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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동거
찬열x경수
w.BM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 도착한 사람과 맞이하는 사람. 가지각색의 사람이 몰린 공항에서, 찬열은 오늘 같이 살던 사촌형 준면을 보냈다. 대학 입학 후 1년 다닌 뒤 군대에 입대하고, 2년 후 제대한 뒤에 좁기만 한 고시 텔로 들어갈 뻔 했던 저를 구제해준 것이나 다름없는 준면을 보내야한다는 생각에 눈물을 머금던 찬열은, 이윽고 준면이 비행기에 몸을 싣자마자 공항을 빠져나오며 앞으로 살아갈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 수중에 있는 총 재산은 준면이 살던 집을 팔고난 뒤에 생긴 돈 뿐.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무섭게 오르고 있는 판국에 이전에 준면과 같이 살던 집과 같은 것은 꿈도 못 꿀 것이고, 그저 학교 근처면 반지하나 옥탑 방이라도 감지덕지였다.

  공항에서 나온 뒤에 찬열이 향한 곳은 학교 근처 부동산이 몰려있는 골목이었다. 기숙사라도 들어갈까 싶었지만 이미 기숙사 입주 신청은 끝이 난지 오래였고, 이제 막 입학을 앞둔 신입생들이 몰려서 남은 방이 있을까 싶었던 찰나, 마지막으로 들른 부동산에서 찬열은 딱 하나 남았다던 전세방을 구했다. 지은 지 십여 년 정도 된 아파트였지만 가격도 이전에 살던 집보다 훨씬 싼 가격이었기에 부동산 주인아저씨의 집을 구경해보겠냐는 말에 찬열은 거두절미하곤 도장부터 꺼내들었다.

  이렇게 해서 찬열은 준면과 살던 집에서 나와 완전한 독립을 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되고 비로소 독립을 했다는 행복감에 젖어, 찬열은 신이 나서 부리나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래 된 집이긴 했어도 집주인이 관리를 잘 했고, 리모델링도 해서 내부는 깨끗했으며 주인아저씨가 얘기한 평수에 비해 생각보다 작지도 않았다. 거실과 부엌도 따로 있고, 방도 있고. 이정도면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양호한 곳이었다.

  ……라고 불과 몇 분 전까지 생각 했었다.


  그러니까 찬열은 짐정리를 모두 끝내고 텔레비전의 코드를 꼽아 넣을 때 까지만 해도, 이 집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기 코드를 꼽고 뒤를 돌아 본 순간, 천으로 된 일인용 소파에 앉아 여유로운 미소로 제게 인사를 건네는 어떤 사람을 발견하고서 그 생각은 싹 사라지고 말았다.



  “하이 헬로 안녕?”
  “으악! 누, 누구야!”
  “아 거 참,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여기 방음시설 거지같은 건 알고서 소리 지르는 거야?”
  “누구냐고 너!”
  “어디다 대고 초면에 반말이야. 나? 이 집 주인.”
  “무슨 개소리야, 아까 주인집 다녀갔는데.”
  “그나저나 신기하네. 너, 내가 보여?”
  “야 말 돌리지 말고, 네가 보이니까 말을…….”



  순식간에 찬열의 코앞으로 다가온 정체모를 사람으로 인해, 찬열은 하려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찬열이 제 앞에 있는 정체모를 사람에게로 손을 뻗었고, 정체모를 사람은 그저 빙글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찬열의 손이 정체모를 사람의 볼에 닿았다. 정확히는 볼에 닿은 줄 알았던 손에 냉기가 돌며 정체모를 사람의 얼굴을 통과했다. 사람의 온기가 아닌 싸늘한 냉기와 정체모를 사람의 얼굴을 통과한 제 손이 낯설어 찬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제 손과 표정 변화가 없는 정체모를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으, 으, 으아악!”



  대낮부터 아파트 단지에 찬열의 비명이 울렸지만, 그것에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정체모를 사람, 아니 귀신의 이름은 변백현. 나이는 죽었을 당시에 스무 살 이었으나 죽은 지 4년이 흘렀으니 살아있었다면 현재 스물네 살 이라며, 백현은 자신을 소개했다. 백현은 친구랑 장난치다가 도로변에 내몰렸는데 그때 마침 빠른 속도로 주행하던 차에 부딪혀 즉사했다며, 굳이 시키지도 않았건만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까지 알아서 이야기했다.

  찬열은 귀신인 백현에게서 간략한 자기소개를 들으면서도, 도무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귀신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 몇 번이고 눈을 손으로 부비기도 하고, 제 볼을 꼬집기도 하고, 손가락으로만 백현의 팔 따위를 찔렀다가 쑥 통과하며 느껴지는 냉기에 소름이 돋았었다. 그 사이 자기소개를 마친 백현은 찬열이 정리해놓은 집을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실상은 둥둥 떠다니는 것이었다.- 둘러보기까지 했다.



  “너, 너, 너!”
  “한 번만 불러도 충분히 알아듣거든?”
  “그, 그러니까… 너 왜…….”
  “네 눈앞에 보이냐고? 낸들 아냐. 여태 이 집 살던 사람들 단 한 번도 날 본 적 없어. 즉, 네가 처음이란 말이지.”
  “하…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긴, 이 세상엔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할 수 없는 온갖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뭐, 네가 나를 보는 것도 그런 일들 중 하나이고. 그나저나 넌 자기소개 안 해?”
  “나? 나, 나는… 여기 근처에 D대학교 의예과 2학년 재학 중인 스물네 살 박찬열.”
  “2학년? 아아, 군대 다녀와서… 오케이. 잠깐, 너 D대 다닌다고?”
  “어, 응.”



  찬열의 자기소개를 다 들은 백현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오늘 본 것 중 처음으로 표정을 진지하게 굳혔다. 처음 생긴 표정 변화에 외려 찬열이 더 긴장을 하고서 백현의 입에서 나올 다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말이 나올지 알 수 없었기에 찬열은 마른 침을 삼키며 잠자코 기다렸다. 얼마 뒤, 혼자만의 생각을 끝낸 백현이 다시 원래의 여유로운 표정으로 돌아가 일인용 소파에 자리 잡고 앉았다.



  “D대 다닌다고 했지, 사실은 나도 D대 다녔었어.”
  “아, 그래?”
  “응. 그러니까 부탁 하나만 하자.”
  “뭐?”
  “부탁 하나만 하자고.”



  생각보다 뻔뻔한 이 귀신의 태도에, 찬열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백현을 보았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백현은 외려 들어주는 거지? 라는 물음을 하며 찡긋 윙크를 날리기 까지 했다. 대답 없는 찬열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백현은 손을 마주 모아 깍지를 끼고는 꼬고 앉은 무릎 위에 얹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떤 부탁인지 들어나 보자 하는 생각으로 찬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해. 앞집에 내 친구가 살아. 아, 이름은 도경수. 엄청 귀엽게 생겼어. 눈도 동그랗고 생긴 것도 동글동글, 입술이 하트모양이다? 키도 작은 게 덩치도 작아서는… 아 그 친구는 D대 실용 음악과.”
  “…….”
  “앞집에 사는 내 친구 경수는 나랑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였는데, 사실은 날 엄청 좋아하던 애야. 내가 아까 친구랑 장난치다가 도로변에서 죽었다고 했지? 나랑 장난쳤던 친구가 경수야.”
  “아…….”
  “걔 원래는 되게 쾌활하고 밝은 애였는데, 내가 죽은 뒤로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나봐. 내가 목격한 자살시도만 다섯 번이야. 어쩌면… 지금도 경수는 내가 죽은 이유가 본인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
  “그러니까 내 친구 경수를 부탁할게. 이게 내 부탁이야.”
  “……뭐?”
  “간단해, 걔랑 나를 대신해 친구로 지내든, 뭐 너도 경수가 좋아져서 사귀게 되어도 상관없으니까… 경수가 다시 예전처럼 밝게 지내는 모습 보고 싶어. 어쩌면 경수가 나 때문에 슬퍼하니까, 내가 저승에 가질 못하는 것 같아.”



  백현의 사연은 꽤 딱했다. 말을 다 듣고 난 뒤에, 찬열과 백현 두 사람 다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찬열은 괜히 답답해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향했다. 일단 백현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긴 했으나, 같은 대학에만 다닐 뿐 같은 과도 아닌데 어떤 방법으로 친해진다는 말인가. 그리고 남자를 좋아해본 적도 없는데 사귀게 되어도 좋다니? 현실성 없는 부탁에 지금이라도 거절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시하기에는 백현과 백현의 친구 이야기가 너무 안쓰러웠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찬열이 결단을 내리고 뒤를 돌아 선 순간, 소리 소문 없이 찬열의 뒤로 와 서있는 백현으로 인해 깜짝 놀라 왁!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좀! 인기척 없이 다니지 마!”
  “너 상식이 있니, 없니? 귀신이 어떻게 인기척을 내냐. 생각은 해? 그 머리로 대학은 어떻게 갔나 몰라.”
  “아 씨, 이게 진짜.”
  “됐고, 그래서 생각은 좀 해봤어?”
  “아… 그게, 일단 들어주긴 들어주는데. 어떻게 친해지냐고.”
  “어유, 이 답답아. 너 연애 한 번도 안 해봤지?”
  “아, 아니거든!”
  “뻥치고 자빠졌네. 어디 속일게 없어서 귀신을 속여. 이 형님이 알려 줄 테니까, 넌 내가 시키는 데로만 해.”
  “형님? 나보다 키도 작은 게 진짜.”
  “야 내가 살아 있었으면 너보다 더 컸어!”



  말 한마디 지는 법 없이 바락바락 대드는 백현을 내려다보던 찬열은 괜히 이 빌어먹을 귀신 새끼의 부탁을 들어준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사연도 딱할뿐더러 착한 자신이 백 번 양보하는 셈 치고 참기로 했다.

  하지만 이 귀신새끼, 보자보자 하니까 누굴 보자기로 아나 재수 없어도 너무 재수 없었다. 연애 한 번도 못 해본 놈한테 제 친구를 맡긴다며 우는 시늉을 하기에, 찬열은 답답함에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치다가 쿠션을 집어 들곤 백현이 있는 쪽으로 던졌으나, 그것마저 찬열의 뜻에 따라주지 않고 백현의 옆으로 떨어졌다. 뭐, 어차피 제대로 맞췄다고 해도 백현은 귀신이기에 그대로 통과할 것이 뻔했다. 찬열은 깝죽거리기로는 세계 최고일 것 같은 귀신 백현과 앞으로 살날이 더 막막해,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일단 떡부터 돌려.”
  “떡?”
  “응. 이사 떡. 요 앞에 떡집 있으니까 꿀떡 사와. 경수는 그거 좋아해. 나는 경수 집에 있는지 보고 올게.”



  백현의 말에 찬열은 얼떨결에 옷을 챙겨 입고 떡집으로 향했다.

  찬열이 꿀떡을 사가지고 집으로 오니, 백현은 안 그래도 창백한 피부가 투명할 정도로 더 창백해져서는 찬열더러 빨리 나오라고 성화였다. 문득 불안한 예감이 들어, 손에 든 봉지를 내려놓을 생각도 못하고 다시 밖으로 나온 찬열은, 앞집 문 앞에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손짓하는 백현을 보았다. 빨리, 문 열려 있으니까 들어가! 백현의 말에 찬열은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도 되는 건가 싶어, 망설이다가 귀에 대고 빽 소리를 지르는 백현으로 인해 어영부영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의 구조는 자신의 집과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았으나, 어딘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싸늘했다. 어리둥절한 찬열이 현관에 가만히 서있는 찰나, 백현이 욕실을 가리키며 찬열더러 욕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이유 없이 욕실로 들어가라고만 재촉하는 백현으로 인해 실례합니다, 라고 중얼거리며 욕실 문을 열었다. 찬열은 욕실 안의 광경을 보고서야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불안한 예감의 원인을 알 수가 있었다.



  “경수, 경수 빨리 꺼내! 뭐하고 있어, 얼른!”
  “어? 아, 알았어. 이봐요, 괜찮아요? 제 목소리 들려요? 이봐요!”
  “제발, 제발 살아줘… 경수야, 제발…….”



  옷을 입은 상태에서 욕조 안에서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은, 얼핏 보기에 죽은 사람처럼도 보여 찬열은 덜컥 겁이 났다. 욕조에 축 처진 채로 의식을 잃은 경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경수의 몸에 별다른 외상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코 밑에 검지를 대어 숨을 쉬는지 확인을 했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찬열은 경수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욕조 밖으로 끌어낸 뒤에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경수의 몸에 덮어주었다. 찬열은 백현에게 경수의 방이 어딘지 물어, 경수를 안아 들고서 침대 위에 올려놓고 두꺼운 이불을 꺼내와 덮어주었다. 주변 정황으로 봐서는 수면제를 다량 섭취한 것 같았다. 편안한 표정으로 잠이든 경수를 내려다보며, 찬열은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백현의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표정을 본 순간, 찬열은 이제 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백현의 부탁을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BM

백도 글은 써봤어도 찬디는 또 처음이네요. 그것도 연재글...

사실 이전부터 생각해왔던 소재라, 지금 올릴지 말지 고민했지만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보려구요.

가족의 비밀 쓰다가 머리 식힐 겸 쓰는 가벼운 소재랄까요.


아 혹시라도 가족의 비밀 신알신 기다리신 분이 보신다면... 내일 중에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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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가족의 비밀도 좋지만 이런 가벼운 소재의 글도 좋네요! 작가님의 글은 언제나 기다리게 됩니다.. 흑흑.. 잘 보고 가요ㅠㅠ
11년 전
독자2
재밌어요ㅠㅠ 암호닉신청해도되나요ㅠㅠ? 된다면 도경아로 신청해도될까요?
11년 전
독자3
헐 겁나재밋어여ㅜㅠㅠㅠ
11년 전
독자4
볼매에요:) 작가님 글은 진짜 다 재밌네요. 가족의 비밀이 약간 무거우면서도 어떻게 보면 진지한 글이라고 생각할 때 이 글은 뭔가 산뜻하고 느낌이 좋아요.
작가님 글 문체는 참 깨끗하고 깔끔하셔서 제가 보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이 읽을 수가 있어요. 감사합니다. 아 귀여워요ㅋㅋㅋㅋㅋ아 이번 글 좋네요. 뭔가 좋아요, 저는 항상 튀어올 준비가 되어있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해요. 아까 답글 받았어요, 저야말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ㅠㅠ감사합니다. 기막힌 동거도 더 열심히 보고 스토리를 열심히 파악할게요, 감사합니다.

11년 전
독자5
뿌잉뿌잉이에요 아 배켜니가 귀신으로 나오길래 코믹인줄 알았더니 저런 사연이 ㅠ,ㅠ 경수 자살하면 아니아니돼요~ 차녈이가 구해줘서 다행임
11년 전
독자6
은하수예요! 신작! 이라니...가족의 비밀이나 낭만시리즈의 분위기를 반반섞어놓은듯한 느낌의 소설이네요. 무겁다고하기엔 가볍고 가볍다고하기엔 무거운 딱 그 중간의 느낌? 백현이가 찬열이에게 어떤 충고를하며 경수의 마음을 열지 궁금하네요. 작가님의 글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정말 이런 연재물이 늘어나면.....흡 기쁩니다. 그런데 ...음 백현이가 살아있었으면 찬열이보다 더 컸다고하는부분에서 웃음이 터졌어요. 미안해 백현아ㅠㅠㅠ 그치만 상상하니 너무 웃겼어ㅠㅠㅠㅠ 백현이랑 찬열이가 투닥투닥하는것도 쏠쏠한 재미를 줄것같네요 잘읽고갑니다ㅎㅎ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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