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를 보던 도중 아내에게서 온 전화에 준면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직원 휴게실로 들어갔다. 작은 사각형의 공간에는 퇴근 시간을 앞둔 상태라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준면은 전화가 꺼질까봐 얼른 통화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응, 여보. 전화 너머로 들리는 단정하지만 애교 있는 목소리에 준면의 입가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
“이제 곧 퇴근인데, 먹고 싶은 거 있어서 그래?”
“-으응 아니, 오늘 집에 중요한 손님 와있다고 말하려고. 여보도 누군지 알면 놀랄걸?”
“중요한 손님, 누군데?”
“-세훈이, 오늘 귀국했대.”
지나치게 들떠있는 아내 지은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온 익숙한 이름에, 준면은 하마터면 들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남편으로 인해 지은은 몇 번이고 준면의 이름을 불렀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준면은 전화를 고쳐 잡아 대답을 했다.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오라는 지은의 말에 알았다고 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세훈이, 오늘 귀국했대.
전화를 끊은 뒤에도 귓가에 울리는 지은의 목소리, 정확히는 지은이 뱉어낸 그 이름이 원인이었다. 준면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해묵은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음을 느꼈다. 손이 덜덜 떨리며 식은땀이 절로 나왔다. 준면은 지은의 전화로 인해 한순간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길게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오세훈이 귀국했다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온 몸을 덮쳐오는 기분이었다.
너는 내게 단 한 번도 진심인적 없었다.
착한남자
세훈x준면
w.BM
준면은 집 근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놓고서 내릴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깊은 한숨만 내뱉었다. 조수석에 던져 놓은 휴대폰에선 지은으로부터 언제 오냐는 메시지가 와있었지만, 준면은 차마 확인 할 수조차 없었다. 운전대에 이마를 맞댄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준면은 이내 굳게 결심한 듯 가방과 휴대폰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준면은 조금 초조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며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뒤, 천천히 숫자를 달리하는 계기판을 올려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한 쪽 벽면에 있는 거울을 통해 불안으로 가득한 또 다른 제 자신과 눈을 마주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땡. 그 순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준면은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옮겨 현관문 앞에 멈춰 섰다. 다시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쉬고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비밀 번호를 눌렀다.
“여보, 나 왔… 어…….”
“오랜만입니다, 매형.”
“어…… 처남도, 오랜만이야.”
옅게 미소 짓는 모습이 지은과 똑 닮아 있었다. 준면은 멍하니 제 앞에 서있는 세훈을 보다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거실로 들어서자 부엌에서부터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지은이 나왔다. 여보, 왜 이렇게 늦었어. 조금은 투정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준면이 작게 미소 지으며 지은을 잠깐 끌어안았다.
“미안, 차가 밀려서.”
“하긴. 아, 얼른 옷 갈아입고 나와, 밥 차려 놓았어.”
“오늘 무리한 건 아니지?”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리고 병원에서도 조금씩 걸어 다니며 운동하랬어, 애기 비만으로 태어난다고.”
“그래도, 걱정 되잖아.”
“괜찮다니깐? 얼른 옷 갈아입어. 참, 세훈아 먼저 식탁으로 가 있어.”
“알았어, 누나.”
세훈이 지은의 말에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준면의 시선이 조용히 따라갔다. 무의식적인 제 행동에 놀란 준면이 황급히 제 아내 지은 쪽으로 시선을 돌려 미소 지어 보였다. 현재 지은은 임신 5개월 째였다. 이미 한 번의 유산 경험이 있는 지은이었기에 준면이 각별히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은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화에, 준면은 어색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제가 느꼈던 불안감이 괜한 걱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 그 날로부터 절대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 없다고 호언장담했던 세훈이 갑자기 귀국 했다는 소리에, 준면은 노파심 때문에 괜한 걱정과 의심을 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편한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서 안도의 숨을 뱉은 준면은 조금 긴장을 풀고 방에서 나왔다. 준면이 식탁에 앉자 식사가 시작되었다. 준면이 느꼈던 불안감은 준면 혼자만의 것이었는지 세 사람의 대화는 별다른 이상 없이, 여느 가족들의 대화와 다름없이 무난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에 준면은 다시 한 번 세훈에게 품었던 오해가 미안해졌다.
식사가 끝난 후, 세훈은 짐을 풀어 놓은 호텔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때마침 지은이 과일이 먹고 싶다고 말하기에 준면 역시 나갈 채비를 했다. 지은은 현관 앞에서 준면과 세훈을 동시에 마중했다. 준면은 날이 추우니 어서 들어가라고 하며 현관문을 닫았다.
그리고 준면은 하필 세훈과 같이 집을 나선 것을 후회했다.
“행복한가봐?”
“으, 응?”
준면이 현관문을 닫고 뒤를 돈 그 순간, 세훈의 손이 준면의 목을 움켜쥐고 문 쪽으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준면은 그 상황에도 현관문 너머에 있을 지은에게 밖에서의 소란이 들리진 않을까 싶어 눈치가 보였다. 그런 준면을 알아차린 세훈은 조소를 흘리며 준면을 내려다보았다. 준면의 목을 움켜쥔 세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숨 쉬기가 곤란해진 준면은 사색이 되어 떨리는 시선으로 세훈을 볼 뿐이었다.
“세, 세훈, 아…….”
“5년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
“큽, 이거… 놓고…….”
“한국에 돌아 왔을 때, 너 행복한 모습 보이면 죽여 버린다고 했잖아.”
“흐, 세훈… 세훈아…… 제발…….”
“김준면, 내가 너 죽이러 왔어.”
그 순간 준면은 온 몸으로 직감했다. 제 앞에 있는 세훈은, 더 이상 예전의 오세훈이 아니라는 것을.
BGM. Bueno Hombre (드라마 착한남자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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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남자 시작입니다. 부디 잘 봐주셨으면 좋겠네요 :)
+암호닉+ 손톱 님, 여세훈 님, 빵야빵야 님, 그린 님, 헤커스 님, ABC 님, 토마토 님, 신의퀴즈 님, 여우 님, 포폴 님, 자판 님, 미역 님, 돈부 님, 뿌잉뿌잉 님, 안지 님, 감다팁 님, 산딸기 님, 르에떼 님, 매미 님, 준멘션 님, 마들리스 님, 쫑쫑이 님, 건강쌀 님, 별사탕 님, 은하수 님, 와우 님, 겨론해 님, 하이헬로 님, 딸기 님, 준배 님, 새벽 님, 개짱 님, 샤워기 님, 하트 님, 유령 님, 라벤더 님, 사자 님, 속미인곡 님 총 38분 받았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이번에 암호닉 분들께는 아마 착한남자 완결 후 선물(...이라고 해봤자 공금 번외 같은...)이 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예정으로는 더이상 암호닉 안 받을 생각입니다.
아, 그리고 가족의 비밀 텍파는 주말 내로 메일링 하겠습니다! |