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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박지민] 마지막 로맨티스트 01 | 인스티즈


마지막 로맨티스트

w. 휴먼








"일 이따위로 처리하지 말라고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죄, 죄송합니다 사장님…. 저도 경황이 없었어서."

"후…. 윤실장님한테 다시 보고드리고 그만 나가보세요."




 꾸벅,꾸벅 연신 허리를 접어대던 남성이 빠른 걸음으로 사장실을 나간다. 답답함에 머리를 마구 헤집던 지민은 꽉 조여맸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했다.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 요즘. 최근 들어 회사를 두고 도는 구설수로 인한 주가 하락에 거래처와의 잦은 갈등, 그에 따라 회사 분위기마저 어수선하니 누군가 목이라도 조르는 느낌이다. 사무실 창가에 쳐져있는 블라인드 틈 사이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넥타이부대가 눈에 들어왔다. 벌써 7시가 다 되어가니, 정확히 퇴근시간이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조용히 눈을 감고있던 지민이 웽웽거리며 책상 위에서 요란하게 몸부림치는 물체의 움직임을 눈치챘다. 응, 여보. 방금 전까지 핏대를 세워가며 큰 소리를 치던, 흡사 폭군을 보는듯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다정한 그의 목소리만이 사무실 공기를 온화하게 했다.




"나 아직 회사. 근데 자기야, 어쩌지? 나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내가 저때 말했던 변호사님 있잖아, 응 이번 재판 도와주셨던. 같이 식사하기로 해서 오늘 저녁은 같이 못 할 것 같아…. 응…. 응…. 알겠어. 들어갈 때 전화할게. 졸리면 기다리지 말구 일찍 자. 응."




 부릅떴던 눈을 휘어가며 곧 녹아내릴 것 같은 달콤한 음성을 내던 지민이 통화가 종료되자마자 머금고 있던 미소를 거두었다. 흩날려져있는 종이들을 챙겨 서류 가방에 집어넣고 비서실 호출버튼을 눌렸다. 네, 저 퇴근하니까 내일 아침 윤실장님 출근하시는 대로 알려주세요. 이어지는 직원의 정직한 대답에 지민이 행거에 걸어뒀던 정장 재킷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또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예, 전변호사님. 저 박사장입니다.






***






"아버지께서 이번 일로 변호사님한테 엄청 감사해하고 계세요."

"아닙니다. 그렇게 큰 사건도 아니라서요."

"그래도 변호사님 아니었으면 회사 운영에 실이 컸을겁니다."




 지민은 마지막 남은 스테이크 조각을 집어들며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식사 내내 대화주제는 얼마 전 드디어 종지부를 찍은 재판 사건이었다. 몇 개월 전 퇴사했던 직원이 일방적으로 걸어온 소송이었다. 터무니없는 구직원의 주장덕에 정국의 말대로 그렇게 심각한 일로 비추어보긴 어려웠으나 잘못됐으면 큰일 날뻔한 사건이었다. 변호사를 선임해 일을 진행하게 된 마당에 마땅한 사람을 구하지 못 했다. 마침 기업 담당 변호사마저 비리가 터져 공석인 상태였다. 그러던 와중 대학 때 알고지내던 선배에게 정국을 소개받았고, 여차저차해서 이렇게 된 것이다. 타인과 어울리는 것에 무관심하고 마주보고 앉아 겸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과 아내가 전부였지만, 이렇게 유능하고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의 식사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아버지께서 변호사님을 저희 회사 담당 변호사로 입사시키고 싶어 하세요."

"아…."

"너무 갑작스럽죠?"




 푸흐흐, 하고 낮은 지민의 웃음소리가 잔잔히 울렸다. 네, 좀 당황스럽네요. 허허, 웃으며 물을 한모금 들이키는 정국을 지민은 빤히 바라보았다. 웬만하면 그냥 오케이 해주세요. 저도 적극 찬성입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정국은 고민해보겠다며 손목에 차인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그만 일어날까요?




"아, 네. 저 전화 한 통만 하고 있겠습니다. 천천히 나오세요."




 먼저 자리를 뜬 지민은 계산을 하면서 옆에 놓인 박하사탕 하나를 집어 입에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곳으로 나오자마자 지민은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몇 번의 신호음이 이어지고 곧 가녀린 여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안 잤어? 물고 있는 사탕보다 더 달달한 목소리가 지민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 자기 오는 거 보고 자려구.

"기다리지 말라니까. 내일 가게 개업도 하잖아."

― 혼자 있으면 잠 안온단 말야.




 회사에서 군기를 잡으며 직원들을 들들 볶아먹는 지민도 이 여자의 어리광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알겠어, 이제 진짜 갈거야. 




"뭐 먹고싶은거 없어?"

―으음…. 글쎄… 아 딸기! 나 딸기 먹고싶어.




 딸기? 되물어보며 작게 웃음을 흘리던 지민이 알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를 마쳤다. 으으, 추워. 꽤 쌀쌀해진 날씨에 재킷을 갖춰입고 있으면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들린다. 




"아, 나오셨어요?"

"네. 계산 제가 하려고 했는데 먼저 하셨더라구요."

"당연히 제가 사야죠. 빚이 있는데."

"한 대 피실래요?"




 입에 하얀색 막대를 물고 있던 정국이 똑같은 것을 지민에게 건넸다. 아니요. 전 됐어요. 지민은 손까지 흔들어보이며 사양의 표시를 했다. 홀로 라이터에 불을 붙인 정국의 앞으로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직장생활 하면서 이거 없이 견디기 쉽지 않을텐데."




 정국이 손가락 사이에 끼운 막대기를 한 번 까딱였다. 지민은 그저 머쓱하게 웃었다.




"저도 처음 회사 다닐땐 골초도 이런 골초가 없겠다, 싶었는데 결혼하고부터 끊었어요."




 와이프가 담배냄새를 끔찍하게 싫어하거든요. 아무 생각없이 뱉은 말에 정국이 뜨끔했다. 아, 불 끌까요? 다급해보이는 정국의 모습에 지민이 크게 웃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 근데 혹시 이 근처에 과일파는 가게 있을까요? 제가 이 쪽은 지리를 잘 몰라서."




 과일? 미간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하던 정국이 잠시 후 아, 하고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고선 길고 흰 손가락으로 저만치를 가리켰다. 저 쪽 코너 돌면 아마 하나 있을거에요. 근데 곧 문닫을텐데. 이제 막 10시를 넘기려는 시각에 정국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럼 저 먼저 가봐도 될까요?"




 그러세요. 선하게 웃는 정국에게 지민은 목을 까딱였다. 조심히 들어가시고 곧 다시 봬요. 정국에게서 등을 돌린 순간부터 와다다 뛰어가기 시작하는 지민의 뒷모습을 정국은 가만히 쳐다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후- 하고 매운 연기를 다시 한 번 뿜어냈다.






***






 삐빅, 삐빅. 손에 익은대로 번호키를 누르니 곧 도어락이 해제되었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여보, 나 왔어.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귀가신고부터 했건만 어째 조용하기만 하다. 원래라면 저 벽에 숨어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저를 쳐다보는 이가 있어야하는데. 캄캄한 거실과 이어져있는 부엌불을 켜고 식탁에 딸기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먹고 싶다고 해서 머리 휘날리며 뛰어가 사왔더니 주문자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자기야, 자? 쇼파에 윗옷을 걸쳐놓고 열려있는 안방문을 밀던 지민이 합, 하고 입을 다물었다. 어두운 침실에 희미하게 퍼진 빛 사이로 조신하게 누워 눈을 감고있는 여인이 보였다.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간 지민이 비어있는 침대 옆자리에 걸터앉았다. 무게가 실리자 매트리스가 약간 밑으로 꺼지는게 느껴졌다. 흐트러진 이불을 목까지 덮어주곤 가만히 자는 모습을 관찰했다. 혼자선 못 자겠다더니. 어느새 올라간 입꼬리와 함께 지민은 여주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보기만 한다는 것이, 끝내 참지 못하고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더니 기다란 속눈썹이 위로 들리며 감색 눈동자가 나타났다. 저가 깨워놓고 되려 당황한 지민이 말을 더듬었다.




"미, 미안. 나 때문에 깼어?"




 여주는 졸린 눈을 한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더 자, 더 자.' 하는 지민의 허리께를 여주가 껴안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옆구리에 얼굴을 부비적거리며 칭얼대는 여주를 내려다보는 지민의 눈에 애틋한 마음이 스며든 듯 했다.




"미안해. 밥 혼자 먹게 해서."

"치이…. 됐어. 요즘 회사일때문에 정신없어 보이던데 나까지 신경쓰지마."




 지민은 여전히 자신의 허리를 껴안은채로 어느새 무릎에 누워 웅얼거리는 여주를 내려다보며 이마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있는 머릿결을 정리해주었다.




"나한테 너만큼 중요한게 어딨다고."

"말은 잘 해, 말은."

"행동으로 보여줘?"




 눈을 게슴츠레 뜬 지민이 얼굴을 들이밀자 여주는 뭐야, 하고 꺄르륵 웃었다. 따라웃던 지민이 머리칼을 쓰다듬던 손을 옮겨 여주의 뒷통수를 바쳤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를 아래로 숙였다. 맞물려진 입술 사이에서 야릇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한참 뒤에야 살짝 입술을 뗀 지민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떡하지, 나 오늘 처리해야 할 일 많은데. 말투는 못내 아쉬워하지만 어쩐지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어느새 침대시트에 눕혀진 여주가 지민의 가슴팍을 살짝 밀었다. 나보다 일이 더 좋지? 뾰루퉁한 얼굴을 내려다보며 끅끅 소리를 내며 웃던 지민이 여주의 뺨에 짧게 키스했다. 그럴리가. 귓가에 번지는 속삭임에 배시시 웃던 여주는 지민의 목에 두 팔을 감았다. 다시끔 두 입술이 겹쳐지면서 방 안에선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침대 옆에 놓인 스탠드의 조명만이 은은하게 두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달빛보다 더 영롱한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사심담아서 쓴 글이에요

다 제가 보고싶었던 조합 짬뽕했습니다

애처가에 아내한테만 유순한 지민이

능력캐 변호사 정국이

아, 그리고 제가 요즘 직장물 드라마에 빠져서 

일부러 지민이를 카리스마있는 상사로 만들었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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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78.31
헐... 너무 좋은데요 문체가 정말 깔끔하면서 약간 눈앞에서 일어나는 걸 보고 있다고 할 정도로 묘사되어 있는데 너무 자연스럽고 한마디로 대박입니다!!! 그리고 글 분위기 자체도 단정하면서도 다정하고 귀여운 지민이랑 찰떡이고 지민이 미래 결혼생활이랑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저 정말 다음화 기대돼요 다음화 기다리고 있을게요 잘 보고 가요ㅎㅎ
6년 전
휴먼
와 정성스러운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ㅠㅠㅠㅠ 다음화 곧 올릴 예정이에요!
6년 전
독자1
헉 너무너무 좋아요 ㅠㅠㅠㅠ 아내에게만 유순한 지민이라뇨... 작가님 표현이 자세하면서도 부드러워서 보는 내내 입가에 웃음 띄우면서 읽었어요ㅎㅎ 다음 화가 벌써 기대돼요 꺄!! 혹시나 암호닉 받으신다면 [당근]으로 신청하고 가요!
6년 전
휴먼
아직 암호닉 생각은 없어서 받게되면 말씀드릴게요! 정성스러운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ㅠㅠㅠㅠ
6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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