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형사님은 정성껏 내 얼굴의 상처를 치료해주시던 모습과는 다르게 치료가 끝나자 후다닥 휴게실을 나가버렸다. 그렇게 뒷모습만 보면서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시는 윤지성 형사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 조직이 워낙 마약으로 분야가 넓은 조직이라 곧바로 특별마약수사팀에서 전담한다는것이었다. 그말은 즉슨 우리에게 더이상 그 일은 없다라는것. 왜 우리 수사를 가로채냐라고 기분나쁠법도 하지만 수사할 사건이 한두개가 아닌 강력반으로써 마약처럼 억울한 피해자가 없으며 깊고 오래 파고들어야하는 사건은 가져가주는게 고마운 일이었다.
“야, 옹성우. 그럼 우리 오늘 집에갈 수 있어?”
분위기가 어수선한 틈을 타 성우의 책상에 기대어 소곤소곤 질문을 건넸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옹성우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고개만 까닥할 뿐이었다. 얘가 왜이러지?
“야,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같이 공부해오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성우는 서운한 일이 있어도 삐진척하다가 금세 유머로 푸는 타입이었다. 그런 성우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서류종이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옹성우, 너 왜그러냐니까??”
계속 말을 걸어도 무시하던 성우가 한숨을 깊게 쉬더니 몸을 움직여 책상서랍에서 무언갈 꺼냈다.
“따라와.”
방금 황민현 선배도 따라오라더니 왜이렇게 따라오라는 사람이 많은지, 이번에도 뒷모습을 따라 총총총 걸어가면 아무래도 이제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성우가 무거운 표정으로 휴게실에 있었다.
“옷 들어봐.”
무표정으로 옷을 들어보라는 성우의 손에는 여러장의 파스가 들려있었다. 뭐야, 늘 덜렁거려서 항상 다쳐오는 옹성우에게 밴드나 약을 챙겨주었던건 나였는데, 반대로 니가 나를 위해 파스를 준비했다는 사실이 조금 새삼스러우면서도 역시 동기이자 친구가 최고라는 사실이 느껴졌다. 유도를 같이 연습하며 워낙 볼꺼 못볼꺼 다본 사이라 뒤돌아 서슴없이 허리춤까지 옷을 올렸다.
바로 시원한 파스가 착-하고 올라올 줄 알았는데 그런 느낌도 나지 않고 아무말도 없는 성우였다.
“야, 너 뭐해?”
누나가 허리가 아무리 섹시해도 그렇게 쳐다보면 안되지-하는 장난으로 다시 성우를 돌아보면 성우는 손으로 얼굴을 짚고 애써 화를 참는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무슨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야, 김여주.범인 잡기전에 네 몸 챙기는게 먼저야. 지금 니 허리를 봐라, 살색이 많은지 멍든곳이 많은지. 이럴려고 맨날 잠도 못자고 공부해가면서 경찰 합격했어?”
“야, 너도 알잖아. 나 이번엔 꼭 인정받아야했던거. 그래서 오랜만에 누나가 몸좀 날려봤다.”
하지만 성우의 표정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고 그 마음이 다 나를 걱정해서 아껴서 나오는 속상함이라는걸 알기에 몇번이고 농담이 더 오고 간 뒤에야 성우의 표정이 풀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허리와 어깨에 파스를 붙여주는 성우였다.
“나 근데, 성우 니가 말한 남자의 스윗함이라는게 뭔지 오늘 알았다? 황민현 형사님이 얼굴에 난 상처 치료해주셨는데, 가까이서 마주보니까 너무 황홀한거 있지?”
“야, 근데 너는 진지하게 황형사님을 남자로 좋아하는거야, 선배로 존경하는거야?”
“둘 다!”
“그것 참. 또 연결고리 하면 옹성우, 옹성우 하면 연결고리지. 기다리면 좋은 정보가 올것이다 친구.
근데 황 형사님이 왜 좋아?”
다시 원래의 성우로 돌아온 성우는 황민현 선배님이 좋다는 말에 눈에서 초롱 초롱 빛이나듯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왜 좋냐구?
꿈으로 미래를 보면, 미래에 일어날 안좋은 사건을 보는경우도 참 많아. 그러다가 하루는 옆집 꼬마가 차에 치이는 꿈을 꿨어, 시간 장소 어떻게 치이는지 까지도 기억날만큼 생생했어. 그래서 그 장소에 미리 있으면서 아이가 꿈처럼 공을 주으러 도로로 가지않게 공을 뺐어버렸어. 그랬더니 지나가던 사람의 풍선이 도로가로 날렸는데, 아이는 그걸 잡으러 도로로 달려 나갔고 그 아이가 있는 차로에 꿈속에서 본 큰 관광버스가 달려왔어. 근데 그 순간이 너무 빠르게 일어나서 도저히 도로로 나가서 아이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안들더라.
근데, 어떤 젊은 남자가 차도로 바로 뛰어들어서 애기를 안고 넘어지듯이 나와서 겨우 사고를 피했어. 1초만 늦었어도 끔찍한 일이 일어날 만큼 아슬아슬 했어. 근데 그 분이 알고보니까 경찰인거있지? 자기 무릎 다 까진건 생각도 안하고 놀란 애기 달래느라 주머니에 있는 사탕까지 쥐어주면서 집으로 돌려보내는거야, 그 모습이 너무 멋졌어. 미래를 본다는 나는 미래를 보고도 해내지 못하는데, 그냥 갑자기 뛰어들어서 남을 구한다는게. 그게, 너무 멋있었어. 그 뒤로 그남자와의 미래가 자꾸만 보였고, 내 첫사랑인 이 남자옆에 있어야겠다 싶었어.
라는 말을 성우에게 할 수는 없어서 “사랑에는 이유가 없는거라네, 친구.” 하며 어깨를 두번 토닥여주고는 먼저 휴게실을 나왔다.
***
수고하셨습니다-!
일명 환상비율을 자랑하는 성우의 소맥이 가득 담긴 글라스가 짠-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울려퍼졌다. 아, 물론 한사람만은 빼고.
“막내야,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맞으면서 버텼냐?”
“설마, 죽기 직전에 누구라도 오겠지. 했는데 지금 죽을것 같습니다.”
사실 맞은곳이 욱씬 욱씬거리는게 파스도 소용이 없었다. 형사님들은 근육이 놀라서 그런거라며 파스도 붙이고 얼음찜질도 해줘야한다고 팁을 주셨다.
“신나는 회식이 시작되기전에 진지하게 딱 한마디만 할게 막내야. 너의 그 열정,의지 너무 좋고 기특한데 이 세상에서 니 몸보다 소중한건 없다. 니 몸이 건강해야 나쁜놈들 하나라도 더 잡는거야. 알겠어? 알겠으면, 원샷.”
성우에게 혼이났던것 처럼 반장님에게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어째 우리 팀에서 가족에게만 느껴지는 그런 몽글몽글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서 원샷으로 보답하면 언제 잔이 비었냐는듯 또 잔이 채워졌다.
“이번 범인을 잡는데는 여주의 공이 컸고, 많이 다치기도 했으니까, 특별 포상휴가 1일을 주라는 명이 위에서 내려왔다. 내 생각엔 신입이 포상휴가 따는 최단기록일것 같애.”
“오-“
“반장님, 저희는요? 저희도 고생했지 않을까요?”
“임마,그럼 너도 다쳐오던가.”
우와, 포상휴가라니. 생각지도 못한 보상이었다. 하지만 좋은일이 있으면 나쁜일도 있는 법이라고 내일 유일하게 휴가를 얻은 나이니, 오늘은 술 먹고 죽어도 되는날 이라며 평소보다 몇배는 빠르게, 많은 술을 먹어야했다.
술을 먹이는 건 네맘, 취하는 건 내탓이라고 했던가. 알딸딸한 기분에 20년 넘는 세월동안 가져온 머리가 오늘 따라 너무 무거워서 달고 있기가 힘이들었다. 손으로 머리를 받쳐도보고 술을 깨기위해 물을 마셔봐도 머리를 여전히 무거웠다. 그러다가, 어? 갑자기 좀 가벼워진것 같아. 하고 눈을 깜박이면 어느새 내 머리는 황민현 형사님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굉장히 실례가 되는 행동이라는걸 아는데도 내 의지대로 되질 않았다.
“김여주, 잠깐 바람쐬고 오자.”
계속 내 물잔에 물을 따라주시며 먹으라고 하시던 황민현 형사님이 결국 나를 똑바로 세우시며 밖에 나가자고 하셨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괜찮아진 느낌에 천천히 밖으로 따라나갔다.
가게 밖으로 나와 그 앞에 잠시 쭈그려 앉으면, 형사님은 바로 옆 편의점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내입에 넣어주셨다. 달달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번지는게 알코올로 인한 괴로움이 좀 덜해지는것 같았다.
“너는 매번 주는대로 다 받아먹으면, 힘들어서 어떡하려그래.”
“음, 힘든데 그래두 황형사님이랑 이렇게 둘이 나올 수 있지 않습니까?”
잘 떠지지도 않는것 같은 눈으로 웃으면, 눈이 접혀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것 같았다. 시원한 바람에 정신이 좀 들긴 했지만 내 말들은 필터를 거치지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황형사님은 원래 그렇게 달달하십니까? 마치 음, 아이스크림 같습니다.”
“뭐?”
“아니이, 저는 남자한테는 완전 잘해주시고 저한테는 쌀쌀맞으셔서 진짜 남자좋아하시는건가?까지 생각했습니다아..”
동문서답으로 대화를 하면서도 계속 나의 생각을 말하는 나의 말에 형사님은 빤히 내 눈만을 쳐다보셨다. 나 아무래도 실수하는건가봐..
“풉,푸하하하”
“대애박. 웃는건 또 왜이렇게 잘생기셨습니까? 헙, 입이 자꾸 마음대로 말을 합니다아-“
자꾸만 의지와는 상관없이 뚫린 입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지껄이는 입 때문에 손으로 입을 막았다. 형사님은 뭐가 그리도 즐거우신지 자꾸만 하하 하고 소리내어 웃으셨다. 그럼 나는 또 오늘 처음 보는 그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절로 따라웃었다.
그렇게 따라웃다 나도 모르게 중심을 잃으면, 내 무거운 머리는 여지없이 황형사님의 어깨로 향했고 앞으로 쿵-하고 형사님께 기댄 내 머리는 거기서 부터 작동을 멈춘것 같다.
***
오늘 아침은 내 인생의 아침 중 가장 최악의 아침이었다. 온몸은 근육통으로 가득해서 화장실을 가는것 조차 힘이 들었고 속은 속대로 아파서 말을 듣지 않는 몸으로 밥을 차리는것도 힘이들어 휴대폰 어플로 죽을 배달시켰다. 요새는 집에서 시간을 얼마 보내지도 못하는 지라, 황금같이 누려야 할 휴가의 아침시간을 걷고, 씻고 먹는데에 다 소비해버렸다.
볼펜 하나들기에도 아파오는 팔이지만 오늘은 오늘인만큼 겨우 화장품을 손에 들었다. 경찰에 합격하면 가장 먼저 부모님 납골당에 가보려했는데 그럴 시간 마저도 없어서 오늘이 유일한 타이밍이었다. 엄마 아빠에게 자랑하러 가는거니까, 가장 예뻐보이고 싶어서 평소보다 신경 쓴 화장, 평소에도 잘 하지않는 머리세팅과 원피스, 구두 까지 즉, 머리 부터 발끝까지 꾸밀 수 있은 만큼 다 꾸몄다.
그냥 걷기도 힘든 몸으로 구두까지 차려신고 또각 또각 집을 나서면 납골당안에 자랑처럼 올려두려고했던 경찰증서가 경찰서 안에 있다는게 기억났다. 어떡하지, 혼자 길가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다 아직 출근하기에도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음을 바라고 바라며 경찰서안으로 택시를 돌렸다.
다행히 이른 아침시간에 아무 없는 사무실이었고, 내가 먼저 불을 밝혔다. 이런 차림으로 사무실에 있으니 괜히 기분이 새로웠다. 뭐랄까, 내가 경찰이 아니라 경찰인 남자친구를 보러 온 그런 느낌? 그 남자친구가 황민현 형사님이면 더더욱 완벽한 상상이 될테고.
오늘도 사무실 가득한 남자냄새에 섬유유연제향과 비슷한, 부담스럽지 않은 향을 뿌리고 책상으로 향해 나의 경찰증서를 찾았다. 책상에 자리한 수 많은 서류파일 때문에 파란 책자가 눈에 띄질 않아 서류파일 정리부터 시작했다. 이러고 있으니까 이번엔 우렁각시 같네?
조용한 아침을 깨고 복도에 구두굽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쪽을 향하는 발소리에 나도 모르게 책상밑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냥 지나가라, 지나가라.
하지만 바램과는 틀리게도 발걸음은 우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 주인공은 황민현 형사님이셨다. 형사님은 문을 열고 들어오시다 불이켜져있는 사무실과 향기가득한 사무실의 공기를 느끼셨는지 걸음을 멈추셨다.
“누구야.”
잘생긴 얼굴탓인걸까, 아니면 그 분위기 탓인걸까 그냥 멈춰서서 누구냐고 말을 뱉었을뿐인데 마치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이 몰래 숨어든 스파이를 발견하고 하는 대사 같았다. 물론 그 몰래 숨어든 스파이가 나라는게 문제지만.
경찰인 내가 이 말을 활용하게 될줄은 몰랐는데, 자수해서 광명찾자고 들킬바에 먼저 자수하는게 나을걸 같아서 스멀 스멀 책상밑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김여주?”
“하...하...선배님, 좋은아침 입니다.”
나의 등장에 눈을 찌푸려 작게 실눈을 뜨고 바라보시던 황형사님은 나인걸 알아채시고는 더욱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셨다. 휴가인데 여기 있는게 이상하거나, 이런차림으로 여기 있는게 이상하거나, 혹은 그 둘다 거나.
“오늘 날씨가 참 좋더라구요, 그쵸?”
“여기서 뭐해? 그것도, 이렇게 꾸미고?”
역시 둘다 였던걸까. 머쓱함에 절로 가렵지도 않은 머리를 긁어보였다. 평소라면 질끈 묶은 머리에 화장기도 없고 단정한 셔츠차림으로 앉아있을 내가 이렇게나 꾸미고 사무실에 나타나니, 아니 숨어있다가 걸리니 이상한게 당연했다.
“그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할까, 자연스럽게 ‘혹시 제가 어제 집에 어떻게 들어갔나요’ 부터? 아니면 '부모님 납골당에 가는데 경찰증서를 가지러왔습니다!’부터?
그렇게 대답을 망설이고 있으면 어느새 윤지성형사님과 하성운형사님이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셨고 그 뒤를 바로 이어 성우도 들어왔다. 더 복잡해져버린 상황에 울상을 지으며 문에게서 등을 돌려버렸다.
“어? 황민현이 여자랑 있어, 대박 대박. 야, 이건 찍어야돼.”
그리고는 정말로 윤형사님과 하형사님은 휴대폰을 꺼내 찰칵-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기 시작하셨다.이 사람들이 진짜.
“이 아리따운 여성분은 누구실까-?”
“........선배님들, 좋은 아침 입니다...!하하...”
그렇게 선배님들의 놀란 눈과 벌어진 입은 쉽게 다물어질줄을 몰라서 결국 먼저 경찰증서를 가지러왔다고 말씀을 드렸다.
“뭐야, 이렇게 꾸미고 경찰증서를 가지러? 무슨 소개팅가는데 증거제출이라도 하냐?”
말과 함께 하성운 형사님의 특유의 깔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긴, 그냥 경찰증서만 가지러왔다고 하면 이상하지.
“부모님 납골당에 가져다놓으려구요. 경찰되고 처음 뵈러가는거라.”
“........”
“........”
“하성운이 잘못했네.”
“내가 잘못한것 같아, 미안하다.”
이런 분위기가 될까봐 말안하려고 했던건데, 예상대로 분위기는 싸해졌지만 선배님들 특유의 재치덕에 잘 넘어갈 수 있었다. 상황이 이해가 되자 그 다음의 관심은 나였다.
‘예쁘다, 이렇게 꾸미니 여자같네, 평소에도 이러고 다녀라’ 등등의 말들이 이어졌고 윤형사님은 휴대폰으로 사진도 남기셨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나서야 경찰서를 빠져나왔고 무사히 경찰증서를 납골당에 자랑처럼 올려놓을 수 있었다.
***
남들이 쌩얼을 트면, 쌩얼 보여주는게 자연스러운것처럼 화장한 모습을 트고 난 뒤로 화장한 모습을 보여주는일, 머리를 풀고 출근하는 일도 잦아졌다.
변한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옆 강력2반에서 조직들 간의 패거리싸움을 체포해왔는데, 그래서 인지 평소답지 않게 하루종일 고함소리가 경찰서안을 울려댔다.
“쟤가 먼저 때렸다니까요.”
“쟤들이 먼저 우리 구역에 들어왔어요.”
계속 같은 대답의 반복이었다. 가장 말이 안통하고, 통제도 안될 사람들이라 옆 형사님들이 진심으로 불쌍해져 안쓰럽게 바라보면 내코가 석자라는듯 나를 부르시는 반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서류좀 2팀 반장님한테 전해줘.”
이 또한 막내의 일이거니, 서류를 전해드리면 곧바로 싸인을 해서 다시 나에게 전해주시는 2팀 반장님이셨다. 꾸벅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면 내 앞을 막아서는 ,방금까지는 조사를 받던 수많은 조직원들이 있었다.
“저는 이 형사님한테 조사받고 싶습니다.”
“예쁜 형사님아, 저 좀 체포해 주십쇼.”
“저번에 봤을땐, 이렇게 예쁜 형사님 안계셨는데?”
조사를 받다말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내 앞을 막아선 조직원들은 어이없는 대사를 던지며 내앞을 가로막았다. 물론 칭찬이었지만 이 곳에서는 여자로 취급받는게 오히려 더 기분이 나빴다. 경찰서 안이라 이들이 나에게 어떠한 짓을 할 수 없다는걸 알아서 그냥 무시하고 이들 사이를 뚫으려하면,
파일로 책상을 내려치는 탁-! 소리와 함께 모든 소란이 일시적으로 정지되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난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셔츠 소매를 걷어올리며 빠른 발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오시는 황민현 형사님이 계셨다.
“서 내에서는 소란피우지 않습니다.”
형사님은 또 그 특유의 카리스마로 조직원들을 다 자리로 복귀 시켰고 내 팔을 잡고 다시 우리의 자리로 향해가셨다. 나는 또 그 박력에 반해 웃으며 끌려갈 뿐이고.
“그러게 누가 예쁘게하고 다니래.”
“...황형사님, 저보고 지금 예쁘다고 하신겁니까?”
“......빨리 결재서류 보고해서 올려.”
매번 이런식이었다. 형사님의 말에 꼬투리를 잡아 놀리듯 되물으면 항상 귀가 빨개져서는 다른 말로 돌리시는 황형사님이셨다.
“우리 여주 예뻐져서 큰일이야. 이래서 범인 잡으라고 내놓기나 하겠어?”
“윤형사님, 예뻐져서가 아니라 원래 예뻤던거 아닙니까? 옹성우는 원래 예뻣던거 알겁니다.그치?”
“저는 예뻐진것도, 예뻣던것도 정말, 완전, 리얼, 헐,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프지않게, 아니 사실 매우 아프게 성우를 한대 때리면,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반장님이 계셨다. 누가봐도 사건이었다.
“사건이다. 9살짜리 여자아이가 납치됐어, 범인은 현찰 5억을 요구하고 있고 경찰에게 알리면 즉시 아이를 죽인다고 협박중이다. 황민현, 김여주는 현장으로 출동하고 나머지는 이곳에서 수사를 진행한다.”
***
긴급히 차안으로 이동하는 동안, 아이에 대한 정보를 소리내어 읽었다. 운전하는 황형사님이 내려서 서류를 보는 시간이라도 절약하기 위해서.
“이름 강민아. 나이 9살. 목격자는 놀이터에서 같이 놀던 같은 반 친구로 민아가 그네를 타다가 놀이터밖을 지나가던 어떤 아저씨를 보고는 웃으면서 달려나갔다고 진술했습니다. 그게 마지막 행적이랍니다. “
민아가 웃으며 달려나갔다는건 그 마지막 사람이 범인이 맞는 이상, 면식범의 소행이라는 뜻이었다. 다행히도 면식범이라면 아이를 쉽게 해치지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만큼 우리 경찰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들키기에도 쉬웠다. 아직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도 없기 때문에.
최대한 눈에 띄지않게 민아의 집으로 들어가면 집안의 분위기는 매우 삭막했다. 거실에는 장비팀이 먼저 도착해 유괴범에게 걸려올지 모르는 통화를 위해 도청연결과 위치추적을 준비하고 있었고 쇼파에는 민아의 어머니가 앉아계셨다.
황형사님은 부모님께 조사 협조를 부탁드리려 가셨고 나는 그 사이에 먼저 민아의 방문을 열었다. 방안에는 민아의 흔적이 가득했고 9살 여자아이인 만큼 특유의 느낌이 묻어났다.
“당신들이 알긴 뭘 알아요?!”
갑자기 거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고 급하게 방문을 열고 나가보면 황형사님께 화를 내고 계신 부모님들이 계셨다. 옆의 장비팀에게 살짝 물어보면 황형사님이 ‘얼마나 힘드실지 이해합니다.’라고 위로차 건넨 말이었는데 부모님들께서 ‘당신들이 알긴 뭘 아냐.’라는 식으로 예민하게 나오셨다고 했다.
그도 그럴게 한순간에 사랑스러운 아이가 살아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뭐든 예민하실 수 밖에 없는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당황스러워하시는 황형사님을 지나 울고 계신 어머님을 따뜻하게 안아드렸다. 나의 토닥임에 어머님의 울음이 점점 진정되어 가셨다.
“저희가 다 짐작하지는 못하지만 많이 힘드실거라는건 알아요. 하지만 어머님이 강해지셔서 버티셔야 민아도 버틸거에요, 그러니까 민아를 위해서라도 무너지시지 마시고 힘내주세요. 어머님.”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야 민아의 집에 도착했기 때문에 벌써 밖은 어둑어둑 해졌고 오늘도 어김없이 외박으로 민아의 집에서 자야할것만 같았다. 범인이 전화하겠다고 예고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연락이 없어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결국 담요와 함께 민아의 일기장을 손에 들고 방 바닥에 앉으면 그옆에 함께 앉으며 전화로 보고사항 전달을 마무리하고 있는 황형사님이 계셨다.
“민아야, 실례 좀 할게.”
조심스럽게 민아의 일기장을 펼치면 9살답게 귀여운 내용이 많았다. 가족들과 여행간 일, 엄마에게 혼난 일, 세세하게는 문구점에 가서 뭘 샀는지, 학교를 마치고 강아지를 구경하다 오는 일까지도 적혀있었다.
♩♪♪♪-
집안의 정적을 깨는 전화벨소리에 형사님과 나의 몸이 반사적으로 거실로 달려나갔다. 장비팀과 어머니가 신호를 주고 받은 뒤 수화기를 들었다.
- 내일 12시 정각, 서울역 4번게이트쪽, 사물함 101번에 현금 5억을 놓어두면 2시간 뒤 아이를 풀어주겠다.
최대한 시간을 끌라는 신호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우리쪽 말을 듣지도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망연자실하기도 전에 휴대폰 문자로 민아의 사진이 보내졌다. 손에 과자를 들고 환하게 웃고있는 모습. 그 모습에 또 한번 부모님들이 무너져내렸다. 그 모습을 보고있자니 나도 눈물이 날것 같아서 다시 민아의 방으로 들어와버렸다.
“우리도 약해지면 안돼.”
따라들어온 황형사님이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셨다. 오늘 따라 그 손길이 더 듬직했다.
“아동납치사건 수사의 핵심은 뭐다?”
“초동수사입니다. 48시간이 지나면 아동의 생존확률이 급격히 떨어지기때문에 그 골든타임내에 반드시 민아를 찾습니다.”
열의 가득한 나의 대답에 형사님은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셨고 이내 민아의 방안에서 형사님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둘만의 수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민아네 가족이 원망을 살말한 일을 한적도, 범행이 일어날만한 동기도 없어서 도저히 수사에 진도가 나질않았다. 결국 도돌이표 수사에 지친 우리는 수첩을 접고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동시에 한숨이 새어나왔다.
“경찰된거 아시면 하늘에서 부모님이 되게 좋아하시겠다.”
“이렇게 잘생긴 형사님이랑 같이 일하는거 아시면 더 좋아하시겠죠?”
“이렇게 남자가 득실득실한데서 위험한일 하시는거 아시면 속상해하실껄.”
이번엔 나의 말에도 웃으며 받아치시는 형사님의 모습에 해맑게 웃으면 조심스럽게 부모님에 대해서 물어오시는 형사님이셨다.
“두분 다 같은날 같은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제가 그날따라 느낌이 너무 안좋아서 집에 있지말고 밖에 나가서 자자고 했는데 당연히 아무도 안들어주셨죠. 그래서 가출을 했어요, 저를 찾으러 밖에 나오시지않을까 싶어서. 근데 오히려 집에왔는데 아무도 없을까봐 집에 계셨나봐요, 그리고 우연하게도 진짜 집에 불이 났어요. 그렇게 같이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처음으로 꿈을 꿨어요, 불에 집이나서 부모님이 나를 떠나시는 꿈. 꿈이 너무 생생해서, 느낌이 이상해서 밖에 나가자고 해도 안들어주셨어요. 어떻게든 발악하려고 가출도 해보고 애원도 해봤는데 그냥 말도안되는 투정으로 느끼셨나봐요.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때, 집은 불길에 휩싸여있었어요. 1층엔 다른가족, 2층엔 우리집이었는데 두 가족 모두 그렇게 하늘나라로 가버렸어요. 그리고 그 뒤로 제 꿈도 시작됐어요.
처음으로 꺼내는 속마음에 눈물이 하나,둘 흘러내리면 형사님은 부드럽게 나를 토닥여주셨다.
“어릴 때 부터 고생이 많았네. 그래도 지금 이렇게 예쁘게 큰거 하늘에서 보시면 뿌듯하시겠다.”
그렇게 따뜻한 말을 들으며 형사님의 어깨에 기대어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들었던것 같다.
***
햇살에 눈이부셔 눈을 뜨면, 나는 형사님의 어깨에 기대고 형사님은 어깨에 기댄 내 머리에 기대어 잠이들어 계셨다. 나의 꿈틀거리는 움직임에 잠이깨신 형사님도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피셨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을새도 없이 겨우 화장실에서 고양이세수만 한채 서울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윤지성 형사님을 제외한 우리팀과 다른 지원팀까지 모두 모여 눈에띄지 않게 각자의 위치에 대기하고 있었다. 아직 약속시간인 12시가 되려면 5시간이나 남았지만 언제 이 장소에 올지 모르는 범인을 모두 경계하고 있었다.
커피한잔을 손에 들고 열차를 기다리는 여대생인척, 자리에 앉아 커피를 한모금 들이키면,
“뭐?!”
전화를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반장님이셨다. 모두가 반장님을 쳐다봤고 이윽고 무전을 통해 반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공원화장실에서 시체가 발견됬는데 강민아양으로 확인됐다. 모두 철수하고 서로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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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너무 사건을 다룬터라, 이번편은 조금 쉬어가는 느낌으로 하려했는데 오히려 더 재미없는 기분ㅠㅠ 사건구상하는게 어려운데 또 너무 사건으로 가면 독쨔님들이 재미가 없고, 그래서 적절히를 유지하려다보니 그게 제일 힘드네요ㅠㅠ 하지만 독쨔님들이 재밌었다고 남겨주시는 조그만한 댓글이 저에게는 매우매우 큰 힘이 된답니다 ㅎㅎ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신 독쨔님들 감사합니다! 암호닉 신청은 언제든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 ❤️ 소중한암호닉 ❤️ [정태풍][꼬꼬망][@불가사리][참새랑] [여울][마요][강댕땡][배낭맨소녀] [후렌치후라이][강낭][문달][황달] [녤니짱][새벽이슬] [백지][809] [지오][포로링][루지][0209] [황소][0118] [황밍횽] [민민] [뿡치버섯] [듐] [1010] [구르밍] [친9] [릴라이][9094][여름] [어도러블] [몽구][킹제77] [푸린] [박쏠로][체리콕][맑음][꾸까] [소리없는아우성] 〈sub>〈/sub>〈sup>〈/sup>〈sub>〈/sub>〈sup>〈/su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