난 아직도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 그것이 생각나. 사람을 홀리는 묘한 웃음을 띄웠던 그 얼굴이. 이제야 생각해봤는데, 세상은 참 불공평한 것 같아. 나날이 갈수록 스트레스는 쌓여만 가는데 그걸 해소해주는 것은 나타나지 않으니까 말이야. 9시가 땡 치자마자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어. 상사고 뭐고 난 오로지 집에 가야만 하겠다는 집념으로 핸드백 속에 아무거나 막 집어넣었지. 1분 1초의 여유따윈 내게 없었어. 집에 가는 것이 내게는 이 지긋지긋한 일속에서의 해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대충 인사치레를 하고는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남자의 모습에 숨을 헉하니 들이마쉴 수 밖에 없었지. 내가 엘리베이터를 탄 시간은 퇴근하고 나서 5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나보다 더 빨리 탄 사람이 있다니 놀라웠을뿐이야.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냥 홱하니 돌려버리는 것도 어색해 살짝 눈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 안에 몸을 실었지. 지하 2층을 누르고 내려가는 시간이 왜 이렇게 느린지 모를정도였어. 그 정도로 어색함이 감돌았지. 그런 일들이 있고 난 후로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 난 아직까지 여전히 늑대에 대한 관심을 져버리고 있지 않을 뿐더러 그것들을 감출생각도 없어. 내가 살아있고, 내 두 눈이 멀쩡한 이상 이 세상에는 늑대들이 존재한다고 믿어. 눈을 크게 뜨고 네 주변을 한 번 잘 살펴 봐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