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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박지민] 마지막 로맨티스트 02 | 인스티즈 

마지막 로맨티스트 

w. 휴먼
 


 



 


 

"와, 사무실 깔끔하네요." 

"어서와요. 차 한 잔 부탁해요." 



 

 젊은 여직원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정국이 문이 닫히자마자 지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본인은 이거의 두 배는 되는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는 주제에 여기저기 꼼꼼히도 둘러본다. 신기해하는 얼굴로. 변호사는 이런 곳에서 일하는구나, 생각하던 지민이 '어쩐 일이에요?' 하는 정국의 물음에 아, 하고 입을 뗐다.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지나가다 잠깐 들렀어요." 

"아아." 

"아내가 이 주변에 커피숍을 개업했거든요. 거기 가는 길이었어요." 


 


 커피숍. 커피숍? 중얼거리며 골똘히 생각하던 정국이 '아, 거기!' 하고선 몇 번 지나가다 공사중인 걸 봤다고 말했다. 저희 와이프 한 번도 못 보셨죠? 다음번에 같이 가요, 우리. 여직원이 가져온 차를 홀짝이며 지민이 말했더니 정국은 웃으며 좋다고 화답했다. 저희 사무실이랑 가깝다고 하니까 앞으로 직원들이랑 자주 애용해야겠어요. 아 그러면 저야 너무 감사하죠. 남자 둘이서 얘기하는데 뭐가 그리 즐거운지 둘을 에워싼 공기에서 향 좋은 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여주의 가게 얘기에서 일 얘기로 넘어간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요즘 회사 분위기는 어떻냐, 그냥저냥 다닌다 등등 시시콜콜한 얘기가 오가는데 잠잠하던 몸에서 진동이 울리는 걸 느낀 지민이 찻잔을 내려놓고 재킷 안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어, 자기야. 나 바로 앞인데 누구 좀 만나느라….응. 가게는 어때? 마음에 들어?" 




 이어지던 대화에 일시정지 버튼이 눌러지자 말이 없어진 정국은 멀뚱히 통화 내용을 듣고만 있었다. 간간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음꽃을 피우는 지민을 신기해하는 듯했다. 저와 있을 때는 예의상인지 뭔지 모를 웃음을 자주 보이는 편이긴 하지만, 한참 재판을 준비할 당시 몇 번 지민의 회사에 방문한 적이 있는 정국은 지금 지민의 모습이 꽤 낯설 수밖에 없었다. 사장실 앞에 서서 노크를 하려고 오른손을 주먹 져 문 위에 대자마자 들려오던 고함소리. 이어지는 안절부절못하는 목소리와 끝내 문이 열렸을 땐 축 처진 어깨로 터덜터덜 사장실을 나오던 직원의 침울한 얼굴을 정국은 똑똑히 기억한다. 아, 그리고 그때 즈음 그렇게 회사에선 사납게 구는 지민이 제 와이프 앞에서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개가 되어버린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일부러 엿들은 것이 아니라, 엘리베이터에서 여직원들의 수근거림은 안 듣는다고 안 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 주말에 백화점 갔다가 사장님 사모님이랑 같이 계시는 거 봤거든? 와- 나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니까. 사장님 원래 사모님이라면 껌뻑 죽는 걸로 유명하시잖아. 직원들한테도 그 넓은 아량 좀 베푸시면 좋으련만. 체념한듯한 여직원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알았어, 빨리갈게. 응." 

 


 

 통화가 너무 길었죠? 테이블 위에 휴대폰을 내려놓자마자 미안한 표정을 짓는 지민에 정국이 아니라며 빙그레 웃었다. 아내분이랑 금슬이 진짜 좋으신가 봐요. 정국의 말에 지민이 '아, 네 뭐.' 하고 수줍게 대답하고선 입술을 말아 물었다. 내가 너무 눈치없이 떠들었나. 어쩐지 정국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질 못하겠다. 

 


 

"아, 외롭네요. 사장님 그러시는 거 보니까." 

"…전변호사님 결혼하신 거 아니였어요?" 



 

 금세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지민이 정국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니요. 저 아직 솔로입니다. 대답하는 정국의 얼굴에 씁쓸함이 스쳐지나간다. 지민은 입을 아, 벌리고선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러다 맞잡아 깍지를 끼고있는 정국의 두 손에 눈길을 주며 입을 열었다. 


 

 

"전 그 반지때문에 애인은 있으실 줄 알고…." 


 

 

 지민의 말에 정국이 고개를 숙여 저의 왼손을 바라봤다.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은반지. 화려한 보석 같은 건 박혀있지 않았지만 커플링이라고 유추하기엔 꽤 그럴듯하다. 정국이 다급하게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추었다. 하지만 이게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는 명확하게 설명해내지 못했다. 아, 이건…. 그러니까 이건. 당황한 두 눈동자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게 보였다. 그것을 눈치챈 지민이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제가 오해했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하하하, 소리 내며 웃었지만 지민의 마음은 그다지 편하지 못했다. 억지로라도 웃질 못하고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대는 정국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기 때문이다. 내가 큰 실수했나 보군. 정국의 왼손에서 새어나온 빛이 감싸져있는 오른손 사이의 틈을 뚫고 나와 멋대로 반짝였다. 



 


 

*** 


 


 

 

 맑은 종소리가 울리고 지민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커피숍 내부엔 제법 여러 테이블들이 사람들로 채워져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카운터 앞까지 다다른 지민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알바생들 틈에서 무언갈 찾듯이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지민씨, 오셨어요?' 하는 음성에 고개가 절로 그 쪽을 따라갔다. 



 

"진희 씨, 수고 많으세요. 여주는요?" 

"오자마자 너무 급하시다. 여주 휴게실에 있어요. " 


 

 

 손으로 자세한 위치까지 알려주는 세심함에 지민이 감사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런지 3초도 지나지 않아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 알바생들을 쌩하니 지나치고선 곧바로 휴게실을 찾았지만. 똑똑, 노크소리에 답하듯 안쪽에서 '네에' 하는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컥 소리가 나며 문이 열리고 지민이 살짝 열린 틈사이로 고개만 쑥 들이밀었다. 여주는 앞치마를 두르다가 지민을 보고선 화사하게 웃으며 쪼르르 문 앞으로 달려갔다. 대롱대롱 목에 매달려진 앞치마가 흔들거렸다. 휴게실로 완전히 들어선 지민이 제 품에 안기는 여주의 어깨를 한 쪽 팔로 감싸며 자유로운 한 손으론 문을 닫았다. 보자마자 왜 이렇게 애교를 부려, 감당 안 되게. 


 

 

"아아- 갑자기 박지민이 막 존경스러워 보이네. 사장님이 쉬운게 아니구나." 

"뭐? 아직 하루도 안 됐는데?" 



 

 어이없어하던 지민이 여주의 한 쪽 뺨에 손을 올리고 어루만졌다. 오늘 저녁 같이 먹을까? 나긋나긋한 음성이 귓가에 울리자 여주는 지민의 가슴팍에 묻었던 얼굴을 위로 꺾어 그를 올려다봤다. 시간 돼? 요즘 바쁘잖아. 큰 눈을 깜빡거리는 모습이 여간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특별한 날인데 없어도 만들어야지, 시간." 

"에? 그러지마. 그럼 나 미안해서 먹다가 체해." 



 

 축 처진 눈썹이 진심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지만 지민은 그 모습마저 웃긴건지 푸하하, 소리까지 내어가며 웃었다. 내가 다 알아서하니까 그냥 저만 따라오세요. 한 쪽 팔은 여주의 허리에 둘러진 채로, 뒤통수에 머무르던 지민의 나머지 손이 스르륵 내려가 좁은 등을 토닥거렸다. 



 

"근데 너 이럴 시간 있어?" 



 

 이거 이거, 사장님이 너무 나태한 거 아니야? 개업 첫날부터? 품에서 여주를 살짝 떼어낸 뒤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봤더니 여주가 헙, 하며 방금 전까지 잘만 안겨있던 품을 밀쳐낸다. 어떡해, 어떡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은 앞치마 끈이 잘 묶이질 않는지 왔다갔다거리며 헛짓만 하고 있었다. 이리 와봐. 그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던 지민이 여주의 한 쪽 손을 잡아끌어 제 앞에 등을 지고 서게 했다. 그의 섬세한 손길은 곧 단단한 매듭을 지어맸다. 허리가 조이는 느낌이 들자 뒤돌으려던 여주의 어깨를 지민이 꾹 잡아눌러 그러질 못하게 했다. …왜? 여주는 뒤돈 상태에서 고개를 틀어 제 어깨너머로 지민을 쳐다보려 애썼다. 지민이 그런 여주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허리에 둘러진 두 팔에 손으론 깍지까지 껴가며 아주 꽈악.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이 가게는 직원들 쉬는 시간, 뭐 그런 거 없나? 



 


 

*** 

 

 


 


"너 좋아하는 초밥집 예약해놨는데, 괜찮지?" 



 

 핸들을 붙잡은채로 내 얼굴을 슬쩍 쳐다보는 박지민의 시선을 느낀 나는 '응, 그럼!' 하고 방긋 웃었다. 그런 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가 한 손으로 버튼을 눌러 라디오를 재생시켰다. 네, 그럼 저희는 2387님의 신청곡, 럼블피쉬의 비와 당신 듣고 오겠습니다. 디제이의 곡 소개에 박지민이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어, 이거 자기가 좋아하는 곡이네. 앞을 보고 운전하던 그는 고개를 돌려 다시 나를 쳐다봤다. 좋아하긴 무슨….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하던 나는 애써 말끝을 흐리며 재빨리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래방가면 자기 맨날 이 노래 불렀었잖아." 

"…그랬었나." 

"아, 갑자기 또 우리 연애때 생각나네." 


 


 추억에 잠긴 듯 옛 시절을 회상하는 박지민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실 우린 연애라고 할 것도 딱히 없었다. 양가 부모님들이 주선한 선 자리에서 처음 만난 후 연애라고 하면 연애라고 칠 수 있는 기간은 고작 4개월 정도였다. 그 후에 바로 식을 올렸고. 박지민은 아직도 우리 연애할 때 이러지 않았냐, 저러지 않았냐 하며 옛 기억을 서슴없이 들춰냈지만 난 거기에 그와 똑같이 행복한 얼굴을 하고 맞장구쳐주지 못했다. 나에겐 그 4개월마저 독약을 삼킨 것 같이 쓰기만 한 계절이었다. 누구에게 사랑받고, 내가 사랑을 주고… 뭐 그런 이상적인 남녀 교류 따위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미 몸에 배인 그 사람의 향기를 없애려 노력하고, 꿈에 그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기도해야만 했던 절박함이 박지민과의 추억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 악몽같던 시간을 되새겼다. 그리고 입꼬리를 올린 채로 연애시절 내가 자주 불렀다던 그 노래를 흥얼거리는 박지민을 지켜보기만 했다. 같은 시절을 떠올리더라도 그와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한 손으로 운전하고 있는 박지민의 다른 한 손을 가만히 감쌌다. 그는 그걸 내려다보더니 씨익 웃는다. 그렇게 마주보고 웃고 있다가, 중앙에 있던 네모난 화면이 밝아지자 박지민이 곧바로 붙잡고있던 내 손을 놓았다. 자유로워진 손이 허전해 괜히 주먹을 한 번 쥐었다 폈다. 어, 변호사님이네. 그새 통화 버튼을 눌렀는지 연결이 완료됐다는 의미로 초 단위가 올라가고 있었다. 


 


"네, 변호사님." 

―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숙이고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전화가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노랫소리가 끊겼고, 차 안에 두 남자의 목소리가 교차되며 울려퍼지고 있었다. 갑자기 또렷하던 시야가 흐려지고 멀쩡하던 머리가 윙윙 울리는 것 같았다. 익숙한 음성이 내 귀를 찰싹찰싹 때리듯 옆에서 말하는 박지민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져갔다. 


 

 

― 그럼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매번 이렇게 신세만 지게 돼서 죄송하네요. 다음번에 저희 가족이랑 식사자리 한 번 마련하겠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던 걸까. 언젠간 어떤 식으로든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다는 뻔한 생각마저 하지 못했다. 차갑게 뒤돌아서는 그 사람의 뒷모습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아파했고, 울었고, 죽을 만큼 힘들었고. 그 모든 순간들이 쓰나미처럼 마음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내가 지금 어떤 표정으로 박지민을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눈에 초점도 안 맞는 멍한 얼굴로 오밀조밀 움직이는 그의 입술을 바라봤다. 통화를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박지민이 한 손으로 내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런 그의 옆에서, 5년전 그 사람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됐다. 


 


 


 


 


 


 


 



사실 분량 조절을 못하겠습니다,,, 

길 때도 있고 짧을 때도 있고 머 그럴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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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헉... 정국이라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ㅠㅠㅠㅠ
6년 전
휴먼
댓글 감사합니다❤️
6년 전
독자2
헐 설마 그반지가....(입틀막) 정국이랑 무슨일이있었구나ㅠㅠㅠ 흐허 다음편이더 기대되네요!!!
6년 전
휴먼
댓글 감사합니다❤️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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