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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전체글ll조회 735l 2


[축선] 우리에게 끝은 없다 0 2 | 인스티즈







괜찮아요?









“ 죄송한데, 바쁘지 않다면 제 차 좀 봐줄 수 있을까요? ”


 내가 말하자 남자는 내가 튀어나온 빈집을 뒤돌아보았다.


“ 차가 갑자기 멈춰 섰어요. ”


 남자는 차 안을 들여다 보더니, 차문을 활짝 열어놓고 보닛을 열었다. 잠시 살펴본 남자는 애매한 표정으로 말했다.


“ 이상이 없어 보여요. 여기까지 달려온 것을 보면… 기름은 들어 있죠? ”


 나는 고개를 저었다.


“ 모르겠어요. 확인을 못 했어요. ”


 내 음성은 낮고 까칠했다. 나는 그 날 처음으로 입을 열어 소리를 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전날도 전전날도… 낯선 사람에게 말을 한 것이 일 년쯤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내 얼굴을 잠시 훑어보았다. 얼굴이 긴장되었다. 무례한 태도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 기름이 떨어진 것 같은데. ”


 남자는 의사가 거의 확신을 갖고 진단하듯 크게 길쭉한 손을 탁탁 털며 말했다. 가끔 기름을 가득 채우고 나면 한동안 신경쓰지 않고 지내곤 했다. 기름이 떨어져 차가 길 한가운데서 퍼지다니, 한심했다.


“ 먼저 기름을 사와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네요. ”


 남자가 내 얼굴을 빤히 보며 뭔가 발견하려는 빛으로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때마침 햇빛이 눈에 부딪쳐 동공 속에 혼란스러운 무늬가 소용돌이쳤다. 그와 함께 눈의 날카로운 선이 부드럽게 풀렸다. 남자는 자신의 차문을 열고 타라는 눈짓을 했다. 그것은 몹시도 다정하게 느껴지는 동작이었다. 나는 당혹감을 느끼며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내가 당혹감을 느낀다는 사실 때문에 얼굴이 붉어졌다.


“ 타세요. 나는 농협에 잠시 들렸다가 돌아올 거니까 그 사이에 기름을 사면 되겠네요. ”


 나는 차 안에서 모자를 들고 나와 남자의 차에 탔다. 남자의 차 의자에 놓여있던 윗도리와 마젤란이라는 책을 뒤로 치웠다. 언뜻 야생 꽃잎을 짓이겼을 때 나는 쓰고 향긋한 냄새가 났다. 시트는 검은색이고 카 오디오에서는 평이하고 경쾌한 피아노 곡이 흘러나왔다. 낯익은 피아노 소리… 그러고 보니 잘 아는 곡이었다. 주 트 뵈 (너를 갖고 싶어). 삼 분이 약간 넘는 짧은 곡이 거의 끝날 무렵에야 나는 알아챘다. 대학 동기인 혜윤이 김주영과 나의 결혼식 축하곡으로 식장에서 연주했던 곡이었다. 혜윤은 주 트 뵈가 들어있는 피아노 모음집을 결혼 선물로 함께 주어서 신혼 내내 아침과 저녁에 들었던 곡이었다. 드뷔시의 아마 머릿빛 처녀와 라벨의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 사티의 주 트 뵈….

 나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오래 전 그 음악이 흘렀던 신혼의 아침과 저녁을 기억해보려 해도 누가 날카롭게 절제해버린 듯 그저 캄캄하기만 했다. 분명 내 짧은 일생 중 가장 행복한 때였는데도 간직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서글프고 단념 어린 긴 한숨이 나왔다.



“ 무슨 관계라도 있어요? ”


 그가 불쑥 물었다.


“ 네? ”
“ 빈집이요. ”
“ 아뇨, 전혀 ”
“ 그 집에서 튀어나와서 놀랐어요. ”
“ 왜요? ”
“ 사람들이 들어서기를 꺼려하는 집이예요. 수몰 지역 보상 문제 때문에 집을 무너뜨리지는 않았지만…. ” 
“ 사연이 있는 집이군요. ”
“ …이 마을 사람이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죠. 하긴 마을 사람으로 인정받기가 쉬운일은 아니지만… 시골생활은 어떠세요? ”


 남자가 의외로 나를 알고 있었다.


“ 한 달쯤 전부터 그 집 마당에 저 작은 차가 늘 세워져 있는 것을 봤어요. ”


 내가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자 그의 얼굴에 괜히 아는척했다는 후회의 빛이 스쳤다. 옆 얼굴이 짧고 단정했다.


“ 우리집도 그 산 위에 있어요. 싫은, 당신이 사는 바로 윗집이예요. 세번째 집. ”


 나는 약간 놀랐다. 전날 주춤주춤 언덕길을 따라 오르다가 빈집인것 같아 마당 구경을 했었다.


“ 빈집인 줄로 알았어요. ”
“ 거의 빈집이죠. 나 혼자 사용하고 있어요. 가족들은 주말이나 방학에 어쩌다 몰려오고…. ”
“ 조각을 하시는 것 같던데…. ”


 마당엔 일정한 크기의 흰색 돌들이 뒹굴고 있었고 지붕만 얹은 창고 선반 위에 망치와 정, 끌, 크기가 다른 조각칼 세트들. 연마기들이 크기 수너대로 배열되어 있었었다.


“ 빈집을 탐사하는 것이 취미인가 봐요. ”


 그가 기분 상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계곡길 아래의 마을로 고개를 돌렸다. 보상이 끝나고 이주도 끝나 이제 물속에 잠길 일만 남은 마을. 햇빛을 가득히 받고 있는 적막한 마을엔 새 한 마리 날아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쥐나 개미 한 마리도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물에 잠기기 전에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 갈 용기는 좀처럼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나에겐 정말 빈집을 탐사하는 취미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 당신이나 나나, 하필이면 그 언덕 위의 집을 사서 이사를 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
“ 네? ”


 문득 알 수 없는 말을 한 남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 …조각하는 친구가 한동안 와서 일을 하고 어질러놓은 거예요. 난 이 지역 관할 우체국 일을 봐요. ”
“ 우체국? ”
“ 네, 사설 우체국. 이곳에 오면서 우체국을 샀어요. 
“ 우체국장님이세요? ”
“ 그런 셈이죠. ”
“ 이렇게 젊은 우체국장님이라니 재밌네요. ”


 그가 뭐가 재미있냐는 듯이 고개를 돌려 나의 옆 얼굴을 힐끗 보았다. 유난히 눈빛이 강한 눈이었지만 강렬함을 절묘하게 무너뜨리는 권태와 우수와 배어 있었다.


“ 어릴 때, 우체국 앞집에 산 적이 있었어요. 다섯 살에서 아홉 살 까지. 제 어릴 때 꿈은 우체국에서 일하는 거였어요. 그때 우체국은… 뭔가 아주 중요하고 내밀한 일들이 이루어지는 비밀 장소로 보였거든요. ”


 그가 우체국장이라는 사실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긴장을 풀며 생긋 웃었다. 낯선 사람을 향해 그만큼이라도 웃는 것은 나로선 흔치 않는 일이엇따. 게다가 어릴 때 꿈 이야기까지 하다니.


“ 그렇게 쉬운 꿈도 이루지 못하나요? ”
“ 어쩌면 너무 쉬워서 깜빡 잊고 살았던 건지도 모르죠…. 그래요, 잊었어요.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이렇게 나이 든 뒤에 갑자기 생각이 난 거죠. ”


 남자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아,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이에요. ”


 아득한 기억 속에서 흙을 털고 나오듯 갑자기 흘러나오는 친숙한 피아노 소리 때문에 내 마음이 왈칵 그에게로 기울어지는 듯했다. 분명 가장 행복한 한때의 편린이었다. 사정을 알겠다는 듯 나를 짧게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음악 좋아해요? ”


 내가 묻자 남자는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


“ 안 좋아해요. 이건 늘상 지니고있는 앨범인데 오늘 어쩌다가 틀게 되었어요.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 기억도 안 나요. ”


그가 심드렁하게 말하는데도 마음이 편안했다. 나는 그의 옆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수염이 거의 나지 않는 타입인지 턱이 깨끗했다.


“ 내려서 기름 사세요. 나는 저기 농협에 들어갔다가 나올 테니까. ”


 남자는 우체국 맞은편 구멍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내가 내리자 무엇을 확인하기라도 하듯 짧게 뒤돌아 본 뒤에 떠났다. 내가 내린 곳은 꽃밭이 넓게 펼쳐진 길가였다. 나는 아, 하며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꽃밭은 우체국을 빙 둘러싸고 있었고 붉고 흰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리고 꽃밭 외에는 우체국이 물 위에 떠가는 것만 같았다. 구멍가게 현관문을 두드리자 얼굴에 주근깨가 많이 난 여자가 몸빼 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나왔다. 마음이 좋게 생긴 여자에게서, 기름 한 통을 사고 주입기도 빌렸다.

 남자가 오지 않기에 나는 길가에 세워진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커피를 뽑아 구멍가게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마셨다. 따뜻한 초록빛 바람이 은은하게 지나갔다. 길에는 차 한대도 지나가지 않고 체로 걸러낸 듯 맑고 텅 빈 공기는 시간이 멈추어진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참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기름을 넣은 뒤 시동이 걸렸다. 시동이 걸린 차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 마음을 다른 데 뺏기고 사나 보네요. ”


 남자가 허리를 굽혀 차 안에 앉은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한심해하는 빈정거림이 아닌 염려의 눈빛이였다. 똑바로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과 낯선 냄새,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이 나를 포박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눈을 돌리고 공연히 흘러나오는 노래의 볼륨을 높였다. 


“ 괜찮아요? ”


 남자는 내게서 무언가를 느낀 것 같았다. 내가 어딘가 아프다는 것을…. 내 속에 고인 피가 나를 잔뜩 누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괜찮다는 표시로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문득 손을 들어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자 내 마음속에 무엇인가 한꺼번에 흘러 내려버릴 것 같은 가파른 벼랑이 느껴졌다. 나는 목에 무엇이 걸린 듯 낮고 깔끄러운 음성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급히 차를 출발시켰다. 모퉁이길을 돌 때, 사이드 미러를보니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자신의 차 쪾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좀 커 보이는 바지를 편안하게 흘리듯 입고 전체를 네이비색 톤으로 맞춘 편안하고 부드러운 옷차림이였다.

 조금만 더 인내심이 없었더라면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에 그 말을 덧붙였을 것이다. ‘ 우린 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있네요. ’ 나도 발목까지 오는 옅은 네이비색 모직 원피스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웃음이 나왔다. 이유없이 그냥 기분좋은 웃음이.
 
 그 날 이후론 날씨가 좋은 날은 유치원 마치는 시간보다 두어 시간 빨리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나갔다. 쾌청한 5월에 차창을 활짝 열고 가로수가 숲처럼 무성한 국도를 빠르게 달리는 일이나 시골길의 보리 익은 냄새와 야생화 향기가 뒤섞인 공기 속을 아주 천천히 달리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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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신알신 하고 갈게요.. 음... 댓글을 뭐라고 써야하지.... 금손이세요...
11년 전
독자2
작가님 대박이에요...글쓰는 솜씨가 진짜.....와...게다가 길고 재밌어요..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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